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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險瀆과 고조선의 관계 = Relationship between Heomdok and Old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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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70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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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위만조선의 도읍과 관련이 있는 險瀆에 대해 살펴보았다. 應劭는 험독에 대해 “朝鮮王滿都” 또는 “朝鮮王舊都”라는 주를 남겼는데, “朝鮮王”은 위만조선의 왕을 지칭하며, “滿都”와 “舊都”는 모두 위만조선의 도읍을 지칭한다. 응소는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서도 고조선과 관련된 주를 남겼는데, 이것은 위만조선 이전의 原고조선 세력과 관련된 것이며, 응소는 어디까지나 험독을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보았다. 험독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昌黎에 험독이 있었다는 서광의 주가 주목되었으나 서광이 언급한 험독은 요하 서쪽에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누선장군의 왕검성 공격 기사로 볼 때 왕검성은 패수(혼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수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태자하를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요양 본계 일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검성이 포함하고 있었던 험독은 이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하겠다. 험독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위만조선 또는 그 이전부터 토착 세력이 사용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험독의 어원에 대해 크게 한자어의 뜻을 염두에 두고 물의 험함에 의거하였다는 입장과 신(통치자)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토착 세력이 사용하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험독의 瀆은 ‘개울(물), 신성함, 동굴(구멍)’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글자로, 險瀆은 여기에 ‘험함’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단군 신화 상의 웅녀 이야기에서도 ‘동굴, 신성함, 물(水神)’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태자하 유역도 동굴 무덤 유적이 많이 조사되었고 물이 흘러나오는 동굴이 있다는 점에서 ‘개울(물), 신령함, 동굴(구멍)’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瀆이라는 글자와 통하는 면이 있다. 험독의 瀆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 이야기뿐만 아니라 태자하 일대의 자연 환경 등과도 어울리는 글자인 것이다. 이 지역은 고조선의 고고학적 실체로 이야기되고 있는 십이대영자 문화와 그 지류인 정가와자 유형의 유입으로 기원전 1000년기 후반에 상보 유형의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환웅으로 표현되는 이주 세력과 웅녀로 표현되는 토착 세력과의 결합을 연상케 한다. 험독이라는 이름은 물길이 험하다는 지리적 상황뿐만 아니라 태자하 일대 고조선 토착 사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나타난 이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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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위만조선의 도읍과 관련이 있는 險瀆에 대해 살펴보았다. 應劭는 험독에 대해 “朝鮮王滿都” 또는 “朝鮮王舊都”라는 주를 남겼는데, “朝鮮王”은 위만조선의 왕을 지칭하며, ...

      이 글은 위만조선의 도읍과 관련이 있는 險瀆에 대해 살펴보았다. 應劭는 험독에 대해 “朝鮮王滿都” 또는 “朝鮮王舊都”라는 주를 남겼는데, “朝鮮王”은 위만조선의 왕을 지칭하며, “滿都”와 “舊都”는 모두 위만조선의 도읍을 지칭한다. 응소는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서도 고조선과 관련된 주를 남겼는데, 이것은 위만조선 이전의 原고조선 세력과 관련된 것이며, 응소는 어디까지나 험독을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보았다. 험독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昌黎에 험독이 있었다는 서광의 주가 주목되었으나 서광이 언급한 험독은 요하 서쪽에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누선장군의 왕검성 공격 기사로 볼 때 왕검성은 패수(혼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수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태자하를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요양 본계 일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검성이 포함하고 있었던 험독은 이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하겠다. 험독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위만조선 또는 그 이전부터 토착 세력이 사용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험독의 어원에 대해 크게 한자어의 뜻을 염두에 두고 물의 험함에 의거하였다는 입장과 신(통치자)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토착 세력이 사용하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험독의 瀆은 ‘개울(물), 신성함, 동굴(구멍)’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글자로, 險瀆은 여기에 ‘험함’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단군 신화 상의 웅녀 이야기에서도 ‘동굴, 신성함, 물(水神)’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태자하 유역도 동굴 무덤 유적이 많이 조사되었고 물이 흘러나오는 동굴이 있다는 점에서 ‘개울(물), 신령함, 동굴(구멍)’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瀆이라는 글자와 통하는 면이 있다. 험독의 瀆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 이야기뿐만 아니라 태자하 일대의 자연 환경 등과도 어울리는 글자인 것이다. 이 지역은 고조선의 고고학적 실체로 이야기되고 있는 십이대영자 문화와 그 지류인 정가와자 유형의 유입으로 기원전 1000년기 후반에 상보 유형의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환웅으로 표현되는 이주 세력과 웅녀로 표현되는 토착 세력과의 결합을 연상케 한다. 험독이라는 이름은 물길이 험하다는 지리적 상황뿐만 아니라 태자하 일대 고조선 토착 사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나타난 이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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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exaimes Heomdok(險瀆) which is associated with the capital of Wiman Joseon. In Eung-so(應昭)"s comment about Heomdok, “The king of Joseon” is identical to the king of Wiman Joseon, both “Man Capital(滿都)” and “Old Capital(舊都)” refer to the capital of Wiman Joseon. The Eung-so"s comment abut Nakrang Gun (樂浪郡) Joseon Hyeon(朝鮮縣) is associated with Proto Old Joseon force, Eung-so thought that the capital of Wiman Joseon was located in Heomdok.
      Seog-gwang(徐廣) annotated that Heomdok was located in Changyeo(昌黎), but it is problematic in the sense that Changyeo was in the east of the Liao He(遼河). When looking at the document recording the event The Han(漢) admiral Nu-seon(樓船) attacked Wanggeom Castle, Wanggeom Castle was located not far from Pae river(Hun He) and where the vessel was able to access. In this respect, it can be seen Wanggeom Castle was located in Liaoyang(遼陽) Bunxi(本溪) region where Taizi He(太子河) is flowing.
      Dok(瀆) letter of the Heomdok has the image of ‘brook(water), divineness, cave(hole)’, in addition to those images, Heomdok has more image of ‘rugged terrain’. By the way, such images appear at Bear female(熊女) story in Dan-gun Mythology. Furthermore, in the Taizi He basin it was discovered lots of cave tomb sites, among the caves are also water flowing. In this regard, Taizi He basin is consistent with the letter of Dok. Through such reviews, it can be seen that Heomdok is a name that reflects not only a geographical situation but the several situation of Old Joseon society in Taizi He ba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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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imes Heomdok(險瀆) which is associated with the capital of Wiman Joseon. In Eung-so(應昭)"s comment about Heomdok, “The king of Joseon” is identical to the king of Wiman Joseon, both “Man Capital(滿都)” and “Old Capital(...

      This paper exaimes Heomdok(險瀆) which is associated with the capital of Wiman Joseon. In Eung-so(應昭)"s comment about Heomdok, “The king of Joseon” is identical to the king of Wiman Joseon, both “Man Capital(滿都)” and “Old Capital(舊都)” refer to the capital of Wiman Joseon. The Eung-so"s comment abut Nakrang Gun (樂浪郡) Joseon Hyeon(朝鮮縣) is associated with Proto Old Joseon force, Eung-so thought that the capital of Wiman Joseon was located in Heomdok.
      Seog-gwang(徐廣) annotated that Heomdok was located in Changyeo(昌黎), but it is problematic in the sense that Changyeo was in the east of the Liao He(遼河). When looking at the document recording the event The Han(漢) admiral Nu-seon(樓船) attacked Wanggeom Castle, Wanggeom Castle was located not far from Pae river(Hun He) and where the vessel was able to access. In this respect, it can be seen Wanggeom Castle was located in Liaoyang(遼陽) Bunxi(本溪) region where Taizi He(太子河) is flowing.
      Dok(瀆) letter of the Heomdok has the image of ‘brook(water), divineness, cave(hole)’, in addition to those images, Heomdok has more image of ‘rugged terrain’. By the way, such images appear at Bear female(熊女) story in Dan-gun Mythology. Furthermore, in the Taizi He basin it was discovered lots of cave tomb sites, among the caves are also water flowing. In this regard, Taizi He basin is consistent with the letter of Dok. Through such reviews, it can be seen that Heomdok is a name that reflects not only a geographical situation but the several situation of Old Joseon society in Taizi He ba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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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險瀆과 왕검성의 관계
      • 3. 險瀆의 초기 위치
      • 4. 險瀆의 語源과 단군 신화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險瀆과 왕검성의 관계
      • 3. 險瀆의 초기 위치
      • 4. 險瀆의 語源과 단군 신화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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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徐秉琨, "遼寧發現戰國陶銘四種考略" 1992 (1992): 1992

      2 李恭篤, "遼寧東部地區靑銅文化初探" 1985 (1985): 1985

      3 梁志龍, "遼寧本溪劉家哨發現靑銅短劍墓" 1992 (1992): 1992

      4 遼寧省博物館本溪市博物館本溪縣文化館, "遼寧本溪縣廟后山洞穴墓地發掘簡報" 1985 (1985): 1985

      5 魏海波梁志龍, "遼寧本溪縣上堡靑銅短劍墓" 1998 (1998): 1998

      6 梁志龍, "遼寧本溪多年發現的石棺墓及其遺物" 2003 (2003): 2003

      7 撫順市博物館新濱滿族自治縣文物管理所, "遼寧新濱滿族自治縣東升洞穴古文化遺存發掘整理報告" 2002 (2002): 2002

      8 오강원,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고조선" 동양학연구원 (53) : 173-222, 2013

      9 金南中, "위만조선의 성립과 발전 과정 연구" 서강대학교 2014

      10 조진선, "요하문명의 확산과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10

      1 徐秉琨, "遼寧發現戰國陶銘四種考略" 1992 (1992): 1992

      2 李恭篤, "遼寧東部地區靑銅文化初探" 1985 (1985): 1985

      3 梁志龍, "遼寧本溪劉家哨發現靑銅短劍墓" 1992 (1992): 1992

      4 遼寧省博物館本溪市博物館本溪縣文化館, "遼寧本溪縣廟后山洞穴墓地發掘簡報" 1985 (1985): 1985

      5 魏海波梁志龍, "遼寧本溪縣上堡靑銅短劍墓" 1998 (1998): 1998

      6 梁志龍, "遼寧本溪多年發現的石棺墓及其遺物" 2003 (2003): 2003

      7 撫順市博物館新濱滿族自治縣文物管理所, "遼寧新濱滿族自治縣東升洞穴古文化遺存發掘整理報告" 2002 (2002): 2002

      8 오강원,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고조선" 동양학연구원 (53) : 173-2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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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조진선, "요하문명의 확산과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10

      11 정인보, "오천년간 조선의 얼, 조선사연구 上"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

      12 채미하, "신라의 사해와 사독" 한국역사민속학회 (26) : 7-40, 2008

      13 김성환, "단군신화의 기원과 고구려의 전승" 3 : 2000

      14 강영경, "단군신화에 나타난 웅녀의 역할" 한국여성사학회 (16) : 37-68, 2012

      15 박준형,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16 림건상, "고조선에 관한 토론 논문집" 과학원출판사 1963

      17 리지린, "고조선 연구" 과학원출판사 1963

      18 尹乃鉉, "고조선 연구" 一志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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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김기흥, "고구려 건국신화의 검토" 113 : 2001

      22 채미하, "高句麗의 國母信仰" 12 : 2006

      23 徐永大, "高句麗의 國家祭祀―東盟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20) : 1-32, 2003

      24 遼寧省文物硏究所本溪市博物館, "馬城子" 文物出版社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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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鄭在書, "神仙說話硏究" 서울大學校 大學院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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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신채호, "朝鮮史硏究草(단재 신채호 전집 제2권 역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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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徐榮洙, "古朝鮮의 對外關係와 疆域의 變動" 29 : 1999

      52 李鍾旭, "古朝鮮史硏究" 一潮閣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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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박경철, "古朝鮮 對外關係 進展과 衛滿朝鮮" 동북아역사재단 (44) : 13-63, 2014

      55 邵國田, "內蒙古敖漢旗四道灣子燕國“狗澤都”遺址調査" 1989 (1989): 1989

      56 武家昌蕭景全, "中國考古學年鑑2002" 文物出版社 2003

      57 조진선, "中國 東北地域의 靑銅器文化와 古朝鮮의 位置 變動" 동양학연구원 (56) : 103-131, 2014

      58 김남중, "『삼국사기』에 나타난 신라의 낙랑 인식과 신라 건국 세력의 성격 - 신라와 고조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인문학연구원 (28) : 131-17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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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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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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