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후기 편찬된 『尊周彙編』의 편찬 과정을 살펴보고 그중 존주의리와 관련한 인물 열전인 「諸臣事實」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그 의의를 알아보았다. 『尊周彙編』은 조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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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 단국대학교 대학원, 2024
학위논문(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한국사 , 2024. 8
2024
한국어
경기도
A Study on Jonjuhwipyeon Jesinsasil
113 ; : 삽화, 표 ; 26 cm.
지도교수: 김문식
참고논문 : 장.104-106
I804:11017-00000020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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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편찬된 『尊周彙編』의 편찬 과정을 살펴보고 그중 존주의리와 관련한 인물 열전인 「諸臣事實」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그 의의를 알아보았다.
『尊周彙編』은 조선 후기 존주의리 관련한 사실을 총망라한 저술이다. 존주의리란 周로 대표되는 중화국가 및 문화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것으로 명청교체기 조선에 있어서는 명ㆍ청의 관계 속에서 崇明反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796년(정조 20), 정조는 존주의리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대처하기 위해 존주 사실을 집대성한 『尊周彙編』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정조는 『尊周彙編』을 완성하고 반포함으로써 존주의리를 상기시키려 하였으나,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정조가 사망하고 『尊周彙編』의 편찬은 조정이 아닌 성대중과 성해응, 이서구의 개인에 의해서 작업이 이어져 완성되었다. 1826년(순조 20)에 『尊周彙編』이 완성되자 조정에서는 이를 간인하였으나 정조의 의도와 달리 청과의 갈등을 우려하여 반포하지 않았다.
「諸臣事實」은 존주의리를 지킨 인물들의 열전이다. 초고본에서는 54개의 인물군에 표제인물 319인, 부기인물 440인으로 총 759인이 기록되었고, 완성본에서는 41개 인물군에 표제인물 150인, 부기인물 665인으로 총 815인이 기록되었다. 초고본에서는 순절·비순절과 같은 행위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나, 완성본은 대표적인 존주인물 11인을 선정한 후 이하로는 최대한 사건 순서대로 기록하여 더 체계적으로 서술하였다. 또한 완성본 「諸臣事實」에 수록될 만한 인물 기준을 더욱 엄정하게 하여 결격사유가 있는 이들을 삭제하였으며, 주관적인 인물평과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서술을 지양하고 객관적인 서술을 추구하였다.
「諸臣事實」의 인물들은 공통적인 성격에 따라 순절인, 척화인, 병의인, 명 유민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았다. 순절인의 경우에는 심하전투,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항복 이후의 순절인이 기록되었다. 심하전투 순절인은 조명 연합군이 후금을 공격한 심하전투에서 순절한 인물이 기록되었다. 정묘호란의 순절인은 정묘호란 당시 지역을 지키다 순절한 장수들을 분류하였다. 병자호란의 순절인은 병자호란기 근왕군과 남한산성 수비군, 강화도 순절인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항복 이후에는 청의 지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명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려다 순절한 이들을 분류하였다. 척화인은 정묘호란 척화인과 병자호란 척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묘호란의 척화인들은 전쟁수행에 대해서 올린 상소가 두드러지며, 병자호란의 척화인들은 청의 칭제에 저항하는 상소가 두드러진다. 특히 병의인은 국왕별로 살펴보았다. 인조, 효종, 현종대 병의인과 국왕으로 구분이 어려운 기타 병의인으로 나누어보았다. 인조대에는 의병과 청에 대한 저항, 은거인이 두드러졌다. 효종대에는 북벌과 관련된 인물들이 기록되었다. 현종대에는 1667년(현종 8) 임인관 압송 사건 관련하여 압송을 반대하거나 울분의 시를 지은 인물들이 기록되었다. 명 유민은 조선으로 온 명 유민들이 기록되었다.
「諸臣事實」의 편찬 의의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諸臣事實」은 인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반청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존주에서 명을 배제하고 대청갈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그 선구적인 국왕을 인조로 설정하고 인조반정의 정통성을 부각시켰다. 둘째로, 「諸臣事實」은 존주 인물을 확장하고 당대 최신의 기록을 종합하여 기록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기존의 다양한 존주 인물 기록을 집대성하고, 새로운 분류의 인물들을 수록하였으며, 또한 다양한 참고 자료를 확인하고 종합하여 신뢰도 높고 분명한 사실을 제공하였다. 셋째로, 「諸臣事實」은 조선의 명 유민 보호를 부각하고자 했다. 명 유민이 조선에서 중화의 문화를 유지하며 잘 정착하는 모습을 통해서 조선이 청의 지배하에 있는 상황에서도 존주의리를 지켜왔음을 강조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本稿は朝鮮後期に編纂された『尊周彙編』の編纂過程を考察し、その中でも尊周の人物列伝である「諸臣事実」を中心に分析し、その意義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 『尊周彙編』は朝...
本稿は朝鮮後期に編纂された『尊周彙編』の編纂過程を考察し、その中でも尊周の人物列伝である「諸臣事実」を中心に分析し、その意義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
『尊周彙編』は朝鮮後期の尊周義理に関する事実を総網羅した著作である。尊周義理とは、周に代表される中華国家及び文明を崇拝し、異民族を排斥することであり、明清交替期の朝鮮においては、明・清の関係の中で崇明反清を中心に展開された。1796年(正祖20年)、正祖は尊周義理が崩れつつあると認識し、これに対処するために尊周の事実を集大成した『尊周彙編』の編纂を命じた。正祖は『尊周彙編』を完成・頒布することで尊周義理を喚起しようとしたが、生前にその完成を見なかった。正祖が亡くなった後、『尊周彙編』の編纂は朝廷ではなく、成大中と成海応、李書九の個人によって続けられ、完成された。1826年(純祖26年)、『尊周彙編』が完成された後、朝廷はこれを刊印することにしたが、正祖の意図とは違って、清との対立を懸念して頒布しなかった。
「諸臣事実」は尊周義理を守った人物たちの列伝である。初稿本では54の人物群に表題人物319人、附記人物440人の計759人が記録されており、完成本では41の人物群に表題人物150人、附記人物665人の計815人が記録されている。初稿本では殉節・非殉節などの行為を中心に叙述されたが、完成本では代表的な尊周人物11人を選定した後、以下はできるだけ事件の順序に従って記録し、より体系的に叙述された。また、完成本「諸臣事実」に収録されるべき人物の基準をさらに厳格にし、欠格事由がある人を削除し、主観的な人物評や政治的事件に関する叙述を避け、客観的な叙述を追求した。
「諸臣事実」の人物は共通的な性格に従って殉節人、斥和人、秉義人、明の遺民に分類して考察した。殉節人の場合、深河戦闘、丁卯胡乱、丙子胡乱と降伏後の殉節人が記録されている。深河戦闘の殉節人は朝明連合軍が後金を攻撃した深河戦闘で殉節した人物が記録されている。丁卯胡乱の殉節人は丁卯胡乱期、地域を守って殉節した将軍たちを分類した。丙子胡乱の殉節人は丙子胡乱期の勤王軍と南漢山城守備軍、江華島の殉節人に分けられる。降伏後には清の支配を認めず、明を直接支援しようとして殉節した者を分類した。斥和人は丁卯胡乱の斥和人と丙子胡乱の斥和人に分けられる。丁卯胡乱の斥和人は戦争遂行に関する上奏が目立ち、丙子胡乱の斥和人は清の称帝に反抗する上奏が目立つ。特に秉義人は国王別に考察した。仁祖、孝宗、顕宗代の秉義人と国王の区別が難しいその他の秉義人に分けた。仁祖代には義兵と清に対する抵抗、隠遁者が目立った。孝宗代には北伐に関連する人物が記録された。顕宗代には1667年(顕宗8年)の林寅観の押送事件に関連し、押送に反対したり、憤慨の詩を作った人物が記録された。明の遺民は朝鮮に来た明の遺民が記録されている。
「諸臣事実」の編纂の意義は三つに整理される。第一に、「諸臣事実」は仁祖の正統性を強調し、反清意識を高めることを目的としていた。尊周で崇明を排除し、対清対立を中心に叙述し、その先駆的な国王を仁祖に設定、仁祖反正の正統性を際立たせた。第二に、「諸臣事実」は尊周人物を拡張し、当代最新の記録を総合して記録の集大成を成した。既存の様々な尊周人物の記録を集大成し、新たな分類の人物を収録し、また様々な参考資料を確認・総合して信頼度の高い明確な事実を提供した。第三に、「諸臣事実」は朝鮮の明の遺民保護を強調しようとした。明の遺民が朝鮮で中華の文化を維持しながら良く定着する姿を通じて、朝鮮が清の支配下にある状況でも尊周義理を守ってきたことを強調した。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