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ㆍ박세당으로부터 그 시작점을 잡을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시경연구는 성호 이익을 분기점으로 하여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며 조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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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ㆍ박세당으로부터 그 시작점을 잡을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시경연구는 성호 이익을 분기점으로 하여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며 조선 후...
윤휴ㆍ박세당으로부터 그 시작점을 잡을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시경연구는 성호 이익을 분기점으로 하여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며 조선 후기 시경학에 대한 일련의 교합점을 드러내게 된다. 명고 서형수는 조선 영ㆍ정조 때의 명문가인 달성 서씨가의 한 사람으로서 보만재 서명응의 아들로서 더욱 유명하다. 본고는 경학에 통달하였다고 알려진 그의 시경 주석서인 『詩故辨』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의 시경론의 흐름에서 그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시경론이 어떠한 특질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제 2장에서는, 『시고변』이라는 책의 서지학적 사항과 5개의 범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시고변』의 저술 의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시고변』에는 총론을 포함하여 모두 62조의 按說이 들어가 있으며, 그 중 45개가 국풍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시고변』에서 약 80여명의 학자들의 설을 인용했는데, 『흠정시경전설휘찬』에서 보이는 인용서목과 대부분이 일치하는 점을 보여 두 책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고 5개의 범례를 분석함으로써 그가 『시고변』을 지은 의도와 자신의 說詩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밝혔는데, 결론적으로 『시고변』이란 책은 시를 지은 大意 및 篇旨를 중심으로 하였다는 점,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 보다는 제설들을 절충하여 신중하게 다가가려고 하였다는 점, 주자가 위대한 학자이지만 『시집전』에서의 잘못된 부분은 의리적ㆍ고증적 방면에서 보완하겠다는 점 등을 주지하였다.
제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시고변』을 통해 알 수 있는 서형수 시경론의 특질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는 『시고변』의 按說 62조를 중심으로 하였는데, 크게 네 가지 부분 (1) 주자의 음시설 비판, (2) 소서 중심의 治詩태도, (3) 文勢와 詩詞에 관심을 둔 解詩觀, (4) 기타 시경학 쟁점에 관한 서형수의 견해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1)에서는 서형수가 음시의 작자를 음분한 자의 자작이라고 서술한 주자의 주장에 반대한 것과, 내용상 음시일 수 없는데도 음시라고 판정한 것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 그리고 시문을 위주로 시 자체가 음시로 보기는 힘들다는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2)에서는 『시고변』의 국풍에 있는 45개의 按說을 대상으로 하여, 소서와 『시집전』에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시편들에 대해 서형수가 주로 어떠한 설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 살펴보았고, 결론적으로 그는 소서를 중심으로 시를 해석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3)에서는 서형수가 文勢와 詩詞에서 보이는 단서들로 제가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설명하였다. 서형수는 한 작품 안에서 문세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지의 여부와 각 문단과 문단 사이의 논리성과 통일성 및 시사의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시의 대지를 파악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4)에서는 공자산시설을 비롯하여 빈시의 개념과 「칠월」 및 생시설에 관한 서형수의 논의를 간략히 언급하였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공자산시설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또한 빈시를 「칠월」과 동일 의미로 보지는 않았으나 빈풍 작품 중 「칠월」이 핵심이며 나머지 작품들은 「칠월」으로 인하여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칠월」이 지어진 시기는 동도에 머무르기 이전이라고 주장하였다. 생시설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가사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차서에 관한 부분은 주자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음을 알 수 있었다.
제 4장에서는 『시고변』이 후세의 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의의 및 한계가 무엇인지 살폈다. 우선 서형수의 조카인 서유구가 저술한 『毛詩講義』, 사위인 김노겸의 『詩禮問 : 詩傳』에서 『시고변』과의 상관관계가 보이는지 여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모시강의』와 『시례문 : 시전』에서 『시고변』에 보이는 몇몇 서술이 거의 그대로 보이는 점을 근거로, 서형수는 서유구와 김노겸의 시경학에 있어서 많은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자산시설과 「추우」편에 관한 논의 등 서유구와 서형수간의 이견 차이가 보이는 부분도 있어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형수보다 후대 학자인 한상신이 경사강의에서 올린 조대에서의 언급 중에서도 󰡔시고변󰡕에 보이는 서술이 그대로 나와 있는 점이 보이는 바, 그의 저작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형수는 시가 성현의 산삭물이라는 대전제를 고수하였으므로, 자신의 주장을 나타내는데 있어 철저한 고증으로써 하지 못하였다. 또한 주자라는 거대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反朱子의 측면에서 머무른 점은 한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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