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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를 이용한 전통 무용 지도의 가능성

        미타노리아키 ( Mita Noriaki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9 No.-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원격회의를 진행하는 IT 최고의 기술「Video Conference System」을 통해, 「세계 최고(最古)의 전통 무용」인 가가쿠(雅樂, 일본의 아악)을 가르친다고 하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한일 문화 교육 프로젝트가 오늘날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도쿄의 미즈호 가가쿠카이(瑞穗雅樂會)의 협력 하에 기획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가가쿠는 신에게 봉헌되는 의례음악(儀禮音樂)으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가가쿠를「일본만의 독특한 전통음악 및 무용 예술」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천수백년 간 계승되어 온 가가쿠는 실은 일본 고유의 예능이라기 보다는, 고대 중국과 한반도, 동남아시아에서 인도, 페르시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경유한 문화교류가 탄생시킨, 그야 말로「고대 아시아의 음악과 무용의 집대성」인 것이다. 가가쿠 중에『고마가쿠(高麗樂)』라 불리우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통해 유입한 음악과 춤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고마가쿠춤의 전문가를 육성해 그들로 하여금 일본 연주가의 연주에 맞추어 고대 한국의 춤을 추게 하는「진정한 문화 교류」를 이루고자 기획된 것이다. 허영일 교수의 영단(英斷)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도입된 본 시스템을 통해, 한일 우정의 해, 한국인을 위한 고마가쿠 레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9월,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 홀에서, 다음 10월에는 도쿄 가쿠슈인대학 백주년 기념회관(學習院大學百周年記念會館)에서「고마가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제1부, 허영일 교수와 미타노리아키 악사의 강연에 이어, 제2부는 일본 미즈호 가가쿠카이의 연주에 맞추어 한국의 무용가가 쌍룡무(雙龍舞)인「나소리(納曾利)」를 공연하였다. 고마가쿠의 진전한 귀향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후, Video Conference System을 이용한 수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식수업을 통해 계속되었으며, 12월 초순에는 수강생 전원에 의한 가가쿠 공연이 이루어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훌륭한 지도자에 의한 직접 지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할 경우, 원격 레슨의 방법론을 숙지한 교육자가 있다면 Video Conference System을 이용한 지도는, 기대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필자는 고대 아시아 음악, 무용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가가쿠」를 아시아인이 함께 향수(享受)하는 것이, 장래의 아시아 공조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더 나아가 정신적인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インターネット経由で遠隔地同士をつなぎ、遠隔会議を行う「Video Conference System」という最新のIT技術を利用して、「世界最古の伝統舞踊」である雅楽のダンス·レッスンを行うという、世界に類を見ない日韓文化·教育プロジェクトが、いま、ソウルの韓國藝術綜合學校と、東京の瑞穂雅樂會の間で進められ、確かな成果をあげつつある。 日本の雅楽は、神仏に捧げるための儀礼音楽という一面を持つ。そのため日本人のほとんどは、雅楽を「日本独自の伝統的な音楽・舞踊芸術」だと信じている。 しかし、日本で千数百年の間、連綿と継承されてきた雅楽は、実は日本固有の芸能などではなく、古代中国、朝鮮半島、東南アジアからインド、ペルシャに渡る、シルクロードを経由した文化交流が生んだ、まさに「古代アジアの音楽·舞踊の集大成」なのである。 雅楽の中に『高麗楽』と呼ばれる、古代日本が朝鮮半島から輸入した音楽と舞がある。今進められているプロジェクトは、韓国で高麗樂の舞人を育て、彼らが日本の演奏家の演奏に合わせて古代朝鮮の舞を舞う「本物の文化交流」の実現を目指すものである。 許榮一教授のご英断で韓國藝術綜合學校に導入された当該システムが、日韓友情年二〇〇五に向けての韓国人のための高麗楽舞楽レッスンを支えてきた。 そして昨秋九月にソウルのKNUAホールで、翌十月には東京·学習院大学百周年記念会館で「高麗楽シンポジウム」が開かれた。 第Ⅰ部、許榮一教授と三田徳明の講演に続き、第Ⅱ部は、日本の瑞穂雅樂會の演奏に合わせて韓国人の舞人が双龍舞「納曾利」を舞う。高麗樂、真の里帰り。歴史的な瞬間であった。 その後、Video Conference Systemを用いた舞踊レッスンは、韓國藝術綜合學校の正課の授業として継続し、十二月初旬には受講生全員による雅楽公演も実施し、大きな成果をあげた。 確かに、優れた指導者による直接指導は最良の教授法である。しかし、その実施条件が整わない場合、遠隔レッスンの方法論を熟知した教授者がいればVideo Conference Systemを利用したダンス指導は、人々の期待以上に強力な武器となり得ることは間違いない。 私は、古代アジア音楽·舞踊の集大成である「雅楽」をアジア人が共に享受することが、将来のアジアの共同・協調のための歴史的·文化的、そして精神的な礎石と成り得るものだと信じて止まない。

      • 中國宮廷舞蹈發展的歷史軌迹及其深遠影響

        王克芬 ( Wang Ke-fen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4 민족무용 Vol.6 No.-

        본 논문에서 언급하는 궁정무용은 궁정에서 연출되거나 창작된 모든 무용을 말한다. 궁정무용은 의식과 제사에 사용된 것, 감상과 오락에 사용된 것, 그리고 이 두 기능을 겸비한 것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중국 주 왕조 시대는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 영주제로 향하는 과도기로, 이 때 예악제도 제정을 위해 아악이 탄생하였다. 아악의 형성은 궁중무용의 정식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아악은 고려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경화된 아악보다는 생동적이고 활발한 민간의 악무가 대대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무용은 감상을 위한 예술무용이었다. 한대에는 잡기, 음악, 무용, 무술 등 다양한 기예를 포함하는 ‘백희’가 유행하였다. 이 ‘백희’는 당시 민간에 널리퍼졌을 뿐 아니라 외국사절과 소수민족 수령을 영접하는 궁정 연회석에서도 공연되었다. 이것은 오락과 관람을 위한 것이었다. 한대의 아악에는 백성들의 생활에서 유래한 영성무(靈星舞) 와 파투무(巴渝舞) 가 출현했다. 영성무 는 16명의 남자 아이들이 농사 활동을 모방하여 추는 춤이다. 원래 파투무 는 파산과 유수 사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판순만이(板循蠻夷)’ 민족의 무용이었는데, 한 고조가 이것을 악부에 편입시켰다.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무용의 오락성이 크게 강조되었고, 청상악(淸商樂) 이 형성되어 장안, 낙양부터 강남 일대까지 널리 퍼졌다. 당대에는 무용예술이 고도로 발달하였고, 구부악(九部樂) , 십부악(十部樂) , 좌부기(坐部伎) , 입부기(立部伎) 등의 궁정연악이 창조되었다. 이들은 소수민족의 악무를 하찮게 여기던 앞 시대와는 반대로 외국 각 민족의 민간 악무를 당당하게 궁정연악의 악부에 포함시켰다. 당대 궁정연악은 감상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성이 높고, 형식이 화려하며, 주제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당대 무용 가운데 건무, 연무, 대곡, 가무희 는 기예수준이 높고 널리, 그리고 오래 전승된 무용이다. 송대의 궁정대무는 이런 당대의 일부 악무를 계승하였다. 당대의 궁정무용은 일본 및 조선에 전파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아악 무용 가운데는 아직도 춘앵전(春鶯囀), 난릉왕(蘭陵王) , 발두(拔頭) 등이 보존되고 있다. 12세기 남송 시대에는 독립된 공연예술로서의 무용이 점차 쇠퇴하고, 희곡 안에서의 무용이 점차 발전하였다. 희곡은 당대의 무용이 공연예술분야에서 누리던 정통의 지위를 대신하게 되었다. 청대의 통치자는 만주족으로 그들의 궁정연악은 만주족의 색채를 선명하게 띠고 있다. 만주족의 활 쏘고, 말 타는 생활을 반영하였다. 청대 말년에는 裕容齡(1882~1973)이라는 걸출한 무용가가 배출되었다. 그녀는 구미 무용을 최초로 학습한 무용가로 이사도라 던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만주족의 귀족 출신인 그녀는 다년간 외국에서 무용을 배우고, 귀국 후에는 민족무용을 공부하여 중국 춤을 소재로 공연하였다. 궁정무용의 흥망성쇠는 국력의 강성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중국의 봉건제도가 해체됨에 따라 ‘궁정무용’도 사라졌으나,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는 중국 당, 송 시기에 전래된 악무를 ‘당악’이라 통칭하면서 보존하고 있다. The court dance refered in this dessertation is all dances which were produced or created in court. Court dance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one for ceremonies and sacrificial rites, one for appreciation and entertainment, and one that has those two functions. The Chu Dynasty is a transitional period from slavery society to a feudal system. In this age, ceremonial music(A-ak) has been created to invent 'Li Yue' system. Formation of ceremonial music signified formal advent of court dance. Ceremonial music had a great effect on states around China as well as Koryo. In the age of Ch'un ch'iu and civil wars, lively and vigorous music-dance(Akmu), entertained by the popular, appeared instead of ceremonial music which was extremly formal. This new type of dance, music-dance was an artistic dance for appreciation. In Han Dynasty, 'Bai Xi' which included miscellaneous skill, music, dance, and martial arts, was popular. Not only was it widespread to the people, but also it was performed at court banquets welcoming foreign missions. This was for entertaining and appreciating. < Ling Xing Wu > and < Ba Yu Wu > appeared in ceremonial music at this period. These two dances were originated from people's life. < Ling Xing Wu > is a dance for 16 boys imitating farming activity. < Ba Yu Wu > was originally a dance of the ethnic 'Bansoonmani' who dwelled between Pasan and Yusu. Then Kao Tsu in Han Dynasty classed this in Akbu. In Wei, Chin, and the period of North and South dynasties, the charicteristic of entertainment in dance was strongly emphasized, and < Qing Shang Yue >, formed in this age, was widespread Ch'ang-an, Loyang, and all over the south part of a river. Dance as an art was highly developed in T'ang Dynasty. Also, court musics such as < Jiu Bu Yue >, < Shi Bu Yue >, < Zuo Bu Ji > and < Lo Bu Ji > were created. In contrast with former times when ethnic music-dance had been neglected, in T'ang Dynasty, even foreign ethnic music-dance were included in Akbu for court music-dance. This music-dance in the age of T'ang was only for appreciation, which was highly artistic, and which had sophisticated form as well as clear motif. Among dances in this age, < Jian Wu >, < Ruan Wu >, < Da Qu > and < Ge Wu Xi > had advanced technique. They especially spreaded extensively and lasted long. Those music-dance was partly passed down to the Sung Dynasty, also to Japan and Chosun. < Chun Ying Zhuan >, < Lan Ling Wang > and < Bo Tou > still remain in Japanese ceremonial music and dance. Neverthless, in 12th century(south Sung period), dance as an independent performing art eventually declined, whereas dance in play developed. Plays gradually took the place of the orthodox position of dances. Court music-dane in Ch'ing Dynasty was extremely Manchurian since it was reigned by the Manchurian ethnic. Hence, these art form reflect horse riding and shooting arrows which were the life style of the Manchurian. A talented dancer, Yu, Rong-Ling(1882~1973) appeared at the last years of Ch'ing. She was the first Chinese dancer who leared European and American dance. Also she was the only Chinese who learned from Isadora Duncan. Born in a Manchurian noble family, she trained dance abroad for several years. After coming back to China, she studied ethnic dance and performed Chinese dances. The rise and fall of court dance have much to do with power of the nation. As Chinese feudal system dissolved, 'court dance' also disappeared. Nonetheless, music-dance from T'ang and Sung Dynasty is still preserved under the title of 'Tang Ak' in Japan and Korea.

      • 라닥(Ladakh)의 불교무용

        허동성 ( Huh Dong-sung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3 민족무용 Vol.4 No.-

        이 논문은 인도 북단의 히말라야 산간오지에 위치한 라닥(Ladakh)의 불교무용에 관한 개관적 소개이다. 라닥에는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이 파견한 불교전교사들에 의해 처음 소승불교가 전래된 이후 티벳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라닥의 지리적 입지로 인해 많은 불교전교사들에 의한 불교전교가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라닥불교는 기원 10세기 라닥에 이주하여 왕조를 구축한 몽골계 티벳족에 의해 유입된 티벳불교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본고의 논의는 티벳족을 중심으로 하는 라닥의 불교도들 사이에서 각종 경축시에 연행되는 대표적인 민간무용형태들을 대상으로 한다. 챱스키얀, 숀돌, 쟈브로, 메톡산모, 타시스파, 야크챰, 아뽀-아삐 등의 연행방식과 불교적 취의를 고찰하였으며 이들은 지역과 종족에 따른 양식적 변별성에도 불구하고 불교계 신격들이나 라마, 왕들에 대한 찬가의 병창, 3박자 스텝을 중심으로 한 단순하고 절제된 무용기법, 대무와 원무를 중심으로 한 안무구성, 동양음악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점점 급박해지다가 종결되는 음악적 구성 등의 공통적 특징들을 보여준다. 본고는 개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라닥의 불교무용에 대한 국내 최초의 논의를 통해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불교무용 비교연구를 향한 한 토대를 제공하는 데서 의의를 가늠할 수 있다. This paper introduces the Buddhist dances of Ladakh in northern India where the influence of Tibetan Buddhist culture is still alive along with Sikkim and Arunachal Pradesh of north-east. The Ladakhi Buddhist culture of the present has been established mainly by the Mongoloid Tibetans whose ancestors moved to Ladakh and founded a Buddshit dynasty in the 10th century A.D. although the Mons and Dards of Indo-Aryan race had immigrated to Ladakh much earlier than Tibetans from the 3rd century B.C. Among various ethnic dance items of Ladakh, some representative ones have been selected for discussion as the Buddhist dance in that they reflect the religious spirit and intent of Ladakhi Buddhism; Chabs-kyan, Shon-dol, Zabro, Mentog-Stnamo, Tashis-pa, Yak-cham and Apo-Api. The overall style of those numbers is somewhat similar in the fact that they share common characteristics such as the devotional songs by dancers, basic step of three beats, the accelerating tempo of accompanied music and round dance sequence in the ending and so forth. This article deserves an attention in that it can throw a light on the ancient Buddhist culture of the Himalaya region as well as in that it is the first introduction of Ladakhi Buddhist dance to Korea for further comparative study.

      • 당악정재 <헌선도>의 실현 양상과 창사(唱詞) 변화

        강경호 ( Kang Kyung-ho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4 민족무용 Vol.6 No.-

        <헌선도(獻仙桃)>는 고려 문종 대에 들어온 이후 조선후기까지 전승되어 여러 연향(宴饗)과 행사에서 연행된 대표적인 궁중정재(宮中呈才)이다. 정재는 ‘악·가·무·희(樂歌舞戱)’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예술이며, 이러한 세부적인 예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궁중의 공연예술로 실현된다. 정재의 구성 요소 중 주제의식을 가장 뚜렷하게 담아내는 부분은 바로 창사(唱詞)이다. 춤, 음악 등 정재의 여러 예술요소들과 창사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 정재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헌선도>의 창사를 중심으로, <헌선도> 정재의 실현 양상과 그 변화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헌선도>가 향유되었던 역사적 공간에 대한 고찰과 그에 따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연향의 의례절차 속에서 실현된 <헌선도>와 정재 진행의 과정상에서 창사와 다른 예술적 요소와의 관련양상을 파악하려 하였다. <헌선도>의 정재 창사는 고려시대 이후 별다른 변화없이 조선시대까지 전승되어 공연되어 왔는데,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창사의 분량이 축소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아마도 연향의 규모 내지는 양적으로 많아진 다양한 정재의 공연으로 인한 시간의 제약 때문에 간소화되어 연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창사 내의 몇몇 표기도 변화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정재의 대상이 바뀌거나 또는 당대의 시기적 상황에 맞게 변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헌선도>의 창사 진행에 있어 중요한 점은 ‘군왕의 축수’와 ‘만세의 헌정’이라는 주제의 내용을 부연·반복적 진술을 통해 강화·구체화시킴으로써 그 주제를 구현해 나간다는 것이다. < Heonsundo(獻仙逃) >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Dangak Jeongjae which had been performed from Goryo(高麗) dynasty to the late Chosun(朝鮮) dynasty. And Jeongjae is the performance art composed of recital, song, dance and play. Changsa(唱詞), one of the component of Jeongjae, revealed the theme of Jeongjae evidently. In this respect, I will treat the realization of the performance and the changing of the realization in < Heonsundo > by examing Changsa. By and large, Changsa of < Heonsundo > had not been changed from Goryo dynasty to Chosun dynasty. However, in < Heonsundo > in the late Chosun dynasty, it is found the reducing quantity of Changsa and the changing of some expressions. Also, in < Heonsundo >, the theme is showed specifically by dwelling and repeating of several Changsa.

      • 선도(仙道)의 호흡(呼吸)수련법과 한국춤의 호흡원리

        최미연 ( Choi Mi-yeon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7 민족무용 Vol.11 No.-

        한국춤에 있어서 호흡(呼吸)의 중요성은 한국 춤을 추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강조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한국춤의 본질을 규정짓는데 있어 다른 민족의 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성이 인체에서 일어나는 호흡, 즉 들숨과 날숨이 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된다는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서양의 춤을 비롯하여 다른 민족의 춤에 있어서는 호흡이 움직임을 더욱 힘있고 원활하게 하여 어떠한 형태나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취해지는 2차적인 기능을 하는데 비해, 한국춤은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호흡이 그 자체로 춤을 형성하는 ‘호흡춤’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한국춤을 비롯한 한국예술이 가지는 호흡 중시의 개념은 한민족 고대의 단군신교(檀君神敎)와 선도(仙道)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고유의 선도는 단군신교가 외래 종교의 수입에 따라 점차로 퇴락해감에 따라 그 형식은 민간신앙 형태로 축소되고, 다른 한편으로 신선사상과 호흡 수련법은 궁중과 유학자들의 사대주의로 인해 중국 도교의 것으로 왜곡되어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본 고에서는 고유의 선도의 호흡법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 도교경전에 나타나 있는 내단법(內丹法)과 조선시대 단학(丹學)파의 단전호흡 수련서를 제시하였다. 또한 근대 이후 산중 수도인들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하여 근래에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단전호흡 수련법의 자료들도 참고로 제시하였다. 현대의 단전호흡 수련법 중에서는 가장 대중성보다는 정통성을 지향하는 수련단체이자, 인내천(人內天)의 소우주(小宇宙)론을 바탕으로 고대의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인체관을 이론적 체계로 가지고 있는 국선도의 단전호흡법을 한국춤의 호흡법과 비교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호흡을 통한 양생(養生)의 목적은 민족 고유의 신체수련법인 단전호흡법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단전호흡법은 인체를 상단전(上丹田)과 중단전(中丹田), 하단전(下丹田)으로 인식하고, 중단전의 호흡을 하단전으로 내려 ‘흡(吸)’한 후 고요히 ‘지(止-머무름)’하여 천지(天地)의 기운을 인체의 하단전에 모으고, 다시 인체의 탁한 기운을 ‘호(呼)’하여 내보내는 삼단전(三丹田) 이단(二段) 호흡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단전으로 흡(吸)한 기운은 정(精)을 생성하는데, 정(精)이 충만하면 기(氣)가 생성되어, 중단전(中丹田-가슴부위)에 거하는 신(神)이 명(明)하여진다는 것이 또한 단리(丹理)의 핵심이다. 다른 그 어떤 장르보다도 한국춤 장르는 원시의 무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고대의 신관(神觀)과 우주관(宇宙觀)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대의 무교가 인내천의 인간관과, 불노불사(不老不死)의 신선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춤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즉, 한국춤은 인간의 호흡을 통해서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이루고, 인체(人體)의 양생(養生)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형성되었다. The importance of breath has been emphasized so strongly that almost every Korean dancer may know it. In defining the nature of Korean dance, the present study viewed that the biggest difference of Korean dance from other countries' is that breath, namely, inhalation and exhalation are the most elementary unit of dance. In other words, while breath plays a secondary function of making movements more powerful and smooth to create certain forms or meanings in other dances including Western ones, individuals' breath becomes dance itself in Korean dance. Sinseons pursued by ancient Koreans were characteristically a group of humanly Seonins who were in harmony with heaven and earth as well as with Mother Nature. Such original Seon-do gradually faded away with the import of foreign religions and its form shrank to a folk belief. The policies of the Chosun Dynasty to destroy national scriptures, which were attempted several times by the royal court and Confucians, regarded the ancient history of this nation as presumptuous and tried to bury and annihilate it. With such a difficulty in research, this study assumed that our ancient breath training method became the root of Naedan-beop systematized in the scripture of Chinese Taoism, and presented the scripture of hipogastric breath in Taoism in order to explain the detailed breathing method. In addition, it referred to breath theories in hipogastric breath training textbooks used by Confucians in the Chosun Dynasty and materials related to hipogastric breath training methods that were introduced by mountain ascetics and recently spread among the public. It also compared the breathing method of Korean dance with one of modern hipogastric breath training methods, that is, the hipogastric breath method of Gukseon-do, which is a training organization pursuing orthodoxy rather than popularity and take as its theoretical system the ancient scientific view of the human body based on the micro-cosmos theory of Innaecheon. The purpose of health-promoting through breath is manifested more clearly in the hipogastric breath method, one of our original physical training methods. The hipogastric breath method divides the human body into the upper hipogastric, the middle hipogastric and the lower hipogastric. The method can be summarized as a three-hipogastric/two-step breath method, in which inhalation is made by bring down the breath in the middle hipogastric to the lower hipogastric, maintaining it there a while and concentrating the force of heaven and earth to the lower hipogastric of the body, and then exhaling turbid breath in the body outside. The force inhaled down to the lower hipogastric produces essence, and the full of essence produces Gi, which makes the spirit in the middle hipogastric (the breast) bright. This is the core of hipogastric theory. Considering that Korean dance came from ancient shamanism, it is directly related to ancient Koreans' view of God and universe. Moreover, it may be a lead to understanding Korean dance that our ancient shamanism had Innaecheon as its view of human beings and the Sinseon thought of eternal youth and immortality. That is, Korean dance was created with the object of achieving harmony among heaven, earth and man and promoting the health of the human body through man's breath.

      • 琉球宮廷舞踊の形成と変遷 : 18世紀の冠船芸能を中心に

        當間一郎 ( 도마이치로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06 민족무용 Vol.9 No.-

        류큐궁중무용은 1404년부터 1866년까지 22회에 걸친 류큐왕국의 봉책식전을 위한 만들어진 예능이었다. 류큐무용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1719년 쇼케이왕 봉책식전에서부터이다. 이후, 류큐국왕은 1872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류큐번이 되었으며, 1879년에는 페번치현이 공표됨에 따라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왕국이 멸망함에 따라 궁정무용 또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새롭게 일반인을 상대로 한 흥행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류큐궁중 무용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琉球宮廷舞踊は1404年から1866年までの22回に渡る琉球王国の冊封式典のためにつくられた芸能であるといえる。琉球舞踊が本格的に発展したのは1719年の尙敬王冊封式典の演芸からである。以後、琉球王国は1872年明治政府により琉球藩になり、1879年には廃藩置県が公表され沖縄県になってしまった。王国の滅亡とともに宮廷舞踊も厳しい状況に陥ってしまうが、一般人を相手とした新しい興行が行われ、琉球宮廷舞踊は今日のような継承と発展を遂げるよう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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