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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배우 김소영론 -: 스캔들 메이커, ‘인민’과 ‘국민’ 사이의 여배우 = A Study on Actress Kim Soyoung : a scandal maker and actress between ‘Nation’ and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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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500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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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thesis aims to examine actress Kim So-young's movies and political behavior, who was the star after the introduction of talkie. Actually, she was never a wise mother and good wife both in her movies and real life, and she was between ‘Nation' and 'People' after national liberation. She was unseated from propaganda film because of her scandal and her career as an actress came to an end by finally choosing a third country instead of the South or the North.
    Kim So-young jumped to stardom by showing the beauty of a woman of the Joseon Dynasty, and she gained public favor when she performed the role of a fallen woman in <Kukkyung(國境)>(1938). But her image was damaged due to her triangular scandal with Choi In-gyu and Jo Taek-won. She wanted to play the part of a mother rather than a student girl or a young lady, but she wasn't able to perform the part of a wise mother and good wife since she was just viewed as a fallen woman during the war regime. After national liberation, she supported left wing's ideology, but she showed she was in favor of the right wing by appearing in promotional films of the South Korean military and police when the left lost its influence. Afterwards, she went to the United States with the help of the American military administration, and she tried to become an actress there, but just lived an ordinary life as one of American citizens because that's not possible to do.
    In a word, Kim So-young's identity before and after national liberation couldn't be checked completely, and her career as an actress remained incomplete forever. It could be inferred from her incomplete career that what an actress who failed to show the image of a wise mother and good wife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nation and even took an unclear ideological attitude finally bec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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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aims to examine actress Kim So-young's movies and political behavior, who was the star after the introduction of talkie. Actually, she was never a wise mother and good wife both in her movies and real life, and she was between ‘Nation' a...

    This thesis aims to examine actress Kim So-young's movies and political behavior, who was the star after the introduction of talkie. Actually, she was never a wise mother and good wife both in her movies and real life, and she was between ‘Nation' and 'People' after national liberation. She was unseated from propaganda film because of her scandal and her career as an actress came to an end by finally choosing a third country instead of the South or the North.
    Kim So-young jumped to stardom by showing the beauty of a woman of the Joseon Dynasty, and she gained public favor when she performed the role of a fallen woman in <Kukkyung(國境)>(1938). But her image was damaged due to her triangular scandal with Choi In-gyu and Jo Taek-won. She wanted to play the part of a mother rather than a student girl or a young lady, but she wasn't able to perform the part of a wise mother and good wife since she was just viewed as a fallen woman during the war regime. After national liberation, she supported left wing's ideology, but she showed she was in favor of the right wing by appearing in promotional films of the South Korean military and police when the left lost its influence. Afterwards, she went to the United States with the help of the American military administration, and she tried to become an actress there, but just lived an ordinary life as one of American citizens because that's not possible to do.
    In a word, Kim So-young's identity before and after national liberation couldn't be checked completely, and her career as an actress remained incomplete forever. It could be inferred from her incomplete career that what an actress who failed to show the image of a wise mother and good wife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of the nation and even took an unclear ideological attitude finally bec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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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토키 도입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스타였지만 영화와 실생활을 막론하고 ‘현모양처’상과 거리를 두었던, 또한 해방 이후에는 인민과 국민의 경계에 있었던 여배우 김소영의 영화와 삶을 짚어 보려 한다. 사생활이 반듯하지 못해 프로파간다의 주변으로 밀려났으며, 종국에는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택하면서 중단된 김소영의 필모그래피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해방 전후 여배우들이 수행해야 했던 공적 역할을 살펴 볼 것이다.
    김소영은 <심청>(1937)에서 조선적인 미를 구현해 스타덤에 올랐고, 타락한 여자를 연기한 <국경>(1939)을 통해 호평 받지만, 최인규, 조택원과의 삼각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 실추를 경함한다. 김소영은 여학생이나 처녀보다는 어머니 역을 원했지만,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타락한 이미지로 고착되면서 선전영화의 총후여성을 연기하기가 수월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프로파간다의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해방 후 김소영은 조선영화동맹과 조선영화협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인민임을 증명하지만, 좌익 세력이 위축되자 군정경찰 홍보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국민임을 과시한다. 이후 미군정의 도움으로 도미(渡美)한 후 그곳에서 영화 활동을 모색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자 미국 시민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결국 해방 전후를 불문하고 김소영의 신원 증명은 불완전하게 끝나버렸고, 여배우로서의 커리어도 미완으로 남게 됐다. 일제 말 선전영화의 꽃이었고 해방 후 남과 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2세대 여배우들과 달리, 김소영이 멈춰버린 어정쩡한 상태는 국가 전환기에 현모양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으며 이념 성향까지 불분명한 배우가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종착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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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토키 도입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스타였지만 영화와 실생활을 막론하고 ‘현모양처’상과 거리를 두었던, 또한 해방 이후에는 인민과 국민의 경계에 있었던 여배우 김소영의 영화와...

    본고는 토키 도입 이후 가장 주목받았던 스타였지만 영화와 실생활을 막론하고 ‘현모양처’상과 거리를 두었던, 또한 해방 이후에는 인민과 국민의 경계에 있었던 여배우 김소영의 영화와 삶을 짚어 보려 한다. 사생활이 반듯하지 못해 프로파간다의 주변으로 밀려났으며, 종국에는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택하면서 중단된 김소영의 필모그래피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해방 전후 여배우들이 수행해야 했던 공적 역할을 살펴 볼 것이다.
    김소영은 <심청>(1937)에서 조선적인 미를 구현해 스타덤에 올랐고, 타락한 여자를 연기한 <국경>(1939)을 통해 호평 받지만, 최인규, 조택원과의 삼각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 실추를 경함한다. 김소영은 여학생이나 처녀보다는 어머니 역을 원했지만,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타락한 이미지로 고착되면서 선전영화의 총후여성을 연기하기가 수월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프로파간다의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다. 해방 후 김소영은 조선영화동맹과 조선영화협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인민임을 증명하지만, 좌익 세력이 위축되자 군정경찰 홍보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국민임을 과시한다. 이후 미군정의 도움으로 도미(渡美)한 후 그곳에서 영화 활동을 모색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자 미국 시민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결국 해방 전후를 불문하고 김소영의 신원 증명은 불완전하게 끝나버렸고, 여배우로서의 커리어도 미완으로 남게 됐다. 일제 말 선전영화의 꽃이었고 해방 후 남과 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2세대 여배우들과 달리, 김소영이 멈춰버린 어정쩡한 상태는 국가 전환기에 현모양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으며 이념 성향까지 불분명한 배우가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종착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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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상언, "해방기 영화인 조직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7

    2 한상언, "해방기 영화운동과 조선영화협단" 한국영화학회 (43) : 405-428, 2010

    3 이재명, "해방기 상영 시나리오집" 평민사 2004

    4 이화진, "한국영화인물론-김소영"

    5 박희성, "한국영화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6 "한국영상자료원 VOD 서비스"

    7 양승국, "한국근대연극영화비평자료집 19권" 연극과 인간 2006

    8 영화진흥공사, "한국 시나리오 선집 1권 : 초창기~1955" 집문당 1996

    9 "춘추"

    10 "조선일보"

    1 한상언, "해방기 영화인 조직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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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재명, "해방기 상영 시나리오집" 평민사 2004

    4 이화진, "한국영화인물론-김소영"

    5 박희성, "한국영화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6 "한국영상자료원 VOD 서비스"

    7 양승국, "한국근대연극영화비평자료집 19권" 연극과 인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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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조광"

    12 이영재, "제국 일본의 조선 영화" 현실문화연구 2008

    13 손이레, "재생, 일시정지" 대중서사학회 (18) : 289-323, 2007

    14 "자유신문"

    15 이덕기, "일제하 전시체제기(1938~1945) 조선영화 제작목록의 재구" 한국극예술학회 (28) : 147-172, 2008

    16 윤소영,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 어문학사 2009

    17 홍선영,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어문학사 2007

    18 "일간예술통신"

    19 강성률, "윤봉춘과 문예봉"이데올로기의 주도자, 또는 영화판의 개척자, In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역사비평사 2008

    20 "영화시대"

    21 강옥희,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22 최소원, "식민지 시기 발성영화스타 김소영" 4 : 2008

    23 안철영, "성림기행" 수도문화사 1949

    24 "서울신문"

    25 "새한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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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삼천리"

    28 전영선,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역락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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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유현주, "미디어 『삼천리』와 여배우 ‘문예봉’ -1930년대 『삼천리』에 수록된 좌담회․대담․설문 등을 중심으로-" 한국극예술학회 (33) : 51-83, 2011

    31 "문장"

    32 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선인 2008

    33 주창규, "문예봉, 발명된 ‘국민 여배우’의 계보학 -‘은막의 여배우’의 훈육과 ‘침묵의 쿨레쇼프 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영화학회 (46) : 157-211, 2010

    34 "동아일보"

    35 "경향신문"

    36 조택원, "袈娑胡蝶" 서문당 1973

    37 이화진, "‘국민’처럼 연기하기 : 프로파간다의 여배우들" 한국여성문학학회 (17) : 387-422, 2007

    38 전지니, "1940년대 희곡 연구 : 역사·지정학·청년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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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2-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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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8 0.68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61 1.138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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