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Won(水原) began to develop in earnest as a military district(武鄕) due to the fact that the people of the SuWon and Seoul passed overwhelmingly much more than any other district in the special military service(武科 別試) was examined in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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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Won(水原) began to develop in earnest as a military district(武鄕) due to the fact that the people of the SuWon and Seoul passed overwhelmingly much more than any other district in the special military service(武科 別試) was examined in 1637...
SuWon(水原) began to develop in earnest as a military district(武鄕) due to the fact that the people of the SuWon and Seoul passed overwhelmingly much more than any other district in the special military service(武科 別試) was examined in 1637 after the Manchu war of 1636(丙子胡亂). In the SuWon area, there were many the military service successful applicants from this time to the 19th century. Especially in the latter half of the JeongJo(正祖)’s regin, the function of Suwon as a military distric has been further strengthened since JeongJo carried out the policies emphasizing SuWon as a military city. However, although SuWon was a military district the function of SuWon as the academic district was not necessarily poor. The number of candiates who passed the civil examination(文科) and SaMaSi(司馬試) in the Suwon area were comparatively small until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However, it increased rapidly in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and the increase rate was maintained in the nineteenth century. In particular,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JeongJo’s regin, when the JungJo's emphasis on Suwon was implemented in earnest, the number of people who passed the civil examination(文科) and SaMaSi in the Suwon more than before time. This fact suggests that scholarship in the SuWon area has been promoted since Jeongjo practiced policies that emphasized SuWon in earnest. The function as a military and acedemic district in Suwon was forced in the second half of the JeongJo’s regin. However, thanks to the policy influence of the JeongJo, and due to the efforts of people in the Suwon area, in the nineteenth century after the JeongJo’s era, SuWon continued to be a well-balanced city with a large number of the civil examination(文科) and SaMaSi(司馬試) passers and the military passers.
수원이 武鄕으로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병자호란 때부터였다. 병자호란 때서울 출신들과 함께 수원 출신들이 다른 지역 출신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남한산성에서 국왕 인조를 호...
수원이 武鄕으로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병자호란 때부터였다. 병자호란 때서울 출신들과 함께 수원 출신들이 다른 지역 출신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남한산성에서 국왕 인조를 호위하였기 때문이었다. 1637년(인조 15) 별시 무과에서서울 출신들과 함께 수원 출신들이 다른 지역 출신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급제하였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수원 지역에서는 무과 급제자가 줄곧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정조 연간 후반에 정조가 수원을 군사 도시로 중시한 본격적인 정책들을 실시하면서부터 수원의 武鄕으로서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수원이 武鄕이었다고 해서 文의 기능이 빈약한 것이 아니었다. 수원 지역 출신 문과 급제자와 사마시 합격자 수는 17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비교적적은 편이었지만, 18세기 후반부터 급증하였고, 그 증가 양상은 19세기 후반까지문과는 유지되었고 사마시는 가속화되었다. 특히 정조 연간 후반부터 문과 급제자가 월등히 많이 배출되었고, 사마시 합격자 배출 비율도 약간의 강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文武가 함께 진흥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수원 지역문인과 무인에 대한 試取, 문·무과 수원 별시의 설행, 그리고 수원 지역으로의 주민 이주 정책 등의 정조의 정책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조 사후 19세기에도 수원은 문과 급제자와 사마시 합격자, 그리고 무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는 문무가 균형 잡힌 도시로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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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이전 ‘고등교육(Higher Education)’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의 수용 과정에 관한 연구
四學課試 출신자의 생원·진사 진출실태 분석 - 1846년 식년생원진사시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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