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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본(軍服本) 정조어진(正祖御眞)의 제작과 봉안 연구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과 계승 의지의 천명— = A Study of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the Portraits of King Jeongjo in Military Attire: Some Thoughts on Jeongjo’s Filial Piety and His Wish of Succeeding Crown Prince S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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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year 1791, King Jeongjo (r. 1776-1800) unofficially ordered the production of two portraits depicting him in military uniform. The larger version of the portraits was enshrined in Gyujanggak and the smaller version inside Hyeollyungwon. Hyeollyungwon is the tomb of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1735-1762), who starved to death after being confined inside a rice chest by order of King Yeongjo (r. 1724-1776), Jeongjo’s grandfather. Both versions of Portrait of King Jeongjo in Military Attire (Gunbokbon Jeongjo eojin) do not exist anymore. But it is believed that the larger version is almost identical to Portrait of King Cheoljong (Cheoljong eojin) in terms of composition and depicted objects.
    Enshrining one of King Jeongjo’s portraits inside a building beside the tomb of his father follows the example of King Yeongjo, who had likewise installed his own portrait inside Naengcheonjeong. It is a pavilion belonging to Yuksanggung, which is the ancestral shrine for his biological mother Sukbin Choe (1670-1718). By installing his portrait in this manner, King Jeongjo attempts to create his public image in which he appears to be symbolically waiting on his father. It also visually conveys his intention to express his filial piety towards his father. But the fact that the king is portrayed in military robes deserves special attention. He made efforts to associate the military uniform with the very attire of his father because Crown Prince Sado wore it when the prince visited Suwon in 1762. Accordingly, he always wore his military uniform whenever he visited Hyeollyungwon in Suwon to show his filial piety. The particular clothing, which was chosen for these portraits of Jeongjo, can be interpreted as reflecting his filial piety as well as his wish to be seen as the successor to Crown Prince Sado.
    In this article, I have come to two conclusions. Firstly,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royal portrait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not separate. On the contrary, there are strong interrelations between producing the paintings and enshrining them in specific locations. Secondly, Jeongjo, different from previous kings, considered royal portraits to be formal objects of preservation, which were supposed to be maintained eternally for future generations. He also regarded his own portraits as a means of displaying his psychological selfhood and identity. In other words, this research shows how Jeongjo used his portraits to express his grief about his father as well as to confidently represent himself as the son of and successor to Crown Prince S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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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year 1791, King Jeongjo (r. 1776-1800) unofficially ordered the production of two portraits depicting him in military uniform. The larger version of the portraits was enshrined in Gyujanggak and the smaller version inside Hyeollyungwon. Hyeolly...

    In the year 1791, King Jeongjo (r. 1776-1800) unofficially ordered the production of two portraits depicting him in military uniform. The larger version of the portraits was enshrined in Gyujanggak and the smaller version inside Hyeollyungwon. Hyeollyungwon is the tomb of his father Crown Prince Sado (1735-1762), who starved to death after being confined inside a rice chest by order of King Yeongjo (r. 1724-1776), Jeongjo’s grandfather. Both versions of Portrait of King Jeongjo in Military Attire (Gunbokbon Jeongjo eojin) do not exist anymore. But it is believed that the larger version is almost identical to Portrait of King Cheoljong (Cheoljong eojin) in terms of composition and depicted objects.
    Enshrining one of King Jeongjo’s portraits inside a building beside the tomb of his father follows the example of King Yeongjo, who had likewise installed his own portrait inside Naengcheonjeong. It is a pavilion belonging to Yuksanggung, which is the ancestral shrine for his biological mother Sukbin Choe (1670-1718). By installing his portrait in this manner, King Jeongjo attempts to create his public image in which he appears to be symbolically waiting on his father. It also visually conveys his intention to express his filial piety towards his father. But the fact that the king is portrayed in military robes deserves special attention. He made efforts to associate the military uniform with the very attire of his father because Crown Prince Sado wore it when the prince visited Suwon in 1762. Accordingly, he always wore his military uniform whenever he visited Hyeollyungwon in Suwon to show his filial piety. The particular clothing, which was chosen for these portraits of Jeongjo, can be interpreted as reflecting his filial piety as well as his wish to be seen as the successor to Crown Prince Sado.
    In this article, I have come to two conclusions. Firstly,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royal portrait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not separate. On the contrary, there are strong interrelations between producing the paintings and enshrining them in specific locations. Secondly, Jeongjo, different from previous kings, considered royal portraits to be formal objects of preservation, which were supposed to be maintained eternally for future generations. He also regarded his own portraits as a means of displaying his psychological selfhood and identity. In other words, this research shows how Jeongjo used his portraits to express his grief about his father as well as to confidently represent himself as the son of and successor to Crown Prince S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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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1791년에 비공개로 군복본 어진 대본(大本) 1본과 소본(小本) 1본을 제작한 뒤에 이 두 본을 규장각과 현륭원(顯隆園)의 재실에각각 봉안하였다. 현륭원은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묘소이다. 이 두 본의 어진은 모두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중 대본은 〈철종어진〉과거의 동일한 도상의 초상화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조가 자신의 초상화를 부친의 묘소 재실에 둔 것은 선왕(先王) 영조(英祖, 재위 1724-1776)가 자신의 어진을 냉천정(冷泉亭)에 봉안한 사례를 따른 것이었다. 냉천정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 1670-1718)의 사묘(祠廟)인 육상궁(毓祥宮)의 재실이다. 정조는 자신의 어진을 현륭원 재실에 봉안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부친을 옆에서 시위(侍位)하는 듯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내고자 하였다. 부친에 대한 자신의 효심(孝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의도도 내보였다. 그런데 더욱 주목되는 사실은 이 재실에 정조가 군복을 복색(服 色)으로 한 어진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정조는 군복을 무엇보다 자신의 부친 사도세자가 온행(溫行) 중 수원에 들렀을 때 착용했던 옷으로 기억하였다. 그 결과 그는 수원에 위치한 현륭원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군복을 착용하였다. 군복본 정조어진 속 군복은 이처럼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과 계승 의지가 투영된 상징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첫번째는 조선시대에 어진의 제작과 봉안이 각각 따로 진행된 별개의 사업이 아닌서로 연계되어 진행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정조가 자신의 전임(前任) 국왕들과는 달리 자신의 어진을 후대에 영원히 남겨야 할 이른바 공적인 보존대상으로만 인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내면의식과 정체성 혹은 개인적인 염원을 드러낼 수 있는 매체로 분명히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가 부친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을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계승자로서 당당히 표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초상화란 매체를 적극 활용했던 사실을 필자는 이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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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1791년에 비공개로 군복본 어진 대본(大本) 1본과 소본(小本) 1본을 제작한 뒤에 이 두 본을 규장각과 현륭원(顯隆園)의 재실에각각 봉안하였다. 현륭원은 정조의 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1791년에 비공개로 군복본 어진 대본(大本) 1본과 소본(小本) 1본을 제작한 뒤에 이 두 본을 규장각과 현륭원(顯隆園)의 재실에각각 봉안하였다. 현륭원은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묘소이다. 이 두 본의 어진은 모두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중 대본은 〈철종어진〉과거의 동일한 도상의 초상화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조가 자신의 초상화를 부친의 묘소 재실에 둔 것은 선왕(先王) 영조(英祖, 재위 1724-1776)가 자신의 어진을 냉천정(冷泉亭)에 봉안한 사례를 따른 것이었다. 냉천정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 1670-1718)의 사묘(祠廟)인 육상궁(毓祥宮)의 재실이다. 정조는 자신의 어진을 현륭원 재실에 봉안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부친을 옆에서 시위(侍位)하는 듯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내고자 하였다. 부친에 대한 자신의 효심(孝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의도도 내보였다. 그런데 더욱 주목되는 사실은 이 재실에 정조가 군복을 복색(服 色)으로 한 어진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정조는 군복을 무엇보다 자신의 부친 사도세자가 온행(溫行) 중 수원에 들렀을 때 착용했던 옷으로 기억하였다. 그 결과 그는 수원에 위치한 현륭원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군복을 착용하였다. 군복본 정조어진 속 군복은 이처럼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과 계승 의지가 투영된 상징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첫번째는 조선시대에 어진의 제작과 봉안이 각각 따로 진행된 별개의 사업이 아닌서로 연계되어 진행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정조가 자신의 전임(前任) 국왕들과는 달리 자신의 어진을 후대에 영원히 남겨야 할 이른바 공적인 보존대상으로만 인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내면의식과 정체성 혹은 개인적인 염원을 드러낼 수 있는 매체로 분명히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가 부친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을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계승자로서 당당히 표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초상화란 매체를 적극 활용했던 사실을 필자는 이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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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裕元, "林下筆記"

    2 이민아, "효명세자·헌종대 궁궐 영건의 정치사적 의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7

    3 최홍규, "화성경영연구" 일지사 2004

    4 윤진영, "화령전 正祖 御眞의 移奉 내력" 조선시대사학회 (87) : 223-255, 2018

    5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悅話堂 1983

    6 강관식, "털과 눈: 조선시대 초상화의 祭儀的 命題와 造形的 課題" 한국미술사학회 (248) : 95-129, 2005

    7 강관식, "진경시대 2" 돌베개 261-318, 1998

    8 유재빈, "조선후기 어진 관계 의례 연구 :의례를 통해 본 어진의 기능"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10) : 74-99, 2011

    9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溫行 연구" 9 : 45-75, 2002

    10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동방미디어 2000

    1 李裕元, "林下筆記"

    2 이민아, "효명세자·헌종대 궁궐 영건의 정치사적 의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7

    3 최홍규, "화성경영연구" 일지사 2004

    4 윤진영, "화령전 正祖 御眞의 移奉 내력" 조선시대사학회 (87) : 223-255, 2018

    5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悅話堂 1983

    6 강관식, "털과 눈: 조선시대 초상화의 祭儀的 命題와 造形的 課題" 한국미술사학회 (248) : 95-129, 2005

    7 강관식, "진경시대 2" 돌베개 261-318, 1998

    8 유재빈, "조선후기 어진 관계 의례 연구 :의례를 통해 본 어진의 기능"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10) : 74-99, 2011

    9 이왕무, "조선후기 국왕의 溫行 연구" 9 : 45-7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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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조인수, "조선 초기 태조 어진(御眞)의 제작과 태조 진전(眞殿)의 운영—태조, 태종 대를 중심으로" 3 : 116-153, 2004

    12 정해득, "정조의 영우원·현륭원 원행에 대한 고찰" 조선시대사학회 (75) : 369-404, 2015

    13 배우성, "정조의 군사정책과 『무예도보통지』 편찬의 배경" 91 : 331-354, 2001

    14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이읍 연구" 경기대학교 대학원 2009

    15 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16 강문식, "정조대 화성의 방어체제" 일지사 82 : 197-230, 1996

    17 국립전주박물관, "왕의 초상: 慶基殿과 太祖 李成桂" 국립전주박물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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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조선미, "어진, 왕의 초상화"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8

    20 유재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지도 - 정조의 사도세자 추숭 작업과 事蹟圖" 미술사연구회 (33) : 7-37, 2017

    21 이성훈, "숙종과 숙종어진(肅宗御眞)의 제작과 봉안―성군(聖君)으로 기억되기―"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4) : 24-71, 2019

    22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푸른 역사 1998

    23 정해득, "사도세자 현창의 전개과정" 8 : 71-103, 2014

    24 조경아,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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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권행가, "고종 황제의 초상 : 근대 시각매체의 유입과 어진의 변용 과정"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6

    27 水原府, "顯隆園謄錄"

    28 윤진영, "藏書閣 所藏 『御眞圖寫事實』의 正祖∼哲宗代 御眞圖寫" 11 : 283-336, 2004

    29 정해득, "華寧殿의 건립과 제향" 조선시대사학회 (59) : 143-171, 2011

    30 진준현, "英祖, 正祖代 御眞圖寫와 화가들" 6 : 19-72,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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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李頤命, "疎齋集"

    33 "璿源系譜紀略"

    34 宗簿寺, "璿源系譜紀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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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배우성, "正祖年間의 武班軍營大將과 軍營政策" 24 : 207-272,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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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유재빈, "正祖代 宮中繪畫 연구" 서울대학교 2016

    39 김영민, "正祖代 ‘壬午禍變’ 논의의 전개와 사회적 반향" 조선시대사학회 (40) : 281-320, 2007

    40 "朝鮮王朝實錄"

    41 오수창, "朝鮮政治史 上" 청년사 1990

    42 이태진, "朝鮮後期의 政治와 軍營制 變遷" 한국연구원 1985

    43 "日省錄"

    44 "文獻攷略"

    45 "承政院日記"

    46 "御容圖寫都監儀軌"

    47 "宮闕志"

    48 薛錫圭, "奎章閣 硏究(下)—正祖代의 政局과 관련하여—" 31 : 73-107, 1986

    49 薛錫圭, "奎章閣 硏究(上)—正祖代의 政局과 관련하여—" 29 : 117-143, 1986

    50 "國朝寶鑑"

    51 "列聖御製"

    52 思悼世子, "代聽時日錄"

    53 文化財廳, "七宮의 沿革 및 修理工事報告書" 문화재청 2000

    54 권지연, "The Kings at the Palace: Joseon Royal Court Culture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국립고궁박물관 2015

    55 金明淑, "19世紀 反外戚勢力의 政治動向—純祖朝 孝明世子의 代理聽政 例를 중심으로" 3 : 163-212, 1997

    56 조동영, "(국역)임하필기." 민족문화추진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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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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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7 0.37 0.4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6 0.45 0.9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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