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매소성 전역에 대한 논쟁과 기존의 필자에 대한 비판 및 지적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현재 매소성에 대해서는 그 위치를 연천 대전리산성과 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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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매소성 전역에 대한 논쟁과 기존의 필자에 대한 비판 및 지적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현재 매소성에 대해서는 그 위치를 연천 대전리산성과 양주 ...
본고는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매소성 전역에 대한 논쟁과 기존의 필자에 대한 비판 및 지적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현재 매소성에 대해서는 그 위치를 연천 대전리산성과 양주 대모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충돌하고 있고, 매소성 전역의 실상에 대해서도 신라의 주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과 당이 한반도를 방기하였다고 보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매소성 전역 가운데 675년 2월의 칠중성・매소성 전투를 새롭게 파악한 연구들이 학계에 제출되었다. 이러한 연구에서 핵심은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675년 2월의 칠중성 전투와 675년 9월 이후의 칠중성 전투가 동일한 사건이라거나 매소성 전투가 675년 2월에는 없었고 675년 9월에만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필자가 검토해본 바에 따르면 전자는 연천 대전리산성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린 무리한 추정이고, 후자는 중국 사서의 내용을 후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맞추어 해석하여 내린 결론이라 여겨진다. 또한 천성 전투의 목적을 보급과 공격(상륙전) 둘 가운데 하나로만 볼 것이 아니라 둘 다 포함하며, 나아가 만약을 대비한 후퇴의 효율적 지원까지 모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근의 새로운 시각들은 이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당은 이러한 목적을 각 전투에서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반면, 신라는 절기와 날씨를 계산하여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냉철함을 보여주었음과 동시에 주체적인 역량으로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러한 사항들을 통해 매소성 전투의 위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매소성의 위치는 연천보다 양주가 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는 점이 본고의 요지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aims to take writer’s stand about the pointing out and criticism about an argument, have been take place lately, for the warfare of Maeso-seong Fortress writer’s previous point of view about it. At the present moment, about the decision...
This paper aims to take writer’s stand about the pointing out and criticism about an argument, have been take place lately, for the warfare of Maeso-seong Fortress writer’s previous point of view about it. At the present moment, about the decision of the location of Maeso-seong Fortress, the two arguments are conflicting between Yeoncheon Daejeonri-sanseong Fortress and Yangju Daemo-sanseong Fortress. And about a truth about the warfare of Maeso-seong Fortress, the two arguments are colliding between the opinion to emphasize Silla’s autonomous role and the other opinion that the Tang dynasty abandoned the warfare.
However there are some studies, are published lately, with some new opinions about the battle of Maeso-seong Fortress and Chiljung-seong Fortress, Feb, 675, in the warfare of Maeso-seong Fortress. The key point of those opinions are founded on Samguk-sagi, and they are that two battles Feb and Sep, 675 were originally one event, or the battle Feb, 675 was not existed. But on the writer’s examination, the former seems an unreasonable argument to support the theory, that Maeso-seong was located on Yeoncheon Daejeonri-sanseong. And the latter’s conclusion is considered to interpret the Chinese historical records in accordance with the record of Samguk-sagi, that were published later. It’s reasonable to consider the purpose of the battle of the Cheon-seong Fortress were on both side of the supply and attack (amphibious warfare), and there were also another purpose the baking for retreat junst in time of emergency. So, I think that It is not one or the other, but both. Those new studies have the sides, that are overlooking these details. While Tang dynasty didn’t attain those goals in each battle, Silla won a victory through considering date and weather, and a leading capacity to attack enemy’s weak point with insistence. From this perspective, we can understand the stature of the warfare of Maeso-seong Fortress, and reconfirm the location of Maeso-seong Fortress more likely to be Yangju, not Yeoncheon. It’s the gist of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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