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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대 왕릉 표석의 수립과 그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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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6836987

    • 저자
    • 발행사항

      용인 : 단국대학교 대학원, 2023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전공 , 2023. 8

    • 발행연도

      2023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경기도

    • 기타서명

      Erection of stone post for royal tomb during King Yeongjo’s reign and that significances

    • 형태사항

      iv, 79 장 : 삽화 ; 30 cm.

    • 일반주기명

      단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김문식
      참고문헌: 장 57-58

    • UCI식별코드

      I804:11017-000000199472

    • 소장기관
      • 단국대학교 퇴계기념도서관(중앙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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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고는 영조 재위기 全般에 걸쳐 시행된 왕릉 표석 수립의 추이와 그 의의를 詳考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왕릉 비석과 관련한 기왕의 연구 성과들을 살폈을 때, 연구는 미술사 혹은 고고학적 관점에서 조선시대 비석 전체를 조망하여 비석별 수립 추이, 시간에 따른 양식의 변화 등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분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본고는 조선시대 왕릉 비석, 그중에서도 영조대의 표석 수립에 초점을 두고 역사학적 관점에서 이를 살피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왕릉의 비석으로서 태조-문종대까지는 신도비가 수립되었으나 세조대에는 수립이 중단되었다. 이후 17세기 현종대에 신도비를 대신하여 왕릉 표석이 수립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처음 수립된 왕릉 표석은 寧陵 표석이다. 이 시기 왕릉 표석이 신도비를 대체하였음은 두 비석의 수립 목적이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왕릉에 가장 처음 신도비를 세운 태조는 부친인 桓祖 定陵에 비를 세우며 능주를 추앙하고, 후대에까지 능역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寧陵 표석의 수립을 주장하였던 송시열 또한 1673년(현종 14) 능역을 보존하고 선대를 추앙하기 위한 표식이 필요함을 발의하였으므로 왕릉에 수립된 비석의 종류에만 변화가 있을 뿐 그 수립 목적은 상통한다고 이해되었다. 이후 寧陵 표석을 수립한 현종은 세종 英陵과 더불어 역대 능역에 표석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1675년(현종 15) 8월 현종이 승하하며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 시기 현종의 遺旨는 숙종-경종대로 계속하여 이어졌으나, 경종 역시 이를 闕典으로 남긴 채 승하하고 말았다.
    영조는 현종-숙종-경종으로 이어지는 미완성 사업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과 1730년(영조 6)에 懿陵 표석, 1731년(영조 7) 長陵 표석, 1733년(영조 9) 莊陵 표석, 1745년(영조 21) 英陵 표석, 1747년(영조 23) 穆陵‧惠陵‧徽陵 표석, 1753년(영조 29) 章陵‧康陵‧孝陵‧泰陵‧禧陵 표석, 1755년(영조 31) 靖陵‧宣陵‧敬陵‧昌陵‧光陵‧顯陵‧厚陵 표석, 1770년(영조 46) 貞陵 표석, 1771(영조 47) 思陵 표석을 세웠다. 또한 1757년(영조 33)에는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연이어 승하하여 두 왕후의 능인 明陵과 弘陵에 역시 표석을 세웠고, 1744년(영조 20)에는 英陵 표석에 앞서 齊陵의 신도비를 복구하기도 하였다. 즉, 영조대에만 총 23기 왕릉 표석과 1기 신도비가 수립된 것이다.
    이러한 영조대 왕릉 표석의 수립은 3가지 의의가 있다고 정리된다.
    첫째, 先代에 완수하지 못한 과제를 계승한 사업이었다. 영조는 현종-경종으로 이어지는 왕릉 표석 수립을 계승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부터 왕릉에 표석을 세웠다. 또한 그는 나아가 미완성으로 남은 ‘역대 능역의 왕릉 표석 수립’에 대한 선대의 유지를 이어 이를 완성하고자 하였다. 영조 재위 기간 중 1744년(영조 20)~1747년(영조 23)은 그러한 의지가 확고해지는 분기점이었다.
    둘째, 표석 양식을 정비한 사업이었다. 1747년(영조 23) 영조는 徽陵 표석을 수립하며 궐전을 거행할 의지를 밝히며 왕릉 표석 사업을 확장시켰다. 사업 확장의 분기점이 되는 1744년(영조 20) 이후의 표석들은 규모와 제식 등에서 이전에 비해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영조는 이때 수립한 표석의 공역과정을 󰡔表石營建廳儀軌󰡕에 정리하였고, 나아가 󰡔國朝喪禮補編󰡕에 변통된 법제로 기록하였다.
    셋째, 영조의 孝悌 실천이었다. 역대 능역에 표석을 세우며 영조는 ‘立碑’라는 행적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는 왕릉 비석의 수립 목적 중 ‘선조에 대한 추앙’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영조대의 政局에서 임금과 신료 모두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堯舜之治’였다. 그중에서도 효제는 영조가 堯舜의 道이자 덕목으로 강조하던 이념으로서, 그의 정치 논리의 바탕이되는 이념이기도 하였다. 영조는 선대의 미완성 사업을 계승, 나아가 역대 능역에 표석을 수립함으로써 孝弟를 행하는 모범을 보이고, 이를 신료들에게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는 忠을 요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사업의 목적의 기저에 ‘孝悌’ 혹은 ‘孝悌의 실천’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는 이러한 그의 孝行을 󰡔의궤󰡕에 정리하여 후대에까지 보이고 증명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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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고는 영조 재위기 全般에 걸쳐 시행된 왕릉 표석 수립의 추이와 그 의의를 詳考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왕릉 비석과 관련한 기왕의 연구 성과들을 살폈을 때, 연구는 미술사 혹...

    본 고는 영조 재위기 全般에 걸쳐 시행된 왕릉 표석 수립의 추이와 그 의의를 詳考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왕릉 비석과 관련한 기왕의 연구 성과들을 살폈을 때, 연구는 미술사 혹은 고고학적 관점에서 조선시대 비석 전체를 조망하여 비석별 수립 추이, 시간에 따른 양식의 변화 등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분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본고는 조선시대 왕릉 비석, 그중에서도 영조대의 표석 수립에 초점을 두고 역사학적 관점에서 이를 살피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조선시대 왕릉의 비석으로서 태조-문종대까지는 신도비가 수립되었으나 세조대에는 수립이 중단되었다. 이후 17세기 현종대에 신도비를 대신하여 왕릉 표석이 수립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처음 수립된 왕릉 표석은 寧陵 표석이다. 이 시기 왕릉 표석이 신도비를 대체하였음은 두 비석의 수립 목적이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왕릉에 가장 처음 신도비를 세운 태조는 부친인 桓祖 定陵에 비를 세우며 능주를 추앙하고, 후대에까지 능역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寧陵 표석의 수립을 주장하였던 송시열 또한 1673년(현종 14) 능역을 보존하고 선대를 추앙하기 위한 표식이 필요함을 발의하였으므로 왕릉에 수립된 비석의 종류에만 변화가 있을 뿐 그 수립 목적은 상통한다고 이해되었다. 이후 寧陵 표석을 수립한 현종은 세종 英陵과 더불어 역대 능역에 표석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1675년(현종 15) 8월 현종이 승하하며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 시기 현종의 遺旨는 숙종-경종대로 계속하여 이어졌으나, 경종 역시 이를 闕典으로 남긴 채 승하하고 말았다.
    영조는 현종-숙종-경종으로 이어지는 미완성 사업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과 1730년(영조 6)에 懿陵 표석, 1731년(영조 7) 長陵 표석, 1733년(영조 9) 莊陵 표석, 1745년(영조 21) 英陵 표석, 1747년(영조 23) 穆陵‧惠陵‧徽陵 표석, 1753년(영조 29) 章陵‧康陵‧孝陵‧泰陵‧禧陵 표석, 1755년(영조 31) 靖陵‧宣陵‧敬陵‧昌陵‧光陵‧顯陵‧厚陵 표석, 1770년(영조 46) 貞陵 표석, 1771(영조 47) 思陵 표석을 세웠다. 또한 1757년(영조 33)에는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연이어 승하하여 두 왕후의 능인 明陵과 弘陵에 역시 표석을 세웠고, 1744년(영조 20)에는 英陵 표석에 앞서 齊陵의 신도비를 복구하기도 하였다. 즉, 영조대에만 총 23기 왕릉 표석과 1기 신도비가 수립된 것이다.
    이러한 영조대 왕릉 표석의 수립은 3가지 의의가 있다고 정리된다.
    첫째, 先代에 완수하지 못한 과제를 계승한 사업이었다. 영조는 현종-경종으로 이어지는 왕릉 표석 수립을 계승하여 1724년(영조 즉위년)부터 왕릉에 표석을 세웠다. 또한 그는 나아가 미완성으로 남은 ‘역대 능역의 왕릉 표석 수립’에 대한 선대의 유지를 이어 이를 완성하고자 하였다. 영조 재위 기간 중 1744년(영조 20)~1747년(영조 23)은 그러한 의지가 확고해지는 분기점이었다.
    둘째, 표석 양식을 정비한 사업이었다. 1747년(영조 23) 영조는 徽陵 표석을 수립하며 궐전을 거행할 의지를 밝히며 왕릉 표석 사업을 확장시켰다. 사업 확장의 분기점이 되는 1744년(영조 20) 이후의 표석들은 규모와 제식 등에서 이전에 비해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영조는 이때 수립한 표석의 공역과정을 󰡔表石營建廳儀軌󰡕에 정리하였고, 나아가 󰡔國朝喪禮補編󰡕에 변통된 법제로 기록하였다.
    셋째, 영조의 孝悌 실천이었다. 역대 능역에 표석을 세우며 영조는 ‘立碑’라는 행적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는 왕릉 비석의 수립 목적 중 ‘선조에 대한 추앙’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영조대의 政局에서 임금과 신료 모두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堯舜之治’였다. 그중에서도 효제는 영조가 堯舜의 道이자 덕목으로 강조하던 이념으로서, 그의 정치 논리의 바탕이되는 이념이기도 하였다. 영조는 선대의 미완성 사업을 계승, 나아가 역대 능역에 표석을 수립함으로써 孝弟를 행하는 모범을 보이고, 이를 신료들에게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는 忠을 요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사업의 목적의 기저에 ‘孝悌’ 혹은 ‘孝悌의 실천’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는 이러한 그의 孝行을 󰡔의궤󰡕에 정리하여 후대에까지 보이고 증명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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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
    • Ⅱ. 영조대 이전 왕릉 표석의 수립 4
    • 1. 현종~숙종대 왕릉 표석의 수립 4
    • 2. 경종대 왕릉 표석의 수립 15
    • Ⅰ. 머리말 1
    • Ⅱ. 영조대 이전 왕릉 표석의 수립 4
    • 1. 현종~숙종대 왕릉 표석의 수립 4
    • 2. 경종대 왕릉 표석의 수립 15
    • Ⅲ. 영조대 전기 왕릉 표석의 수립 20
    • 1. 1724년~1733년 왕릉 표석의 수립 20
    • 2. 1745년~1747년 왕릉 표석의 수립 24
    • Ⅳ. 영조대 후기 왕릉 표석의 수립 33
    • 1. 1753년~1755년 왕릉 표석의 수립 33
    • 2. 1757년 왕릉 표석의 수립 44
    • 3. 1770년~1771년 왕릉 표석의 수립 46
    • Ⅴ. 영조대 표석 수립의 의의 49
    • Ⅵ. 맺음말 55
    • 참고문헌 57
    • 부록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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