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다산 시경학 연구를 위한 예비적 검토 = 정조조(正祖朝) 시경강의(詩經講義) 관련 논의를 중심으로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287853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정조조의 ‘경사강의(經史講義)’는 그 이전의 경연(經筵)에서 이루어진 논의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며, 《시경》에 대해 문답한 ‘시경강의(詩經講義)’ 역시 단순한 학술적 토론을 넘어서 《시경》시편의 본의(本意) 혹은 진의(眞意)에 다가가고자 했던 정조(正祖) 본인의 치열한 학문적 호기심의 일단에서 촉발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정조의 시경학적 탐구의 배경에는 안으로는 ‘삼연 김창흡–담헌 홍대용’으로 이어지는 노론계 시경학풍의 영향이 있으며, 밖으로는 주희의 시경설을 비판했던 청대 모기령의 시경설이 주는 외부적 충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초계문신을 비롯한 재야의 제신(諸臣)들은 각자의 학맥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소신이 담긴 답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군신(君臣)간의 학술적 문답 속에서, 풍석 서유구와 다산 정약용은 특유의 박학(博學)과 면밀한 고증(考證)을 통해 가장 많은 조문이 채택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현대의 연구자들은 정조조의 시경강의에 주목을 하면서 풍석과 다산의 시경학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펼쳐왔다.
      다만 간과해서는 안될부분은 당대 조선시경학계의 양상을 통해 보았을 때 다산 및 풍석 의설(說)은 오히려 소수파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양명(陽明)의 학설이 전면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정제두를 대표로 하는 이른바 강화학파(江華學派)라고 하는 소수의 학자군에 의해 연구되었던 바와 같이, 시경학(詩經學)의 경우에도 명 청대의 신설(新說) 및 새로운 저서(著書)들은 당시 조선에 있어 극히 일부의 계층만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으며, 정조조 시경강의에서 수 많은 문신(文臣)들 가운데 모기령의 설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람이 단 두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당대의 조선 시경학계의 주류는 그 외의 세력 즉 이른바 정학(正學)으로 인정되던 주희(朱熹)의 시경설을 옹호했던 부류였다고 생각되며, 그 이유는 역시 중국의 학술 및 사상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했던 수용자로서의 한계 및 정통주의에 입각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말미암은 학문 및 사상적 보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신성(新星)들은 나름의 학파적 전통을 지키면서 당대 중국의 학술적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탐구하였으며, 그러한 집단 중의 하나가 성호계 기호 남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경학(詩經學)에 있어 그들의 이론은 크게 볼 때 성호 이익과 목재 이삼환 녹암 권철신을 거쳐 다산 정약용에까지 이르러 정조(正祖)와 만나고, 다산의 중년에 《시경강의보유》로 보충된 뒤, 이어서 외손인 방산 윤정기의《시경강의속집》으로 완성되는 과정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산 시경학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통시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는 가운데, 그 흐름이 가진 의미를 당대 조선의 시경학설과 비교해 보고, 아울러 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역외(域外) 시경학의 견지에서 조망하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번역하기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정조조의 ‘경사강의(經史講義)’는 그 이전의 경연(經筵)에서 이루어진 논의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며, 《시경》에 대해 문...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정조조의 ‘경사강의(經史講義)’는 그 이전의 경연(經筵)에서 이루어진 논의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며, 《시경》에 대해 문답한 ‘시경강의(詩經講義)’ 역시 단순한 학술적 토론을 넘어서 《시경》시편의 본의(本意) 혹은 진의(眞意)에 다가가고자 했던 정조(正祖) 본인의 치열한 학문적 호기심의 일단에서 촉발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정조의 시경학적 탐구의 배경에는 안으로는 ‘삼연 김창흡–담헌 홍대용’으로 이어지는 노론계 시경학풍의 영향이 있으며, 밖으로는 주희의 시경설을 비판했던 청대 모기령의 시경설이 주는 외부적 충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초계문신을 비롯한 재야의 제신(諸臣)들은 각자의 학맥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소신이 담긴 답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군신(君臣)간의 학술적 문답 속에서, 풍석 서유구와 다산 정약용은 특유의 박학(博學)과 면밀한 고증(考證)을 통해 가장 많은 조문이 채택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현대의 연구자들은 정조조의 시경강의에 주목을 하면서 풍석과 다산의 시경학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펼쳐왔다.
      다만 간과해서는 안될부분은 당대 조선시경학계의 양상을 통해 보았을 때 다산 및 풍석 의설(說)은 오히려 소수파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양명(陽明)의 학설이 전면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정제두를 대표로 하는 이른바 강화학파(江華學派)라고 하는 소수의 학자군에 의해 연구되었던 바와 같이, 시경학(詩經學)의 경우에도 명 청대의 신설(新說) 및 새로운 저서(著書)들은 당시 조선에 있어 극히 일부의 계층만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으며, 정조조 시경강의에서 수 많은 문신(文臣)들 가운데 모기령의 설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람이 단 두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당대의 조선 시경학계의 주류는 그 외의 세력 즉 이른바 정학(正學)으로 인정되던 주희(朱熹)의 시경설을 옹호했던 부류였다고 생각되며, 그 이유는 역시 중국의 학술 및 사상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했던 수용자로서의 한계 및 정통주의에 입각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말미암은 학문 및 사상적 보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신성(新星)들은 나름의 학파적 전통을 지키면서 당대 중국의 학술적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탐구하였으며, 그러한 집단 중의 하나가 성호계 기호 남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경학(詩經學)에 있어 그들의 이론은 크게 볼 때 성호 이익과 목재 이삼환 녹암 권철신을 거쳐 다산 정약용에까지 이르러 정조(正祖)와 만나고, 다산의 중년에 《시경강의보유》로 보충된 뒤, 이어서 외손인 방산 윤정기의《시경강의속집》으로 완성되는 과정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산 시경학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통시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는 가운데, 그 흐름이 가진 의미를 당대 조선의 시경학설과 비교해 보고, 아울러 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역외(域外) 시경학의 견지에서 조망하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is an Introductory Exploration on the Joseon dynasty’s studying of 《詩經(The book of ode)》, focusing on Dasan(茶山) Jeong Yak-yong studies of 《詩經》. Dasan(茶山) had studied Confucian Classics in the Seung-ho school(星湖學派) before he met Chŏng-Jo(正祖): king of Joseon dynasty.
      Dasan’s academic genealogy is Lee ik(李瀷) - Kwon Cheolshin(權哲身) - Jeong Yak-yong(丁若鏞). So we have to research Seung-ho school(星湖學派)’s studies of 《詩經》if we want to know about Dasan(茶山)’s studies of 《詩經》. But when Chŏng-Jo(正祖) died and Queen Dowager Kim became regent for the new king, Sunjo(純祖), a cruel suppression ensued. This is known as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And most of the Seung-ho school’s student have died and banished for that crisis, and their books and works were thrown out, too.
      Nevertheless, there were a few quotations of Seung-ho school(星湖學派)’s studies in the Dasan(茶山)’s 《ShiJingJiangYi(詩經講義)》. Dasan(茶山)’s 《詩經講義》is a sort of a catechism with Chŏng-Jo(正祖). Chŏng-Jo was very scholarly king, and he had a lot of questions about Confucian Classics. And there was an academic flow of new strikes from Qing(淸) Dynasty. Therefore, Chŏng-Jo had to deal with those flows. In the case of a scholar of Joseon at the time was divided into two groups, one is who can perceive these new movement and another is who cannot. Chŏng-Jo asked to Dasan the theory of Mao Ch"i-ling(毛奇齡, 1623~1716), scholar of Qing (淸) Dynasty, and Dasan answered about it effectively. Because he studied at a relatively academic open group, and he well knew about Mao Ch"i-ling’s theory, too. And his research methods were to gathering across several books. It was similar to Ching Dynasty scholars’ research methods. His mode of scholarly may not represent the Joseon dynasty’s studying of 《詩經》, but we have to pay attention that his proposal could be a alternative to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at that time.
      번역하기

      This article is an Introductory Exploration on the Joseon dynasty’s studying of 《詩經(The book of ode)》, focusing on Dasan(茶山) Jeong Yak-yong studies of 《詩經》. Dasan(茶山) had studied Confucian Classics in the Seung-ho school(星...

      This article is an Introductory Exploration on the Joseon dynasty’s studying of 《詩經(The book of ode)》, focusing on Dasan(茶山) Jeong Yak-yong studies of 《詩經》. Dasan(茶山) had studied Confucian Classics in the Seung-ho school(星湖學派) before he met Chŏng-Jo(正祖): king of Joseon dynasty.
      Dasan’s academic genealogy is Lee ik(李瀷) - Kwon Cheolshin(權哲身) - Jeong Yak-yong(丁若鏞). So we have to research Seung-ho school(星湖學派)’s studies of 《詩經》if we want to know about Dasan(茶山)’s studies of 《詩經》. But when Chŏng-Jo(正祖) died and Queen Dowager Kim became regent for the new king, Sunjo(純祖), a cruel suppression ensued. This is known as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And most of the Seung-ho school’s student have died and banished for that crisis, and their books and works were thrown out, too.
      Nevertheless, there were a few quotations of Seung-ho school(星湖學派)’s studies in the Dasan(茶山)’s 《ShiJingJiangYi(詩經講義)》. Dasan(茶山)’s 《詩經講義》is a sort of a catechism with Chŏng-Jo(正祖). Chŏng-Jo was very scholarly king, and he had a lot of questions about Confucian Classics. And there was an academic flow of new strikes from Qing(淸) Dynasty. Therefore, Chŏng-Jo had to deal with those flows. In the case of a scholar of Joseon at the time was divided into two groups, one is who can perceive these new movement and another is who cannot. Chŏng-Jo asked to Dasan the theory of Mao Ch"i-ling(毛奇齡, 1623~1716), scholar of Qing (淸) Dynasty, and Dasan answered about it effectively. Because he studied at a relatively academic open group, and he well knew about Mao Ch"i-ling’s theory, too. And his research methods were to gathering across several books. It was similar to Ching Dynasty scholars’ research methods. His mode of scholarly may not represent the Joseon dynasty’s studying of 《詩經》, but we have to pay attention that his proposal could be a alternative to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at that time.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서론
      • 2. 관련 연구 약술(略述)
      • 3. 정조조 시경강의 약론(略論)
      • 4. 다산 시경학의 연원
      • 국문초록
      • 1. 서론
      • 2. 관련 연구 약술(略述)
      • 3. 정조조 시경강의 약론(略論)
      • 4. 다산 시경학의 연원
      • 5. 다산 시경학의 특징
      • 6. 정리 및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양계초, "청대학술개론" 여강출판사 1987

      2 심경호, "조선후기의 경학연구법 분화와 모기령 비판" 29 : 1999

      3 심경호, "조선시대 漢文學과 詩經論" 일지사 1999

      4 천기철, "정조조 시경강의에서의 모기령 설의 비판과 수용"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4

      5 심경호, "정조의 경학 연구 방법에 관한 규견" 21 : 2005

      6 김문식, "정조대 정약용의 경학 연구 방법" 진단학회 (124) : 115-140, 2015

      7 심경호, "정조 연간 규장각의 《시경강의》에 관한 연구" 2001

      8 진재교,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의 국풍론(國風論)" 17 : 1994

      9 윤선영, "명고 서형수의 『시고변』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10 박석무, "다산산문선" 창비 2013

      1 양계초, "청대학술개론" 여강출판사 1987

      2 심경호, "조선후기의 경학연구법 분화와 모기령 비판" 29 : 1999

      3 심경호, "조선시대 漢文學과 詩經論" 일지사 1999

      4 천기철, "정조조 시경강의에서의 모기령 설의 비판과 수용"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4

      5 심경호, "정조의 경학 연구 방법에 관한 규견" 21 : 2005

      6 김문식, "정조대 정약용의 경학 연구 방법" 진단학회 (124) : 115-140, 2015

      7 심경호, "정조 연간 규장각의 《시경강의》에 관한 연구" 2001

      8 진재교,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의 국풍론(國風論)" 17 : 1994

      9 윤선영, "명고 서형수의 『시고변』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10 박석무, "다산산문선" 창비 2013

      11 이재호, "국역 정다산문선" 여강출판사 1987

      12 차미애,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 사회평론 2014

      13 김수경, "韓國朝鮮時期"詩經"學硏究" 북경대 2010

      14 실시학사 경학연구회, "譯註시경강의" 사암 2008

      15 굴만리, "詩經詮釋,聯經"

      16 박사철, "經義問答" 家庭文庫社 1979

      17 이병찬, "滄溪와 三淵의 詩經說과 正祖詩經講義의 相關性" Ⅲ, Ⅳ : 2001

      18 李炳燦, "正祖朝의 시경강의 연구"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4

      19 김흥규, "正祖時代의 詩經講義" 23 : 1981

      20 심경호, "朝鮮詩經學에 관한 小稿" 1987

      21 김흥규, "朝鮮後期의 詩經論과 詩意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82

      22 민혜진, "朝鮮 前期의 異端觀과 陽明學 비판 연구"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1) : 21-53, 2003

      23 蘇岑, "徐有榘의 『毛詩講義』 硏究와 譯注"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14

      24 김언종, "丁茶山의 朱子 『論語集註』 批判(6)" 한국한문교육학회 (33) : 437-466, 2009

      25 James legge, "The book of poetry" Oxford University Press 1935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2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1 0.41 0.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 0 0.797 0.1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