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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朝鮮과 漢四郡의 位置 比定 硏究 = (A)study(硏究) on location search(位置 比定) of Gojoseon(古朝鮮) and Hansagun(漢四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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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357946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中央大學校, 200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中央大學校 大學院 , 史學科 韓國史專攻 , 2006

    • 발행연도

      2006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911.021 판사항(4)

    • DDC

      951.901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284 p.: 삽화; 26 cm

    • 일반주기명

      권말부록 수록
      참고문헌: p. 261-266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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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準王의 朝鮮과 衛滿朝鮮 및 玄菟郡, 樂浪郡, 臨屯郡, 眞番郡 등의 漢四郡 영역을 청천강(혹은 압록강) 이남에 있었던 것으로 본 것이 고려ㆍ근세조선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전통적인 통설이었다.
    그 이유는 요하 서부지역을 山戎ㆍ東胡의 영역으로 봄으로써 한국 고대사 영역은 遼河 동부지역과 韓半島로 限定하여 보았고, 전국시대 燕나라 秦開의 침략에 의하여 遼河 동부지역과 청천강(혹은 압록강) 이북 땅을 잃고 平壤ㆍ平安道 지역으로 물러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大同江유역에서 발굴되는 漢ㆍ新나라 때의 유물 유적들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음을 실증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의 통설논자들은 壇君王儉이 건국한 古朝鮮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한다. 요하 동부지역과 한반도에서는 王儉이 건국한 고조선의 역사적 실존을 입증할 서기전 2,000년 전후의 청동기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壇君王儉이 건국한 古朝鮮 영역을 河北省 동부로부터 한반도 북부로 보고, 箕子朝鮮과 위만조선 및 한사군 영역을 하북성 동부와 요하 서부지역으로 한정시키는 소수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설은 요하 서부지역이 산융ㆍ동호의 영역이었고, 진개에게 조선 땅 2천리를 빼앗기었으며, 대동강유역에서 발굴되는 漢ㆍ新나라 유물유적들이 樂浪郡 것이 아니라는 것 등을 객관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필자는 소수설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전통적 통설을 깨트리고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산융ㆍ동호는 요하 서부지역에 있던 국가가 아니라 趙ㆍ燕나라 북쪽의 山西省ㆍ河北省 북부에 있었다는 것. 진개가 조선 땅 2,000里를 빼앗았다는 기록은 조작된 기록이라는 것.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된 秥蟬縣神祠碑, 樂浪大尹章ㆍ秥蟬長印 등의 200여점의 封泥와 인장, 벽돌, 기와 등은 조작되었다는 것. 점선현신사비와 漢ㆍ新나라 화폐를 찍던 거푸집은 대동강 유역의 정치세력이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된 세력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료라는 것. 위만조선의 수도인 王險城은 하북성 昌黎에 있었다는 것. 한사군은 하북성 동부와 遼河 서부지역에 있었다는 것 등을 史料 고증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그러나 사료 고증은 해석상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학공식으로 찾아낸 정답처럼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방법으로 위만조선과 한사군 등의 위치를 고증하고자 했다. 그 방법은, 예컨대 A지역에서 C지역까지의 방향과 거리만 알려져 있을 경우 C지역의 위치를 찾을 때, 먼저 지도상에서 위치가 알려져 있는 A, B 구간의 水平直線距離를 산출한다. 그 水平直線距離로 역사서에 기록된 A, B 구간의 거리를 나누어 주어 A, B 구간의 道路屈曲指數를 산출한다. 이 A, B 구간의 도로굴곡지수로 A, B 구간의 地形과 비슷한 지형을 가진 A, C 구간의 거
    리를 나누어 준다. 이렇게 산출된 수치가 A, C 구간의 수평직선거리이다. 이 A, C 구간의 수평직선거리를 지도상에 그리면 그 끝 지점이 C지역으로 보는 방법이다. 이 위치고증방법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위치 고증방법이므로 매우 정확할 수밖에 없다.
    이 “水平直線距離와 屈曲指數를 이용한 위치 考證 方法” 즉, “數學的位置考證方法”으로 한사군 등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였다. 즉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하북성 동부와 요하 서부지역에 있었고, 遼東郡ㆍ遼東屬國ㆍ遼西郡 등은 하북성 중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한사군 등의 위치는 사료 고증을 통하여 밝혀낸 위치와도 정확히 일치하였다.
    이러한 본 연구 결과는 한국인들에게 역사초기부터 타종족의 식민지배를 받아왔다는 역사문화적 열등감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인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킨 후예로써의 자긍심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 필자의 “수학적위치고증방법”은 중국의 옛 지명들과 그 인근 국가들의 정확한 위치는 찾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 방향과 거리를 기록으로 남긴 세계 여러 국가들의 역사적 위치를 찾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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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準王의 朝鮮과 衛滿朝鮮 및 玄菟郡, 樂浪郡, 臨屯郡, 眞番郡 등의 漢四郡 영역을 청천강(혹은 압록강) 이남에 있었던 것으로 본 것이 고려ㆍ근세조선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전통적인 통설...

    準王의 朝鮮과 衛滿朝鮮 및 玄菟郡, 樂浪郡, 臨屯郡, 眞番郡 등의 漢四郡 영역을 청천강(혹은 압록강) 이남에 있었던 것으로 본 것이 고려ㆍ근세조선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전통적인 통설이었다.
    그 이유는 요하 서부지역을 山戎ㆍ東胡의 영역으로 봄으로써 한국 고대사 영역은 遼河 동부지역과 韓半島로 限定하여 보았고, 전국시대 燕나라 秦開의 침략에 의하여 遼河 동부지역과 청천강(혹은 압록강) 이북 땅을 잃고 平壤ㆍ平安道 지역으로 물러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大同江유역에서 발굴되는 漢ㆍ新나라 때의 유물 유적들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음을 실증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의 통설논자들은 壇君王儉이 건국한 古朝鮮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한다. 요하 동부지역과 한반도에서는 王儉이 건국한 고조선의 역사적 실존을 입증할 서기전 2,000년 전후의 청동기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壇君王儉이 건국한 古朝鮮 영역을 河北省 동부로부터 한반도 북부로 보고, 箕子朝鮮과 위만조선 및 한사군 영역을 하북성 동부와 요하 서부지역으로 한정시키는 소수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설은 요하 서부지역이 산융ㆍ동호의 영역이었고, 진개에게 조선 땅 2천리를 빼앗기었으며, 대동강유역에서 발굴되는 漢ㆍ新나라 유물유적들이 樂浪郡 것이 아니라는 것 등을 객관적이고도 실증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필자는 소수설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전통적 통설을 깨트리고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산융ㆍ동호는 요하 서부지역에 있던 국가가 아니라 趙ㆍ燕나라 북쪽의 山西省ㆍ河北省 북부에 있었다는 것. 진개가 조선 땅 2,000里를 빼앗았다는 기록은 조작된 기록이라는 것.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된 秥蟬縣神祠碑, 樂浪大尹章ㆍ秥蟬長印 등의 200여점의 封泥와 인장, 벽돌, 기와 등은 조작되었다는 것. 점선현신사비와 漢ㆍ新나라 화폐를 찍던 거푸집은 대동강 유역의 정치세력이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된 세력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료라는 것. 위만조선의 수도인 王險城은 하북성 昌黎에 있었다는 것. 한사군은 하북성 동부와 遼河 서부지역에 있었다는 것 등을 史料 고증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그러나 사료 고증은 해석상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학공식으로 찾아낸 정답처럼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방법으로 위만조선과 한사군 등의 위치를 고증하고자 했다. 그 방법은, 예컨대 A지역에서 C지역까지의 방향과 거리만 알려져 있을 경우 C지역의 위치를 찾을 때, 먼저 지도상에서 위치가 알려져 있는 A, B 구간의 水平直線距離를 산출한다. 그 水平直線距離로 역사서에 기록된 A, B 구간의 거리를 나누어 주어 A, B 구간의 道路屈曲指數를 산출한다. 이 A, B 구간의 도로굴곡지수로 A, B 구간의 地形과 비슷한 지형을 가진 A, C 구간의 거
    리를 나누어 준다. 이렇게 산출된 수치가 A, C 구간의 수평직선거리이다. 이 A, C 구간의 수평직선거리를 지도상에 그리면 그 끝 지점이 C지역으로 보는 방법이다. 이 위치고증방법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위치 고증방법이므로 매우 정확할 수밖에 없다.
    이 “水平直線距離와 屈曲指數를 이용한 위치 考證 方法” 즉, “數學的位置考證方法”으로 한사군 등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였다. 즉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하북성 동부와 요하 서부지역에 있었고, 遼東郡ㆍ遼東屬國ㆍ遼西郡 등은 하북성 중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한사군 등의 위치는 사료 고증을 통하여 밝혀낸 위치와도 정확히 일치하였다.
    이러한 본 연구 결과는 한국인들에게 역사초기부터 타종족의 식민지배를 받아왔다는 역사문화적 열등감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인 요하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킨 후예로써의 자긍심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 필자의 “수학적위치고증방법”은 중국의 옛 지명들과 그 인근 국가들의 정확한 위치는 찾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 방향과 거리를 기록으로 남긴 세계 여러 국가들의 역사적 위치를 찾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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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viewpoint that King Jun's Joseon(準王의 朝鮮), Wiman's Joseon(衛滿朝鮮) and Hansagun(漢四郡) such as Hyeondogun(玄菟郡), Nangnanggun(樂浪郡), Imdugun(臨屯郡), Jinbeongun(眞番郡) were located in the south of River Cheongcheon(淸川江) (or River Apnok(鴨綠江)) was the common view prevailed from Goryo and Modern Joseon until the present age.
    The reason is that the west of Yoha(遼河) belonged to Sanyung dynasty(山戎) and Dongho dynasty(東胡) and Korean ancient history was limitedly regarded as the east of Yoha and the Korean Peninsula(韓半島).
    Specifically, it is regarded that Korean natives retired into Pyeongyang(平壤) after being occupied the east of Yoha and the north of River Cheongcheon (or River Apnok) by Jinage, a general of the Yen dynasty (燕) in the Age of Warring States(戰國時代).
    What is worse, the relics of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dug out around River Daedong(大同江) have been using as the evidences that prove that Hansagun was being in the Korean Peninsula,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日帝强占期).
    The historians adhering to the existing theory have denied the historical existence of Gojoseon founded by Dangun(壇君), because the relics of the Bronze Age have not been found out in the east of Yoha and in the Korean Peninsula yet.
    On the other hand, some historians advocate limiting Gija's Joseon(箕子朝鮮), Wiman's Joseon and Hansagun(漢四郡) to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ha from the east of Ranha(灤河), as they understand that Gojoseon(古朝鮮) found by King Dangun existed from the east of Habukseong to the west of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they could not prove that Yoseo(遼西) did not belong to Sanyung and Dongho and the Korean Peninsula was not conquered by Jingae(秦開)) and the relics found out around River Daedong are unrelated with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objectively and positively.
    This study was performed to overcome the minority opinion and to break the conventional theory, on the basis of historical truth.
    In line with these objects, the fact that Sanyung dynasty and Dongho dynasty did not belong to Yoseo and being to the north of Sanseoseong(山西省) and Habukseong(河北省) around the north of Jo dynasty(趙) and Yen dynasty(燕).
    The Korean Peninsula was not conquered by Jingae and it was fabricated, the fact that JeomjehyeonSinsabi(秥蟬縣神祠碑) and about 200 seals, stamps, bricks and roof tiles found out around River Daedong were all counterfeited, JeomjehyeonSinsabi and the cast produced the coins that were used in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were the evidence showing that the influential groups who aced into River Daedong were an independent force free from China's rule.
    the fact that Wamgheomseong(王險城), the capital city of Wiman Joseon, was at Changryeo(昌黎) in Habukseong. And Hansagun were in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ryeongseong(遼寧省) were proved in this study.
    The analytical difference is unavoidable in historiography, and so this study aims the perfect conclusion to be just as irrefutable as a mathematical formula.
    To be exact,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B should be firstly calculated in case of locating C with information based on the distance and direction of A, B and C. Next, the distance between the two points recorded on the historical data should be divided and its
    road-indent index should be calculated.
    The distance between A and C, similar to the geographical features of A and B, should be so divided by the road-bent index between A and B as to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C.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C should be drawn up
    on a map, and then the position will be found out.
    This method is very correct as it was based on mathematics and science.
    The real position of Hansagun was found out by using this method based on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and the road-indent index, that is, the so-called 'Mathematical Position-Ascertaining Method(數學的位置考證方法)'.
    As the result, it was known that Hansagun was located in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ha, and that Yodonggun(遼東郡), the dependencies of Yodonggun and Yoseogun(遼西郡) were situated in the middle of Habukseong. The location ascertained by the above-mentioned method is totally in agreement with that of historiographies.
    It is expected that such results will make Koreans free from the inferiority complex that they have been governed historically or culturally by other races as well as will make them feel pride as the descendants of hose who established the Yoha Civilization, one of the most advanced civilization in the world.
    This writer originated(創案한) 'The 'Mathematical Position-Ascertaining method(數學的位置考證方法)' in this study is expected to be useful in finding out the important historical sites in the whol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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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viewpoint that King Jun's Joseon(準王의 朝鮮), Wiman's Joseon(衛滿朝鮮) and Hansagun(漢四郡) such as Hyeondogun(玄菟郡), Nangnanggun(樂浪郡), Imdugun(臨屯郡), Jinbeongun(眞番郡) were located in the south of River Cheon...

    The viewpoint that King Jun's Joseon(準王의 朝鮮), Wiman's Joseon(衛滿朝鮮) and Hansagun(漢四郡) such as Hyeondogun(玄菟郡), Nangnanggun(樂浪郡), Imdugun(臨屯郡), Jinbeongun(眞番郡) were located in the south of River Cheongcheon(淸川江) (or River Apnok(鴨綠江)) was the common view prevailed from Goryo and Modern Joseon until the present age.
    The reason is that the west of Yoha(遼河) belonged to Sanyung dynasty(山戎) and Dongho dynasty(東胡) and Korean ancient history was limitedly regarded as the east of Yoha and the Korean Peninsula(韓半島).
    Specifically, it is regarded that Korean natives retired into Pyeongyang(平壤) after being occupied the east of Yoha and the north of River Cheongcheon (or River Apnok) by Jinage, a general of the Yen dynasty (燕) in the Age of Warring States(戰國時代).
    What is worse, the relics of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dug out around River Daedong(大同江) have been using as the evidences that prove that Hansagun was being in the Korean Peninsula,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日帝强占期).
    The historians adhering to the existing theory have denied the historical existence of Gojoseon founded by Dangun(壇君), because the relics of the Bronze Age have not been found out in the east of Yoha and in the Korean Peninsula yet.
    On the other hand, some historians advocate limiting Gija's Joseon(箕子朝鮮), Wiman's Joseon and Hansagun(漢四郡) to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ha from the east of Ranha(灤河), as they understand that Gojoseon(古朝鮮) found by King Dangun existed from the east of Habukseong to the west of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they could not prove that Yoseo(遼西) did not belong to Sanyung and Dongho and the Korean Peninsula was not conquered by Jingae(秦開)) and the relics found out around River Daedong are unrelated with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objectively and positively.
    This study was performed to overcome the minority opinion and to break the conventional theory, on the basis of historical truth.
    In line with these objects, the fact that Sanyung dynasty and Dongho dynasty did not belong to Yoseo and being to the north of Sanseoseong(山西省) and Habukseong(河北省) around the north of Jo dynasty(趙) and Yen dynasty(燕).
    The Korean Peninsula was not conquered by Jingae and it was fabricated, the fact that JeomjehyeonSinsabi(秥蟬縣神祠碑) and about 200 seals, stamps, bricks and roof tiles found out around River Daedong were all counterfeited, JeomjehyeonSinsabi and the cast produced the coins that were used in the Han dynasty(漢) and the Sin dynasty(新)
    were the evidence showing that the influential groups who aced into River Daedong were an independent force free from China's rule.
    the fact that Wamgheomseong(王險城), the capital city of Wiman Joseon, was at Changryeo(昌黎) in Habukseong. And Hansagun were in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ryeongseong(遼寧省) were proved in this study.
    The analytical difference is unavoidable in historiography, and so this study aims the perfect conclusion to be just as irrefutable as a mathematical formula.
    To be exact,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B should be firstly calculated in case of locating C with information based on the distance and direction of A, B and C. Next, the distance between the two points recorded on the historical data should be divided and its
    road-indent index should be calculated.
    The distance between A and C, similar to the geographical features of A and B, should be so divided by the road-bent index between A and B as to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C.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between A and C should be drawn up
    on a map, and then the position will be found out.
    This method is very correct as it was based on mathematics and science.
    The real position of Hansagun was found out by using this method based on the horizontal straight-line distance and the road-indent index, that is, the so-called 'Mathematical Position-Ascertaining Method(數學的位置考證方法)'.
    As the result, it was known that Hansagun was located in the east of Habukseong and the west of Yoha, and that Yodonggun(遼東郡), the dependencies of Yodonggun and Yoseogun(遼西郡) were situated in the middle of Habukseong. The location ascertained by the above-mentioned method is totally in agreement with that of historiographies.
    It is expected that such results will make Koreans free from the inferiority complex that they have been governed historically or culturally by other races as well as will make them feel pride as the descendants of hose who established the Yoha Civilization, one of the most advanced civilization in the world.
    This writer originated(創案한) 'The 'Mathematical Position-Ascertaining method(數學的位置考證方法)' in this study is expected to be useful in finding out the important historical sites in the whol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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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序 言 = 13
    • 제1장 고조선과 한사군 위치 비정의 문제점 = 17
    • 제1절 고조선과 기자ㆍ위만조선의 국호 문제 = 17
    • 제2절 고조선 위치에 대한 기존 학설 = 19
    • 序 言 = 13
    • 제1장 고조선과 한사군 위치 비정의 문제점 = 17
    • 제1절 고조선과 기자ㆍ위만조선의 국호 문제 = 17
    • 제2절 고조선 위치에 대한 기존 학설 = 19
    • 1. 고조선의 대동강중심설 = 19
    • 1) 고조선ㆍ기자조선ㆍ위만조선의 대동강중심설 = 20
    • 2) 기자ㆍ위만조선의 대동강중심설 = 21
    • 3) 한씨ㆍ위만조선의 대동강중심설 = 21
    • 2. 고조선과 기자ㆍ위만조선의 요녕중심설 = 22
    • 3. 고조선과 기자ㆍ위만조선의 재요서설 = 23
    • 4. 기자조선의 중심지이동설 = 25
    • 5. 한씨조선의 중심지이동설 = 27
    • 제3절 기존의 한사군 위치 고증 = 28
    • 1. 정약용과 이병도의 한사군 위치 고증 = 29
    • 2. 윤내현의 한사군 위치 고증 = 31
    • 제4절 한대 유물 유적의 문제점 = 32
    • 1. 점제현신사비 = 32
    • 2. 평양 토성의 봉니 = 38
    • 3. 기와ㆍ벽돌 등의 유물 = 44
    • 4. 한ㆍ신나라 화폐를 주조하던 전범 = 46
    • 5. 대동강 유역의 한 시기 유물ㆍ유적의 정체 = 48
    • 제5절 연나라 위치에 대한 기존 학설의 문제점 = 49
    • 1. 연나라 위치를 실증하는 유물로 오용된 청동기 = 50
    • 2. 명도전 출토 지역으로 본 연나라의 위치 = 52
    • 3. 요동군ㆍ요서군의 위치 비정 문제 = 55
    • 제6절 산융ㆍ동호 위치에 대한 기존학설의 문제점 = 55
    • 1. 산융ㆍ동호 위치에 대한 기존학설의 문제점 = 56
    • 2. 산융ㆍ동호의 실제 위치 고증 = 59
    • 제7절 연나라 진개의 조선 땅 2천리 침탈 기록의 진위 문제 = 63
    • 1. 연나라 진개의 조선 침략기록 = 63
    • 2. 연나라 장수 진개의 조선침략에 대한 학설 = 65
    • 3. 진개에게 빼앗긴 조선의 2,000리 영토 문제 = 66
    • 4. 진개의 조선 침략 가능 연대 = 67
    • 5. 『위략』의 조선 침략기록 진위문제 = 69
    • 1) 연왕의 조선 정벌 계획 = 69
    • 2) 『위략』의 존주실 기록 = 70
    • 3) 720여년 뒤에야 나타나는 영토 배가 기록 = 71
    • 4) 『위략』의 조선과 진나라의 외교관계 기록 = 72
    • 5) 위만의 반란에 관한 『위략』의 기록 = 73
    • 3. 『삼국지』로 본 진개의 조선 침략 기록의 진위 문제 = 75
    • 4. 『전국책』과 『사기』로 본 진개의 조선 침략 기록의 진위 문제 = 76
    • 1) 연과 동호의 접촉 기록조차 없는 『전국책』 = 76
    • 2) 연과 조선의 접촉 기록조차 없는 『전국책』 = 77
    • 3) 진개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전국책』 = 78
    • 4) 진개의 이름조차 없는 『사기』의 「연소공세가」와 「조선열전」 = 78
    • 5) 왜곡된 『사기』「조선열전」의 연나라 정벌 기록 = 79
    • 5. 『위략』과 『염철론』의 기록 = 81
    • 6. 사마천의 필법으로 본 진개의 조선 침략 기록의 진위 문제 = 82
    • 1) 「진개열전」을 짓지 않은 사마천 = 82
    • 2) 사마천이 사용하지 않는 표현 현장, 명장, 맹장 = 83
    • 3) 사마천이 사용하지 않는 표현: 습…주…각 = 83
    • 4) 조부의 사적에서 손자를 소개하는 상식 밖의 기술 = 84
    • 7. 소진과 사마천의 증언으로 본 진개의 조선 침략 기록의 진위 문제 = 85
    • 8. 진개의 동호 땅 1,000리 침탈 기록의 진위 문제 = 87
    • 9. 위만조선과 한사군 위치로 본 진개의 조선 침략 기록의 진위 문제 = 89
    • 제2장 사료를 통한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고증 = 90
    • 제1절 고죽국 위치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90
    • 제2절 한나라의 위만조선 침공로로 본 한사군의 위치 = 92
    • 제3절 험독ㆍ창려 위치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96
    • 1. 요동군 험독에 있던 왕험성 = 96
    • 2. 창려군 험독에 있던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 = 98
    • 3. 요동속국 험독에 있던 왕험성 = 101
    • 4. 낙랑군의 왕험성 = 102
    • 제4절 임둔태수장 봉니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03
    • 제5절 위만의 건국 과정으로 본 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06
    • 1. 위만의 봉지로 본 한씨ㆍ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06
    • 2. 위만의 반란 과정에 나타난 한씨ㆍ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07
    • 3. 준왕의 탈출로로 본 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09
    • 제6절 위만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10
    • 1. 위만조선의 영토 크기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10
    • 2. 위만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11
    • 제7절 패수의 위치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13
    • 제8절 만리장성으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 117
    • 제9절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로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21
    • 제10절 『한서』「왕망전」으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26
    • 제11절 부여ㆍ고구려 영토 위치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27
    • 1. 고구려 영토 위치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28
    • 2. 부여 영토 위치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30
    • 제12절 고구려의 중국 정벌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33
    • 1. 고구려와 중국의 전쟁기록 = 133
    • 2. 모본왕과 태조대왕의 중국 정벌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36
    • 제13절 『진서』「지리지」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42
    • 제14절 열수로 본 낙랑군의 위치 = 144
    • 제15절 낙랑군으로 오인된 낙랑국 = 144
    • 제16절 옥저와 개마국으로 본 한사군의 위치 = 147
    • 1. 옥저의 이동 = 148
    • 2. 개마국의 이동 = 151
    • 3. 염난수와 마자수로 본 현도군의 위치 = 152
    • 제17절 요수ㆍ대요수로 본 요동군과 현도군의 위치 = 154
    • 1. 요동과 요동군의 위치 = 154
    • 2. 요수의 위치로 본 요동군과 현도군의 위치 = 155
    • 1) 『회남자』의 요수 = 156
    • 2) 제환공의 고죽 침공로로 본 요수의 위치 = 157
    • 제18절 『한서』의 기록으로 본 요서군의 위치 = 159
    • 제19절 평양성과 낙랑군 왕험성 관련 기록으로 본 낙랑군과 왕험성의 위치 = 160
    • 제3장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실제 위치를 찾는 방법 = 163
    • 제1절 거리비교방법으로 위치를 찾는 방법 = 163
    • 제2절 거리와 방향만 알고 위치를 알 수 없는 지역을 찾는 방법 = 170
    • 제3절 수평직선거리 산출방법 = 173
    • 1.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수평직선거리 = 173
    • 2. 서울에서 목포까지의 수평직선거리 = 175
    • 제4절 도로굴곡지수 산출방법 = 175
    • 1. 서울 부산 간의 도로굴곡지수 = 176
    • 2. 서울 목포 간의 도로굴곡지수 = 177
    • 3. 도로굴곡지수의 크기가 다른 이유 = 177
    • 제5절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 찾기 = 179
    • 제6절 굴곡지수와 수평직선거리를 이용한 위치 추정의 문제점 = 180
    • 제4장 수학적위치고증을 위한 표본의 추출 = 182
    • 제1절 수학적위치고증을 위한 사료의 선택 = 182
    • 제2절 한대와 당대의 거리단위 = 184
    • 1. 방 1리의 크기 = 184
    • 2. 한대의 1리 길이 = 186
    • 3. 당대의 1리 길이 = 187
    • 4. 한대의 길이와 당대의 길이 차 = 188
    • 5. 도량형의 규격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 = 187
    • 제3절 거리 측정의 시점과 종점 = 189
    • 제4절 표본지역의 선택과 지도의 편집 = 195
    • 제5절 낙양과 오군, 낙양과 소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2
    • 1. 한대 낙양과 오군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2
    • 2. 당대 낙양과 소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4
    • 3. 현대 낙양과 소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6
    • 4. 굴곡지수비교 = 207
    • 제6절 낙양과 남해군, 낙양과 광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8
    • 1. 한대 낙양과 남해군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8
    • 2. 당대 낙양과 광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09
    • 3. 현대 낙양과 광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1
    • 4. 굴곡지수비교 = 212
    • 제7절 낙양과 합포군, 낙양과 합포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2
    • 1. 한대 낙양과 합포군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3
    • 2. 당대 낙양과 염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4
    • 3. 현대 낙양과 북해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6
    • 3. 굴곡지수비교 = 217
    • 제8절 낙양과 회계군, 낙양과 월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7
    • 1. 한대 낙양과 회계군 간의 도로굴곡지수 = 217
    • 2. 당대 낙양과 월주 간의 도로굴곡지수 = 220
    • 3. 현대 낙양과 소흥시 간의 도로굴곡지수 = 221
    • 4. 굴곡지수비교 = 222
    • 제9절 표본지역 간의 도로굴곡지수 종합분석표 /222
    • 제5장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 = 226
    • 제1절 표본도로굴곡지수의 선택과 위치고증방법 = 226
    • 제2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중국 동북지역 군국의 위치 = 228
    • 1. 중국 동북지역 군국 위치의 중요성 = 228
    • 2.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요동군의 위치 = 231
    • 3.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요서군의 위치 = 235
    • 4.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요동속국의 위치 = 241
    • 제3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낙랑군의 위치 = 246
    • 1. 거리비교방법을 이용한 위치고증 = 246
    • 2. 군계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51
    • 3. 치소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53
    • 제4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현도군의 위치 = 255
    • 1. 거리비교방법을 이용한 위치고증 = 255
    • 2. 군계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59
    • 3. 치소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61
    • 제5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임둔군의 위치 = 262
    • 1. 거리비교방법으로 본 임둔군의 위치 = 262
    • 2. 군계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69
    • 3. 치소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70
    • 제6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진번군의 위치 = 272
    • 1. 거리비교방법을 이용한 위치고증 = 272
    • 2. 군계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76
    • 3. 치소 간의 도로굴곡지수를 이용한 위치고증 = 278
    • 제7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제ㆍ조ㆍ연나라의 위치 = 279
    • 제6장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고증한 평양성의 위치 = 282
    • 제1절 평양성과 낙랑군 관련 기록 고찰 = 282
    • 제2절 낙랑군과 별개의 지명 낙랑에 관한 고찰 = 285
    • 제3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안동도호부의 위치 = 288
    • 제4절 수학적위치고증방법으로 본 평양성의 위치 = 292
    • 제5절 고구려 평양성의 이동 = 296
    • 결론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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