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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본질에 관한 고찰 : 재세례파와 칼빈의 교회관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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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100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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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교회는 무엇일까? 로 시작된 논문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지금까지 두 개의 명제가 계속해서 맞물려 진행되어 왔다.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즉 본질과 존재 양식의 문제이다. 이 땅의 교회가 이 둘 중 어느 것 하나에만 치우칠 때 교회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문제로 인해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교회의 역할을 교회의 본질로 잘못 인식하기도 하고 교회의 본질을 마치 교회의 존재양식인 것 처럼 착각하기도 하였다.
      이 땅의 교회는 사람의 노력으로 세워진 조직체가 아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우시고 운영하시며 인도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은 초월적인신적 기초위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대부분의 세상 단체와는 달리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드신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제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백성들은 그의 인도함을 받는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빛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원론적 정의를 전제하여 이 땅에서의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떻게 조직, 운영되어야 하는가라는 실제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본질에 토대를 두고 양식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의 본질을 살펴보고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휩쓸려 얽히며 역사 속에 자리 잡은 두 진영(재세례파와 Calvin)의 교회관을 보았다. 이 들의 교회에 대한 주장은 마치 교회본질에 대한 양대 교리사적 흐름을 대변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두 사상은 교회사적으로 끊임없이 대립 또는 상호배타적인 모습으로 드러났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광의의 “교회의 본질”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했고 이를 본 논문에서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교회는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이자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런 교회이기에 “거룩하고도 죄 많은 하나의 교회”로 정의한다. 이것은 “죄인 공동체”(communio peccatorum)가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에 의하여 “성인 공동체”(communio Sanctorum)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를 죄 많은 인간편에서만 보면 교회를 감싸 주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인간적인 조직과 양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편 교회를 위로부터만, 하나님의 거룩함에 의해서만 보면, 교회 내에는 항상 인간적인 위험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성령의 전으로만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역사적으로 교회분열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둘의 조화로움이 내재된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교회사적으로 끝없이 이어져 왔다.
      이 ‘성인 공동체’를 생각하면 ‘거룩한 백성’의 재세례파적인 공동체가 가능하며, ‘죄인 공동체’를 생각하면 철저하게 제도화된 교회의 엄숙함이 필요할 것이다.
      때로 지상의 교회들은 재세례파들과 같이 자신의 초췌한 영적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초대교회를 흠모한다. 원색적인 성령의 역사,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의 모습을 닮으려 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여러 교회의 존재 유형들이 만대 교회의 규범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본질이 아닌 존재 양식, 즉 형태는 적응성을 가졌다.
      교회를 평가하는 본질적인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선포”이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교회를 참 교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칼빈과 재세례파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 모습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는 관념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구원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을 드러내고 있임에는 틀림없다. 오고 오는 교회의 절대적 규범은 성령으로 영감된 성경 전체의 교훈 속에 있다. 성경 전체의 교훈 속에 있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속에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교회와 복음은 서로 넘어짐을 같이 한다.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회 양식의 차이가 아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빌1:18) 사도 바울과 같이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영원한 규범을 따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되어 가는데 있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ecclesia reformanda semper reforma)는 경구는 교회론에 있어서 항상 유념해야할 성경적 진리임에는 틀림없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그 희생이 ‘고난 받는 교회’의 참 모습이라 신앙하며 묵묵히 순교자의 반열을 따랐던 재세례파의 순교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이 살아왔던 역사의 발자취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본질의 표출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체로 이 땅에서 순전하게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기에, 지금도 세계 각처에는 이러한 교회의 원형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혁자인 Calvin의 그 날카로운 지식의 잣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왜곡되게 변형시키며 그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린시키고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거짓의 무리로부터 구별되게 보존하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어째든 역사는 이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선포를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만약의 경우이지만 이 두 진영이 좀 더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의 폭을 넓혔었더라면, Calvin이 회심할 시기에 뮌스터의 폭동이 없었고, Calvin이 선입감 없이 재세례파의 교리를 만났었더라면 하는 역사의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이 두진영의 교회관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변치 않는 사실은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자들이요 분리된 자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와 화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업을 하나님의 자녀들 즉 그의 백성을 위해서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 즉 일치의 의미는 택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치’를 염원하신 것이다. 무작정 연합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 백성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다.
      최근에 많은 외국의 교회들이 한국의 부흥된 교회 모습을 본 받기 위해서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들의 분열된 모습을 볼 때, 홍치모는 한국의 교회 분열에 대해서 “교리(敎理)는 교회의 분열을 초래 한다”는 말을 서구형적 분열이라고 부르고, “교권(敎權)은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라는 말로 한국형 분열의 원인을 그의 저서 “교회의 일치란 무엇인가?”에서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회 안의 분열을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교리의 부재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원형의 교회모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정확한 신학적 교회관을 정립하고 진정한 겸손함으로 교회의 교회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인 연합운동이 아닌 진정한 교회 본질에 입각한 하나 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메이첸도 당시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지금 혼돈 속에 있으며,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도저히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평화, 평화를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급격히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제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성경에 따라 판단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라고 말하면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자유주의의 물결에 맞서기 위해 성경을 선택했다.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 건물을 무효화시키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막 14:58)을 지으셨다. 교회는 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무리이다. 그리스도는 교회 전체에 현존한다. 그러나 특별히 두드러지게 예배의 모임에 현존한다. 여기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고, 여기에 세례를 통하여 받아들여졌으며, 여기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세상에 봉사하기 위하여 파견된다. 이 예배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고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특별한 모양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이야기하고 교회는 기도와 찬미의 응답에 의하여 하나님과 이야기 한다. 여기서 십자가에서 죽고 영광중에 부활한 주님이 당신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현존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주님께 바친다. 여기서 완전히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ἐκκλησία, 교회가 존재하고 발생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예배의 모임에 온전히 현존하므로, 세계 모든 교회의 모든 예배 집회는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교회는 함께 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의 교회이며, 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주님과의 친교, 일치(Koinonia, communio)를 통하여 서로의 친교, 일치를 이룬다.
      교회가 그야말로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단순히 과거만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서 항상 변하는 세계, 항상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사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사에는 과오와 퇴보도 있어 왔다. 원초적 증언이 신약성경의 메시지는 변하는 역사 안에서 언제나 최고심(最高審)의 구실을 한다. 그것은 만대의 교회를 평가하는 규범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둔 근원에서 비롯하여 이미 교회의 본질을 충만히 지니고 있는 신약성경상의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본 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서 적용하여야 할 근원적 설계다. 신약성경상의 교회 이외에 교회의 근원적 설계가 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에 재세례파의 교회 회복의 운동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일정한 특징의 형식적인 보존이 아니라 그 사용과 실현이다. 참으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고 따르는 것, 참으로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 그러니까 “교회의 특징들”을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특징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각 교회가 자신의 특징을 살리면서 동일한 신약성서의 메시지와 실질적으로 일치하려고 노력한다면, 다양성 속에서 단일한 교회의 현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일하신 하나님이 만세 · 만방에 흩어진 만민을 한 하나님 백성으로 모으신다. 동일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만민을 모아 성경을 통한 친교를 이룬다. 동일한 세례로 만인이 같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 동일한 성찬으로 만인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서로가 일치하기를 계속한다. 주 예수에 대한 동일한 신앙고백, 하나님 통치를 향한 같은 희망, 같은 사랑으로 만인이 한마음을, 세상에 대한 같은 봉사를 체험한다. 교회는 하나이다. 또 따라서 하나라야 한다. 이 교회는 주님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계속 지어져 갈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이 교회는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되어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긴박한 기다림’으로 준비해야하는 오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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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무엇일까? 로 시작된 논문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지금까지 두 개의 명제가 계속해서 맞물려 진행되어 왔다.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즉 본질과 존재 양식의 문제이다. 이 땅의 교회가 ...

      교회는 무엇일까? 로 시작된 논문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지금까지 두 개의 명제가 계속해서 맞물려 진행되어 왔다.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즉 본질과 존재 양식의 문제이다. 이 땅의 교회가 이 둘 중 어느 것 하나에만 치우칠 때 교회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문제로 인해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교회의 역할을 교회의 본질로 잘못 인식하기도 하고 교회의 본질을 마치 교회의 존재양식인 것 처럼 착각하기도 하였다.
      이 땅의 교회는 사람의 노력으로 세워진 조직체가 아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우시고 운영하시며 인도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은 초월적인신적 기초위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대부분의 세상 단체와는 달리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드신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제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백성들은 그의 인도함을 받는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빛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원론적 정의를 전제하여 이 땅에서의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떻게 조직, 운영되어야 하는가라는 실제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본질에 토대를 두고 양식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의 본질을 살펴보고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휩쓸려 얽히며 역사 속에 자리 잡은 두 진영(재세례파와 Calvin)의 교회관을 보았다. 이 들의 교회에 대한 주장은 마치 교회본질에 대한 양대 교리사적 흐름을 대변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두 사상은 교회사적으로 끊임없이 대립 또는 상호배타적인 모습으로 드러났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광의의 “교회의 본질”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했고 이를 본 논문에서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교회는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이자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런 교회이기에 “거룩하고도 죄 많은 하나의 교회”로 정의한다. 이것은 “죄인 공동체”(communio peccatorum)가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에 의하여 “성인 공동체”(communio Sanctorum)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를 죄 많은 인간편에서만 보면 교회를 감싸 주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인간적인 조직과 양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편 교회를 위로부터만, 하나님의 거룩함에 의해서만 보면, 교회 내에는 항상 인간적인 위험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지 못하고 거룩한 성령의 전으로만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역사적으로 교회분열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둘의 조화로움이 내재된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교회사적으로 끝없이 이어져 왔다.
      이 ‘성인 공동체’를 생각하면 ‘거룩한 백성’의 재세례파적인 공동체가 가능하며, ‘죄인 공동체’를 생각하면 철저하게 제도화된 교회의 엄숙함이 필요할 것이다.
      때로 지상의 교회들은 재세례파들과 같이 자신의 초췌한 영적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초대교회를 흠모한다. 원색적인 성령의 역사,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의 모습을 닮으려 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여러 교회의 존재 유형들이 만대 교회의 규범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본질이 아닌 존재 양식, 즉 형태는 적응성을 가졌다.
      교회를 평가하는 본질적인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선포”이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교회를 참 교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칼빈과 재세례파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 모습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는 관념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구원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을 드러내고 있임에는 틀림없다. 오고 오는 교회의 절대적 규범은 성령으로 영감된 성경 전체의 교훈 속에 있다. 성경 전체의 교훈 속에 있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속에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교회와 복음은 서로 넘어짐을 같이 한다.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회 양식의 차이가 아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빌1:18) 사도 바울과 같이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영원한 규범을 따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되어 가는데 있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ecclesia reformanda semper reforma)는 경구는 교회론에 있어서 항상 유념해야할 성경적 진리임에는 틀림없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그 희생이 ‘고난 받는 교회’의 참 모습이라 신앙하며 묵묵히 순교자의 반열을 따랐던 재세례파의 순교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이 살아왔던 역사의 발자취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본질의 표출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체로 이 땅에서 순전하게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기에, 지금도 세계 각처에는 이러한 교회의 원형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혁자인 Calvin의 그 날카로운 지식의 잣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왜곡되게 변형시키며 그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린시키고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거짓의 무리로부터 구별되게 보존하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어째든 역사는 이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선포를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만약의 경우이지만 이 두 진영이 좀 더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의 폭을 넓혔었더라면, Calvin이 회심할 시기에 뮌스터의 폭동이 없었고, Calvin이 선입감 없이 재세례파의 교리를 만났었더라면 하는 역사의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이 두진영의 교회관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변치 않는 사실은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자들이요 분리된 자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와 화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업을 하나님의 자녀들 즉 그의 백성을 위해서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 즉 일치의 의미는 택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치’를 염원하신 것이다. 무작정 연합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 백성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다.
      최근에 많은 외국의 교회들이 한국의 부흥된 교회 모습을 본 받기 위해서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들의 분열된 모습을 볼 때, 홍치모는 한국의 교회 분열에 대해서 “교리(敎理)는 교회의 분열을 초래 한다”는 말을 서구형적 분열이라고 부르고, “교권(敎權)은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라는 말로 한국형 분열의 원인을 그의 저서 “교회의 일치란 무엇인가?”에서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회 안의 분열을 ‘교회관’에 대한 신학적 교리의 부재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원형의 교회모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정확한 신학적 교회관을 정립하고 진정한 겸손함으로 교회의 교회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인 연합운동이 아닌 진정한 교회 본질에 입각한 하나 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메이첸도 당시 교회를 보면서 “교회는 지금 혼돈 속에 있으며,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도저히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평화, 평화를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급격히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제 선택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성경에 따라 판단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라고 말하면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자유주의의 물결에 맞서기 위해 성경을 선택했다.
      예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 건물을 무효화시키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막 14:58)을 지으셨다. 교회는 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무리이다. 그리스도는 교회 전체에 현존한다. 그러나 특별히 두드러지게 예배의 모임에 현존한다. 여기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고, 여기에 세례를 통하여 받아들여졌으며, 여기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세상에 봉사하기 위하여 파견된다. 이 예배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고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특별한 모양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이야기하고 교회는 기도와 찬미의 응답에 의하여 하나님과 이야기 한다. 여기서 십자가에서 죽고 영광중에 부활한 주님이 당신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현존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주님께 바친다. 여기서 완전히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ἐκκλησία, 교회가 존재하고 발생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예배의 모임에 온전히 현존하므로, 세계 모든 교회의 모든 예배 집회는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교회는 함께 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의 교회이며, 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주님과의 친교, 일치(Koinonia, communio)를 통하여 서로의 친교, 일치를 이룬다.
      교회가 그야말로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단순히 과거만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서 항상 변하는 세계, 항상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사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사에는 과오와 퇴보도 있어 왔다. 원초적 증언이 신약성경의 메시지는 변하는 역사 안에서 언제나 최고심(最高審)의 구실을 한다. 그것은 만대의 교회를 평가하는 규범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둔 근원에서 비롯하여 이미 교회의 본질을 충만히 지니고 있는 신약성경상의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본 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서 적용하여야 할 근원적 설계다. 신약성경상의 교회 이외에 교회의 근원적 설계가 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에 재세례파의 교회 회복의 운동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일정한 특징의 형식적인 보존이 아니라 그 사용과 실현이다. 참으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고 따르는 것, 참으로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 그러니까 “교회의 특징들”을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특징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각 교회가 자신의 특징을 살리면서 동일한 신약성서의 메시지와 실질적으로 일치하려고 노력한다면, 다양성 속에서 단일한 교회의 현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일하신 하나님이 만세 · 만방에 흩어진 만민을 한 하나님 백성으로 모으신다. 동일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만민을 모아 성경을 통한 친교를 이룬다. 동일한 세례로 만인이 같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 동일한 성찬으로 만인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서로가 일치하기를 계속한다. 주 예수에 대한 동일한 신앙고백, 하나님 통치를 향한 같은 희망, 같은 사랑으로 만인이 한마음을, 세상에 대한 같은 봉사를 체험한다. 교회는 하나이다. 또 따라서 하나라야 한다. 이 교회는 주님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계속 지어져 갈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이 교회는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되어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긴박한 기다림’으로 준비해야하는 오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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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Ⅰ. 서론 = 1
      • A. 문제제기 = 1
      • B. 연구목적과 방법 = 2
      • C. 논문의 구성 = 3
      • 목차
      • Ⅰ. 서론 = 1
      • A. 문제제기 = 1
      • B. 연구목적과 방법 = 2
      • C. 논문의 구성 = 3
      • Ⅱ.교회의 의미 = 5
      • A. 교회에 대한 성경적 고찰 = 5
      • 1. 교회의 용어 의미 = 5
      • 2. 구약에서의 교회 = 7
      • 3. 신약에서의 교회 = 9
      • B. 교회의 본질 고찰 = 11
      • 1. 하나님의 백성(언약 공동체) = 12
      • 2. 그리스도의 몸 = 14
      • 3. 성령의 전 = 18
      • Ⅲ. 재세례파의 교회관 = 22
      • A. 종교개혁과 재세례파 = 22
      • B. 재세례파의 주요 주장, “교회의 타락과 회복” = 26
      • C. 재세례파의 정교분리(政敎分離) 사상 = 28
      • 1. 정교분리(政敎分離)에 입각한 ‘국가관’ = 28
      • 2. 세례받은 성도의 공동체 ‘교회’ = 35
      • Ⅳ. John Calvin(1509-1564)의 敎會觀 = 42
      • A. Calvin과 재세례파의 관계 = 42
      • 1. 재세례파에 대한 Calvin입장 = 42
      • 2. 기독교 강요를 통해 본 재세례파와의 관계 = 44
      • B. Calvin의 국가관 = 45
      • C. John Calvin의 교회관 = 47
      • Ⅴ. Calvin과 재세례파의 교회관 비교 = 51
      • A. 두 진영의 ‘국가관’에 대한 비교 = 51
      • B. 두 진영의 ‘교회관’에 대한 비교 = 53
      • C. 교회 本質에 입각한 두 진영의 비교 = 56
      • Ⅵ. 결론 = 61
      • 참고문헌 =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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