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은 전기-중기-후기의 3시기로 구분되며, 전기는 미사리 유형, 가락동 유형, 역삼동․흔암리 유형으로 대표된다. 중기는 송국리 유형을 특징으로 하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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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경상대학교 대학원, 2013
2013
한국어
경상남도
A Study on the Bronze Age Settlements
278 p. : 삽도 ; 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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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은 전기-중기-후기의 3시기로 구분되며, 전기는 미사리 유형, 가락동 유형, 역삼동․흔암리 유형으로 대표된다. 중기는 송국리 유형을 특징으로 하며, 후기는 점토대토기 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분기별 연대는 전기는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전 9세기까지, 중기는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후기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로 보았으며, 각 시기는 단절적인 선후관계가 아닌, 계기적인 선후관계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형성과 변천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기 취락은 아직까지 조사된 유적이 많지 않다. 취락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주거지의 경우 전기 전반에는 주로 강변 충적지나, 구릉 능선에 1〜2기 정도가 분포한다. 그러나 전기 후반에는 주거지의 입지가 평지구릉과 산지구릉으로 확대되면서 주거지가 수적으로 증가한다. 분묘는 지석묘가 축조되고, 토광묘와 석관묘도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분묘 자료가 많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다. 또한 전기 후반의 늦은 시기에는 일부 지역에서 옹관묘도 축조된다.
전기에는 지역적으로 平野가 발달한 서부평야지역에서는 주거구조가 평면 장방형에 위석식․무시설식․토광식 노지가 설치된 주거지와 이중구연에 단사선문이 시문된 가락동식 토기가 출토되고, 山地가 발달된 동부산간지역은 주거구조는 평면 장방형 내지는 세장방형에 무시설식․토광식 노지가 설치된 주거지와 공열문이 시문된 역삼동․흔암리식 토기가 출토된다. 그리고 영산강유역에서는 주거구조는 물론 출토유물에서도 서부평야지역과 동부산간지역의 영향이 나타난다.
중기 취락은 수적으로 전기에 비해 급증하고 취락의 규모 또한 확대된다. 주거구조는 소형화되고 규격화․정형화된다. 중기 전반에는 전기 후반의 방형 주거지가 휴암리식 주거지로 변화․발전되고, 한편 새로운 주거 형태인 원형의 송국리식 주거지가 등장한다. 분묘는 지석묘․석관묘․토광묘․석개토광묘․옹관묘․주구묘 등 전기에 비해 다양해진다.
중기 취락의 특징은 주거영역과 분묘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주거지 주변으로 저장시설인 수혈과 토기가마 등이 배치되고, 주변으로 농경을 위한 경작지가 분포하는 등 전형적인 취락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중기 취락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방어를 위한 환호취락의 등장도 들 수 있다.
중기 주거지의 특징은 평면 방형과 원형에 중앙에 타원형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형 주거지로 타원형구덩이와 주혈의 유무와 배치에 따라 평면 방형은 휴암리식․대평리식․하촌리식․동천동식으로, 원형은 송국리식․오곡리식․효자동식․동천동식으로 분류되고, 분포현황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호서지역과 접하고 있는 서부평야지역은 호서지역과 영남지역과 접하고 있는 동부산간지역은 영남지역과 주거구조와 분포에 있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중기에는 농경이 본격화 되면서 농경지 확보를 위한 취락간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방어를 위한 환호취락이 등장하고, 청동기․토기․석기․옥 장신구 등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전문장인이 등장한다.
중기 분묘는 지석묘․석관묘․토광묘․석개토광묘․옹관묘가 축조되는데,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북서부지역은 석관묘․토광묘․석개토광묘․옹관묘가 주묘제로 사용되지만, 중서부지역과 남해안지역은 지석묘가 주묘제로 사용된다.
유물은 주거지에서는 송국리식 외반구연 토기와 적색마연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분묘에서는 동부내륙지역과 남해안지역에서 부장품이 풍부하다. 특히 남해안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청동기의 부장양이 많고, 부장유물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풍부하게 부장된다. 분묘의 구조와 부장품으로 볼 때 중기에는 계층분화가 이루어지고 집단간에도 위계화가 나타나며, 취락과 취락간에 상호작용을 통하여 중심취락과 주변취락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발전한다.
후기는 점토대토기를 특징으로 하며 한반도에서 청동기 제작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다. 점토대토기는 재지의 토기에서 변화․발전된 것이 아니라 中國 遼寧地域 으로부터 한반도로 유입된 새로운 토기문화로 볼 수 있다. 점토대토기의 유입과 함께 청동기의 제작기술이 들어와 청동거울과 세형동검 등 한반도만의 독특한 청동기를 생산하게 된다. 또한 후기 후반에는 中國 燕나라의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재지사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치체인 馬韓이 등장한다.
후기에는 주거지가 대규모의 밀집된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 하였을 때 방어에 유리한 高地에 주거지가 축조되었을 가능성과 소규모로 곳곳에 분산되었을 가능성 등 여러가자 가능성이 있다.
후기의 분묘는 在地의 전통을 가진 지석묘가 계속해서 축조되며 한편, 새로운 묘제인 목관묘가 등장한다. 목관묘는 외래의 분묘로 점토대토기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초기에는 단독으로 축조되지만 차츰 대규모의 집단묘역을 형성한다. 그러나 모든 무덤에 목관이 사용된 것은 아니며 木棺은 상위계층의 분묘에서 주로 사용되고, 하위계층은 목관을 사용하지 못하고 시신을 그대로 매납하는 토광묘를 사용한다. 후기에는 부장유물에 있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목관묘에서는 청동거울․청동칼․청동도끼․청동꺾창․청동끌 등 청동유물이 풍부하게 부장된 반면에 목관을 사용하지 못한 토광묘는 부장품이 거의 없다. 목관묘를 축조한 집단은 고조선의 遺民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은 馬韓의 성립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후기 후반이 되면 중국 연나라의 철기가 유입되면서 호남지역에서 목관묘는 쇠퇴하고 그 중심이 영남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후기사회는 조사된 주거지가 거의 없어 추후 자료가 증가하면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덤을 통해서 볼 때 현재 목관묘가 가장 밀집 분포하고 있는 만경강 일대가 당시에는 가장 선진적인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형성과 사회변화에 대해 살펴본 결과 호남지역은 청동기시대부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양상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지석묘가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여러 지역과 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나름의 독자적인 지석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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