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백제 한성기 절구 연구 = A Study on the Mortar in Baekje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백제 한성기에 확인된 절구의 재질과 형태를 살펴보고 공반유물을 통해 편년하였다. 편년자료를 토대로 시기에 따른 소형절구의 변화양상에 대하여 짚어보았으며 절구가 백제...

      본고에서는 백제 한성기에 확인된 절구의 재질과 형태를 살펴보고 공반유물을 통해 편년하였다. 편년자료를 토대로 시기에 따른 소형절구의 변화양상에 대하여 짚어보았으며 절구가 백제사회에 등장하기 전·후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백제의 소형절구는 51점 정도가 잔존하며 절구 사용 이전부터 사용되던 갈판과 고석은 이후에도 공존한다. 절구 형태는 굽의 유·무와 대각의 평면형태, 배신에서 구순까지의 단면형태에 따라 12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개 유형이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며 대부분 도성에 집중된다.
      백제 한성기 전·후 시기의 절구는 1~4기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1기는 4세기 전반이며 원삼국 단계의 재지 명맥을 늦게까지 유지하던 지역에서 토제 소형절구가 제작된다. 2기인 4세기 후반에는 회전력을 활용한 토제품과 굽이 없는 석제품이 공존한다. 이때 석제품은 도성에서만 확인된다. 3기에 해당하는 5세기 전반에는 도성을 중심으로 정형화된 절구가 출현한다. 4기는 5세기 중·후반이며 이 시기에는 한성 백제의 영역 내 주요 거점에서 토·석제 절구가 꾸준하게 제작된다.
      중국에는 백제 한성기에 등장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절구가 존재했으며 당시 백제는 중국의 남조와 지속적으로 상류층의 문화요소를 교류하고 있었다. 그동안 茶文化의 측면에서 설명되어 왔던 절구의 쓰임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곡물도정에서 출발하여 藥, 香, 茶를 만들면서 상류사회에 전유물로 특수하게 사용되었다면 이후 시기에는 그 사용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공방의 공방구 등으로 전문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화되는 양상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looked into the mortal material & form which were identified as the things made during the Baekje Hanseong period, and chronicled their history through association relics. On the basis of chronically recorded materials, this study looked at...

      This study looked into the mortal material & form which were identified as the things made during the Baekje Hanseong period, and chronicled their history through association relics. On the basis of chronically recorded materials, this study looked at the aspect of transition of a small mortar consequent on a period, and also looked into the social role and meaning of a mortar before/after it appeared in Baekje society.
      51 pieces of small mortars of the Baekje Kingdom still remain, and the grinding boards and pestles, which had been used before the period of mortar use, coexisted even after the period of mortar use. This study was able to classify the form of a mortar into 12 sorts of types according to the existence or non-existence of its heel, diagonal plane form, and the section form from the back body to the mouth. The two representative sorts of types among the types were converged on a capital city with the highest frequency. It`s possible to look into the characteristic of the mortars appearing before/after the Baekje Hanseong period by classifying them into Stage 1~4. Stage 1 belongs to the early 4thcentury when an earthen small mortar was produced at the area which had keptthemortar-making talent of the stage of the Proto-Three Kingdom salive until the late period.
      During the late 4th century marking Stage2, earthen mortar sand heelless stone mortars, which were made by using the rotatory force, coexisted. The then stone mortar sareidentified only in a capitalcity.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5thcentury belonging to Stage3, standardized mortars appeared with the capital city as the center. Inthemid-5thcentury belonging to Stage4, earthen/stone mortars were steadily produced even in a major base within the territory of the Hanseong Baekje Kingdom.
      In China, there existed a mortar of the same form as the one appearing during the Baekje Hanseong period, and at that time, Baekje was continuously exchanging cultural elements of the upper class with the Southern Dynasties in China.
      As regard the use of a mortar, which has been explained from the aspect of tea culture all this while, there is the need to understand by extending it into diverse aspects. Initially, the mortar started from polishing grain by pounding, and then came to be used as exclusive property for high society as medicine, fragrance and tea were made. Afterwards, the use scope of a mortar was extended all the more, becoming common throughout the society in general with a mortar specialized as a workshop article at a workshop.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三江文化財硏究院, "金海 官洞里 三國時代 津址 -김해 율하택지사업구간 내 발굴조사보고-" 2009

      2 윤정현, "호서지역 백제 영역화에 따른 취락의 변화양상" 백제연구소 (59) : 1-44, 2014

      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목기자료집Ⅱ -용기 및 생활구편-" 2013

      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 -함안 성산산성을 중심으로-" 2008

      5 조현종, "한국 초기 도작문화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2008

      6 국립문화재연구소, "풍납토성 197번지 일대 3차 발굴조사" 2006

      7 京畿文化財硏究院, "파주 다율동유적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공개 자료집"

      8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창원 신방리 저습유적" 2009

      9 전미란, "중서부 해안지역 원삼국시대 토기의 변천과 지역성"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3

      10 王從仁, "중국의 차 문화" 에디터 2004

      1 三江文化財硏究院, "金海 官洞里 三國時代 津址 -김해 율하택지사업구간 내 발굴조사보고-" 2009

      2 윤정현, "호서지역 백제 영역화에 따른 취락의 변화양상" 백제연구소 (59) : 1-44, 2014

      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목기자료집Ⅱ -용기 및 생활구편-" 2013

      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대목기 -함안 성산산성을 중심으로-" 2008

      5 조현종, "한국 초기 도작문화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2008

      6 국립문화재연구소, "풍납토성 197번지 일대 3차 발굴조사" 2006

      7 京畿文化財硏究院, "파주 다율동유적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공개 자료집"

      8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창원 신방리 저습유적" 2009

      9 전미란, "중서부 해안지역 원삼국시대 토기의 변천과 지역성"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3

      10 王從仁, "중국의 차 문화" 에디터 2004

      11 이다현, "중국 음다법의 전개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08

      12 서현주, "인천 영종도의 원삼국문화" 한국전통문화학교 8 : 2010

      13 박성희, "인천 영종도의 고고학적 연구"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11

      14 단국대학교, "이천 설성산성 2·3차" 2004

      15 劉淑芬, "육조시대의 남경" 景仁文化社 2006

      16 朴淳發, "왕도와 방어체계, 漢城百濟史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8

      17 (재)忠淸文化財硏究院, "아산 용두리 진터유적Ⅱ-원삼국시대-" 2011

      18 경기도박물관, "소근산성:학술 발굴조사 보고서" 2012

      19 한얼문화유산연구원, "서울 우면동 유적" SH서울특별시에스에이치공사, 진흥기업주식회사, 재단법인한얼문화유산연구원 2012

      20 (재)한백문화재연구원, "서수원-오산-평택고속도로구간 오산 외삼미동 유적" 경기고속도로주식회사·(재)한백문화재연구원 2011

      21 김상보, "생활과 문화, 漢城百濟史5"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8

      22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부산 고촌리 생산유적" 2010

      23 朴淳發, "백제토기 탐구" 주류성 2006

      24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의 공방"

      25 국립문화재연구소, "백제 한성지역 유물자료집"

      26 김일규, "백제 고고학 편년 연구" 학연문화사 2015

      27 고경진, "무안 양장리유적 출토 절구공이 기능에 대한 소고" 백제학회 (5) : 91-101, 2011

      28 목포대학교박물관, "무안 양장리유적" 1997

      29 金武重, "낙랑 문화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6

      30 경기도박물관, "고양 멱절산 유적-긴급발굴조사 보고서-" 2005

      31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강화 교동 대룡리유적" 인천광역시립박물관·한국농어촌공사 강화지사 2010

      32 忠淸南道歷史文化硏究院, "鷄龍 立岩里遺蹟" 2008

      33 국립문화재연구소, "風納土城Ⅺ -풍납동 197번지(舊 미래마을) 시굴 및 발굴조사 보고서1-" 2009

      34 국립문화재연구소, "風納土城ⅩⅣ -풍납동 197번지(舊 미래마을) 시굴 및 발굴조사 보고서3-" 2012

      35 權五榮, "風納土城Ⅳ -慶堂地區 9號 遺構에 대한 發掘報告-" 한신大學校博物館 2004

      36 국립문화재연구소, "風納土城 외환은행직원합숙소부지, 소규모주택신축부지, 강동빌라부지, 대진·동산연립주택부지 Ⅷ" 2007

      37 국립문화재연구소, "風納土城 Ⅰ" 2001

      38 李南奭, "舒川 芝山里遺蹟" 公州大學校博物館·한국도로공사 2005

      39 李康承, "神衿城" 忠南大學校博物館 1994

      40 土田純子, "百濟土器 編年 硏究" 충남대학교 대학원 2013

      41 土田純子, "百濟土器 東아시아 交叉編年 硏究" 서경문화사 2014

      42 한지선, "百濟土器 成立期 樣相에 대한 再檢討" 백제연구소 (41) : 1-31, 2005

      43 金武重, "百濟 漢城期 地域土器 編年-京畿 西南部地域을 中心으로-" 서울경기고고학회 2003

      4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宮里-발굴중간보고Ⅶ" 문화재청·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0

      45 李弘鍾, "牙山 葛梅里(Ⅲ地域)遺蹟" 高麗大學校 考古環境硏究所·㈜중앙하우징 2007

      46 이홍종, "燕岐 大平里遺蹟" 韓國考古環境硏究所·韓國土地住宅公社 2012

      47 中央文化財硏究院, "烏山細橋2地區宅地開發事業內(15地點) 烏山闕洞遺蹟" 2013

      48 문동석, "漢城百濟의 茶文化와 茶確" 백제연구소 (56) : 1-26, 2012

      49 朴淳發, "漢城百濟의 誕生" 서경문화사 2001

      50 한지선, "漢城百濟期 聚落과 土器遺物群의 變遷樣相 -서울·경기권 편년수립을 위하여-" 중앙문화재연구원 (12) : 1-59, 2013

      51 尹大植, "淸州地域 百濟杷杯의 型式과 用途" 湖西考古學會 11 : 2004

      52 朴淳發, "深鉢形土器考" 湖南考古學會 4·5 : 2001

      53 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木器集成圖錄近畿原始篇-"

      54 일연, "新編三國遺事" 신서원 1994

      55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扶蘇山城-發掘調査報告書Ⅴ-" 2003

      56 한국문화유산연구원, "平澤馬頭里遺蹟-평택 서탄면 마두리 194-9번지 공장신축부지내 유적" 2011

      57 朴淳發, "帶頸壺一考" 湖南考古學會 13 : 2001

      58 河承哲, "小伽倻의 考古學的 硏究" 慶尙大學校大學院 2015

      59 東洋大學校博物館, "安東 苧田里遺蹟" 2010

      60 嶺南文化財硏究院, "大邱 梅川洞遺蹟" 2010

      61 서울대학교박물관, "夢村土城 發掘調査 報告書" 1985

      62 서울대학교박물관, "夢村土城 -서남지구발굴조사보고-" 1989

      63 서울대학교박물관, "夢村土城 -동남지구발굴조사보고-" 1988

      64 京畿文化財硏究院, "坡州 瓦洞里Ⅲ遺蹟-파주 운정(1)택지개발지구 5차 문화재 발굴조사 보고서" 京畿文化財硏究院·韓國土地住宅公社 2011

      65 朴淳發, "北魏 平城 斷想" 百濟學會 (3) : 2009

      66 京畿文化財硏究院, "加平 大成里遺蹟" 京畿文化財硏究院·(株)삼성엔지니어링 2009

      67 朴淳發, "公州 水村里 古墳群 出土 中國瓷器와 交叉年代 問題" 충청남도역사문화원 2005

      68 국립광주박물관, "光州 新昌洞 低濕地 遺蹟Ⅱ -木製遺物을 中心으로-" 2001

      69 국립광주박물관, "光州 新昌洞 低濕地 遺蹟Ⅰ-95년 조사 개보-목제유물을 중심으로-" 1997

      70 서현주, "仁川 雲南洞 貝塚" 韓國考古環境硏究所·韓國土地住宅公社·仁川廣域市 都市開發公社 2011

      71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2016년 몽촌토성 북문지 일원 발굴조사 2차 학술자문위원회 자료집"

      7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년 풍납토성 197번지 일대 발굴조사" 2009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5 0.25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1 0.34 0.727 0.15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