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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梵鐘을 통해 본 梵字 = A Study on the Sanskrit in Buddhist Bells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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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범종에 표현된 범자를 중심으로 등장배경 및 범자체와 진언의 의미를 시기적인 양상과 변천을 통해 살펴 본 논문이다. 고려시대 범종의 범자는 육자대명왕진언과 다양한 다라니 및 만다라에 영향을 받았지만 크게 성행하지 못하였으며, 상징적인 의미보다 문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조선시대는 범종에 범자가 널리 표현되었는데, 이점은 조선전기 왕실의 진언신앙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15세기에는 <낙산사종(1469년)>과 <봉선사종(1469년)> 등의 왕실발원종에는 관음보살신앙을 중심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의 범자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왕실발원종만의 독특한 실담문자 범자체와 제작기법을 통해 <수종사종(1469년)>이나 <유점사출토종> 등이 왕실 내 범종 제작기관인 주종소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승장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자 도안이 등장하는 동시에 단순히 도식화되는 경향 또한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에는 실담문자를 중심으로 범자가 표현되었다. 승장들의 경우 양천목·천보계는 왕실발원종을 계승한 실담문자 범자를 사용하였으며 란차문자와 같은 새로운 범자도 도입하여 표현하였다. 이후 죽창·정우계는 상대 문양으로 범자를 사용하고 특징적인 한자진언을 표현하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이후 사인계에 이르러 내재적인 전통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18세기 사인계까지 유지되었다.
    사장들의 경우 17세기 사장들은 계열별로 독특한 법자 표현을 시도되었다. 그렇지만 김상립·김성원 김씨일가계를 기점으로 18세기 사장들의 범지는 '옴'자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점차 도식화 되었다. 이는 18세기 중반 이후 승장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경향으로, 범자의 도식화 경향은 사장들이 승장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되었다.
    조선시대 범종의 법자는 고려시대와는 차별적으로 조선전기에 신봉되었던 진언신앙과 교리적 상징성을 바탕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이 범자로 표현되었다. 범자의 양상과 변천에서 조선전기는 발원계층별로 다양한 범자의 표현이 확인되고, 조선후기는 주종장의 계열별로 다양한 범자체와 제작기법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범종에 표현된 범자는 고려시대 보다 상징성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주 문양으로서 범종에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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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범종에 표현된 범자를 중심으로 등장배경 및 범자체와 진언의 의미를 시기적인 양상과 변천을 통해 살펴 본 논문이다. 고려시대 범종의 범자는 육자대명왕진언과 다양한 다라니 ...

    본 연구는 범종에 표현된 범자를 중심으로 등장배경 및 범자체와 진언의 의미를 시기적인 양상과 변천을 통해 살펴 본 논문이다. 고려시대 범종의 범자는 육자대명왕진언과 다양한 다라니 및 만다라에 영향을 받았지만 크게 성행하지 못하였으며, 상징적인 의미보다 문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조선시대는 범종에 범자가 널리 표현되었는데, 이점은 조선전기 왕실의 진언신앙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15세기에는 <낙산사종(1469년)>과 <봉선사종(1469년)> 등의 왕실발원종에는 관음보살신앙을 중심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의 범자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왕실발원종만의 독특한 실담문자 범자체와 제작기법을 통해 <수종사종(1469년)>이나 <유점사출토종> 등이 왕실 내 범종 제작기관인 주종소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승장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자 도안이 등장하는 동시에 단순히 도식화되는 경향 또한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에는 실담문자를 중심으로 범자가 표현되었다. 승장들의 경우 양천목·천보계는 왕실발원종을 계승한 실담문자 범자를 사용하였으며 란차문자와 같은 새로운 범자도 도입하여 표현하였다. 이후 죽창·정우계는 상대 문양으로 범자를 사용하고 특징적인 한자진언을 표현하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이후 사인계에 이르러 내재적인 전통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18세기 사인계까지 유지되었다.
    사장들의 경우 17세기 사장들은 계열별로 독특한 법자 표현을 시도되었다. 그렇지만 김상립·김성원 김씨일가계를 기점으로 18세기 사장들의 범지는 '옴'자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점차 도식화 되었다. 이는 18세기 중반 이후 승장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경향으로, 범자의 도식화 경향은 사장들이 승장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되었다.
    조선시대 범종의 법자는 고려시대와는 차별적으로 조선전기에 신봉되었던 진언신앙과 교리적 상징성을 바탕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이 범자로 표현되었다. 범자의 양상과 변천에서 조선전기는 발원계층별로 다양한 범자의 표현이 확인되고, 조선후기는 주종장의 계열별로 다양한 범자체와 제작기법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범종에 표현된 범자는 고려시대 보다 상징성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주 문양으로서 범종에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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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d the time aspect and changes of Sanskrit regarding its background of appearance and the meaning of the words of Buddha and Sanskrit focusing on Sanskrit expressed in the Buddhist temple bell. Although Sanskrit during the Goryo Dynasry was influenced by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and a wide range of a mystic Buddhist formula and mandala, it rather was used as a pattern than a symbolic meaning.
    The broad use of Sanskrit(Om Mani Padeume Hum, Om Katateya Shaba) in the Buddhist temple bell during the Joseon Dynasry can be identified with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among the royal family in the beginning of the period. With the royal family who favored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the words of Buddha was represented in the sublime elements of the royal households by varying faiths in the words of Buddha.
    In the 15th century, Sanskrit was described centering around faith in Kwan-yin in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It was also assumed based on unique Siddham Sanskrit and the manufacturing method of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that the buddhist bells, presumably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could have been cast in a bell foundry, a royal institute to produce a buddhist bell for the royal family.
    With the beginning of the 16th century, a variety of Sanskrit design has appeared among the Monk Bell master along with the tendency of simply schematized 'om' in combination.
    Sanskrit was expressed based on Siddham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case of Yangcheonmok and Cheonbogye, the Monk Bell master used Siddham Sanskrit which inherited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and introduced such new Sanskrit as Lan tsha. Later, Jukchang and Jeongwoogye used Sanskrit creatively as an ancient pattern. As it reached Saingye, it showed its creativity while succeeding the previous qualities, which lasted until 18th century Saingye.
    The Private Bell master in the 17th century attempted unusual Sanskrit by affiliation, However, simplified schematization of Sanskrit after the 18th century was attempted by the Private Bell master earlier than the Monk Bell master did. It is significant that Sanskrit represented in the Buddhist temple bells during the Joseon Dynasty is highly valuable for its symbolic meaning and style changed ov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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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d the time aspect and changes of Sanskrit regarding its background of appearance and the meaning of the words of Buddha and Sanskrit focusing on Sanskrit expressed in the Buddhist temple bell. Although Sanskrit during the Goryo Dynas...

    This study examined the time aspect and changes of Sanskrit regarding its background of appearance and the meaning of the words of Buddha and Sanskrit focusing on Sanskrit expressed in the Buddhist temple bell. Although Sanskrit during the Goryo Dynasry was influenced by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and a wide range of a mystic Buddhist formula and mandala, it rather was used as a pattern than a symbolic meaning.
    The broad use of Sanskrit(Om Mani Padeume Hum, Om Katateya Shaba) in the Buddhist temple bell during the Joseon Dynasry can be identified with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among the royal family in the beginning of the period. With the royal family who favored faith in the words of Buddha, the words of Buddha was represented in the sublime elements of the royal households by varying faiths in the words of Buddha.
    In the 15th century, Sanskrit was described centering around faith in Kwan-yin in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It was also assumed based on unique Siddham Sanskrit and the manufacturing method of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that the buddhist bells, presumably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could have been cast in a bell foundry, a royal institute to produce a buddhist bell for the royal family.
    With the beginning of the 16th century, a variety of Sanskrit design has appeared among the Monk Bell master along with the tendency of simply schematized 'om' in combination.
    Sanskrit was expressed based on Siddham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case of Yangcheonmok and Cheonbogye, the Monk Bell master used Siddham Sanskrit which inherited the royal Buddhist temple bells and introduced such new Sanskrit as Lan tsha. Later, Jukchang and Jeongwoogye used Sanskrit creatively as an ancient pattern. As it reached Saingye, it showed its creativity while succeeding the previous qualities, which lasted until 18th century Saingye.
    The Private Bell master in the 17th century attempted unusual Sanskrit by affiliation, However, simplified schematization of Sanskrit after the 18th century was attempted by the Private Bell master earlier than the Monk Bell master did. It is significant that Sanskrit represented in the Buddhist temple bells during the Joseon Dynasty is highly valuable for its symbolic meaning and style changed ov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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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조선전기 王室의 眞言信仰
    • 3. 조선시대 梵鐘 梵字文의 樣相과 變遷
    • 4. 맺음말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조선전기 王室의 眞言信仰
    • 3. 조선시대 梵鐘 梵字文의 樣相과 變遷
    • 4.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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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許一範, "한국의 진언문화" 해인행 2008

    2 許一範, "한국의 진언다라니 신앙연구" 회당학회 6 : 2001

    3 "한국의 범종 탁본전" 직지성보박물관 2003

    4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5 "한국고전번역원"

    6 許一範, "한․몽 불교문화의 流轉-문화적 유전과 사찰의 천정장엄" 회당학회 14 : 2009

    7 혜 정, "육자진언 신앙의 유래" 회당학회 14 : 2009

    8 명 운, "육자진언 신앙의 변천에 관하여" 회당학회 15 : 2010

    9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朝鮮時代편)Ⅱ"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10 許一範, "만다라 이론과 실전" 회당학회 3 : 1994

    1 許一範, "한국의 진언문화" 해인행 2008

    2 許一範, "한국의 진언다라니 신앙연구" 회당학회 6 : 2001

    3 "한국의 범종 탁본전" 직지성보박물관 2003

    4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5 "한국고전번역원"

    6 許一範, "한․몽 불교문화의 流轉-문화적 유전과 사찰의 천정장엄" 회당학회 14 : 2009

    7 혜 정, "육자진언 신앙의 유래" 회당학회 14 : 2009

    8 명 운, "육자진언 신앙의 변천에 관하여" 회당학회 15 : 2010

    9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朝鮮時代편)Ⅱ"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10 許一範, "만다라 이론과 실전" 회당학회 3 : 1994

    11 혜 정, "네팔의 밀교와 육자진언" 회당학회 15 : 2010

    12 최응천, "금속공예" 솔출판사 2004

    13 "규장각학국학연구원"

    14 최응천, "고려시대 金屬工藝의 匠人" 한국미술사학회 241 (241): 171-192, 2004

    15 崔應天, "高麗時代 靑銅金鼓의 硏究" 동국대학교박물관 9 : 1988

    16 南權熙, "高麗時代 記錄文化 硏究-청주고인쇄박물관 학술총서" 2002

    17 崔應天, "高麗後期 轉換期의 美術 特輯-高麗後期의 金屬工藝" 22 : 2004

    18 許一範, "高麗․朝鮮時代의 梵字 硏究" 회당학회 4 : 1996

    19 廉永夏, "韓國의 鐘" 서울대학교출판부 1991

    20 국립문화재연구소, "韓國의 梵鐘" 1996

    21 許一範, "韓國의 六字眞言信仰과 金剛界三十七尊의 習合" 회당학회 12 : 2007

    22 崔應天, "韓國の梵音具に關する硏究" 九州大學校 2007

    23 崔應天, "韓國 梵鐘의 特性과 變遷 , In 聖德大王神鐘 綜合論考集" 국립경주박물관 1999

    24 崔應天, "鑄金匠 金愛立의 生涯와 作品-興國寺鐘을 중심으로" 韓國考古美術硏究所 1 : 1993

    25 이광배, "發願者 階層을 통해 본 朝鮮前期 梵鍾의 樣式" 한국미술사학회 262 (262): 5-32, 2009

    26 崔應天, "癸未銘 梵鐘의 特懲과 編年" 용인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4 : 1999

    27 崔應天, "東文選과 高麗時代의 美術 ; 工藝" 한국불교미술사학회 1 : 1988

    28 "朝鮮王朝實錄․拭疣先生集․釋門儀範․眞言集․妙法蓮華經․佛説大乘莊嚴寶王 ․마니칸붐(maei bkau ubum)․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印陀羅尼經"

    29 鄭文碩, "朝鮮時代 僧匠系 梵鐘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2011

    30 安貴淑, "朝鮮後期 梵鐘의 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1982

    31 崔應天, "朝鮮後期 梵鐘 匠人과 系譜, In 한국의 사찰문화재-학술세미나 논문집"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7

    32 주경미, "朝鮮前期 王室發願鐘의 硏究" 동양학연구원 42 (42): 221-241, 2007

    33 李光培, "朝鮮前期 梵鐘(15-16세기)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4

    34 이정주, "朝鮮 太宗ㆍ世宗代의 抑佛政策과 寺院建立" 고려사학회 6 : 1999

    35 南辰阿, "朝鮮 初記 王室發願 梵鐘 硏究" 영남대학교 대학원 2005

    36 崔應天, "普光寺의 佛敎法具" 大韓佛敎曹溪宗 聖寶保存委員會 1 : 1998

    37 北京文物大系, "古鐘系" 北京出版社 2000

    38 朴相國編著, "全國寺刹所藏木板集" 文化財管理局 1987

    39 崔應天, "18世紀의 樣相과 鑄鐘匠 金成元의 作品" 韓國考古美術硏究所 2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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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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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63 0.63 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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