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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존 웨슬리 신학에 있어서 믿음과 윤리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특히 사회윤리에 관한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도덕불감증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실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즉 현대 사회는 심각한 윤리의 부재이요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입장에서는 한국교회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인 듯하다. 신학의 자유화와 사회의 세속화로 인하여 기독교인의 과제중 하나인 신앙과 삶에 대한 일치를 못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또 보수적 교단인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이하 ‘성결교회’라 함)의 목사로서도 강한 책임감 느낀다. 그래서 성결교회의 사회윤리를 연구하게 되었다. 성결교회의 사회윤리를 연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웨슬리의 사회윤리를 택하였다. 그 이유는 성결교회는 웨슬리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슬리의 사회윤리라 함은 광의적으로 웨슬리 자신과 19세기 미국 성결운동, 20세기 부흥운동과 21세기 초의 성결교회까지 망라한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 신학의 중심은 구원론이다. 여기에 있어서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에서 순종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그리고 구원론의 핵심은 성결(성화, 그리스도인의 완전) 이며 웨슬리는 이것을 사회적 성결이라고 하였다. 웨슬리에게 있어서의 사회윤리는 개인이 중생을 통한 개인적, 내면적 신앙의 기본적 과정에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 적용되어 사회화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성결과 사랑으로써, 세상과 분리되면서도 세상 속으로 찾아들어가 섬기는 성육신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산상수훈 설교에서 “기독교는 사회적 종교” 라고 하였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내적 성결이 삶 속에서 적용되어져야 하는 사회적 종교이며, 행위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죽은 신앙이고 마귀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과 그에 따르는 행위를 강조한 웨슬리는 보수적인 신앙을 유지 하면서도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이에 이 논문은 웨슬리 사회윤리를 한국 사회의 윤리부재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 한다. 비윤리적이요 혼돈된 이 사회에서 교회 역할과 기독교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웨슬리의 사회윤리 신학 일 것이다. 성결교회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웨슬리와 미국에서의 19세기 성결운동이 윤리와 종교적 경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세대에서는 그 관심을 영혼구원을 위한 부흥운동 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근본주의가 출현하게되고 복음주의적 사회참여가 쇠퇴하게 되었다. 사회 윤리적 책임이 발전되지 못하고 사회 윤리적 유산이 계승되지 못한 것이다. 19세기 성결운동의 과정이 성결교회 형성의 배경이라면, 그 당시 복음주의적 사회 활동가들의 소중한 유산도 당연히 전수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결교회에서는 그동안 사회윤리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성결교회에서의 사회윤리는 상당히 미약하였으며 특히 사회구호적인 면보다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이 더욱 미약했었다고 할 수 있다. 성결교회가 어려운 환경과 여건 그리고 많은 아픔들을 가운데서도 부흥하여 1,000여개 교회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16개 교단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윤리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통한 개인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교리적인 특성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웨슬리의 신학적 전통에 있는 성결교회(예성)는 교단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라도 웨슬리 사회윤리를 재조명 하여야 할 것이다. 성결을 신학의 특징으로 하는 성결교회가, 성도 개개인들의 성결은 물론이고 성결한 개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서 성결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 성결을 주도하는 교단으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신앙과 삶에 대한 일치로 인하여 18세기, 19세기에서 보았던 뜨거운 부흥과 교회와 사회의 갱신을 보게 되기를 소원하며, 성결운동이 21세기 복음주의적 사회운동화할 것을 제안한다. This study is oriented to the relation between faith and ethics, especially on the social ethics in John Wesleyan theology. Recently, many shocking incidents such as immoral hazards have happened in Korea; a modern society seems to be critically away from ethics and to be in a serious crisis. The causes of these crises might have been derived from the various kinds of facts. But in Christian point of view, it relates to the crisis in the Korean churches. The freedom of the theology and the secularism of the faith have brought the discrepancy between faith and Christian life. Korean churches must have a responsibility to this situation. Especially I, as a pastor of Jesus Korea SungKyul Church(JKSKC here after mentioned) which is one of the most Korean conservative Christian bodies, have a strong sense of responsibility. This makes me today study on this social ethics in SungKyul Church. As a method of study, I took Wesleyan social-ethics method because JKSKC is based on Wesleyan tradition. In a large sense, this contains Wesleyanism itself, American trend of movements in 19th century, the restoration movement in 20th century, and the SungKyul Church in the first decade of 21st century. The central idea of Wesleyan theology is the Salvation. In the process of gracious God, the responsibility of obedience is just on human beings. And the core of the Salvation is on holiness(sanctification, completeness of Christians) which is, Wesley called it, the social sanctification. To Wesley, social ethics means, applying to daily life, that a Christian through the basic process of personal, internal born-again, has grown to socialization. This means the love of incarnation, which separates us away from the earth and goes to serve into the human life. John Wesley in his sermons on the Mount argued that "Christianity is essentially a social religion." Christianity is basically a social religion in which internal sanctification must be applied to in-life, and the faith without act is both dead and evil's faith. Wesley stressed both faith itself and its succeeding acts. He was conservative in faith, but also promoted his social activities positively. In this thesis, I try to propose, as an alternative plan, Wesleyan social-ethics to the community of Korean churches. Surely in this immoral and chaotic society, Wesleyan social-ethics theology might lead its directions to grow up a Christian life. Wesleyanism and the American holiness movement in 19th century was oriented to ethics and religious experience. But, in the latter generation, this was changed into the restoration movement for the salvation of the personal spirit. In this trend fundamentalism came into being, but evangelical social participation was declined. This means that the responsibility of social ethics has not grown up and its inheritance has not succeeded. The Evangelical movement in 19th century has succeeded on the basis of today's background of SungKyul Church. So its precious inheritance of Evangelical social activities must be inherited. But, unfortunately, there is also negative point of view to social ethics. At that time, there was insufficiency of social ethics, especially in the sense of social structure rather than social relief. About 1,000 Jesus Korea SungKyul churches over the country, one of 16 major religious bodies in Korea, have developed through the various kinds of difficulties, owing to the Holiness tenet stressing on the personal spiritual salvation through born-again. Therefore, it is necessary that JKSKC, based on Wesleyan theology must have a pride and remarkably try to restore Spirituality, with harmonizing personal spiritual salvation and social ethics. A tenet of JKSKC is oriented to "Holiness unto the Lord." It is necessary for a Christian both to live moral life and to exert influence on society. Surely, this will result in the leading JKSKC in Korea. I wish in Korea evangelical social movement through the Spiritual Restoration will grow up in 21st century, just as done in 18th and 19th century.
장진성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우리 신자로 하여금 첫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한다. 둘째, 현재의 암울한 한국교회와 교단의 현실과 개인적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셋째, 인간 존재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이 연합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연구의 방향을 토대로 본 연구의 주제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논하고자 하였다. 하나님과 신자의 삶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부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 영원한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 및 작정에서부터 현재의 삶 속에서의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든 면들을 포함하여 영원한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과의 친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구원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일 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의 전 분야에 걸쳐있는 주제이기도하다. 특히 구원론에 있어서 구원의 적용에 관한 모든 부분이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주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선택하셨을 때에 그리스도와 신자를 신비적으로 연합시키셨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보증의 임무를 담당하셨을 때에 신자들을 자신과 법적 연합을 이루셨다. 그리고 성령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주시고 신자들을 그의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들로 만드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을 이루셨으며 이루시고 계신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맺은 신비적이고 일체적인 연합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의해서 그와 생명적으로 결합하게 될 때에 명백하게 나타나며 그 효능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연합은 삼위하나님께서 모두 공동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또한 이 연합이 그리스도 편의 성령과 우리 편의 믿음으로 인한 것인 만큼, 양편은 사랑에 의해 서로를 알게 되며 이 때문에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연합을 이룬다. 요컨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그 원천이 창세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하신 사랑 안에서 우리를 택정하심으로 시작되었으며(엡1:3-4), 그 목적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영화롭게 된다. 이 연합이 이제 성령 안에서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의 의미와 기쁨과 승리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신자들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살아 계신다. 암울하고 혼탁한 작금의 시대에 한국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참모습을 다시 회복하고, 목자들이 성도를 돌보고 양육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 신자들의 삶을 더욱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Sacramentality Beyond Dichotomy: Ethiopian Music as a Channel of Divine Grace
BELAY DAWIT CHERENT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25 국내석사
This research aims to bridge the sacred-secular dichotomy in Ethiopian music through the theology of sacramentality. It argues that the divide has detached the Ethiopian Evangelical churches from appreciating and participating in God’s beauty, which is sacramentally incarnated in Ethiopian music. Drawing on Gerardus van der Leeuw’s theology of music to understand how the union of beauty and the holy can be found outside the church music, the research asserts that this union is sacramental and channels divine grace through Karl Rahner and Paul Tillich’s sacramental theology. In addition, the research argues that, based on this sacramental union in music, the musician plays the role of an aesthetic priest. By employing critical phenomenology, this research examines how this sacramental union occurs in Ethiopian music and how musicians in Ethiopia function as aesthetic priests. Based on the findings, it calls for the Ethiopian Evangelical churches to re-evaluate their theology of music to be encompassing and compassionate towards Ethiopian music and musicians.
박형룡과 화란 개혁주의 신학과의 관계 연구 : 박형룡의 신학형성과정과 『교의신학』에 관한 서론적인 한 연구
제1장. 서론 본 논문은 한국 장로교회 신학의 정초자, 정통 칼빈주의의 대변자였던 박형룡 박사(1897-1942)의 신학 형성과정과 교의신학에 나타나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와 교단적인 상황에 대해서 먼저 진술한 다음, 박형룡 신학 연구의 현황에 대한 개괄적인 제시를 하였고, 지금까지의 연구 현황으로 볼 때에 박형룡 박사의 신학에 미쳐진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을 분석하는 일이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요청되는 과제임을 알게 된다. 제2장. 초기 박형룡의 형성과정과 화란 개혁주의의 미미한 영향(1897-1942)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 이전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유학 경전을 통해서 배운 述而不作의 자세, 중등, 고등 교육시에 접하게 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앙적, 신학적 영향은 한평생 박형룡 박사의 신학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박사가 신학을 배우면서 접하게 된 구프린스톤 신학과 남침례교 신학에 대해서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신학 형성 과정 초기 구 프린스톤 재학 시절부터 특히 G. Vos 교수의 영향으로 화란 개혁주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박사논문에서 H. 바빙크와 V. 헤프의 저서를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초기의 저술들에서 검증되어지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였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제3장. 박형룡의 교의신학 형성 과정에 미친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L. Berkhof의 『조직신학』 수용) 박형룡 박사는 1942년에 만주 봉천 신학원에서부터 교의신학 강의를 하게 된다. 그는 교의신학 강의를 위한 강의안을 작성하면서 벌코프의 조직신학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박박사가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주의해서 분석해 보면 그는 벌코프의 저서를 『교의신학』의 근간으로 삼되, 흔히 알려진 것처럼 번역 내지는 번안의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박박사는 오히려 벌코프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박박사가 벌코프의 신학에 크게 의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박박사는 주체적인 신학 자세를 드러내어 준다. 특히 박박사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리고 박박사의 벌코프 신학 수용은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고 수용하게 했다는 신학적 중요성이 있다. 박박사는 벌코프를 통해서 이 두 사람의 신학 사상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을 개혁파 신학의 師父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 칼빈주의 신학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박박사는 주체적인 자세를 잃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그는 네덜란드 개혁교회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었던 카이퍼의 신학의 문제점에 대해서 예리하게 비평을 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4장, 박형룡의 『교의신학』증보 과정에 미친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G. C. Berkouwer의 『교의학연구』 활용) 박형룡 박사는 1955년에 암스테르담에서 G. C. 베르까워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교의학 연구(Studies in Dogmatics)』의 영역본 간행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학생들에게도 읽혔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부지런히 읽게된다. 박박사의 『교의신학』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베르까워의 영향이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우선 박박사는 베르까워의 저술중 총 10권의 저술을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교의학 연구』영역본은 총 14권임). 그리고 베르까워의 저술을 원용하여 장을 새로이 만든 경우는 단 한 경우밖에 없었지만(『교의신학-신론』,제2편,제8장), 많은 節이 새로이 생겨났고, 세목상에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박박사의 베르까워 사용에 있어서 직접적인 인용에 못지 않게 출처를 밝히지 않은 간접적인 인용이 많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는 베르까워 저술들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하면서 많은 보완 작업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전까지 이와 관련된 분석 작업이 없었으므로, 논자의 분석이 박형룡 신학 연구를 위해서 의미가 있는 독창적 기여라고 論者는 생각한다. 그러나 박박사의 베르까워 사용은 범위가 광범위하고 양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이미 형성된 자신의 교의신학 체계를 위해 자료 보완과 업데이트의 수준에서 그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박박사는 후기 베르까워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 『교의신학』속에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분석 결과 드러나게 된다. 제5장. 후기 박형룡의 화란 개혁주의에 대한 비평적 입장 5장에서는 후기 박형룡 박사의 베르까워 신학 비평과 유럽 개혁주의 신학의 직수입의 반대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석해 보게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1969년에 『기독신보』에 기고한 “G. C. 뻘카우어의 신학”이라는 기고문을 거의 전문을 인용해 가면서 분석해 보았다. 박박사는 베르까워의 신학 사상에 변화가 있었고, 특히 성경관에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비판을 하게 된다. 정통 칼빈주의의 현대적 옹호자로 굳게 믿었던 베르까워에 대한 신뢰심에 금이 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를 자유주의자로 매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는 베르까워가 『교의학 연구』시리즈에 속한 여러 좋은 책자들을 통해서 전통적인 교리들을 잘 변호했다는 사실과 이에 도움을 많이 받은 사실을 결코 잊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후기의 베르까워의 성경관 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슬퍼 하되 그의 신학 자체가 완전히 자유주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절둑거리는 보수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박박사가 『신학지남』에 1976년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은 박형룡 박사가 한평생 동안 수호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온 그의 신학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고 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가 반 세기가 넘는 긴 기간 동안 배우고 가르치고 수호해온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은 한국에 온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전해준 신학으로서 그것을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것이 박박사의 신학 사상과 신앙의 핵심 골자라고 할 수 있다. 박박사는 이미 신학 수업 이전에 이러한 기본적 골자를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한평생 이러한 청교도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신학함과 신앙함의 표준으로 삼았다. 박박사는 구프린스톤 신학이나 남침례교 신학을 배웠으되 청교도 개혁주의의 표준에서 수용했고, 후에 화란 개혁주의의 광범위한 영향을 받았으되 이 표준에 맞추어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박박사가 신학 작업을 주체적으로 했다고 표현할 때에 그 기준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받아들인 한국형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전통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박박사는 반 세기가 넘는 신학함의 길에서 이 전통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적이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6장. 결론 앞선 제 논의들의 결론을 요약하게 된다. 본 논문이 목표한 바 박형룡 박사의 신학 형성과정과 주저 『교의신학』에 나타나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이 지대하였음이 앞선 논의의 결과로 입증되게 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은 박형룡 박사와 벌코프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지도 못했고, 또한 벌코프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바빙크 신학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한 분석 작업도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진다. 사실 박형룡 박사의 벌코프를 통한 바빙크의 수용의 정도를 분석하고 밝히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사료된다. 또한 박형룡 박사의 신학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에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자료들(육필 강의안, 등사본 강의안, 초기 저술들, 그리고 박박사의 장서들)의 수집 보관과 기관이 필요함을 제안하는 것으로 본 논문은 마치게 된다.
박정호 嶺南神學大學校 大學院 2005 국내석사
이상의 목적인 신학과 신앙 혹은 신학과 선포의 일치를 조망으로 살피는 본 논문은 문헌 연구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가능한 한 일차자료들에 근거하여 전개하려했으나 불트만의 신학적 배경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하는 불트만에 관한 이차자료에 의존했으며 기독론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로 불트만의 논문집인 「학문과 실존 Ⅰ-Ⅳ」을 주로 다루었고 설교를 다루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국내에 소개된 불트만의 설교집인 「차안과 피안」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본 연구는 설교를 실천신학적인 입장에서 다루는 한국의 신학적 입장보다는 조직신학적인 입장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설교 방법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설교를 위한 논문임을 밝혀둔다. 제1장에서는 서론으로 신학과 설교의 괴리에서 오는 한국교회 설교의 문제점과 본 연구의 목적과 의의 그리고 범위를 소개 했다. 제2장에서는 불트만의 신학적인 배경을 연구했다. 여기서 불트만 사상의 전반적인 것을 다 다루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 아니기에 그의 신학 사상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배경만을 다루었다. 먼저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비평학을 다루면서 불트만의 학문적 진지성과 객관성확보를 위한 철저한 비평 정신의 발로가 여기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루터교와 신정통주의부분에서는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불트만의 신학적 배경으로 종교개혁의 정신아래에서 '오직 은총'을 강조하는 루터의 '의인론'에 입각하여 그의 신학을 펼쳐 나감을 볼 수 있으며 말씀의 봉사자로서의 불트만의 모습은 이 배경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실존철학과 실존신학에서는 철학에서의 개념정의를 신학에 원용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주로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불트만의 성서 해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밝혔다. 제3장에서는 불트만의 신학 가운데 쟁점이 되었고 오늘날도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다루면서 불트만의 기독론의 핵심인 '현재적 그리스도'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이 둘의 연속성을 주안점으로 논의 할 것이다. 먼저 단일 주제로서는 가장 신학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가를 다루기 위해 1)기독론 주제로서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살피고 2)역사적 예수에 대한 불트만의 입장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추구한 예수 생애의 전기적 구성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검토를 한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인 입장만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3)케리그마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서는 역사적 예수의 선포나 신앙의 그리스도도 선포되어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우리가 이 선포에 응답할 수 있을 때만이 케리그마가 됨을 살필 것이다.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의 연속성부분에서는 설교 속에 현재하는 그리스도, 즉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론적 사건도 말씀의 '현재적' 선포 속에서만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연속성이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독론적 입장에서 설교를 볼 때는 이미 그것은 계시이며 그 계시에 근거해서 세워진 교회는 이 근거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설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지는 부름말로서의 계시인 한에서만 설교이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지는 계시의 말은 현재하는 그리스도로서 선포의 중요성을 다루며 불트만이 설교를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제4장에서는 불트만의 신학과 설교의 일관성의 증거로 「차안과 피안」을 중심으로 설교를 분석했다. 여기서는 설교자로서 불트만이 설교에 얼마나 심사숙고 하는지 그 내용을 살피면서 그의 신학적인 통찰을 보고자 한다. 제5장에서는 본 논문의 결론으로서 전체적인 흐름을 요약하면서 앞으로 신학과 설교의 일관성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일이 한국교회에 가시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를 제안하는 글로 쓰여 질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론으로 본 가정 교회 :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김덕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교회론이 지니는 이 해석학적 기능은 불변성과 적응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뿐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존재 양태와 연관해서도 작용한다.가정교회는 과연 참 교회인가?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가정교회에는 교회의 본질이 머문다. 교회의 본질 즉 '교회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그 본질을 바빙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떤 형이상학적 상태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이원론적인 플라톤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통전성 강조를 특징으로 하는 히브리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essence)은 단순히 내용으로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 도와의 연합 속에 교회의 통일성이 있고, 교회의 거룩성이 있고, 교회의 보편성이 있고, 교회의 사도성이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가정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모여 있으므로 보편적인 교회에 속한다. 교회의 구분으로 들어가서 무형교회와 유형교회, 유기적 교회와 제도적 교회의 비교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무형은 유형으로 나타나며 유기적 교회는 제도적 교회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정교회에는 교회의 본질이 머물며 보편교회에 속한다. 그러나 그 나타나는 양상에서 단위 교회인 에클레시아로 인정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거나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거나 성령의 전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교회의 기능적인 면에서는 예배, 선교, 교육, 친교, 봉사, 치유 등 다양한 기능들을 가정교회에서도 감당하고 있다.교회의 정치를 생각한다면 가정교회는 회중정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땅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 내에 친밀감과 공동체성이 강한 한 지체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참된 교회의 표지 및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헌법에 기초해 볼 때 가정교회는 교회의 본질은 가지고 있으나 교회의 형태로서는 개별 교회라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를 개척할 때 장소를 얻기 어려운 재정적인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개척교회 시절에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사도행전적인 친밀함이 있는 교제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목사가 개척하며 돌아보는 가정교회는 참된 표지에 의거할 때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공동체인 교회 속에 여러 그룹으로 산재해 있는 가정교회, 즉 평신도 지도자가 리더가 되어 성례전을 집례할 수 없는 소그룹인 가정교회를 교회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신도 지도자가 교회에서 하는 예배와 교육과 구제와 선교,또한 초신자에 대한 양육과 돌봄의 사역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단위 교회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또한 에클레시아의 다양한 면모 속에서 가정교회는 가정적인 면이 강조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클레시아에는 지역적 면모가 있다.에클레시아라고 할 때는 반드시 지역교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상 교회는 지역에 그 연고를 두기 때문이다. 에클레시아는 지역교회이기 때문에 지역교회 내에 있는 소그룹인 가정교회를 또 다른 에클레시아로 인정한다는 것은 교회의 질서 속에 혼돈을 초래한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가정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정교회중에서 합법적으로 그 직에 부름받은 복음의 교역자, 즉 목사가 성례를 집례하는 외적인 표지를 지니지 않은 지역교회 내의 소그룹을 단위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 셋째,'가정교회'라는 명칭을 장로교회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신중한 신학적 검토가 필요하다. '가정교회'는 소그룹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자체를 하나의 교회로 인정하는 철학적 기초를 가진 용어이다. 장로교회 내에서 조차도 신학적인 검토 없이 그대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라는 명칭을 교단 산하 교회에서 사용함에 있어서 신중한 신학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한수 교수는 가정교회의 방향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한다. "소그룹 지도자를 "목자" 심지어 "목사":로 승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평신도 지도자들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전문적인 신학교 교육을 받지도 않은 이들 소그룹 지도자들을 독립된 "목자"로, "목양자"로 치켜세울 때 기존 교회 조직체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한국은 아직까지 여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그쪽으로 발전해갈소지가 있어 우려가 된다." 그렇다면 현재 구역을 가정교회로 전환하는 목회현장의 시도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 먼저 긍정적인 시각으로서, 가정교회는 침체되어가는 교회를 살 릴 수 있는 소그룹 운동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소그룹 공동체 운동은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다. 사회가 고도로 분업화, 전문화, 기계화, 정보화되면서 개인들은 더욱더 위축되었고 비인간화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개안과 개인 간의 고립이 가속화되고, 마지막 남은 공동체인 가족이 해체되는 후기 산업사회의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더 공동체적인 요소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끈과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있는 장소, 대화가 있고 삶의 나눔이 있는 그런 인격적인 관계가 보장되는 모임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교회가 조직화된 기계장치가 아니라 유기체임을 아주 생생하게 잘 표현해준다. 한 지역을 놓고 볼 때, 교회는 네트워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수의 영적인 확대가족으로 이루어진다. 이 공동체들이 기능하는 방식은 본질적이다. 유기적인 면을 최소화하고 조직적인 면을 극대화시킨 현재의 교회구조는 조직적인 면을 극소화하면서 유기적인 면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갱신을 이룰 수 있는 이러한 여러 측면들 가운데 특별히 교회의 제도적 체질의 갱신이 있다. 그것은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조직의 길을 가기만 하는 교회에 공동체성을 복원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건강한 교회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소그룹에서만 사람들은 친밀해져서 서로를 알고, 돌보고, 삶을 공유하며, 도전과 도움을 주며, 비밀을 이야기 하고, 죄를 고백하며,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고, 서로를 점검해 주며 함께 성장한다. 사람들의 인격적인 성장은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로부터 나오는 결과이다. 소그룹은 사람들의 성품의 변화와 영적 성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역사적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소그룹 운동이 제도교회를 침체에서 살린 적이 많이 있다. 중세의 수도원운동이 그러했고, 스패너의 '교회속의 작은 교회'라는 경건주의 운동이 그랬고, 한국 교회의 70-80년대 캠퍼스 선교운동이 그러하였다. 이제 현장에 불고 있는 소그룹 운동의 하나인 가정교회에 대해서도 도시화되고 날로 메말라가는 인간관계 속에 사는 현대인들을 공동체 가운데서 초청하여 친밀함을 키우며 성령 안에서 성도간의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가는 생명력 있고 역동성 있는 공동체 운동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가정교회의 용어 사용 및 운영에 있어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협력 가운데 신학적 검증과 발전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분명 가정교회는 공동체적 교회의 성격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로버트 뱅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을 잃고 있다. 우리가 그 때로 돌아가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것을 단순히 모방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모임의 본질적 성격은 이 20세기에도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오늘날의 우리 방식들을 많이 바꾸어야 하겠지만 얻게 되는 것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또한 로버트 뱅크스는 그의 아내와 함께 쓴 책에서 초대 교회 시대와 오늘날의 상황은 '교회 내의 관계유형이나 권위계통이 다르고 교회 모임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이상화하거나 그대로 적용하려는 데는 무리가 있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목회방식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초대 교회의 원리와 정신, 그리고 골격은 그대로 살려 나가되 모임의 형태나 방법에 있어서는 변화를 주어 오늘의 시대적 상황에 맞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목사와 가정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지도자와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예컨대, 성례식이나 권징이 작은 공동체인 가정교회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더라도 큰 공동체인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정교회와 큰 공동체인 교회는 유기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선포와 성례집행은 예배공동체에서 목사가 담당하고, 주중에 성도들을 심방하고 주 안에서 교제하며 돌보는 일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담당함으로써 파트너쉽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전통이 교회의 생명을 죽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하면서 가정교회의 생명력이 교회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러나 제도가 있고 자유와 질서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 자체를 교회로 인정할 때는 부작용과 혼란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역동성, 침투성을 최대한 수용하면서도 질서를 세우는 쪽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속에서 보면 가정교회는 온전한 교회라고 보기에는 제도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하는 사역자들로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느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교회론이 교회론적 체계 자체의 존립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 이론을 위한 이론이어서는 안된다. 삶을 위한 이론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항상 본문에 우선권이 주어져야한다. 그리할 때 우리의 교회론은 적응성을 지닌 교회론으로 자리매김해 갈 것이다. 여기서 교회의 본질을 실천적으로 추구하는 일들이 가능해 질 것이며, 그리하여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교회가 교회되어가는 모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장로교회 내에서 가정교회를 안고 갈 때에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점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nda semper reforma) 이 표어를 마음에 새기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시고 기뻐하셨던 교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계속적으로 개혁되어 나가야 한다. 가정교회는 성경에서 교회가 태동할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지체들의 생활양식이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수많은 가정교회는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오늘날 중국의 가정교회는 중국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핍박과 박해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예배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켜가도록 도우신다. 본 논문을 통하여 "개혁 신학적으로 가정교회를 단위 교회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정교회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보편교회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가정교회를 존중한다. 종교개혁의 정신 속에서 볼 때 가정교회의 주장은 탄력적으로 수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칼빈 조차도 장로교 제도의 가변성을 열어놓지 않았는가? 가정교회의 취지는 너무나 좋다. 목사의 겸손한 섬김과 지도 속에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워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비 본질적인 것에서는 자유를'이라고 외친 종교개혁자들의 경구를 마음에 새기면서 보편교회의 통일성과 일치를 추구하려 했던 하나됨의 몸부림과 함께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를 소원했던 하나님의 일꾼들의 불타는 열정을 가지기를 소망해 본다. 목회현장에 있는 장로교 합동교단 내의 교회 내에서 '가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소그룹을 전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가정교회를 개혁 신학적인 입장에서 고찰하였다. 일선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적어도 그 용어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여 바른 신학 위에서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추후에 더 깊은 연구를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학문적인 면에서 깊은 연구와 계도가 있어서 교회의 본질과 목회의 실제가 어우러진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통하여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 있길 기대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존 웨슬리와 폴 틸리히의 신학방법론 연구 : 오변형 신학방법론 제안
This study is about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which is a combination of the theological methods of John Wesley and Paul Tillich. While Wesley developed his theology with the Quadrilateral method, Tillich used the method of correlation which the context questions and the Bible responds. Wesley’s theological materials are the Bible, reason, experience, and tradition. The four elements are the foundation and pillar that forms the Wesleyan theology. Among the four, the Bible is the most authoritative and primary material and starting point, and the other elements must be verified by the Bible. Tillich’s the method of correlation is theology of mediation as well as an apologetic theology. First, it attempts a apologetic unification of philosophy and theology. While stating the different and common points of philosophy and theology, Tillich looked for the interdependence and ultimate unification of both studies. Second, he searched for the correlation between answer and question which mediates message and context/situation. By mediating two conflicting elements and apologetically synthesizing them, Tillich finds the foundation of method of correlation in the interdependent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an, which begins from religious experience. Tillich’s answering theology occurs from this point. However, Tillich’s the method of correlation is criticized as a contextual theology and attacked as a religious theology because of its excessive focus on cultural context. In fact, Tillich used his theological method as an instrument to communicate with other religions in his later years and was criticized for religiously generalizing theology. I, the researcher, pursue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which is a combination of Wesley’s Quadrilateral method and Tillich’s the method of correlation.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takes the form of inter-combining the Quadrilateral, one of Wesley’s theological elements, and context from Tillich’s theological method. It is almost impossible to compare the theological method of Wesley and Tillich in a unilinear way. However, a unity can be found in both theological methods when examining each materials respectively. Nevertheless,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epistem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ntext between the two methods. I wants to focus on the fact that both Wesley and Tillich developed theologies which the Bible message has the central significance. Therefore, I suggests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which unifies Wesley’s Quadrilateral elements and the philosophical understanding of the existential problems which was discovered in the context which Tillich understood.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analyzes and synthesizes context, which Wesley overlooked in his theological method. In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there is no hierarchical order between the Bible and the other elements. They rather interrelate with one another. Therefore, there is no subordination nor dependence among the elements.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is an approach that tries to explain supranaturalistic method which is irrelevant with specific human context, which the traditional theological method overlooked, and naturalistic method which only considers the specific human context. This is an apologetic technique which the inducive theological method of Wesley’s Quadrilateral method and Tillich’s the method of correlation operates together.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is a theological method that accomplishes fusion of horizon of an invariable which is the Bible message as a unconditional element and another invariable which is human context as a conditional element. Analyzing the geological and religious theological location of the current church is very important in this era. Thinking about how the unchanging message of the gospel can carry out a dynamic role in the extremely volatile context of life can be the opportunity to recover Christianity’s foundational value and role. When the gospel and culture accomplishes an edifying relationship in such situation, the pentagonal theological method can be an important method of investigating truth which can interpret and understand modernity. 본 연구는 존 웨슬리(John Wesley)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신학 방법론이 결합된 ‘오변형 신학방법’에 대한 연구이다. 웨슬리는 사변형 신학방법론(Quadrilateral Theological Method)을 가지고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틸리히의 신학방법론은 상황이 묻고 성서가 대답하는 상관의 신학방법(Theological Method of Correlation)을 사용하였다. 웨슬리는 신학의 자료를 선택함에 있어서 전통적인 신학의 자료들을 활용하였다. 웨슬리가 사용한 신학의 자료는 성서(Bible), 이성(reason), 경험(experience), 전통(tradition)의 4가지인데, 이중에서 성서를 유일한 진리의 표준(norm)과 권위(authority)로 보고 가장 중요한 일차적 자료로 취급하였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웨슬리 신학의 권위의 근거가 되며, 웨슬리 신학방법론을 형성하는 기둥(pillar)이 된다. 이 네 요소는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다. 웨슬리가 사용하는 네 요소는 영국교회의 권위의 요소인 성서, 이성, 전통에 경험을 추가한 것이다. 웨슬리 신학 방법론에서 독특한 부분은 웨슬리가 네 가지 요소를 동시에 언급하지 않고, 순서적으로 나누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신학에 있어서 성경은 가장 권위 있는 일차적인 자료이며 출발점이다. 네 가지 다른 요소들도 성서를 해석하고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언제나 성서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틸리히의 상관의 신학 방법론은 성서와 상황이 상관의 관계를 통하여 상황이 질문하고 신학이 대답하는 응답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틸리히의 신학은 중재의 신학이자 변증신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기 자유주의와 정통주의 신학을 중재하려고 했으며 나아가서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케리그마 신학(kerygmatic theology)과 상황을 강조하는 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을 중재하였다. 틸리히 신학의 착상(conception)은 마틴 켈러(Martin Kähler)가 주장한 ‘신학의 과제는 중재다’(The task of theology is mediation)이라는 말을 수용한 것이다. 틸리히의 중재의 신학의 개념은 현대의 세속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종교언어가 그 전달 능력을 상실한 현대의 상황 속에서 종교의 실체적인 능력과 실용성을 현대인들에게 다시 환기 시키고 각성시키고자 했다는데서 그 의의를 가진다. 틸리히에 의하면 변증신학은 상황만을 강조하여 메시지의 본질을 약화 시켰고 반면에 케리그마 신학은 메시지의 독자성과 본질만을 강조하므로 상황을 악화 시켰다고 보았다. 따라서 틸리히는 케리그마 신학과 변증 신학의 장단점을 비판하고 중재하는 새로운 신학을 모색했다. 틸리히는 그 대안을 위하여 상관의 신학 방법론을 착안했다. 상관의 신학방법은 메시지와 상황 어느 것도 소외시키지 않고 서로 연합하는(unifying) 방법이다. 그는 신학의 중재적 과제를 해결하는 신학적 방법을 상관관계(correlational relationship)에서 찾았다.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첫째로, 철학과 신학의 변증법적 통일을 시도한다. 이것은 일찍이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그는 신학과 철학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논술하면서 양자의 상호 의존성을과 궁극적 통일을 모색했다. 두 번째로, 틸리히는 메시지와 상황을 중재하는 대답과 질문의 상관관계를 모색한다. 그는 이러한 상관의 방법을 가리켜 변증법적 통일의 상관관계라고 한다. 대립되는 두 요소를 중재하고,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방식이 곧 상관관계의 방법이다.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의 근거를 종교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찾는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위한 우리,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형식에서 발견되는 관계이다. 여기서 틸리히의 응답하는 신학(answering theology)이 발생한다. 하지만 틸리히의 상관의 신학방법론은 인간의 문화적 상황에 지나치게 무게 중심을 둔 나머지 상황신학이라는 비판과 함께 종교신학화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틸리히는 그의 생애 말년에 자신의 신학 방법을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므로 신학을 종교일반화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구자는 웨슬리의 사변형 신학방법론과 틸리히의 상관의 신학 방법론을 종합하는 오변형 신학방법론을 연구하고자 한다. 오변형 신학 방법은 웨슬리의 신학 요소인 사변형과 틸리히의 신학 방법 중에 상황을 상호 종합하는 형식을 가진다. 웨슬리와 틸리히의 신학 방법론을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양자의 신학 방법론은 각각의 신학적 자료를 검토할 때 동일성이 발견된다. 다만 웨슬리와 틸리히에게 있어서 상황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는 많은 차이가 있다. 틸리히는 상황 속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들을 성서 메시지로서 대답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곧 인간 실존과 신적인 자기 계시를 상호 관계시키는 것이다. 연구자는 웨슬리와 틸리히의 성서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신학을 전개했다는 점에 주목하므로 사변형의 나머지 요소들과 틸리히가 이해했던 상황 속에서 발견되는 실존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결합하는 오변형 신학을 제안한다. 오변형 신학은 웨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