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성종 대에 이르는 시기까지 조선에서는 많은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태조 시기의 『高麗國史』, 태종 시기의 『東國史略』, 세종시기의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全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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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韓國傳統文化大學校 大學院, 2018
學位論文(碩士) -- 韓國傳統文化大學校 大學院 , 文化遺産學科 歷史遺産 專攻 , 2018.2
2018
한국어
911.03 판사항(5)
충청남도
A comparative study of the "SamGugSaJeolYo(三國史節要)" and antecedent history
50 장 ; 26 cm
참고문헌 수록
I804:44031-2000000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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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성종 대에 이르는 시기까지 조선에서는 많은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태조 시기의 『高麗國史』, 태종 시기의 『東國史略』, 세종시기의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全史』, 세조·성종 시기의 『三國史節要』, 성종 시기의 『東國通鑑』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에서는 고대사 정리를 위해 『三國史節要』를 편찬하였는데 『三國史記』와 『東國史略』을 저본으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책명으로만 본다면 『三國史節要』는 『三國史記』를 간추린 내용이어야 하지만 『三國史節要』는 단순히 『三國史記』를 간추린 내용이 아니다. 삼국사 이전의 단군 조선부터 기자 조선, 위만 조선, 사군, 이부, 삼한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으며 『三國史記』 에 없는 내용이나 다른 내용을 『三國遺事』, 『殊異傳』, 『東國李相國集』을 활용하여 기사를 수록하였다. 이런 점만 보아도 『三國史節要』는 『三國史記』를 줄인 내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三國史記』는 기전체로 되어 있는 역사서이고 『三國史節要』는 편년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같은 편년체 역사서인 『東國史略』이 이미 편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三國史節要』를 편찬하였을까? 그 이유로는 『三國史節要』는 『資治通鑑』의 정통성을 잇고자 하였다. 조선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세워진 나라인데 『資治通鑑』은 제왕을 위한 역사서로 조선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다. 뿐 만 아니라 通鑑을 쓰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를 연대순으로 모으고 이것을 다시 정리를 하여 체재를 갖추게 되는데 이것을 長篇이라고 한다. 『三國史節要』는 장편으로 이루어진 역사서로서 『東國通鑑』 수찬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중간 과정인 것이다. 또 세조는 사대적 명분론이나 유교적 교훈사관에서 탈피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민족적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역사서를 편찬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명분에서 『東國史略』은 맞지 않았다. 『東國史略』은 유교도덕사관에 입각하여 편찬자의 이념이 강하게 개입된 역사서로서 춘추의리관에 입각하여 역사비판을 하였기 때문에 세조가 추구하던 역사서와는 그 성격이 같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東國史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역사서를 편찬하고 자 한 것이다.
『三國史節要』가 『三國史記』를 줄인 사서가 아니라면 『三國史節要』와 『三國史記』의 기사내용은 차이가 있을까? 『三國史節要』는 『三國史記』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역사서 이므로 대부분의 기사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기전체에서 편년체로 재편집 되면서 삼국 상호간 겹치는 기사일 경우 좀 더 상세한 나라의 기사를 채택하여 수록하였고 같은 기사내용이지만 각 나라 별로 자세한 상황이 있을 경우 각각의 기사를 혼합하여 하나의 기사로 만들어 수록하였다. 그 외에 같은 기사이지만 『三國史記』외에 『三國遺事』, 『殊異傳』, 『東國李相國集』에 다른 내용이 있다면 『三國史記』와 나란히 수록하기도 하였고 『三國史記』에 없는 내용은 첨가하여 수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三國史記』보다 더 많은 내용을 수록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三國史記』의 내용을 삭제한 기사가 더 많으며 대부분은 分註로 수록되어 있는 것들 이었다. 이름, 지명에 대한 이칭에 대한 것 이외에도 국내 기사와 다른 내용의 중국 측 기사, 국내기록에는 없는 중국 측 기사 등을 삭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三國史節要』가 가지는 이중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역사서를 편찬 하면서 『資治通鑑』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고 『三國史記』보다 더 풍부한 고대 역사서를 만들고자 하였음에도 중국의 기사는 고증조차 하지 않고 배제해 버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이제까지 『三國史節要』는 『三國史記』에 비하여 학계의 주목을 덜 받은 역사서 이다. 물론 그 중요도가 『三國史記』에 비해 더 높은 것은 아니지만 『三國史節要』가 가지는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가 더 활발해 진다면 『三國史節要』의 가치는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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