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제주도로부터 중국⋅대만⋅일본⋅유구 등지의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3,681명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유독 지식인층, 즉 한문을 사용할 수 있었던이들이 동승한 16건의 사례를 추...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8872784
김나영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연구사)
2023
Korean
표류(漂流) ; 지식인(知識人) ; 관인(官人) ; 송환(送還) ; 우대(優待) ; 한문(漢文) ; 필담(筆談) ; 유가사상(儒家思想) ; 관료제(官僚制) ; Drift ; Intellectual ; Government Officials ; Repatriation ; Special Treatment ; Chinese characters ; Written conversation ; Confucianism ; bureaucracy
KCI등재
학술저널
305-337(33쪽)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조선시대 제주도로부터 중국⋅대만⋅일본⋅유구 등지의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3,681명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유독 지식인층, 즉 한문을 사용할 수 있었던이들이 동승한 16건의 사례를 추...
조선시대 제주도로부터 중국⋅대만⋅일본⋅유구 등지의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3,681명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유독 지식인층, 즉 한문을 사용할 수 있었던이들이 동승한 16건의 사례를 추적한 결과, 동승했던 여타의 표류인과는 차별적으로 표착 국가의 구호 및 송환 과정에서 후한 대우를 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그 대우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로, 표류 지식인층은 이국으로의 표착 후 구조되는 과정에서 여타 표류인들과는 다르게 별도의 숙식 제공 및 전별연(餞別宴) 개최 등의 후한 대접과 함께옷과 물품 등을 지급받았음이 확인된다.
두 번째로 조선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도 표류인의 신분이 관인임이 확인되면이국의 현지 관리들은 이들을 별도의 사자(使者)[특송사ㆍ대차왜(特送使ㆍ大差倭)] 들로 하여금 배정시켜 별선(別船)을 태워 호송하는 등 차별적 모습을 보였다. 특히이러한 모습은 일본으로 표류해 간 관인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이전인 쓰시마[對 馬]로부터 송환되는 과정에서 유독 확인된다.
세 번째로 보통의 표류 사례와는 다르게 그 송환기간이 매우 단축되어 신속한송환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유구인 경우 대략 3년이란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지만, 표류 지식인층의 송환인 경우 이보다 훨씬 빠른 5-6개월 만에 송환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표착국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 다른 동승 표류 제주인들과 달리, 표류 조선 관인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실시했을까? 이와 같은 모습은 중ㆍ근세시기동아시아의 보편 문명으로써 예(禮)와 인(仁)으로 대변되는 유가사상(儒家思想)과관료제에 기반한 계층적 위계질서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중국중심의 중화적(中華的) 세계관 속에서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운용되었던 인도주의적 차원의 표류인 무상 구호 및 송환체제에 적용됨과 동시에 표류인들의 귀천(貴 賤)에 따라 분별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양상을 낳았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한문(漢文)’이라는 동아시아의 공통 문어(文語)는 표류 후 이국인들과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간접 매체로 작동하여 표류인과 현지인들 간의 동질감 및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류인들 대부분은 뱃사람이나상인들로 비문자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표착지에서의 현지인들과 언어 장벽에 부딪혀 소통의 부재를 불러왔다. 이에 상대적으로 표착 국가의 현지인들은 한문 필담(筆談)이 가능했던 표류 조선 지식인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쏟았을지모른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현지 문사(文士)들과의 시문창화(詩文唱和)를 통한 교류는 개인적 우의를 다지는 소통의 기회가 되었음에 따라 여타 표류인들과 다른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16 repatriation cases in which government officials who could read and write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were on board out of repatriation cases, in the Joseon Dynasty, taking 3,681 individuals from Jeju Islands who drift...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16 repatriation cases in which government officials who could read and write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were on board out of repatriation cases, in the Joseon Dynasty, taking 3,681 individuals from Jeju Islands who drifted onto foreign countries, including China, Taiwan, Japan, and the Ryukyu Kingdom. The cases show that the government officials were treated well compared to others when being rescued and repatriated.
Treatments for the government officials received in foreign countries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types.
Firstly, the cases show that the foreign countries provided the officials with separate room and board and other offerings, such as clothes, after being drifted ashore and rescued. In addition, they held Jeonbyeolyeon (a farewell banquet).
Secondly, if an individual was identified as an official in repatriating to Joseon, the local officials assigned protocol officers such as Teuksongsa and Daechawae to escort them on separate ships. In particular, these cases are shown in the repatriation cases when government officials of the Joseon who had been adrift in Japan were brought to Tsushima Island before they returned to Busan.
Thirdly, the cases demonstrate that the amount of time it took to repatriate the government officials of Joseon was shorter, unlike other repatriation cases of individuals. In the cases of China and the Ryukyu Kingdom, the repatriation of an individual took approximately 3 years, which is quite a lengthy process. The research, however, demonstrates that the repatriation of a drifted official took only 5 and 6 months.
A question arises of why the local people treated government officials differently, unlike other ordinary drifted people from Jeju Island who were on board together.
Such difference in the attitudes toward people who drifted ashore was caused by a hierarchical social system based on the moral doctrine dubbed Confucianism and feudalism for the people of Medieval and modern East Asia.
These social values, which people in East Asia shared, also applied to humanitarian aid and repatriation of the people washed ashore, based on Sinocentrism. It consequently influenced how foreign countries treated the drifted people differently in accordance with their social classes.
In addition, as classical Chinese was the universal written language of countries in East Asia, it played an indirect communication medium between the local people and those from other countries, which helped them build community spirit and social consensus. People thrown ashore were mostly seafarers and merchants, who were often illiterate, so they had communication difficulties with local people. On the other hand, the government officials who washed ashore from Joseon were able to communicate by writing in Chinese characters, which probably made the local people pay more attention to the officials. More particular, poetic exchanges and brush talks between officials of Joseon and local literary scholars could be an opportunity to form closer connections, which also influenced the different attitudes of the locals toward the officials who washed ashore in their countries by accident.
참고문헌 (Reference)
1 "龍榜錄"
2 송정규, "해외문견록" 휴머니스트 2015
3 정성일, "해남 선비 김여휘의 유구 표류와 송환 경로(1662~1663년)" 한일관계사학회 (43) : 433-467, 2012
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실록사전"
6 "한국학중앙연구원 성과포털 한국학진흥사업"
7 손승철, "한⋅일간 표류민에 관한 연구" 12 : 2000
8 정성일, "표류민 송환체제를 통해 본 근현대 한일관계 : 제도사적 접근(1868~1914)" 17 : 2002
9 허경진, "표류기에 나타난 베트남 인식" 15 : 2010
10 정운경,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휴머니스트 2008
1 "龍榜錄"
2 송정규, "해외문견록" 휴머니스트 2015
3 정성일, "해남 선비 김여휘의 유구 표류와 송환 경로(1662~1663년)" 한일관계사학회 (43) : 433-467, 2012
4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실록사전"
6 "한국학중앙연구원 성과포털 한국학진흥사업"
7 손승철, "한⋅일간 표류민에 관한 연구" 12 : 2000
8 정성일, "표류민 송환체제를 통해 본 근현대 한일관계 : 제도사적 접근(1868~1914)" 17 : 2002
9 허경진, "표류기에 나타난 베트남 인식" 15 : 2010
10 정운경,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휴머니스트 2008
11 손승철, "중⋅근세 동아시아 해역세계와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10
12 이훈, "조선후기 표민의 송환을 통해 본 조선⋅유구관계" 27 : 1994
13 이훈, "조선시대 한일표류민연구" 國學資料院 2001
14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표류민 연구" 國學資料院 2001
15 하우봉,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 혜안 2006
16 김나영, "조선시대 濟州島 漂流⋅漂到 연구" 제주대학교 2017
17 손승철, "조선⋅유구 관계 사료에 대하여" 13 : 1997
18 최부, "옛 제주인의 표해록" 전국문화원연합 제주도지회 2001
19 최두찬,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 휴머니스트 2011
20 정성일, "근대 조선과 일본의 해난구조제도와 국제관계" 동북아역사재단 (28) : 169-210, 2010
21 "邊例集要"
22 春名徹, "近世漂流民送還制度の終焉" 南島史学会 65⋅66 : 2005
23 荒野泰典, "近世東アジア漂流民送還体制の総括的特質" 史学会 108 : 1999
24 荒野泰典, "近世東アジアの国家關係論と漂流民送還体制" 立教大学史学会 60 (60): 2000
25 春名徹, "近世東アジアにおける漂流民送還体制の形成" 調布学園女子短期大学 4 : 1994
26 春名徹, "近世日本船海難にかんする中国全記録の再検討-東アジアにおける近世漂流民送還制度と日本" 日本海事史学会 62 : 2005
27 荒野泰典, "近世日本の漂流民送還体制と東アジア" 東京大学出版会 400 : 1983
28 荒野泰典, "近世日本と東アジア" 東京大学出版会 1998
29 池内敏, "近世日本と朝鮮漂流民" 臨川書店 1998
30 "華蠻要言"
31 "英祖實錄"
32 "耽羅誌草本"
33 "耽羅觀風案"
34 "耽羅見聞錄"
35 "耽羅紀年"
36 春名徹, "終末期の漂流民送還制度 : 琉球船の場合" 日本海事史学会 70 : 2013
37 "知瀛錄"
38 "甲辰王世子冊封慶龍虎榜"
39 朴趾源, "燕巖集"
40 "濟州啓錄"
41 고창석, "濟州啓錄" 제주발전연구원 2012
42 王天泉, "漂海錄을 통해서 본 明代 朝鮮 漂流民 救助 硏究 : 濟州를 中心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2012
43 張漢喆, "漂海錄"
44 崔溥, "漂海錄"
45 梁佑宗, "漂海日記"
46 정성일, "漂流記錄을 통해서 본 朝鮮後期 漁民과 商人의 海上活動 : "漂人領來謄錄"과"漂民被仰上帳"을 중심으로" 99 : 2002
47 "漂民被仰上"
48 "漂人領來謄錄"
49 서울대학교규장각, "漂人領來謄錄 1∼7" 보경문화사 1993
50 류쉬펑, "淸代 中國의 外國人 漂流民의 救助와 送還에 대하여 ― 朝鮮人과 日本人의 사례를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재단 (28) : 131-168, 2010
51 "海外聞見錄"
52 "正祖實錄"
53 春名徹, "東アジアにおける漂流民送還制度の展開" 調布学園女子短期大学 5 : 1995
54 王天泉, "朝鮮의 中國 漂流民 송환 방식 변화와 淸初 동아시아 해역" 제주대학교 2016
55 "朝鮮王朝實錄"
56 이훈, "朝鮮後期 대마도의 漂流民送還과 對日관계" 26 : 1991
57 이훈, "朝鮮後期 漂流民과 韓日關係" 國學資料院 2000
58 왕천천, "朝鮮 漂流民에 대한 明의 救助體制 -중국표착 제주 표류민을 中心으로-" 한국역사민속학회 (40) : 161-188, 2012
59 "文科榜目"
60 "承政院日記"
61 金錫翼, "心齋集"
62 "對馬島宗家文書"
63 "增補耽羅誌"
64 "增補繼志系圖"
65 "同文彙考"
66 "公譜別錄拾遺"
67 "備邊司謄錄"
68 "五島近古年代記"
69 中島功, "五島編年史" 國書刊行會 1973
70 崔斗燦, "乘槎錄"
71 劉序楓, "中國海洋發展史論文集 8" 中央究院中山人文社會科硏究所 2002
72 이훈, "’漂流’를 통해서 본 근대 한일관계 : 송환절차를 중심으로" 123 : 2003
유치환 시에 나타난 헤테로토피아 구현 양상 - 『生命의 書』를 중심으로
제주 4⋅3 홀어멍 마을의 여성 생애사 연구 - 서방 이신 여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어 신문을 통해 본 제주해녀들의 활동과 삶에 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