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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秦의 統一과 分立傾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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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기원전 221년 秦의 始皇帝는 六國을 모두 멸망시켜 戰國時代의 분열 상태를 종식시키고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다. 秦의 통일은 단순히 六國에 대한 군사적 승리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戰國時代 동안 형성되었던 통일론을 실현시킨 것이기도 했다. 戰國時代의 각국인들은 분열의 시대동안 거듭되었던 전쟁이 종식되고 항구적 평화가 찾아오기를 고대했다. 또한 각국의 관세 징수, 국가 간 도량형・화폐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불편은 원활한 유통과 교역을 저해했으므로 이것을 해결해야한다는 요구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戰國時代동안 諸夏, 中國, 九州, 天下와 같은 중국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 생성되어 각국인들 사이에는 점차 동류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듯 백성들의 평화에 대한 갈망, 경제적 문제의 해결, 동류의식의 형성은 모두 통일론이 생성되는데 영향을 끼쳤고 통일론은 점차 戰國時代의 시대적 요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성규, 「戰國時代 統一論의 形成과 그 背景」, 『東洋史學會』 Vol 8・9, 1975
      따라서 秦의 통일은 六國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시대적 요구를 실현시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戰國時代 동안 이웃나라와 경쟁하면서 자립을 유지했던 六國人들에게 秦의 통일은 정복에 불과했다. 특히 六國의 지배층들은 秦의 통일이 이루어져 자신들의 정치 체제가 해체된다면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박탈당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지배층뿐만 아니라 六國의 피지배층도 秦의 통일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秦과의 전쟁에서 가장 희생이 컸던 이들은 六國의 피지배층이었다. 秦의 장군 白起가 長平大戰의 승리 직후 조나라의 투항병 40여만을 갱살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史記』, 卷73, 白起王翦列傳, 中華書局, 1959, 2335쪽(이하에서 『史記』를 인용했을 경우 모두 中華書局, 1959, 표점교감본을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括軍敗, 卒四十萬人降武安君. 武安君計曰‘前秦已拔上黨, 上黨民不樂爲秦而歸趙. 趙卒反覆. 盡殺之, 恐爲亂.’ 乃挾詐而盡阬殺之, 遺其小者二百四十人歸趙. 前後斬首虜四十五萬人. 趙人大震.”
      戰國時代의 유세객인 蘇代도 “秦이 죽인 三晋의 백성이 수백만 명에 달하며 지금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秦이 죽인 이들의 고아다.”라고 秦의 잔혹한 전쟁 수행을 지적했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2276쪽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蘇代의 말에는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더라도 상황 그 자체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秦의 공격 아래에 놓인 六國의 피지배층들의 秦에 대한 적개심이 통일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戰國時代 동안 각국은 지리적 환경・정치적 배경・경제적 생활 조건 등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각자 고유의 문화를 발달시켜 나갔다. 李學勤은 春秋戰國時代의 지역 문화를 陝甘 지역의 秦文化, 黃河 중류의 中原文化, 黃河 하류의 齊魯文化, 長江 중류의 楚文化, 長江 하류의 吳越文化, 西南의 巴蜀滇文化, 中原 이북의 北方文化로 나누고 있다. (李學勤, 『東周與秦代文明』, 上海人民出版社, 2007.)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문화의 일원화를 도모하는 세력이 출현한다면 그것을 시도한 세력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통일, 혹은 일원화를 거부하고 그에 저항하여 정치적 자립을 추구했던 경향을 본고에서는 ‘분립 경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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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21년 秦의 始皇帝는 六國을 모두 멸망시켜 戰國時代의 분열 상태를 종식시키고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다. 秦의 통일은 단순히 六國에 대한 군사적 승리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

      기원전 221년 秦의 始皇帝는 六國을 모두 멸망시켜 戰國時代의 분열 상태를 종식시키고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다. 秦의 통일은 단순히 六國에 대한 군사적 승리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戰國時代 동안 형성되었던 통일론을 실현시킨 것이기도 했다. 戰國時代의 각국인들은 분열의 시대동안 거듭되었던 전쟁이 종식되고 항구적 평화가 찾아오기를 고대했다. 또한 각국의 관세 징수, 국가 간 도량형・화폐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불편은 원활한 유통과 교역을 저해했으므로 이것을 해결해야한다는 요구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戰國時代동안 諸夏, 中國, 九州, 天下와 같은 중국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 생성되어 각국인들 사이에는 점차 동류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듯 백성들의 평화에 대한 갈망, 경제적 문제의 해결, 동류의식의 형성은 모두 통일론이 생성되는데 영향을 끼쳤고 통일론은 점차 戰國時代의 시대적 요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성규, 「戰國時代 統一論의 形成과 그 背景」, 『東洋史學會』 Vol 8・9, 1975
      따라서 秦의 통일은 六國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시대적 요구를 실현시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戰國時代 동안 이웃나라와 경쟁하면서 자립을 유지했던 六國人들에게 秦의 통일은 정복에 불과했다. 특히 六國의 지배층들은 秦의 통일이 이루어져 자신들의 정치 체제가 해체된다면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박탈당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지배층뿐만 아니라 六國의 피지배층도 秦의 통일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秦과의 전쟁에서 가장 희생이 컸던 이들은 六國의 피지배층이었다. 秦의 장군 白起가 長平大戰의 승리 직후 조나라의 투항병 40여만을 갱살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史記』, 卷73, 白起王翦列傳, 中華書局, 1959, 2335쪽(이하에서 『史記』를 인용했을 경우 모두 中華書局, 1959, 표점교감본을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括軍敗, 卒四十萬人降武安君. 武安君計曰‘前秦已拔上黨, 上黨民不樂爲秦而歸趙. 趙卒反覆. 盡殺之, 恐爲亂.’ 乃挾詐而盡阬殺之, 遺其小者二百四十人歸趙. 前後斬首虜四十五萬人. 趙人大震.”
      戰國時代의 유세객인 蘇代도 “秦이 죽인 三晋의 백성이 수백만 명에 달하며 지금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秦이 죽인 이들의 고아다.”라고 秦의 잔혹한 전쟁 수행을 지적했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2276쪽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蘇代의 말에는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더라도 상황 그 자체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秦의 공격 아래에 놓인 六國의 피지배층들의 秦에 대한 적개심이 통일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戰國時代 동안 각국은 지리적 환경・정치적 배경・경제적 생활 조건 등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각자 고유의 문화를 발달시켜 나갔다. 李學勤은 春秋戰國時代의 지역 문화를 陝甘 지역의 秦文化, 黃河 중류의 中原文化, 黃河 하류의 齊魯文化, 長江 중류의 楚文化, 長江 하류의 吳越文化, 西南의 巴蜀滇文化, 中原 이북의 北方文化로 나누고 있다. (李學勤, 『東周與秦代文明』, 上海人民出版社, 2007.)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문화의 일원화를 도모하는 세력이 출현한다면 그것을 시도한 세력에 대한 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통일, 혹은 일원화를 거부하고 그에 저항하여 정치적 자립을 추구했던 경향을 본고에서는 ‘분립 경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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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머리말 1
      • 1장. 秦의 統一과 六國人들의 대응 7
      • 1. 통일과 저항 7
      • 2. 문화적 일원화와 대응 15
      • 머리말 1
      • 1장. 秦의 統一과 六國人들의 대응 7
      • 1. 통일과 저항 7
      • 2. 문화적 일원화와 대응 15
      • 3. 선전과 역선전 19
      • 2장. 陳勝의 봉기와 六國의 재분립 24
      • 3장. 六國후예의 왕정 복귀와 項羽의 18왕 분봉 37
      • 맺음말 53
      • 참고문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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