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의 자질의 기준은 어디인가? 우리에게 통치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특히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그 영향력과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가히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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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2007
학위논문(석사) --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 신학과 실천신학전공 , 2007. 2
2007
한국어
231 판사항(4)
광주
ii, 96p. ; 26cm
참고문헌: p. 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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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통치자의 자질의 기준은 어디인가? 우리에게 통치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특히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그 영향력과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가히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
통치자의 자질의 기준은 어디인가? 우리에게 통치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특히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그 영향력과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가히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아직 인식도 못한 가운데서 누군가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통치자의 바르고 현명한 통치 아래 자신도 모르게 따스함과 포근함, 활기찬 생활, 풍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통치자 아래에 있게 된다면 현실과 미래가 다같이 어두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회의 안정기반에 조금씩 금이 가는 누수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런 현상은 공무원들이나 교육기관, 군사체(군대)에서부터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게 서서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과연 한 국가의 통치자가 되는 사람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관용과 협력을 중요시 하고, 미래 지향적인 통치력을 발휘하여, 국가의 이익이 된다고 하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회와 국민을 설득시킬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도 아니요, 자신의 영욕에 근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경제와 외교 더 나아가 국방에 심오한 지식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민, 그들을 어떻게 하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하겠는가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통치자도 사람이기에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뒤흔드는 망령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험’이라는 단서도 붙여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과 같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국민은 통치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의 됨됨이도 알고 있다. 언어에 있어 달변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언사(言事)를 삼가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정중하고 신중하며, 도리를 따져서 말해야 한다. 그것은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물며 자신을 밀어주고 뽑아준 국가의 주인인 백성들 앞에서 신정잡배(市井雜輩)들이나 쓰는 속된 언어를 사용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겸손해야 한다. 그가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알 수 있다. 겸손하여서 솔선수범하여 검약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발전을 통한 사회의 약자들을 동정하고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한 제스처가 아닌 비밀스럽고, 따듯한 어루만짐이 만인의 입에 회자되어야 하는 것이다.
통치자의 발걸음은 국민들의 마음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맺히게도 하며, 분노를 삭이게도 한다. 자신을 위해 국고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좀 허름해지더라도 백성들이 편안하고, 생활이 점점 나아지고, 국가의 군사력이 강력해질 때 통치자는 그늘에서 존경받고, 위대해지는 것이다.
외교에 있어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무시를 당하더라도 국가가 번영하는 쪽으로 간다면, 백성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통치자는 개인의 위신을 고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쉬운 말로 말하자면 ‘눈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지하고 경솔하여 상대를 누르고, 자신의 위신이 높아졌을지는 몰라도 그의 백성들은 배를 곯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혹 전쟁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국부의 성장엔진을 달아주는, 어느 국가 어느 통치자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방위력과 응징력을 갖춘 강군(强軍)을 만들 수 있는 우리의 형과 같고, 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통치자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이제 교회와 성도는 우선 자신의 권리를 사용함에 있어 기도와 신중함으로 통치자를 선별하여 선택해야 하는 커다란 책임이 있다. 이것을 망각하고서는 우리는 또다시 고난과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치자로 선택된 사람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그의 통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건전한 비판과 질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파괴적이고 무질서는 용인 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지상세계는 불완전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가 실제 세력을 쓰는 곳이다. 허나 성도와 교회의 깨어있음과 분별력은 자유세계에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안녕, 질서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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