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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考古 · 文獻資料로 본 皇龍寺 畢功의 意味와 創建伽藍의 存在 = Meaning of Completion of Hwangnyongsa and Existence of the First Buddhist Temple from Archeological References and Literature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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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33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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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황룡사는 553년 착공된 후 13년 만인 566년 창건가람이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지조성토와 뻘층에서 검출된 토기의 대부분이 6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되고 있어 창건가람의 실체에 많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즉, 사찰이 축조되기 위해선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황룡사의 경우는 원지반이 뻘층이어서 최소 2.5m 이상을 성토하여야만 하였다. 따라서 토기의 편년과 대지조성, 그리고 당탑 등의 건축물 조영까지를 고려한다면 566년의 창건가람은 다소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발굴조사 결과 창건가람과 관련된 목탑과 금당, 강당 등의 주요 건물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여느 삼국시대 사찰과 비교해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서 과연 황룡사지에 창건가람이 존재하였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하고 있다. 아울러 『삼국유사』에 기록된 구층목탑의 初成은 구층목탑 이전에 별도의 탑이 존재치 않았음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발굴조사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케 한다. 위와 같은 의문점은 결과적으로 566년의 ‘황룡사 필공’이 창건가람 보다는 대지조성의 완공이었음을 판단케 하고 있다. 향후 황룡사의 대지조성과 관련하여 흙이 어디에서 제공되었는지, 그리고 원지반의 개량을 위해 어떠한 토목공법이 사용되었는지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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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는 553년 착공된 후 13년 만인 566년 창건가람이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지조성토와 뻘층에서 검출된 토기의 대부분이 6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되고 있어 창건가람의 실체...

    황룡사는 553년 착공된 후 13년 만인 566년 창건가람이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지조성토와 뻘층에서 검출된 토기의 대부분이 6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되고 있어 창건가람의 실체에 많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즉, 사찰이 축조되기 위해선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황룡사의 경우는 원지반이 뻘층이어서 최소 2.5m 이상을 성토하여야만 하였다. 따라서 토기의 편년과 대지조성, 그리고 당탑 등의 건축물 조영까지를 고려한다면 566년의 창건가람은 다소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발굴조사 결과 창건가람과 관련된 목탑과 금당, 강당 등의 주요 건물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여느 삼국시대 사찰과 비교해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서 과연 황룡사지에 창건가람이 존재하였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케 하고 있다. 아울러 『삼국유사』에 기록된 구층목탑의 初成은 구층목탑 이전에 별도의 탑이 존재치 않았음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발굴조사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케 한다. 위와 같은 의문점은 결과적으로 566년의 ‘황룡사 필공’이 창건가람 보다는 대지조성의 완공이었음을 판단케 하고 있다. 향후 황룡사의 대지조성과 관련하여 흙이 어디에서 제공되었는지, 그리고 원지반의 개량을 위해 어떠한 토목공법이 사용되었는지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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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3 years after its beginning of the construction in the year of 553, it has been said that the first Buddhist temple was completed in 566 at Hwangnyongsa.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earthenware collected from bankink, land, and mud are known to be from late 6thcentury, which casts doubts on the existence of the first Buddhisttemple. In other words, before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land has to be arranged for the construction. For the case of Hwangnyongsa, however, the previous ground was mud, and more than 2.5m was supposed to be banked. Therefore, considering the time of the earthenware manufacturedate, and bankink, and constructions including pagoda, it is considered impossible to have completed the first Buddhist temple in the year of 566. In addition, no sites for those major buildings had been confirmed including wooden stupa, the main Building and hall, which are related to the first Buddhist temple. This is quite exceptional compare to any temples built during the age of the Three States, which leads to a doubt if there was indeed the first Buddhist temple in Hwangnyongsa. The record of Samgukyusa(Overlooked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also explains that there never was any other stupa other than the nine-story wooden stupa, which aligns with the findings from the excavation research. This in the end suggests that the ‘completion of Hwangnyongsa’ in 566 refers to the preparation of the sites rather than the Buddhist temple itself. Future studies would be proposed to study more on where the soil was supplied from and what kind of construction engineering had been utilized in order to improve the existing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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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years after its beginning of the construction in the year of 553, it has been said that the first Buddhist temple was completed in 566 at Hwangnyongsa.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earthenware collected from bankink, land, and mud are ...

    13 years after its beginning of the construction in the year of 553, it has been said that the first Buddhist temple was completed in 566 at Hwangnyongsa.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earthenware collected from bankink, land, and mud are known to be from late 6thcentury, which casts doubts on the existence of the first Buddhisttemple. In other words, before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land has to be arranged for the construction. For the case of Hwangnyongsa, however, the previous ground was mud, and more than 2.5m was supposed to be banked. Therefore, considering the time of the earthenware manufacturedate, and bankink, and constructions including pagoda, it is considered impossible to have completed the first Buddhist temple in the year of 566. In addition, no sites for those major buildings had been confirmed including wooden stupa, the main Building and hall, which are related to the first Buddhist temple. This is quite exceptional compare to any temples built during the age of the Three States, which leads to a doubt if there was indeed the first Buddhist temple in Hwangnyongsa. The record of Samgukyusa(Overlooked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also explains that there never was any other stupa other than the nine-story wooden stupa, which aligns with the findings from the excavation research. This in the end suggests that the ‘completion of Hwangnyongsa’ in 566 refers to the preparation of the sites rather than the Buddhist temple itself. Future studies would be proposed to study more on where the soil was supplied from and what kind of construction engineering had been utilized in order to improve the existing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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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 요약
    • Ⅰ. 머리말
    • Ⅱ. 황룡사의 대지조성과 토목공법
    • Ⅲ. 황룡사 필공의 의미와 창건가람의 존재
    • Ⅳ. 맺음말
    • 국문 요약
    • Ⅰ. 머리말
    • Ⅱ. 황룡사의 대지조성과 토목공법
    • Ⅲ. 황룡사 필공의 의미와 창건가람의 존재
    • Ⅳ. 맺음말
    • 參考文獻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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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國立扶餘博物館, "陵寺" 2000

    2 조원창, "익산지역 백제 건축유적에서 보이는 새로운 토목·건축 기술"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8 : 153-179, 2016

    3 울산박물관, "울산 영축사지 발굴조사보고서 Ⅰ" 2016

    4 강봉원, "신라시대 경주 북천의 수리에 관한 역사 및 고고학적 고찰" 신라문화연구소 (25) : 337-360, 2005

    5 최선자, "신라 황룡사의 창건과 진흥왕의 왕권 강화" 한국고대사학회 (72) : 119-151, 2013

    6 차순철, "신라 왕경과 북천 범람에 따른 상관관계 검토" 신라사학회 (23) : 145-189, 2011

    7 이기봉, "서울대학교국토문제연구소논문집地理學論叢 별호45" 서울대학교국토문제연구소논문집地理學論叢 2002

    8 조원창, "백제시대 부여지역 저습지에 조성된 유적에서 나타나는 연약지반 개량공법 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19 (19): 155-172, 2010

    9 송상우, "경주지역 고분 출토 단각고배에 관한 연구" 경주대학교 대학원 2010

    10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芬皇寺 發掘調査報告書(1) Ⅱ"

    1 國立扶餘博物館, "陵寺" 2000

    2 조원창, "익산지역 백제 건축유적에서 보이는 새로운 토목·건축 기술"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8 : 153-179, 2016

    3 울산박물관, "울산 영축사지 발굴조사보고서 Ⅰ" 2016

    4 강봉원, "신라시대 경주 북천의 수리에 관한 역사 및 고고학적 고찰" 신라문화연구소 (25) : 337-360, 2005

    5 최선자, "신라 황룡사의 창건과 진흥왕의 왕권 강화" 한국고대사학회 (72) : 119-151, 2013

    6 차순철, "신라 왕경과 북천 범람에 따른 상관관계 검토" 신라사학회 (23) : 145-189, 2011

    7 이기봉, "서울대학교국토문제연구소논문집地理學論叢 별호45" 서울대학교국토문제연구소논문집地理學論叢 2002

    8 조원창, "백제시대 부여지역 저습지에 조성된 유적에서 나타나는 연약지반 개량공법 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19 (19): 155-172, 2010

    9 송상우, "경주지역 고분 출토 단각고배에 관한 연구" 경주대학교 대학원 2010

    10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芬皇寺 發掘調査報告書(1) Ⅱ"

    11 서영남, "統一新羅式 伽藍配置의 成立과 靈鷲寺 創建" 한국문화사학회 (48) : 31-69, 2017

    12 文化財管理局 文化財硏究所, "皇龍寺 遺蹟發掘調査報告書Ⅰ" 1984

    13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 木塔址 金堂址 發掘調査 報告書 Ⅲ" 2009

    14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宮里 發掘中間報告" 2012

    15 충남대학교박물관, "扶餘 東南里遺蹟" 2013

    16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扶餘 定林寺址"

    17 金東賢, "慶州 皇龍寺址에 대한 遺構內容과 文獻資料와의 比較檢討" 10 : 1991

    18 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慶州 天官寺址 發掘調査報告書" 2004

    19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彌勒寺址 西塔 周邊發掘調査 報告書" 2001

    20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帝釋寺址 발굴조사보고서 Ⅱ" 2013

    21 崔秉鉉, "尹武炳博士 回甲紀念論叢" 1984

    22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四天王寺 回廊內廓 발굴조사보고서 Ⅱ" 2013

    23 리상호, "北譯 三國遺事" 신서원 1990

    24 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傳仁容寺址 발굴조사 보고서Ⅰ" 2013

    25 "三國遺事"

    26 李丙燾, "三國史記(上)" 乙酉文化社 1993

    27 "三國史記"

    28 朝鮮古蹟硏究會, "「扶餘に於ける百濟寺址の調査(槪報)」 昭和十三年度古蹟調査報告" 朝鮮總督府 1940

    29 홍보식, "6~7세기대 신라고분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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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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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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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 0.6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9 1.7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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