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14연대 반군의 지리산을 향한 진군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64145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여순사건을 다룬 저서에서는 대부분 반군이 여수와 순천을 점령한 이후 부대를 나누어 서쪽의 보성, 벌교 방면, 동쪽의 광양 방면, 북쪽의 구례, 남원 방면으로 분진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서술의 시원은 여순사건을 진압한 군과 경찰의 기록에서 반군이 광양, 구례, 남원 등 지리산을 감아 돌거나 서쪽의 보성, 광주를 경유해 북상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보고에서 기원한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했다기보다는 반군의 동향을 보고 진로를 유추한 진압군측의 자의적인 판단이었다. 14연대 반군의 목표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지리산으로 입산해 유격 근거지를 만들어 장기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반군이 순천은 물론이고 여수를 영구히 장악할 목적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군의 주력은 가능한 빨리 순천을 거쳐 구례를 통해 지리산에 입산하고자 했고, 여수에 남은 병력은 입산을 위한 물품을 준비한 뒤 주력을 뒤따라 지리산으로 입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14연대 반군은 19일 밤 연대를 장악하고 20일 새벽 3시~3시 30분경 여수경찰력을 무력화시키자마자 4시경 통근열차를 징발하여 순천으로 향발한 후 순천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오전 9시경 동순천역 부근에서 경찰 등과 교전을 벌여 오후 3시경 순천의 경찰력을 와해시켰다. 부대를 정비한 후 그날 저녁 다시 열차로 북상하여 19시 45분 학구에서 진압군과 조우했다. 진압군과 대치하며 소규모 교전과 심리전을 진행하다가 21일 밤 반군 주력은 순천을 탈출하여 광양으로 이동했다. 여수-순천-구례로 가는 최단거리 직선코스로 지리산에 입산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광양으로 우회해 백운산을 통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입산하는 경로를 택했다. 10월 24일 밤에는 여수에 남아있던 반군 또한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합류했다.
    번역하기

    여순사건을 다룬 저서에서는 대부분 반군이 여수와 순천을 점령한 이후 부대를 나누어 서쪽의 보성, 벌교 방면, 동쪽의 광양 방면, 북쪽의 구례, 남원 방면으로 분진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순사건을 다룬 저서에서는 대부분 반군이 여수와 순천을 점령한 이후 부대를 나누어 서쪽의 보성, 벌교 방면, 동쪽의 광양 방면, 북쪽의 구례, 남원 방면으로 분진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서술의 시원은 여순사건을 진압한 군과 경찰의 기록에서 반군이 광양, 구례, 남원 등 지리산을 감아 돌거나 서쪽의 보성, 광주를 경유해 북상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보고에서 기원한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했다기보다는 반군의 동향을 보고 진로를 유추한 진압군측의 자의적인 판단이었다. 14연대 반군의 목표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지리산으로 입산해 유격 근거지를 만들어 장기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반군이 순천은 물론이고 여수를 영구히 장악할 목적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군의 주력은 가능한 빨리 순천을 거쳐 구례를 통해 지리산에 입산하고자 했고, 여수에 남은 병력은 입산을 위한 물품을 준비한 뒤 주력을 뒤따라 지리산으로 입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14연대 반군은 19일 밤 연대를 장악하고 20일 새벽 3시~3시 30분경 여수경찰력을 무력화시키자마자 4시경 통근열차를 징발하여 순천으로 향발한 후 순천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오전 9시경 동순천역 부근에서 경찰 등과 교전을 벌여 오후 3시경 순천의 경찰력을 와해시켰다. 부대를 정비한 후 그날 저녁 다시 열차로 북상하여 19시 45분 학구에서 진압군과 조우했다. 진압군과 대치하며 소규모 교전과 심리전을 진행하다가 21일 밤 반군 주력은 순천을 탈출하여 광양으로 이동했다. 여수-순천-구례로 가는 최단거리 직선코스로 지리산에 입산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광양으로 우회해 백운산을 통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입산하는 경로를 택했다. 10월 24일 밤에는 여수에 남아있던 반군 또한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합류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Books about Yosun Revolt mostly describe that rebel army divided march to western Bosung, Beolgyo, eastern Gwangyang, northern Gurye, and Namwon by dividing the army after occupying Yeosu and Suncheon. The origin of this description began from a report of the army and police that suppressed Yosun Revolt. However, this was the army's arbitrary judgment that analogized the course by seeing the rebel's movement rather than based on concrete data. The goal of solidarity 14 rebel army was to develop long-term armed struggle by making guerrilla base by entering into Mt. Jiri within the shortest time. Solidarity 14 rebel army transferred train at Suncheon Station after starting for Suncheon by commanding a commuter train at around 4 a.m. as soon as disarming Yeosu police force at around 3~3:30 a.m. by seizing solidarity on the night of the 19th, and at 9 in the morning collapsed police force at around 3 p.m. after a battle with police, etc. that began at around 9 a.m. nearby Eastern Suncheon Station. After arranging the unit, on that evening again went north by train and encountered the suppressive army at Hakgu at 19:45. While proceeding small battle and psychological warfare against the suppressive army, main force of rebel escaped from Suncheon and moved to Gwangyang on the night of the 21st. The rebel chose a route to enter into Mt. Jiri by crossing Seomjin River through Mt. Baegun via Gwangyang, giving up a plan to enter into Mt. Jiri through the shortest distance straight line course of Yeosu-Suncheon-Gurye. On the night of October 24, remaining rebel army in Yeosu also came over to Mt. Jiri via Mt. Baegun. This means that the rebel had no purpose to permanently dominate Yeosu as well as Suncheon from the beginning. Main force of rebel intended to enter into Mt. Jiri through Gurye via Suncheon as fast as possible, remaining troops in Yeosu seemed that they intended to enter into Mt. Jiri following after the main force after preparing goods for mountaineering.
    번역하기

    Books about Yosun Revolt mostly describe that rebel army divided march to western Bosung, Beolgyo, eastern Gwangyang, northern Gurye, and Namwon by dividing the army after occupying Yeosu and Suncheon. The origin of this description began from a repor...

    Books about Yosun Revolt mostly describe that rebel army divided march to western Bosung, Beolgyo, eastern Gwangyang, northern Gurye, and Namwon by dividing the army after occupying Yeosu and Suncheon. The origin of this description began from a report of the army and police that suppressed Yosun Revolt. However, this was the army's arbitrary judgment that analogized the course by seeing the rebel's movement rather than based on concrete data. The goal of solidarity 14 rebel army was to develop long-term armed struggle by making guerrilla base by entering into Mt. Jiri within the shortest time. Solidarity 14 rebel army transferred train at Suncheon Station after starting for Suncheon by commanding a commuter train at around 4 a.m. as soon as disarming Yeosu police force at around 3~3:30 a.m. by seizing solidarity on the night of the 19th, and at 9 in the morning collapsed police force at around 3 p.m. after a battle with police, etc. that began at around 9 a.m. nearby Eastern Suncheon Station. After arranging the unit, on that evening again went north by train and encountered the suppressive army at Hakgu at 19:45. While proceeding small battle and psychological warfare against the suppressive army, main force of rebel escaped from Suncheon and moved to Gwangyang on the night of the 21st. The rebel chose a route to enter into Mt. Jiri by crossing Seomjin River through Mt. Baegun via Gwangyang, giving up a plan to enter into Mt. Jiri through the shortest distance straight line course of Yeosu-Suncheon-Gurye. On the night of October 24, remaining rebel army in Yeosu also came over to Mt. Jiri via Mt. Baegun. This means that the rebel had no purpose to permanently dominate Yeosu as well as Suncheon from the beginning. Main force of rebel intended to enter into Mt. Jiri through Gurye via Suncheon as fast as possible, remaining troops in Yeosu seemed that they intended to enter into Mt. Jiri following after the main force after preparing goods for mountaineering.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 Ⅱ. 반군의 진로 검토
    • 1. 三分北進說
    • 2. 초기 군경의 二分北進說
    • Ⅲ. 반군의 목표 : 지리산유격구 창설
    • Ⅰ. 서론
    • Ⅱ. 반군의 진로 검토
    • 1. 三分北進說
    • 2. 초기 군경의 二分北進說
    • Ⅲ. 반군의 목표 : 지리산유격구 창설
    • Ⅳ. 지리산 입산 투쟁
    • 1. 지리산을 향한 진격
    • 2. 백운산으로 우회 입산
    • Ⅴ.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호남신문"

    2 "현대공론"

    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의 유격전사" 국방부 2003

    4 "투사신문"

    5 "좌익사건실록"

    6 "조선일보"

    7 "자유신문"

    8 서중석, "이승만과 여순사건" 역사문제연구소 (86) : 302-338, 2009

    9 반충남, "월간 말" 월간 말 1993

    10 주철희, "예술작품을 통해 본 여순사건 연구 : 형상화와 역사적 연관성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대학원 2014

    1 "호남신문"

    2 "현대공론"

    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의 유격전사" 국방부 2003

    4 "투사신문"

    5 "좌익사건실록"

    6 "조선일보"

    7 "자유신문"

    8 서중석, "이승만과 여순사건" 역사문제연구소 (86) : 302-338, 2009

    9 반충남, "월간 말" 월간 말 1993

    10 주철희, "예술작품을 통해 본 여순사건 연구 : 형상화와 역사적 연관성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대학원 2014

    11 임종명, "여순사건의 再現과 暴力" 한국근현대사학회 32 : 103-132, 2005

    12 이선아,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 활동과 그 영향" 역사학연구소 (20) : 175-205, 2011

    13 노영기, "여순 사건과 구례: 여순 사건 직후 군대의 주둔과 진압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68 : 37-67, 2005

    14 "선전자"

    15 "서울신문"

    16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빨치산 자료집 3" 1996

    17 홍영기, "문헌자료와 증언을 통해 본 여순사건의 피해 현황" 1 : 2001

    18 정종균, "력사과학 1" 력사과학 1982

    19 "동아일보"

    20 "동광신문"

    21 김수자, "대한민국수립직후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형성 과정" 한국사상사학회 25 : 367-394, 2005

    22 "대동신문"

    23 김득중, "구술을 통한 공식역사의 균열과 새로운 역사쓰기의 가능성" 한국사학회 (100) : 219-251, 2010

    24 정호기, "과거의 재조명에서 시민주체의 형성과 연대 그리고 와해 - ‘여순사건’의 의례를 중심으로 -" 한국사회사학회 (87) : 87-120, 2010

    25 "경향신문"

    26 國防部戰史編纂委員會, "對非正規戰史" 國防軍史硏究所 1988

    27 "14연대 반란사건 50년 결산집" 여수문화원 1997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0-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2 0.32 0.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9 0.42 0.641 0.13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