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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宮廷舞蹈發展的歷史軌迹及其深遠影響

        王克芬 ( Wang Ke-fen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4 민족무용 Vol.6 No.-

        본 논문에서 언급하는 궁정무용은 궁정에서 연출되거나 창작된 모든 무용을 말한다. 궁정무용은 의식과 제사에 사용된 것, 감상과 오락에 사용된 것, 그리고 이 두 기능을 겸비한 것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중국 주 왕조 시대는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 영주제로 향하는 과도기로, 이 때 예악제도 제정을 위해 아악이 탄생하였다. 아악의 형성은 궁중무용의 정식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아악은 고려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경화된 아악보다는 생동적이고 활발한 민간의 악무가 대대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무용은 감상을 위한 예술무용이었다. 한대에는 잡기, 음악, 무용, 무술 등 다양한 기예를 포함하는 ‘백희’가 유행하였다. 이 ‘백희’는 당시 민간에 널리퍼졌을 뿐 아니라 외국사절과 소수민족 수령을 영접하는 궁정 연회석에서도 공연되었다. 이것은 오락과 관람을 위한 것이었다. 한대의 아악에는 백성들의 생활에서 유래한 영성무(靈星舞) 와 파투무(巴渝舞) 가 출현했다. 영성무 는 16명의 남자 아이들이 농사 활동을 모방하여 추는 춤이다. 원래 파투무 는 파산과 유수 사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판순만이(板循蠻夷)’ 민족의 무용이었는데, 한 고조가 이것을 악부에 편입시켰다.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무용의 오락성이 크게 강조되었고, 청상악(淸商樂) 이 형성되어 장안, 낙양부터 강남 일대까지 널리 퍼졌다. 당대에는 무용예술이 고도로 발달하였고, 구부악(九部樂) , 십부악(十部樂) , 좌부기(坐部伎) , 입부기(立部伎) 등의 궁정연악이 창조되었다. 이들은 소수민족의 악무를 하찮게 여기던 앞 시대와는 반대로 외국 각 민족의 민간 악무를 당당하게 궁정연악의 악부에 포함시켰다. 당대 궁정연악은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성이 높고, 형식이 화려하며, 주제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당대 무용 가운데 건무, 연무, 대곡, 가무희 는 기예수준이 높고 널리, 그리고 오래 전승된 무용이다. 송대의 궁정대무는 이런 당대의 일부 악무를 계승하였다. 당대의 궁정무용은 일본 및 조선에 전파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아악 무용 가운데는 아직도 춘앵전(春鶯囀), 난릉왕(蘭陵王) , 발두(拔頭) 등이 보존되고 있다. 12세기 남송 시대에는 독립된 공연예술로서의 무용이 점차 쇠퇴하고, 희곡 안에서의 무용이 점차 발전하였다. 희곡은 당대의 무용이 공연예술분야에서 누리던 정통의 지위를 대신하게 되었다. 청대의 통치자는 만주족으로 그들의 궁정연악은 만주족의 색채를 선명하게 띠고 있다. 만주족의 활 쏘고, 말 타는 생활을 반영하였다. 청대 말년에는 裕容齡(1882~1973)이라는 걸출한 무용가가 배출되었다. 그녀는 구미 무용을 최초로 학습한 무용가로 이사도라 던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만주족의 귀족 출신인 그녀는 다년간 외국에서 무용을 배우고, 귀국 후에는 민족무용을 공부하여 중국 춤을 소재로 공연하였다. 궁정무용의 흥망성쇠는 국력의 강성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중국의 봉건제도가 해체됨에 따라 ‘궁정무용’도 사라졌으나,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는 중국 당, 송 시기에 전래된 악무를 ‘당악’이라 통칭하면서 보존하고 있다. The court dance refered in this dessertation is all dances which were produced or created in court. Court dance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one for ceremonies and sacrificial rites, one for appreciation and entertainment, and one that has those two functions. The Chu Dynasty is a transitional period from slavery society to a feudal system. In this age, ceremonial music(A-ak) has been created to invent 'Li Yue' system. Formation of ceremonial music signified formal advent of court dance. Ceremonial music had a great effect on states around China as well as Koryo. In the age of Ch'un ch'iu and civil wars, lively and vigorous music-dance(Akmu), entertained by the popular, appeared instead of ceremonial music which was extremly formal. This new type of dance, music-dance was an artistic dance for appreciation. In Han Dynasty, 'Bai Xi' which included miscellaneous skill, music, dance, and martial arts, was popular. Not only was it widespread to the people, but also it was performed at court banquets welcoming foreign missions. This was for entertaining and appreciating. < Ling Xing Wu > and < Ba Yu Wu > appeared in ceremonial music at this period. These two dances were originated from people's life. < Ling Xing Wu > is a dance for 16 boys imitating farming activity. < Ba Yu Wu > was originally a dance of the ethnic 'Bansoonmani' who dwelled between Pasan and Yusu. Then Kao Tsu in Han Dynasty classed this in Akbu. In Wei, Chin, and the period of North and South dynasties, the charicteristic of entertainment in dance was strongly emphasized, and < Qing Shang Yue >, formed in this age, was widespread Ch'ang-an, Loyang, and all over the south part of a river. Dance as an art was highly developed in T'ang Dynasty. Also, court musics such as < Jiu Bu Yue >, < Shi Bu Yue >, < Zuo Bu Ji > and < Lo Bu Ji > were created. In contrast with former times when ethnic music-dance had been neglected, in T'ang Dynasty, even foreign ethnic music-dance were included in Akbu for court music-dance. This music-dance in the age of T'ang was only for appreciation, which was highly artistic, and which had sophisticated form as well as clear motif. Among dances in this age, < Jian Wu >, < Ruan Wu >, < Da Qu > and < Ge Wu Xi > had advanced technique. They especially spreaded extensively and lasted long. Those music-dance was partly passed down to the Sung Dynasty, also to Japan and Chosun. < Chun Ying Zhuan >, < Lan Ling Wang > and < Bo Tou > still remain in Japanese ceremonial music and dance. Neverthless, in 12th century(south Sung period), dance as an independent performing art eventually declined, whereas dance in play developed. Plays gradually took the place of the orthodox position of dances. Court music-dane in Ch'ing Dynasty was extremely Manchurian since it was reigned by the Manchurian ethnic. Hence, these art form reflect horse riding and shooting arrows which were the life style of the Manchurian. A talented dancer, Yu, Rong-Ling(1882~1973) appeared at the last years of Ch'ing. She was the first Chinese dancer who leared European and American dance. Also she was the only Chinese who learned from Isadora Duncan. Born in a Manchurian noble family, she trained dance abroad for several years. After coming back to China, she studied ethnic dance and performed Chinese dances. The rise and fall of court dance have much to do with power of the nation. As Chinese feudal system dissolved, 'court dance' also disappeared. Nonetheless, music-dance from T'ang and Sung Dynasty is still preserved under the title of 'Tang Ak' in Japan and Korea.

      • IT를 이용한 전통 무용 지도의 가능성

        미타노리아키 ( Mita Noriaki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9 No.-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원격회의를 진행하는 IT 최고의 기술「Video Conference System」을 통해, 「세계 최고(最古)의 전통 무용」인 가가쿠(雅樂, 일본의 아악)을 가르친다고 하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한일 문화 교육 프로젝트가 오늘날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도쿄의 미즈호 가가쿠카이(瑞穗雅樂會)의 협력 하에 기획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가가쿠는 신에게 봉헌되는 의례음악(儀禮音樂)으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가가쿠를「일본만의 독특한 전통음악 및 무용 예술」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천수백년 간 계승되어 온 가가쿠는 실은 일본 고유의 예능이라기 보다는, 고대 중국과 한반도, 동남아시아에서 인도, 페르시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경유한 문화교류가 탄생시킨, 그야 말로「고대 아시아의 음악과 무용의 집대성」인 것이다. 가가쿠 중에『고마가쿠(高麗樂)』라 불리우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통해 유입한 음악과 춤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고마가쿠춤의 전문가를 육성해 그들로 하여금 일본 연주가의 연주에 맞추어 고대 한국의 춤을 추게 하는「진정한 문화 교류」를 이루고자 기획된 것이다. 허영일 교수의 영단(英斷)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도입된 본 시스템을 통해, 한일 우정의 해, 한국인을 위한 고마가쿠 레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9월,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 홀에서, 다음 10월에는 도쿄 가쿠슈인대학 백주년 기념회관(學習院大學百周年記念會館)에서「고마가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제1부, 허영일 교수와 미타노리아키 악사의 강연에 이어, 제2부는 일본 미즈호 가가쿠카이의 연주에 맞추어 한국의 무용가가 쌍룡무(雙龍舞)인「나소리(納曾利)」를 공연하였다. 고마가쿠의 진전한 귀향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후, Video Conference System을 이용한 수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식수업을 통해 계속되었으며, 12월 초순에는 수강생 전원에 의한 가가쿠 공연이 이루어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훌륭한 지도자에 의한 직접 지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할 경우, 원격 레슨의 방법론을 숙지한 교육자가 있다면 Video Conference System을 이용한 지도는, 기대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필자는 고대 아시아 음악, 무용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가가쿠」를 아시아인이 함께 향수(享受)하는 것이, 장래의 아시아 공조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더 나아가 정신적인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インターネット経由で遠隔地同士をつなぎ、遠隔会議を行う「Video Conference System」という最新のIT技術を利用して、「世界最古の伝統舞踊」である雅楽のダンス·レッスンを行うという、世界に類を見ない日韓文化·教育プロジェクトが、いま、ソウルの韓國藝術綜合學校と、東京の瑞穂雅樂會の間で進められ、確かな成果をあげつつある。 日本の雅楽は、神仏に捧げるための儀礼音楽という一面を持つ。そのため日本人のほとんどは、雅楽を「日本独自の伝統的な音楽・舞踊芸術」だと信じている。 しかし、日本で千数百年の間、連綿と継承されてきた雅楽は、実は日本固有の芸能などではなく、古代中国、朝鮮半島、東南アジアからインド、ペルシャに渡る、シルクロードを経由した文化交流が生んだ、まさに「古代アジアの音楽·舞踊の集大成」なのである。 雅楽の中に『高麗楽』と呼ばれる、古代日本が朝鮮半島から輸入した音楽と舞がある。今進められているプロジェクトは、韓国で高麗樂の舞人を育て、彼らが日本の演奏家の演奏に合わせて古代朝鮮の舞を舞う「本物の文化交流」の実現を目指すものである。 許榮一教授のご英断で韓國藝術綜合學校に導入された当該システムが、日韓友情年二〇〇五に向けての韓国人のための高麗楽舞楽レッスンを支えてきた。 そして昨秋九月にソウルのKNUAホールで、翌十月には東京·学習院大学百周年記念会館で「高麗楽シンポジウム」が開かれた。 第Ⅰ部、許榮一教授と三田徳明の講演に続き、第Ⅱ部は、日本の瑞穂雅樂會の演奏に合わせて韓国人の舞人が双龍舞「納曾利」を舞う。高麗樂、真の里帰り。歴史的な瞬間であった。 その後、Video Conference Systemを用いた舞踊レッスンは、韓國藝術綜合學校の正課の授業として継続し、十二月初旬には受講生全員による雅楽公演も実施し、大きな成果をあげた。 確かに、優れた指導者による直接指導は最良の教授法である。しかし、その実施条件が整わない場合、遠隔レッスンの方法論を熟知した教授者がいればVideo Conference Systemを利用したダンス指導は、人々の期待以上に強力な武器となり得ることは間違いない。 私は、古代アジア音楽·舞踊の集大成である「雅楽」をアジア人が共に享受することが、将来のアジアの共同・協調のための歴史的·文化的、そして精神的な礎石と成り得るものだと信じて止まない。

      • 유목문화를 기저(基底)로 한 몽골무용 특징 연구

        천은혜 ( Cheon Eun-hye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8 No.-

        본 연구는 춤을 인간 행위의 한 국면이며 다양한 문화현상 중의 하나로 정의할 때, 춤이란 문화적으로 그 존재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문화는 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무용인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춤의 연구를 위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바, 유목문화를 기저(基底)로 한 몽골무용 특징 연구에 그 목적이 있다. 연구방법으로는 첫째, 실기 학습을 통해 익힌 부위법(部位法)으로 몽골무용의 구조를 분석하고, 둘째, 몽골무용 움직임의 질적 분석을 위해 Choreometrics 분석, Effort-Shape 분석, 면담분석을 하였다. 연구 결과, 몽골의 유목 문화적 특질은 기마(騎馬)문화와, 주거문화로 대표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발생된 몽골무용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첫째, 상반신의 움직임이 하반신의 움직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으며 둘째, 상반신 중에서도 어깨의 움직임이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와 같은 움직임의 원인은 몽골의 유목 문화적 특징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말을 탈 때 하체는 거의 고정되어 움직임이 자제되지만, 상체의 경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와 가혹한 자연환경으로 이동식 주거 문화가 발달하고, 실내에서 앉아 여가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체의 움직임이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is the study of the feature of Mongolian dance base on its nomadic culture. This study uses two methodological steps. First, analyzing the structure of Mongolian dance by Part-Using-Rule which was acquired by practical exercises in the class. Second, analyzing the quality in movement of Mongolian dance by Choreometric, Effort-Shape and interview methods. The two traits of Mongolian nomadic culture can be represented as horse riding and tent-residing culture. And which explains the reason why the Mongolian dancers use their upper parts of the body, particularly their shoulder, more than lower parts of the body. When a person is riding a horse, unlike the lower parts of the body, the upper parts can be moved easily. And because of the tough environment, the Monglians had to spend so much time in their tent sitting on the ground. Such circumstances made the them use the upper parts more than lower parts.

      • 한국양악의 연구와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시사점

        김춘미 ( キムチュンミ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8 No.-

        오늘날 세계는 전지구적인 변동을 하고있기 때문에 개별 예술장르 또한 세계 각국 문화의 새로운 흐름에 따라 그 다양성과 독자성에 기준을 두고 평가되어야만 한다. 한국 양악 역시 새로운 시각의 정립이 필요한데,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문화적 연구시각은 이 문제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기존의 단선적인 경제위주, 혹은 인류학, 문학 등의 단선적인 접근에서 탈피하여 각 문화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한 다층적인 시각에서 예술 장르를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19세기말, 한반도는 유럽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의 개항 압력과 함께 교회의 찬송가 형태의 <창가>라는 새로운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신교육이란 명목으로 양악의 일본 창가화가 이뤄졌다. 광복 이후 한국 양악은 이념과의 갈등으로 분열, 대한연주가협회와 조선음악 가동맹으로 이분되었다. 이러한 이념적 굴곡을 겪은 한국 양악은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음악적 순수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1950년대 모더니즘 방향 전환 이후, 1970~80년대 한국의 근대사와 함께 한국 양악은 음악적 순수성을 위해 다양한 변모를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복잡다단한 세계 음악의 기류 속에서 문화적 역동성과 생산력을 견지한 한국 양악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세계와 직ㆍ간접으로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문화적 맥락에서 그동안 한국양악의 역사적 발자취를 세계적 안목으로 살펴나감과 동시에 상호작용의 영역과 내용을 더욱 생산적으로 감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今日、世界は全地球的な変動をみせており、芸術ジャンルもまた世界各国の多様性や特自性により評価すべきである。韓国の洋楽もまた新しい視角での成立が必要であるが、アルジュンアパドライの文化的な研究視角はこの問題にたいして重要な示唆点を与えている。これまでの単線的な経済重視、又は人類学、文学などの単線的な接近から脱皮し、それぞれの文化の密接な相関関係を考えた多層的な視角での芸術ジャンルを認識しなければいけないのである。 19世紀末、韓半島はヨーロッパをはじめアメリカと日本の開港圧力とともに、教会の賛美歌形式の「唱歌」という新しいジャンルを経験するようになる。以後、植民地時代には新教育という名目下で洋楽の日本唱歌化が進んだ。 解放以後、韓国の洋楽は理念との葛藤や分裂、大韓演奏家協会と朝鮮音楽家同盟に二分化された。このような理念の屈曲をへた韓国の洋楽は米軍政期にはいり、音楽的な純粋性を模索するようになる。 1950年代、モダニズムの方向転換以後、1970-1980年代、韓国の近代史とともに韓国の洋楽は音楽的な純粋性を維持するために様々な変貌を志すようになる。そして、1990年代後半に入ってからは複雑な世界音楽の流れのなか、文化的な力動性と生産力のある韓国洋楽の立場を固めるようになる。 今日、我らは多様な世界と直・間接的な関係をもっている。よって、文化的な脈絡から韓国の洋楽の歴史的な跡を世界的な眼目で考察し、相互作用の領域と内容をより生産的にはかって行く必要があるのではなかろうか。

      • 남인도의 제의무용극 무디예뚜(Mudiyettu)의 연행양상

        허동성 ( Huh Dong-sung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8 No.-

        무디예뚜는 인도 남서부 께랄라 주에서 장구한 세월을 통해 전승되어 온 제의적 무용극 형태로서 고대 인도 종교무용의 연행양상을 추찰케 하는 행위전승자료이다. 무디예뚜는 힌두교의 주요 여신 중 하나인 칼리여신의 축역신화를 무용과 연극적 몸짓을 통해 재연하는 무용극 형식으로서 칼리여신의 사원 주위의 공터에서 칼리여신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연행된다. 본고에서는 무디예뚜의 연행배경과 연행양상에 관해 논구하였으며 구체적으로 무디예뚜의 연행계층과 상연텍스트, 연행구조, 훈련방식에 관해 고찰하였다. 무디예뚜는 일차적으로 칼리여신을 위무하기 위한 행위공양수단의 일환으로 연행되는 점에서 제의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다. 또한 연행내용을 규정하는 극적 서사는 칼리여신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 다리까와 다나벤드라를 처단함으로써 세상의 안녕과 평안을 회복한 구세/축역신화를 취하고 있다. 공연 전에 행해지는 바드라칼리 여신의 형상(kalam) 그리기 의식은 무디예뚜 공연의 독특한 관행이며 칼리여신의 위용을 구축하는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색채분장과 의상은 공연의 주술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형상표현요소로서 중시된다. 본 공연은 수 시간에 걸친 칼리여신과 악마들의 치열한 결투로 일관되며 칼리여신의 악마들을 처단하여 질서와 정의의 회복하는 상징적 행위로 종결된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performative characteristics of Mudiyettu, a rare ritualistic dance form which had been transcended for long period in the middle zone of Kerala state located in south-west India. Mudiyettu is performed at the goddess Kali's temple to amuse the goddess by representing the mythic story which describes Kali's victory over two demons, Darika and Danavendra who threaten the peace of the world. This study intends to describe the performer's class, performance text, performance structure and training process of Mudiyettu.

      • 修羅能(슈라노)와 『平家物語(헤이케모노가타리)』

        김현욱 ( Kim Hyeon-wook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5 민족무용 Vol.8 No.-

        世阿弥는 흉내내기 중심이었던 能를 歌舞중심의 아름다운 能로 양식화 시키고 能의 예술성을 현저히 향상시켰다. 그러한 世阿弥의 업적을 뒷받침 해 주는 것이 그가 창작한 다수의 謠曲이며 예술론이다. 世阿弥能의 대부분은 저명한 고전문학의 세계로부터 歌舞에 어울리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골라 서정성 풍부한 미적세계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世阿弥의 修羅能의 세계에서는 『平家物語』의 작품 안에서 아름답게 사라져 간 비극의 무장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풍아하고 정취 깊은 能로 발전시켰다. 본 논문은 그러한 世阿弥 修羅能가 典據로 하고 있는 『平家物語』의 수용양상에 대하여 살펴 본 것이다. 우선 世阿弥의 修羅能로서 확실시 되고 있는 『実盛』『頼政』『八島』『淸経』『敦盛』『忠度』의 여섯 곡을 들어 典據, 즉 本說인 『平家物語』의 본문과의 관련을 비교하여 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実盛』는 『平家物語』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하지만,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용의주도한 계산하에 배치하여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부상시키고 있다. 『頼政』의 경우는 『平家物語』「橋合戰」과 「宮御最期」항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독자적인 표현에 의하여 老將의 최후를 묘사하고 있다. 『八島』는 本說의 요약과 각색에 그치지 않고 『平家物語』를 완전히 벗어나 世阿弥독자적인 修羅道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淸經』에서는 전쟁의 패배자만이 겪는 비참함을 謠曲으로 극화함으로써 『平家物語』의 비극적인 요소를 한 층 극대화 하였다. 『敦盛』『忠度』의 경우는 피리나 和歌와 같은 예술성 짙은 요소를 중심 소재로 다루어 고전적인 정취를 극대화 시켰다. 世阿弥이전의 修羅道의 고통을 그리던 古修羅物의 전형에서 완전히 탈피한 풍아하고 서정적인 修羅能의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世阿弥는 修羅의 고통이라는 점을 배제한 풍아하고 정취 깊은 能야 말로 修羅能가 지향해야할 能라 제시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는 이러한 修羅能의 작법이 여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배경에는 足利義滿장군이라는 당대의 제일 권력자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Zeami's mimicking the thing develops Nho(能) at the center no at the sing and dance center, and the artistry of Nho has been improved. It is a lot of Youkyoku(謡曲) and an art theory to put the achievement of such Zeami in the mark. Nho of Zeami chooses a graceful hero from the world of a famous classical literature. The rich expression of feelings aesthetic world is created by such heroes. Especially, the samurai of the tragedy beautifully ruined in 'The Tale of the Taira Clan' is made a hero, and it has developed no of rich expression of feelings in the world of Shuranou of Zeami. This text is the one that the receipt of "Heikemonogatari(平家物語)" that Shuranou of Zeami quotes was examined. First of all, certain six were taken up as a work of Zeami, and the relation to "Heikemonogatari" was examined. When the result was summarized, "Sanemori(実盛)" quoted the text of "Heikemonogatari" as it was. However, the composition of three episodes was changed, and the subject was clarified. General's end was described while reserving the content of "Heikemonogatari" by an original expression for "Yorimasa(頼政)". "Yashima(八島)" doesn't stop in the summary of the quoted text, and build the world quite different from "The Tale of the Taira Clan". "Kiyotsune(清経)" swelled the tragedy of the person who had been defeated in the war more in dramatic form. "Atsmor(敦盛)i" and "Tadanori (忠度)" make the whistle and the Japanese poem a center material, and have increased expression of feelings. As a result, elegant Nho that did not draw the pain of Shura was completed. Thus, Shuranou(修羅能)of Zeami changed an original meaning of Shuranou, and made the world of an expression of feelings rich life appear gracefully. It cannot be overlooked to this background that the influence of Ashicagayoshimitsu(足利義満) who was the man of power is the largest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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