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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祖時代 顯隆園 造成과 水原 移邑 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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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1838859

    • 저자
    • 발행사항

      수원 : 경기대학교 대학원, 2009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경기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전공 , 2009.8

    • 발행연도

      2009

    • 작성언어

      한국어

    • DDC

      951.57 판사항(22)

    • 발행국(도시)

      경기도

    • 형태사항

      ix, 257 p. : 삽도 ; 30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이근수
      권두에 국문초록, 권말에 Abstract 수록
      참고문헌: p.250-255

    • 소장기관
      • 경기대학교 금화도서관(서울캠퍼스) 소장기관정보
      • 경기대학교 중앙도서관(수원캠퍼스)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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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왕세자로서 10여 년간 대리청정을 하였던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명에 따라 1762년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11세의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 본 정조는 아버지의 신원(伸寃)을 다짐하였다. 그 방법은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배향하는 것이 유일한 것이었으나 영조의 유명(遺命)을 지켜야 하는 정조로서는 자신이 직접 이 서원(誓願)을 풀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조는 자신이 국왕으로서 할 수 있는 추숭작업을 다한 후 1789년 영우원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였고 1790년 아들이 태어나자 1804년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국왕으로 추숭하겠다는 생각을 구상하였다.
    그 계획의 출발점은 아버지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옮긴 것이었다. 전국 3대 명당의 하나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음 해에 바로 아들을 보게 된 정조는 현륭원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조는 매년 현륭원을 찾아 화소 구역을 세심히 살펴보면서 장차 자신이 묻힐 곳을 현륭원의 안산(案山)에서 직접 찾아냈다. 장차 자신의 계획대로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배향되고, 정조 자신이 서거하게 되면 자식의 도리를 다한 아들로서 당당하게 아버지와 마주보이는 곳에 묻혀 부자(父子)의 정(情)을 펴고자 하였다.
    화소로 지정된 구역안에서 대규모 식목(植木)과 종자 파종(播種), 풍수적 목적에서 시작한 보토(補土)와 축통(築筒), 물길 정비 등의 토목공사로 이어지는 치산치수사업을 전개하여 자연환경을 수려하게 변모시켰다. 현륭원의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하여 전국의 수사찰(首寺刹)로 만들고 매일 제향에 올려 그 넋을 위로하게 하였는가 하면, 현륭원 재실에 별도로 어진봉안각(御眞奉安閣)을 만들어 자신의 초상화를 서향(西向)으로 봉안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정조는 옛 수원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새로운 읍치로 옮겨 살게 하는 한편, 사도세자와 직간접으로 관련을 가졌던 인물들의 후손들을 수원 신읍에 모여 살게 하였다. 또한 수원에 살고 있던 관련 인물을 발굴하였는가 하면 자신의 근신(近臣) 가운데서도 수원에 근거지를 마련하게 하는 등 정조는 수원 신읍을 거점으로 삼아 추숭사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그렇게 모여 든 사람들이 불편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서울에 버금가는 도회지를 만들고자 시전을 열게 하였으며, 산업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조는 수원 신읍의 문무과 시취를 실시하여 문풍을 진작시키고, 강건한 무사들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공자의 후손을 찾아 등용하라는 영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수원에 살고 있던 공서린의 후손을 발굴하여 궐리사를 창건하여 공자의 유풍이 전해진 고장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조선후기에 읍치를 옮긴 군현은 읍성을 쌓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수원의 경우는 재원확보 문제로 인해 읍성 축성이 미뤄졌다. 정조는 1792년 독산성을 수축하여 장용외영의 주둔지로 삼는 한편 수원 신읍의 읍성축성에 대한 방안을 다각도로 찾았다. 정조는 1793년 말 재원확보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1794년부터 수원 신읍의 읍성축성, 즉 ‘화성성역’을 시작하여 1796년 10월 낙성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현륭원을 옮겨오면서 시작된 것이기에 현륭원 조성은 화성성역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었고, 화성성역은 수원 신읍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진된 사업이었다.


    핵심어 : 정조, 영조, 사도세자, 영우원, 현륭원, 화소, 용주사, 어진봉안각, 궐리사, 독산성, 화성, 수원 신읍,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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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세자로서 10여 년간 대리청정을 하였던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명에 따라 1762년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11세의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 본 정조는 아버지의 신원(伸寃)을 다짐하였다. ...

    왕세자로서 10여 년간 대리청정을 하였던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명에 따라 1762년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11세의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 본 정조는 아버지의 신원(伸寃)을 다짐하였다. 그 방법은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배향하는 것이 유일한 것이었으나 영조의 유명(遺命)을 지켜야 하는 정조로서는 자신이 직접 이 서원(誓願)을 풀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조는 자신이 국왕으로서 할 수 있는 추숭작업을 다한 후 1789년 영우원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였고 1790년 아들이 태어나자 1804년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국왕으로 추숭하겠다는 생각을 구상하였다.
    그 계획의 출발점은 아버지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옮긴 것이었다. 전국 3대 명당의 하나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음 해에 바로 아들을 보게 된 정조는 현륭원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조는 매년 현륭원을 찾아 화소 구역을 세심히 살펴보면서 장차 자신이 묻힐 곳을 현륭원의 안산(案山)에서 직접 찾아냈다. 장차 자신의 계획대로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여 종묘에 배향되고, 정조 자신이 서거하게 되면 자식의 도리를 다한 아들로서 당당하게 아버지와 마주보이는 곳에 묻혀 부자(父子)의 정(情)을 펴고자 하였다.
    화소로 지정된 구역안에서 대규모 식목(植木)과 종자 파종(播種), 풍수적 목적에서 시작한 보토(補土)와 축통(築筒), 물길 정비 등의 토목공사로 이어지는 치산치수사업을 전개하여 자연환경을 수려하게 변모시켰다. 현륭원의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하여 전국의 수사찰(首寺刹)로 만들고 매일 제향에 올려 그 넋을 위로하게 하였는가 하면, 현륭원 재실에 별도로 어진봉안각(御眞奉安閣)을 만들어 자신의 초상화를 서향(西向)으로 봉안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정조는 옛 수원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새로운 읍치로 옮겨 살게 하는 한편, 사도세자와 직간접으로 관련을 가졌던 인물들의 후손들을 수원 신읍에 모여 살게 하였다. 또한 수원에 살고 있던 관련 인물을 발굴하였는가 하면 자신의 근신(近臣) 가운데서도 수원에 근거지를 마련하게 하는 등 정조는 수원 신읍을 거점으로 삼아 추숭사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그렇게 모여 든 사람들이 불편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서울에 버금가는 도회지를 만들고자 시전을 열게 하였으며, 산업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정조는 수원 신읍의 문무과 시취를 실시하여 문풍을 진작시키고, 강건한 무사들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공자의 후손을 찾아 등용하라는 영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수원에 살고 있던 공서린의 후손을 발굴하여 궐리사를 창건하여 공자의 유풍이 전해진 고장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조선후기에 읍치를 옮긴 군현은 읍성을 쌓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수원의 경우는 재원확보 문제로 인해 읍성 축성이 미뤄졌다. 정조는 1792년 독산성을 수축하여 장용외영의 주둔지로 삼는 한편 수원 신읍의 읍성축성에 대한 방안을 다각도로 찾았다. 정조는 1793년 말 재원확보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1794년부터 수원 신읍의 읍성축성, 즉 ‘화성성역’을 시작하여 1796년 10월 낙성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현륭원을 옮겨오면서 시작된 것이기에 현륭원 조성은 화성성역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었고, 화성성역은 수원 신읍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진된 사업이었다.


    핵심어 : 정조, 영조, 사도세자, 영우원, 현륭원, 화소, 용주사, 어진봉안각, 궐리사, 독산성, 화성, 수원 신읍,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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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제 1 장 緖論 1
    • 제 2 장 永祐園 遷奉과 管理機構의 設置 10
    • 제 1 절 永祐園遷奉과 花山의 風水論議 10
    • 1. 永祐園 遷奉 決定 10
    • 2. 花山의 風水論議 14
    • 제 1 장 緖論 1
    • 제 2 장 永祐園 遷奉과 管理機構의 設置 10
    • 제 1 절 永祐園遷奉과 花山의 風水論議 10
    • 1. 永祐園 遷奉 決定 10
    • 2. 花山의 風水論議 14
    • 1) 正祖의 風水認識 14
    • 2) 臣僚들의 論議 16
    • 3. 永祐園 遷奉과 顯隆園 造成 23
    • 1) 永祐園 遷奉 23
    • 2) 顯隆園 造成 27
    • 제 2 절 顯隆園 管理機構의 設置 37
    • 1. 顯隆園所 員役의 任務 37
    • 1) 顯隆園所의 員役 37
    • 2) 員役의 任務 41
    • 3) 火巢內 田畓과 財物의 管理 44
    • 2. 香炭山과 位田 50
    • 1) 香炭山 50
    • 2) 位田 54
    • 제 3 장 火巢 設定과 工役의 展開 57
    • 제 1 절 火巢 境界設定과 正祖의 親審 57
    • 1. 火巢 境界 設定 57
    • 2. 正祖의 親審 65
    • 제 2 절 工役의 展開 74
    • 1. 植木과 播種 74
    • 1) 1단계 74
    • 2) 2단계 83
    • 3) 3단계 91
    • 2. 建築과 土木工役 102
    • 1) 施設物 設置 102
    • 2) 補土築筒 工役 108
    • 3) 萬年堤 修築 119
    • 제 4 장 願刹-龍珠寺와 御眞奉安閣의 創建 129
    • 제 1 절 龍珠寺의 創建과 參與人員 129
    • 1. 創建 過程 129
    • 2. 參與 人員 133
    • 제 2 절 龍珠寺에 대한 特惠와 僧徒의 所任 138
    • 1. 僧統 任命과 僧徒帖 優待 138
    • 2. 穀物과 田畓 支給 140
    • 3. 僧徒의 所任 146
    • 4. 龍珠寺의 屬寺 148
    • 1) 寶林寺 158
    • 2) 多率寺 外 149
    • 제 3 절 御眞奉安閣 設置와 管理 152
    • 1. 御眞奉安閣 設置 152
    • 2. 御眞奉安閣 管理 157
    • 제 5 장 水原移邑과 募民策 160
    • 제 1 절 邑治移轉과 新邑治 造成 160
    • 1. 水原府 邑治의 狀態 160
    • 2. 新邑의 官衙 造成 162
    • 3. 水原府의 位相强化 168
    • 제 2 절 募民策 171
    • 1. 移民 171
    • 2. 文武科 試取 176
    • 3. 思悼世子 關聯 家門의 移住 188
    • 4. 産業의 育成 195
    • 제 6 장 闕里祠 創建과 禿山城 修築 205
    • 제 1 절 闕里祠 創建과 祭香 205
    • 1. 闕里祠 創建 205
    • 2. 闕里祠 祭香 210
    • 제 2 절 禿山城 修築과 邑城 築城 論議 215
    • 1. 禿山城 修築 215
    • 1) 正祖의 禿山城 行次 215
    • 2) 1792년의 修築 219
    • 2. 新邑의 邑城築城 論議 223
    • 제 7 장 結論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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