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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7세기 중반 問慰行을 통해 본 대일외교의 내용과 성격 - 1640․1651년 문위행을 중심으로 - = Contents and characters of diplomacy to Japan based on the Munwihaeeng(問慰行) in middle 17th Century-Focused in Munwihaeng in 1640 and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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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unwihaeng was sent to console the return of the Lord of Tsushima and congratulate on birth of a son of the Lord. The party of Tsushima pressed the Munwiyokgwan(問慰譯官) for omission of the statement to congratulate the birth of the son in th...

      The Munwihaeng was sent to console the return of the Lord of Tsushima and congratulate on birth of a son of the Lord. The party of Tsushima pressed the Munwiyokgwan(問慰譯官) for omission of the statement to congratulate the birth of the son in the document(書契) of the Yaejoe(禮曹) but the Munwiyokgwan serenely explained the situation and their appeal was relieved. After diplomatic ceremony, both parties made their requests. The party of Tsushima wanted to purchase drugs that are interested by Dokukawa Bakuhu, requested to restore the suspended voyage of private ships, asked to elevate diplomatic level, and requested to move Waegwan(倭館) to Busancastle. The Munwiyokgwan explained or postponed answers to their requests but wanted Tsushima to mediate purchase of military materials and asked to relive the complaint on congestion of cotton. In the talk between the Lord faced the Munwiyokgwan, the Lord asked about the status of Joseon pressed by Qing Dynasty and, asserting that they might give external support, asked movement of Waegwan again. The Munwiyokgwan tried not to make any diplomatic mistake by vindicating the situation of Joeson reasonably. A Munwiyokgwan was sent in 1651 during a state funeral of Joeson but both parties conflicted in relation to the dresses of the diplomatic mission. The Munwiyokgwan said that they worn white official belts because they were in a state funeral but the party of Tsushima oppose saying that white official belts did not meet congratulatory ceremony. The party of Tsushima intended to clarify that the purpose of such Munwihaeng was the return visit to two times of envoys for the state funeral of King Injo and Inauguration of King Hyojong. The party of Tsushima raised the problem that Joeson merchants had a serious difficulty in payment in silver currency in the market of Waegwan and added the complaint in the quality of cotton. The Munwiyokgwan said that Gyeongsangdo’s cotton in maximum and that, if there was any dissatisfaction concerned, the situation had to be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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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640년 문위행은 쓰시마 번주가 대마도로 돌아온 것을 위로하고 번주의 득남을 축하하려는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쓰시마측은 예조서계에 득남 축하의 구절이 없는지를 다그쳐 물었으나, 문...

      1640년 문위행은 쓰시마 번주가 대마도로 돌아온 것을 위로하고 번주의 득남을 축하하려는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쓰시마측은 예조서계에 득남 축하의 구절이 없는지를 다그쳐 물었으나, 문위역관의 차분한 설명에 무색해지고 말았다. 외교의례 후에 양측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제기하였다. 쓰시마측은 막부의 관심사인 약재 구입을 요청했고, 중단된 사선의 도해권 회복을 부탁했다. 외교 의례의 격을 높여달라고 하였고 부산성으로 왜관 이전을 요구하였다. 문위역관은 해명 또는 유보적인 답변을 하면서도, 쓰시마측에게 군사물자의 구매 중개를 요청하고 목면 적체의 불만을 누그러뜨려 달라고 하였다. 번주와 문위역관이 대면한 자리에서, 번주는 청에 압박된 조선의 처지를 캐물으며 자신들이 외원이 될 수 있음을 내세워 왜관 이전을 재차 요구하였다. 문위역관은 중태에 빠진 본국의 처지를 이치에 맞게 변호하여 외교적 누를 남기지 않으려 하였다. 1651년 문위행은 조선의 국상 중에 파견되어, 양측 간에 사신의 복장을 둘러싸고 해석을 달리하였다. 문위역관은 상중이므로 백색 관대를 착용하였다고 했는데, 쓰시마측은 길례에 백색 관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발하였다. 쓰시마측은 문위행이 인조 국상에 조위하고 효종 즉위에 하례한 2번의 사자에 대한 답방임을 명시하려고 하였다. 쓰시마측은 조선 상인들이 왜관 開市에서 은화를 빚지는 것이 심각하다고 제기했다. 목면의 품질 요구는 강도가 높았다. 문위역관은 교린의 실정론으로 양해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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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長正統, "「肅宗癸亥制札の第二條についての考察" 1970

      2 윤유숙, "조선후기 문위행(問慰行)에 관한 재고(再考) - 1635년 사행 및 막부의 재정원조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50) : 3-34, 2015

      3 홍성덕, "조선후기 對日外交使節 問慰行 연구" 93 : 2000

      4 "조선후기 問慰行에 대한 재고찰-‘문위행’의 명칭과 파견시점을 중심으로-" 2015

      5 "조선왕조실록(광해군~효종)"

      6 장순순, "조선시대 왜관변천사 연구" 전북대학교 2001

      7 田代和生, "왜관" 논형 2005

      8 김동진, "병자호란 전후 우역 발생과 농우 재분배 정책" 호서사학회 (65) : 263-310, 2013

      9 신동규, "근세 동아시아 속의 日․朝․蘭 국제관계사" 경인문화사 2007

      10 "邊例集要"

      1 長正統, "「肅宗癸亥制札の第二條についての考察" 1970

      2 윤유숙, "조선후기 문위행(問慰行)에 관한 재고(再考) - 1635년 사행 및 막부의 재정원조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50) : 3-34, 2015

      3 홍성덕, "조선후기 對日外交使節 問慰行 연구" 93 : 2000

      4 "조선후기 問慰行에 대한 재고찰-‘문위행’의 명칭과 파견시점을 중심으로-" 2015

      5 "조선왕조실록(광해군~효종)"

      6 장순순, "조선시대 왜관변천사 연구" 전북대학교 2001

      7 田代和生, "왜관" 논형 2005

      8 김동진, "병자호란 전후 우역 발생과 농우 재분배 정책" 호서사학회 (65) : 263-310, 2013

      9 신동규, "근세 동아시아 속의 日․朝․蘭 국제관계사" 경인문화사 2007

      10 "邊例集要"

      11 "通文館志"

      12 윤유숙, "近世約條の運用實態について-潜商․闌出事例を中心に-" 164 : 1997

      13 長正統, "路浮稅考―肅宗朝約條一考察―" 朝鮮學會 58 : 1971

      14 "譯官記錄"

      15 "譯官上言謄錄"

      16 윤유숙, "約條にみる近世倭館の統制について" 138 : 1998

      17 "東萊府接倭狀啓謄錄可考事目錄抄冊"

      18 김동철, "東萊史料" 여강출판사 1989

      19 小田省吾, "李氏朝鮮時代倭館變遷-就中絶影島倭館に就て- in 朝鮮支那文化の研究" 京城帝國大學法文學會第二部論纂第一輯 1929

      20 "朝鮮通交大紀"

      21 浦廉一, "明末清初の鮮滿關係上に於ける日本の地位" 京都帝國大學文學部内 史學研究所 19 : 1934

      22 長正統, "日鮮關係における記錄の時代" 50 (50): 1967

      23 箕輪吉次, "延寶九(1681)年正月譯官使" 20 : 2005

      24 국사편찬위원회, "對馬島宗家文書記錄類目錄集"

      25 미노와 요시쯔구, "天和元年(1681)講定譯官使" 비교문화연구소 11 (11): 163-190, 2007

      26 "增正交隣志"

      27 "南坡相國集(沈悅)"

      28 田中健夫, "前近代國際交流と外交文書" 吉川弘文館 1996

      29 "分類紀事大綱(譯官渡海)"

      30 "典客司日記"

      31 "倭人求請謄錄"

      32 김종욱, "以酊庵輪番制(交代)에 대하여(上)" 28 : 1973

      33 이상규, "仁祖代 전반 問慰行 연구" 한일관계사학회 (35) : 123-164, 2010

      34 池內敏, "‘譯官使’考" 2015

      35 이상규, "17세기 초중반 왜학역관 洪喜男의 활동―통신사 파견시 수행역관 활동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26) : 233-272, 2007

      36 허지은, "17세기 조선의 왜관통제책과 조일관계-癸亥約條(1683)의 체결과정을 중심으로-" 15 : 2001

      37 이상규, "17세기 전반의 朝日關係 전개와 倭學譯官 제도의 변화" 조선시대사학회 (62) : 251-296, 2012

      38 이상규, "17세기 전반 왜학역관 康遇聖의 활동" 한일관계사학회 (24) : 101-142, 2006

      39 이상규, "17세기 왜학역관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40 田代和生, "(江戶時代)朝鮮藥材調査の硏究" 慶應義塾大學出版會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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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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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7 0.87 0.9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98 2.253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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