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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화수창 시고의 작성과 간행 1537년 황화수창을 중심으로 = Writing and Publication of Hwanghwasuchang Manuscript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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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05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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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categorized the manuscript poems written for Hwanhwasuchang according to period of writing. There were found to be many errors in the poetry sections of the envoys because a dumok who did not have a profound knowledge of literature had ghostwritten them and both sides aimed at perfection in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Many transcriptionists were active at the event of Hwanghwasuchang because Chinese poems were simultaneously written and arranged. Gong Yong Qing wrote a letter to Jungjong of Joseon and ask him to assign a collator to Jeong Saryong. And he wrote several letters to Jeong Saryong and asked him to collate them thoroughly even after crossing the border. Jeong Saryong finished work on the main streets just in 7 to 8 days by editing and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of Hwanhwasuchang on the way to Hanyang. As Jeong Saryong reported and offered the original copy completed to Jungjong of Joseon, He gave and ordered gyoseogwan to publish it. Jeong Saryong then revised the manuscripts based on handwriting text, sent the first published book of Hwanghwajip to China, and waited until the envoys read and proofread it. Hwanghwajip was published several times due to errors in the publication. And the envoys who already returned to their own country directly participated in proofreading Hwanghwaj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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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categorized the manuscript poems written for Hwanhwasuchang according to period of writing. There were found to be many errors in the poetry sections of the envoys because a dumok who did not have a profound knowledge of literature had ghos...

      This paper categorized the manuscript poems written for Hwanhwasuchang according to period of writing. There were found to be many errors in the poetry sections of the envoys because a dumok who did not have a profound knowledge of literature had ghostwritten them and both sides aimed at perfection in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Many transcriptionists were active at the event of Hwanghwasuchang because Chinese poems were simultaneously written and arranged. Gong Yong Qing wrote a letter to Jungjong of Joseon and ask him to assign a collator to Jeong Saryong. And he wrote several letters to Jeong Saryong and asked him to collate them thoroughly even after crossing the border. Jeong Saryong finished work on the main streets just in 7 to 8 days by editing and proofreading the manuscripts of Hwanhwasuchang on the way to Hanyang. As Jeong Saryong reported and offered the original copy completed to Jungjong of Joseon, He gave and ordered gyoseogwan to publish it. Jeong Saryong then revised the manuscripts based on handwriting text, sent the first published book of Hwanghwajip to China, and waited until the envoys read and proofread it. Hwanghwajip was published several times due to errors in the publication. And the envoys who already returned to their own country directly participated in proofreading Hwanghwaj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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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537년 공용경과 오희맹, 두 사신은 한양에서 조서를 반포하기 전까지 예법에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접사 정사룡 일행과 수창하지 않았다. 두 사신은 같은 곳에서같은 제재로 시를 지으면서도 다른 운자로 각자의 작품을 주로 찬술했고 작품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 오희맹이 압운을 잘못하자 조선 문인은 착오를 묵인하지 않고 중첩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어 시를 지었으며 심언광은 장편 배율 전별시를 선창함으로써 문학적 자부심과 대결의식을 드러냈다. 황화수창 자리는 양국 문사가 필력을 뽐내는 현학의 공간이자 조선이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황화수창은 시고를 통해 이루어졌고 찬술 시기에 따라 시고가 정리되었다. 개별 『황화집』과 1608년 간본 『황화집』에는 원시고 형태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반면 1773년 통합본 『황화집』은 편집을 거치면서 시고 형태가 상당 부분 해체되고 유의미한 정보가 누락되기도 했다. 사신의 시편은 두목(頭目)이 대필하여 오류가 많았으므로 양측 모두 원고교정에 만전을 기했다. 정사룡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고의 편차와 교정을 마쳤다.
      정사룡이 복명하며 정사본을 올리자 중종은 교서관에 간행을 명했고 이후에도 홍문관대제학, 원접사와 종사관들이 교정에 참여했다. 당시 정사룡은 수본(手本)에 의거하여 원고를 수정했는데 『황화집』 1차 간본을 중국에 보내면서 사신의 열람과 교정을 기다렸다.
      간행상 오류로 인해 『황화집』을 누차 간행하거나 이미 귀국한 사신이 『황화집』 교정에참여한 사례도 여럿 보인다. 『황화집』 간행 시 교정에 힘썼지만 원고 자체가 불완전하고일정이 촉박한 탓에 완정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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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7년 공용경과 오희맹, 두 사신은 한양에서 조서를 반포하기 전까지 예법에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접사 정사룡 일행과 수창하지 않았다. 두 사신은 같은 곳에서같은 제재로 시를 지으면서...

      1537년 공용경과 오희맹, 두 사신은 한양에서 조서를 반포하기 전까지 예법에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접사 정사룡 일행과 수창하지 않았다. 두 사신은 같은 곳에서같은 제재로 시를 지으면서도 다른 운자로 각자의 작품을 주로 찬술했고 작품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 오희맹이 압운을 잘못하자 조선 문인은 착오를 묵인하지 않고 중첩된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어 시를 지었으며 심언광은 장편 배율 전별시를 선창함으로써 문학적 자부심과 대결의식을 드러냈다. 황화수창 자리는 양국 문사가 필력을 뽐내는 현학의 공간이자 조선이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황화수창은 시고를 통해 이루어졌고 찬술 시기에 따라 시고가 정리되었다. 개별 『황화집』과 1608년 간본 『황화집』에는 원시고 형태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반면 1773년 통합본 『황화집』은 편집을 거치면서 시고 형태가 상당 부분 해체되고 유의미한 정보가 누락되기도 했다. 사신의 시편은 두목(頭目)이 대필하여 오류가 많았으므로 양측 모두 원고교정에 만전을 기했다. 정사룡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고의 편차와 교정을 마쳤다.
      정사룡이 복명하며 정사본을 올리자 중종은 교서관에 간행을 명했고 이후에도 홍문관대제학, 원접사와 종사관들이 교정에 참여했다. 당시 정사룡은 수본(手本)에 의거하여 원고를 수정했는데 『황화집』 1차 간본을 중국에 보내면서 사신의 열람과 교정을 기다렸다.
      간행상 오류로 인해 『황화집』을 누차 간행하거나 이미 귀국한 사신이 『황화집』 교정에참여한 사례도 여럿 보인다. 『황화집』 간행 시 교정에 힘썼지만 원고 자체가 불완전하고일정이 촉박한 탓에 완정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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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2 "한국고전종합DB"

      3 김덕수, "조선의 對明 遊學 요청과 중국 유학에 대한 조선 문인의 견해" 한국실학학회 (39) : 138-176, 2020

      4 김덕수, "서거정의 황화수창과 문학적 대결의식" 진단학회 (136) : 189-220, 2021

      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6 許筠, "鶴山樵談"

      7 林亨秀, "錦湖遺稿附錄"

      8 柳根, "西坰文集"

      9 金得臣, "終南叢志"

      10 魚叔權, "稗官雜記"

      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2 "한국고전종합DB"

      3 김덕수, "조선의 對明 遊學 요청과 중국 유학에 대한 조선 문인의 견해" 한국실학학회 (39) : 138-176, 2020

      4 김덕수, "서거정의 황화수창과 문학적 대결의식" 진단학회 (136) : 189-220, 2021

      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6 許筠, "鶴山樵談"

      7 林亨秀, "錦湖遺稿附錄"

      8 柳根, "西坰文集"

      9 金得臣, "終南叢志"

      10 魚叔權, "稗官雜記"

      11 "皇華集"

      12 "皇華集"

      13 "皇華集"

      14 李肯翊, "燃藜室記述"

      15 權應仁, "松溪漫錄"

      16 김덕수, "朝鮮文士와 明使臣의 酬唱과 그 樣相" 한국한문학회 27 : 2001

      17 李廷龜, "月沙集"

      18 許筠, "惺所覆瓿藁"

      19 朴淳, "思菴集"

      20 김은정, "庚午本 『皇華集』 편찬경위와 詩文酬唱의 의미" 한국한시학회 7 : 1999

      21 李荇, "容齋集"

      22 "天使一路日記"

      23 김기화, "『皇華集』의 編纂과 版本" 경북대학교 2008

      24 신태영, "『皇華集』소재 한시의 특징과 양상-명 사신과 조선 접반사의 수창-" 동방한문학회 (42) : 125-164, 2010

      25 이종묵, "Rethinking the Sinosphere: Cover art depicts “brush conversations” (筆談 or 筆話) between scholars" Cambria Pr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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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of Humanities -> Institute of Human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15-01-0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Journal of Humanit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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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2 1.31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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