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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매[鷹]의 사육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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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5099204

    • 저자
    • 발행사항

      청주 : 한국교원대학교, 2019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역사교육전공 , 2019

    • 발행연도

      2019

    • 작성언어

      한국어

    • KDC

      374.9 판사항(6)

    • DDC

      907.1 판사항(23)

    • 발행국(도시)

      충청북도

    • 형태사항

      v, 90 p. : 천연색삽화, 도표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이병희
      권말부록: 조선전기 응방의 치폐(置廢) ; 명나라에 진응(進鷹)한 수(數) ; 조선전기 국왕의 매사냥[放鷹]
      참고문헌: p. 64-68

    • 소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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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에서는 조선전기 매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 예컨대, 매의 포획과 사육 방법, 외교 및 문화적 측면에서의 활용 모습 등을 규명하여 고려 말 위상 못지않게 중요했던 매를 재조명하고자 노력했다.
    조선전기에 매는 국가에서 포획과 사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새였다. 조선 조정은 안정적인 매 확보를 위해 상벌제 제정, 채포군의 편성 등의 노력을 전개했다. 채포군의 편성은 조선전기에 나타나는 특수한 제도로 조선 조정이 매 포획에 많은 관심을 쏟았음을 보여준다. 매는 주로 그물과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잡았다. 이 과정에서 백성은 매 포획이라는 또 다른 고역을 견뎌야 했다. 이렇게 포획된 매는 응사에게 사육되고 훈련받았다. 이들은 매의 훈련, 사냥 방법, 병든 매의 치료법 등과 같이 매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했고, 그 기술을 전습했다. 뿐만 아니라 매사냥을 통해 날짐승을 공급해야 했으며, 국왕이 매사냥을 보기 위해 행차할 때도 동행했다.
    응방은 태조 4년에 설치되어 태종~성종대 정원의 증감, 치폐를 겪다가 성종 17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연산군 3년 다시 설치되어 가장 확대되었다가 중종 3년 최소로 축소되었고, 숙종 41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응방은 매를 확보하는 것의 필요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그 필요는 대명외교와 국내의 매사냥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응방은 조선전기 활발히 운영되다가 중종 이후부터 쇠퇴하여 갔다.
    조선전기 매는 대명외교 측면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진헌하거나, 조선으로 온 사신에게 뇌물로 사용되어 명나라와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때 등장하는 진응사는 오로지 매를 진헌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견된 특수한 사행이었다. 공식적으로 명나라에 매를 진헌하기 시작한 세종 8년부터 세조 13년까지 총 70건, 538연 이상의 매가 명나라로 건너갔다. 이는 고려시기 원종대부터 충숙왕대까지 원나라에 37회 매를 진헌한 것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숫자였다. 조선전기 매는 혼란한 동아시아 국제관계 속에서 명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활용된 일종의 뇌물이었다.
    국내에서 매는 매사냥에 활용되었다. 매사냥은 매를 날려서 꿩, 비둘기 같은 날짐승을 잡는 사냥 방법의 하나였다. 조선에서는 매사냥으로 왕실의 식량이나 제사에 쓰일 날짐승을 잡았다. 또한, 국왕은 강무 때 군사들을 훈련하는 데 매사냥을 활용했고, 평상시에도 매사냥으로 무예를 훈련하기도 했다. 매사냥은 조선전기 국왕의 문화 활동의 하나로도 활용되었다. 역대 국왕 중 가장 많이 매사냥을 즐긴 국왕은 태종이었고, 그 뒤를 이어 세종 -> 정종 -> 세조 -> 단종 -> 태조 순으로 확인된다. 매사냥은 태종, 세종, 세조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성종대부터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종대는 이전 국왕들과는 다르게 신하들이 매사냥에 대해 극심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점차 조선 지배층의 분위기가 상문으로 흘러가는 맥락 속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였다. 중종대 이후로는 국왕의 매사냥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점차 국왕의 문화 활동에서 매사냥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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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에서는 조선전기 매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 예컨대, 매의 포획과 사육 방법, 외교 및 문화적 측면에서의 활용 모습 등을 규명하여 고려 말 위상 못지않게 중요했던 매를 재조명하고자 ...

    본 연구에서는 조선전기 매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 예컨대, 매의 포획과 사육 방법, 외교 및 문화적 측면에서의 활용 모습 등을 규명하여 고려 말 위상 못지않게 중요했던 매를 재조명하고자 노력했다.
    조선전기에 매는 국가에서 포획과 사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새였다. 조선 조정은 안정적인 매 확보를 위해 상벌제 제정, 채포군의 편성 등의 노력을 전개했다. 채포군의 편성은 조선전기에 나타나는 특수한 제도로 조선 조정이 매 포획에 많은 관심을 쏟았음을 보여준다. 매는 주로 그물과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잡았다. 이 과정에서 백성은 매 포획이라는 또 다른 고역을 견뎌야 했다. 이렇게 포획된 매는 응사에게 사육되고 훈련받았다. 이들은 매의 훈련, 사냥 방법, 병든 매의 치료법 등과 같이 매와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했고, 그 기술을 전습했다. 뿐만 아니라 매사냥을 통해 날짐승을 공급해야 했으며, 국왕이 매사냥을 보기 위해 행차할 때도 동행했다.
    응방은 태조 4년에 설치되어 태종~성종대 정원의 증감, 치폐를 겪다가 성종 17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연산군 3년 다시 설치되어 가장 확대되었다가 중종 3년 최소로 축소되었고, 숙종 41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응방은 매를 확보하는 것의 필요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그 필요는 대명외교와 국내의 매사냥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응방은 조선전기 활발히 운영되다가 중종 이후부터 쇠퇴하여 갔다.
    조선전기 매는 대명외교 측면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진헌하거나, 조선으로 온 사신에게 뇌물로 사용되어 명나라와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때 등장하는 진응사는 오로지 매를 진헌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견된 특수한 사행이었다. 공식적으로 명나라에 매를 진헌하기 시작한 세종 8년부터 세조 13년까지 총 70건, 538연 이상의 매가 명나라로 건너갔다. 이는 고려시기 원종대부터 충숙왕대까지 원나라에 37회 매를 진헌한 것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숫자였다. 조선전기 매는 혼란한 동아시아 국제관계 속에서 명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활용된 일종의 뇌물이었다.
    국내에서 매는 매사냥에 활용되었다. 매사냥은 매를 날려서 꿩, 비둘기 같은 날짐승을 잡는 사냥 방법의 하나였다. 조선에서는 매사냥으로 왕실의 식량이나 제사에 쓰일 날짐승을 잡았다. 또한, 국왕은 강무 때 군사들을 훈련하는 데 매사냥을 활용했고, 평상시에도 매사냥으로 무예를 훈련하기도 했다. 매사냥은 조선전기 국왕의 문화 활동의 하나로도 활용되었다. 역대 국왕 중 가장 많이 매사냥을 즐긴 국왕은 태종이었고, 그 뒤를 이어 세종 -> 정종 -> 세조 -> 단종 -> 태조 순으로 확인된다. 매사냥은 태종, 세종, 세조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성종대부터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종대는 이전 국왕들과는 다르게 신하들이 매사냥에 대해 극심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점차 조선 지배층의 분위기가 상문으로 흘러가는 맥락 속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였다. 중종대 이후로는 국왕의 매사냥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점차 국왕의 문화 활동에서 매사냥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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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 론 1
    • Ⅱ. 매의 종류 및 특성 4
    • 1. 매의 종류 : 응속(鷹屬)과 골속(屬) 4
    • 2. 매의 서식지와 번식 11
    • Ⅰ. 서 론 1
    • Ⅱ. 매의 종류 및 특성 4
    • 1. 매의 종류 : 응속(鷹屬)과 골속(屬) 4
    • 2. 매의 서식지와 번식 11
    • Ⅲ. 매의 포획과 사육 15
    • 1. 매의 포획과 채포군(採捕軍)의 편성 15
    • 가. 포획 방법 15
    • 나. 매 확보 방안과 채포군(採捕軍)의 편성 18
    • 2. 매의 사육(飼育)과 응방(鷹坊)의 운영 24
    • 가. 사육 방법과 응사(鷹師)의 직무(職務) 24
    • 나. 응방(鷹坊)의 운영 28
    • Ⅳ. 매 진헌(進獻)과 매사냥[放鷹] 35
    • 1. 명나라에 진응(進鷹) 35
    • 2. 매사냥[放鷹] 47
    • 가. 종묘(宗廟) 천신(薦新)과 강무(講武)에 활용 47
    • 나. 국왕의 문화 활동 51
    • Ⅴ. 결 론 60
    • 참고문헌 64
    • ABSTRACT 66
    • 부 록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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