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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성립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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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55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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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자 미스터리’로 회자되는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식민권력과 피식민 사회와의 정치적 의존관계와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유효한 프리즘으로 간주해서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성립 경과와 실상을 식민지 정치사 문맥에서 분석하였다. 1920년대 ‘친일 정치세력’은 일제가 제공하는 합법적인 정치공간을 활용해서 국민주권론의 연장으로 ‘빵이 아닌 권리’의 참정권 청원운동을 전개했고, 1930년대 전반에는 ‘先의무・後권리’의 복선적 정략으로 국민권리에 앞서 혈세의무 이행이라는 징병제 시행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참정권과 징병제 청원은 일본정부의 상투적인 시기상조론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일 정치세력’은 재차 우수한 자질의 조선인에 한정한 지원병제 시행을 요구했고 식민권력과 타협할 수 있었다.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제의 성립은 ‘半島民心의 先導’에 따른 동화주의 식민통치 이데올로기의 제도적 완성을 추구하는 식민권력과 이를 징병제 시행과 연계해서 참정권 획득을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삼고자 하는 ‘친일 정치세력’과의 비대칭적인 욕망과 셈법이 교차하는 ‘정치적 공진화’를 특징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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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자 미스터리’로 회자되는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식민권력과 피식민 사회와의 정치적 의존관계와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유효한 프리즘으...

      이 연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자 미스터리’로 회자되는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식민권력과 피식민 사회와의 정치적 의존관계와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유효한 프리즘으로 간주해서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성립 경과와 실상을 식민지 정치사 문맥에서 분석하였다. 1920년대 ‘친일 정치세력’은 일제가 제공하는 합법적인 정치공간을 활용해서 국민주권론의 연장으로 ‘빵이 아닌 권리’의 참정권 청원운동을 전개했고, 1930년대 전반에는 ‘先의무・後권리’의 복선적 정략으로 국민권리에 앞서 혈세의무 이행이라는 징병제 시행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참정권과 징병제 청원은 일본정부의 상투적인 시기상조론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일 정치세력’은 재차 우수한 자질의 조선인에 한정한 지원병제 시행을 요구했고 식민권력과 타협할 수 있었다.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제의 성립은 ‘半島民心의 先導’에 따른 동화주의 식민통치 이데올로기의 제도적 완성을 추구하는 식민권력과 이를 징병제 시행과 연계해서 참정권 획득을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삼고자 하는 ‘친일 정치세력’과의 비대칭적인 욕망과 셈법이 교차하는 ‘정치적 공진화’를 특징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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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resent study attempts to reconstitute and reinterpret in the context of colonial political history the institution and practical nature of the special army volunteer system labeled as an "embarrassing dilemma and mystery" in modern Korean history. In this study, the volunteer system is regarded as an effective historical prism for analyzing the political dependence and interactions between colonial authorities and colonized communities. Korean political forces in the 1920s launched a petition campaign for political rights ("not bread") as an extension of popular sovereignty using legitimate political space provided by imperialist Japan, and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they petitioned that a conscription system should be implemented as part of their tax liability over civil rights. However, the Korean political forces" claim to political rights and petition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could not get over the Japanese government"s conventional argument-it"s too early to do that. Accordingly, they switched to a "double-track" approach by petitioning for voluntary enlistment limited to Korean people of good quality and finally reached a political compromise with the colonial power. The adoption of the special army volunteer system in February 1938 was characterized by a relationship of political dependence between the colonial authorities pursuing the institutional completion of the colonial assimilationist ideology and the Korean political forces pursuing the acquisition of political rights and realization of national autonomy in conjunction with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or a political coevolution between those colonial authorities and political forces who pursued different objective fu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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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esent study attempts to reconstitute and reinterpret in the context of colonial political history the institution and practical nature of the special army volunteer system labeled as an "embarrassing dilemma and mystery" in modern Korean history...

      The present study attempts to reconstitute and reinterpret in the context of colonial political history the institution and practical nature of the special army volunteer system labeled as an "embarrassing dilemma and mystery" in modern Korean history. In this study, the volunteer system is regarded as an effective historical prism for analyzing the political dependence and interactions between colonial authorities and colonized communities. Korean political forces in the 1920s launched a petition campaign for political rights ("not bread") as an extension of popular sovereignty using legitimate political space provided by imperialist Japan, and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they petitioned that a conscription system should be implemented as part of their tax liability over civil rights. However, the Korean political forces" claim to political rights and petition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could not get over the Japanese government"s conventional argument-it"s too early to do that. Accordingly, they switched to a "double-track" approach by petitioning for voluntary enlistment limited to Korean people of good quality and finally reached a political compromise with the colonial power. The adoption of the special army volunteer system in February 1938 was characterized by a relationship of political dependence between the colonial authorities pursuing the institutional completion of the colonial assimilationist ideology and the Korean political forces pursuing the acquisition of political rights and realization of national autonomy in conjunction with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or a political coevolution between those colonial authorities and political forces who pursued different objective fu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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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1920-30년대 ‘친일 정치세력’과 복선적 정략
      • 3. 식민권력의 대응과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성립
      • 4. 맺음말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1920-30년대 ‘친일 정치세력’과 복선적 정략
      • 3. 식민권력의 대응과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성립
      • 4.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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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조형래, "황군(皇軍)을 지원(志願/支援)하는 영화 그리고 문학 -식민지 후반기의 육군특별지원병령의 시행과 관련하여 <志願兵>, 「道」, 「新しい出發」을 중심으로" 한국비평문학회 (34) : 358-382, 2009

      2 김동명,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경인문화사 2006

      3 다카시 후지타니, "죽일 권리와 살릴 권리: 2차 대전 동안 미국인으로 살았던 일본인과 일본인으로 살았던 조선인들" 아세아문제연구소 51 (51): 13-47, 2008

      4 김윤정, "조선총독부 중추원 연구" 경인문화사 2011

      5 정안기, "조선총독부 육군병지원자훈련소와 ‘국민 만들기’" 한일군사문화학회 24 : 255-302, 2017

      6 박지향, "제국주의-신화와 현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7 정안기, "전시기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추계와 분석" 한국학중앙연구원 41 (41): 253-302, 2018

      8 이승렬, "일제하 중추원 개혁 문제와 총독정치" 국학연구원 (132) : 69-98, 2005

      9 지승준, "일제시기 참정주의 세력의 ‘징병제요망운동’과 전쟁협력"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9) : 191-238, 2011

      10 지승준, "일제시기 참정권운동 연구 : 국민협회·동민회·시중회 계열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1

      1 조형래, "황군(皇軍)을 지원(志願/支援)하는 영화 그리고 문학 -식민지 후반기의 육군특별지원병령의 시행과 관련하여 <志願兵>, 「道」, 「新しい出發」을 중심으로" 한국비평문학회 (34) : 358-382, 2009

      2 김동명,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경인문화사 2006

      3 다카시 후지타니, "죽일 권리와 살릴 권리: 2차 대전 동안 미국인으로 살았던 일본인과 일본인으로 살았던 조선인들" 아세아문제연구소 51 (51): 13-47, 2008

      4 김윤정, "조선총독부 중추원 연구" 경인문화사 2011

      5 정안기, "조선총독부 육군병지원자훈련소와 ‘국민 만들기’" 한일군사문화학회 24 : 255-302, 2017

      6 박지향, "제국주의-신화와 현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7 정안기, "전시기 육군특별지원병제의 추계와 분석" 한국학중앙연구원 41 (41): 253-302, 2018

      8 이승렬, "일제하 중추원 개혁 문제와 총독정치" 국학연구원 (132) : 69-98, 2005

      9 지승준, "일제시기 참정주의 세력의 ‘징병제요망운동’과 전쟁협력"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9) : 191-238, 2011

      10 지승준, "일제시기 참정권운동 연구 : 국민협회·동민회·시중회 계열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1

      11 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 국학자료원 1997

      12 김동명,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근대적 참정제도" 한국국제정치학회 42 (42): 273-289, 2002

      13 김동명,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협력의 경계와 논리: 1920년대 조선인의 정치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1 (31): 37-75, 2009

      14 정안기, "이인석상등병의 전사와 ‘죽음의 정치성’" 한국일본문화학회 (76) : 159-189, 2018

      15 하타노세츠코저,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푸른역사 2016

      16 박지향, "윤치호의 협력일기" 이숲 2010

      17 김동명,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식민지 참정권의 전개 - 1943년 조선 지방의회의 「추천선거」를 중심으로 -" 한국일본학회 (73) : 309-326, 2007

      18 纐纈厚, "総力戦体制研究" 社会評論社 2010

      19 山之内靖, "総力戦と現代化" 柏書房 1995

      20 宮田節子, "皇民化政策の構造" 29 : 1991

      21 古川宣子, "植民地期朝鮮における初等敎育" (370) : 1993

      22 호사카유지, "植民地朝鮮の帝國議會への參政權問題考察" 한국일본학회 (61) : 899-915, 2004

      23 駆込武, "植民地帝国日本の文化統合" 岩波書店 1996

      24 マ-ク, "植民地" 読売新聞社 1996

      25 松田利彦, "朴春琴論" 18 : 1988

      26 宮本正明, "朝鮮軍・解放前後の朝鮮" 6 : 2004

      27 小熊英二, "朝鮮生まれの日本人" 1 : 1998

      28 宮田節子, "朝鮮民衆と「皇民化」政策" 未来社 1985

      29 鈴木敬夫, "朝鮮植民地統治法の硏究" 北海道大學圖書刊行會 1989

      30 幼方直吉, "朝鮮参政権問題の歴史的意義" 東京大学東洋文化研究所 36 : 1964

      31 田中義男, "朝鮮における徴兵制度" 8 (8): 1973

      32 ブランドン, "日本統治下朝鮮の戦時動員ー1937-1945ー" 草思社 2014

      33 田中宏, "日本の植民地支配下における国籍関係の経緯" 9 : 1974

      34 洪宗郁, "戰時期朝鮮の轉向者たち" 有志舍 2011

      35 松田利彦, "戰前期の在日朝鮮人と參政權" 明石書店 1995

      36 樋口雄一, "戦時下朝鮮の民衆と徴兵" 総和社 2001

      37 岡本眞希子, "アジア・太平洋戦争期における朝鮮人・台湾人参政権問題" (401) : 1996

      38 장용경, "‘조선인’과 ‘국민’의 간극" 15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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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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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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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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