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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서지역으로 옮겨간 낙랑군의 추이 = Developments of Relocated Lolang Command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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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평양지역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퇴출된 이후의 상황을 추적하였다. 낙랑군은 대릉하 하류인 랴오닝성 금주시 지역으로 옮겨가 설치되었다. 낙랑군은 전연, 후연시기 이 지역에 존재하다가 북연시기에 이르러 랴오닝성 조양시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연ㆍ후연ㆍ북연시기 행정군으로 존재한 낙랑군의 실체를 낙랑태수, 조선현령 등의 관직명을 통해 확인하였다. 북위시기인 462년경에 樂浪郡은 樂良郡으로 개명되었다. 낙랑군은 444년에 설치되었다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폐치되었고 이후 정광(520~525년)에 복치되었다. 낙랑군은 537년에 다시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허베이성 보정시 지역으로 옮겨져 설치되었다. 한편 낙랑군은 허베이성 천진시 지역에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북위시기 행정군으로 존재한 낙랑군의 실체를 낙랑태수, 낙랑중정 등의 관직을 통해 확인하였다. 낙랑주민은 북연의 멸망직전에 대거 북위 영역으로 옮겨졌다. 대표적인 것이 허베이성 진황도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이주해 온 낙랑주민 등을 중심으로 하여 낙랑군 속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낙랑군소속이 아니라 다른 행정구역에 소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예로서, 북평군 조선현, 요서군 함자현, 낙랑수성이 있다. 그리고 천진시 지역에 연국낙랑 낙도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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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지역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퇴출된 이후의 상황을 추적하였다. 낙랑군은 대릉하 하류인 랴오닝성 금주시 지역으로 옮겨가 설치되었다. 낙랑군은 전연, 후연시기 이 지역에 존...

    평양지역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퇴출된 이후의 상황을 추적하였다. 낙랑군은 대릉하 하류인 랴오닝성 금주시 지역으로 옮겨가 설치되었다. 낙랑군은 전연, 후연시기 이 지역에 존재하다가 북연시기에 이르러 랴오닝성 조양시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연ㆍ후연ㆍ북연시기 행정군으로 존재한 낙랑군의 실체를 낙랑태수, 조선현령 등의 관직명을 통해 확인하였다. 북위시기인 462년경에 樂浪郡은 樂良郡으로 개명되었다. 낙랑군은 444년에 설치되었다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폐치되었고 이후 정광(520~525년)에 복치되었다. 낙랑군은 537년에 다시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허베이성 보정시 지역으로 옮겨져 설치되었다. 한편 낙랑군은 허베이성 천진시 지역에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북위시기 행정군으로 존재한 낙랑군의 실체를 낙랑태수, 낙랑중정 등의 관직을 통해 확인하였다. 낙랑주민은 북연의 멸망직전에 대거 북위 영역으로 옮겨졌다. 대표적인 것이 허베이성 진황도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이주해 온 낙랑주민 등을 중심으로 하여 낙랑군 속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낙랑군소속이 아니라 다른 행정구역에 소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예로서, 북평군 조선현, 요서군 함자현, 낙랑수성이 있다. 그리고 천진시 지역에 연국낙랑 낙도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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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has attempted to trace the situations of Pyeongyang-based Lolang commandery after it was ousted by Koguryo from the Korean peninsula. The commandery eventually was relocated at what is now lower regions of Dalonghe in Jinzhou city of Liaoning province. Lolang commandery survived through the dynasties of former and later Yen, but believed to have moved again to Chaoyang city area in Liaoning province during Northern Yen era. The administrative details of the commandery throughout the three Yen dynasties were ascertained in this paper by investigating its government posts and aristocratic titles. During Northern Wei times, the commandery changed its name from Lolang to Loliang. Loliang commandery was established in 444, but discontinued due to political environments, and then reappeared circa-525, which by this period populated merely 1008 inhabitants. The name Lolang was reused in 537, and moved again to present-day Baoding city zone in Hebei province, shrinking to a village-sized population of 203. Meanwhile, Lolang commandery also appears to have existed in Beijing district as well. The Lolang locals seemed to have been largely taken from northern Yen to northern Wei just before the former’s downfall. The traces of these people could be found all over the Wei territory, namely in the area of Laorong prefecture in Liaoning province. In these regions, new prefectures belonging to Lolang commandery were made based on the relocated people. Prefectures of Joseon, Hamja, Soosung, and Nakdo were identified accordingly from th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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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has attempted to trace the situations of Pyeongyang-based Lolang commandery after it was ousted by Koguryo from the Korean peninsula. The commandery eventually was relocated at what is now lower regions of Dalonghe in Jinzhou city of Liao...

    This article has attempted to trace the situations of Pyeongyang-based Lolang commandery after it was ousted by Koguryo from the Korean peninsula. The commandery eventually was relocated at what is now lower regions of Dalonghe in Jinzhou city of Liaoning province. Lolang commandery survived through the dynasties of former and later Yen, but believed to have moved again to Chaoyang city area in Liaoning province during Northern Yen era. The administrative details of the commandery throughout the three Yen dynasties were ascertained in this paper by investigating its government posts and aristocratic titles. During Northern Wei times, the commandery changed its name from Lolang to Loliang. Loliang commandery was established in 444, but discontinued due to political environments, and then reappeared circa-525, which by this period populated merely 1008 inhabitants. The name Lolang was reused in 537, and moved again to present-day Baoding city zone in Hebei province, shrinking to a village-sized population of 203. Meanwhile, Lolang commandery also appears to have existed in Beijing district as well. The Lolang locals seemed to have been largely taken from northern Yen to northern Wei just before the former’s downfall. The traces of these people could be found all over the Wei territory, namely in the area of Laorong prefecture in Liaoning province. In these regions, new prefectures belonging to Lolang commandery were made based on the relocated people. Prefectures of Joseon, Hamja, Soosung, and Nakdo were identified accordingly from th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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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언 Ⅱ. 낙랑군의 위치와 요서지역 이주에 대한 해석 Ⅲ. 요서지역으로 이주해 간 낙랑군의 추이 Ⅳ. 맺음말
    • Ⅰ. 서언 Ⅱ. 낙랑군의 위치와 요서지역 이주에 대한 해석 Ⅲ. 요서지역으로 이주해 간 낙랑군의 추이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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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진열, "兩漢魏晉時代 本籍地 封爵과 그 의미 ― 본적지 회피 관행의 변화양상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회 (101) : 1-89, 2007

    2 정운용, "樂浪郡 滅亡 以後 遺民의 向方" 고려사학회 (70) : 107-134, 2018

    3 한진서, "해동역사"

    4 복기대, "한사군의 인식에 관한 연구1 - 설치와 교치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몽골학회 (49) : 49-94, 2017

    5 심백강, "한사군의 낙랑" 바른역사 2014

    6 문성재,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우리역사연구재단 2016

    7 임기환,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나? 그리고 어떤 역사인가?" 60 : 2015

    8 이정빈,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 역사문제연구소 (115) : 252-274, 2016

    9 이윤갑, "한국역사학의 새로운 길 찾기-민족주의 역사학의 전망-" 한국학연구원 (35) : 27-72, 2007

    10 송호정,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100) : 17-55, 2016

    1 최진열, "兩漢魏晉時代 本籍地 封爵과 그 의미 ― 본적지 회피 관행의 변화양상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회 (101) : 1-89, 2007

    2 정운용, "樂浪郡 滅亡 以後 遺民의 向方" 고려사학회 (70) : 107-134, 2018

    3 한진서, "해동역사"

    4 복기대, "한사군의 인식에 관한 연구1 - 설치와 교치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몽골학회 (49) : 49-94, 2017

    5 심백강, "한사군의 낙랑" 바른역사 2014

    6 문성재,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우리역사연구재단 2016

    7 임기환,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나? 그리고 어떤 역사인가?" 60 : 2015

    8 이정빈,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 역사문제연구소 (115) : 252-274, 2016

    9 이윤갑, "한국역사학의 새로운 길 찾기-민족주의 역사학의 전망-" 한국학연구원 (35) : 27-72, 2007

    10 송호정,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100) : 17-55, 2016

    11 정영훈, "최근 상고사인식 혼란실태와 그 수습방안" 5 : 2001

    12 복기대, "전한(前漢)의 동역(東域) 4군 설치 배경과 그 위치에 관하여" 인문과학연구소 (52) : 439-482, 2017

    13 복기대, "임둔태수 봉니를 통해본 한사군의 위치" 61 : 2001

    14 안정준, "오늘날의 낙랑군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114) : 262-284, 2016

    15 이성규, "동아시아 역사 속의 중국과 한국" 서해문집 2005

    16 이덕일, "동아시아 고대사의 쟁점" 만권당 2019

    17 안정복, "동사강목"

    18 기경량,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욕망너머의 한국고대사" 서해문집 2018

    19 김용만, "광개토왕의 위대한 길" 역사의 아침 2011

    20 윤내현, "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6

    21 이덕일,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역사의 아침 2006

    22 김상태, "고조선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글로벌콘텐츠 2017

    23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06

    24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실제 위치를 찾아서" 한국학연구원 2016

    25 송호정,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 문제에 대한 쟁점과 과제" 한국역사연구회 (98) : 199-232, 2015

    26 윤용구, "고대동아시아석각연구의 새로운 방향" 동북아역사재단 2016

    27 "魏書"

    28 "資治通鑑"

    29 "讀史方輿紀要"

    30 공석구, "秦 長城 東端인 樂浪郡 遂城縣의 위치문제" 한국고대사학회 (81) : 221-262, 2016

    31 羅新 叶炜, "王溫墓志 新出魏晉南北朝墓志疏證" 中華書局 2005

    32 "漢書"

    33 南滿洲鐵道株式會社, "滿洲歷史地理" 丸善株式會社 1914

    34 洛陽市文物工作隊, "洛阳孟津北陈村北魏壁画墓" 8 : 1995

    35 田立坤, "棘城新考" 2 : 1996

    36 孫進己, "東北歷史地理 권2"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37 "晉書"

    38 "後漢書"

    39 공석구, "廣開土王의 遼西地方 進出에 대한 고찰" 한국고대사학회 (67) : 125-158, 2012

    40 千寬宇, "廣開土王의 征服活動" 일조각 3 : 1988

    41 천관우, "古朝鮮史 三韓史硏究" 일조각 1989

    42 윤내현, "古朝鮮 硏究" 一志社 1994

    43 "南齊書"

    44 최진열, "南北朝時代 본적지 봉작과 그 성격 ― 통계적 분석과 정치적 기능을 중심으로 ―" 중국고중세사학회 (19) : 211-255, 2008

    45 "十六國春秋輯補"

    46 沈刚, "北魏镇将问题探讨 1-6世纪中国北方边疆民族社会国际学术研讨会"

    47 張乃翥, "北魏王温墓志纪史句沈" 4 : 1994

    48 姚薇元, "北朝胡姓考 外篇第二 東夷諸姓 王氏" 中華書局 1962

    49 "北史"

    50 仇鹿鸣, "侨郡改置与前燕政权中的胡汉关系" 22 (22): 2007

    51 譚其驤, "中國歷史地圖集釋文滙編, 東北卷" 中央民族學院出版社 1988

    52 "中國歷史地名大辭典" 上海辭書出版社 1996

    53 "三國志"

    54 "三國史記"

    55 위가야,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역사문제연구소 (114) : 238-261, 2016

    56 조인성, "‘고대사 파동’과 고조선 역사지도" 한국사연구회 (172) : 1-3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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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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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 0.6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9 1.7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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