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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18연구소 20년과 5 · 18 연구

            최정기(Choi, Jung-Gie)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6 민주주의와 인권 Vol.16 No.4

            이 글은 학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5·18연구소의 지난 20년을 돌아보고, 최근 10년의 연구경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결과 지금까지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명실상부하게 5·18연구의 핵심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둘째, 1994년 5·18기념재단의 설립과 1996년 5·18연구소의 설립 이후 20년에 걸쳐 5·18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5·18연구를 통해 학제 간, 혹은 국가 간 교류와 소통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의 5·18연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5·18 연구를 위한 지역 내에서의 역할 분화 및 기능의 통합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둘째, 전문 연구자 층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연구자들 사이에 네트워크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셋째,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장기적인 전망을 갖는 5·18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This paper is going to do retrospect the 20 years of May 18 Institute CNU, and to analyzes the trends of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last 10 years. According to the study, the significant fruits of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are as follows; First, May 18 Institute CNU have became the core of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Second, the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have moved ahead grew by leaps and bounds last 20 years since the establishing of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and May 18 Institute CNU. Third, through the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interdisciplinary communication and the personal exchange among the nations have taken place. Although there are significant fruits,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until now have some limits. The limits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 distribution of roles and integration of functions have not been make up. Second, Although the study have done last 30 years, The group of professional specialists for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have not been make up. Third, the systematic, organized, and long-term studing May Uprising Movement have not accomplished even now.

          • KCI등재후보

            ‘교육지표사건'과 5ㆍ18

            김병인(Kim Byoung-in)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8 민주주의와 인권 Vol.8 No.2

            본고는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정해진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갖고 계엄군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5ㆍ18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 시위였다. 이 시위는 ‘계엄확대 및 휴교령 발동, 정문 앞 시위'라는 당시 전국 대학 단위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출발하였는데, 전국에서 유독 전남대에서만 이루어졌다. 그 배경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특히 양심있는 교수의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과 해직, 이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보답으로서의 6ㆍ29 시위와 학생들의 구속 및 제적, 이로 인한 전남대 운동권의 저변확대와 한차원의 고양, 어용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와 적개심 폭발, 학원사찰 반대를 위한 상담지도관실 방화사건과 관련자의 구속과 제적, 1980년 3-5월 복적생을 중심으로 한 학내외 민주화 투쟁, 박관현의 학생회장 당선과 상징적 지도력 강화, 5ㆍ18항쟁과 들불야학팀의 활동, 박관현의 죽음과 운동권의 재결집, 이후 치열하게 전개된 5월운동 등 1979년 ‘교육지표사건'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파악해야 할 것이다. It was the demonstration at the entrance of Chunnam University on May 18th, 1980 that served as a direct momentum for 5ㆍ18. 「Education at a Glance Case」, was the origin of pro-democracy movements such as professors' declaration of conscience on Jun. 27, 1978, students' rage against government-patronized professors, 6ㆍ29 Demo and student arrest and removal from a school, spreading struggle, a fire at an school investigation office, movement for the students removed related to 「Education at a Glance Case」, strong leadership of President of Student Council, Park Kwan-Hyun, activities of Deulbul night class, 5ㆍ18 Movement, Park's death and May demonstrations.

          • KCI등재

            교과서 속의 5·18 광주민중항쟁

            임선화(Im Seon-hwa)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8 민주주의와 인권 Vol.18 No.2

            이 연구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에 서술되어 있는 5 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하는 것은 2018년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로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집필 기준이 마련되었고, 2013년 교육부 검정을 거쳐 2014년에 발행되었던 것이다. 5·18이 발생한지 38년이 지났다. 5·18을 목격하거나 겪었던 세대보다는 태어나지 않아 겪지 못하였거나, 인식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5·18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학교 교육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교과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학습하는 것이다. 요즘 5·18에 대한 왜곡이 난무하다. 특정인뿐만 아니라 보수 극우 단체들의 5·18 폄훼는 도를 넘어섰다. 그러기에 교과서 속에 5 18이 어떻게 서술되었는지는 아주 중요하다. 5·18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자양분이었음을 교육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 현재 사용하는 교과서 속의 5·18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집필기준이 마련되었고, 교과서 속의 내용도 이전 교육과정의 교과서보다 많이 축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2015년 교육과정 속에서 5·18의 집필기준을 마련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This paper analyzes the 5·18 Gwang-ju Uprising in elementary school,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textbook"s narrative tone. The 2014 version textbook was approved by Ministry of education in 2013 and published in 2014. The guideline was given in 2009 by the revision curriculum and has been used in 2018. It has been 38 years since Gwang-ju Uprising. Nowadays more people don"t have experience Gwang-ju Uprising or witness it than 5·18 generation. So it is important that we have to teach them in school and remember it. When we study it by textbook it means we learn the formal Korean history. There are so many distortion about Gwang-ju Uprising. Not only several ultraright people but also conservative right group insult 5·18 Uprising and it is beyond the common sense. So it is very important that how to describe Gwang-ju Uprising. We can understand that Gwang-ju Uprising was the most powerful nutrition in our democratic history. 2014 Textbook version was guided by Lee Myng pak government and Gwang-ju Uprising story is reduced than the previous version. We hope this paper can give the guideline in next revision in 2015 about Gwang-ju Uprising.

          • KCI등재후보

            지구화시대 한국의 진보운동과 5?18민중항쟁의 현재적 재구성

            이광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5 민주주의와 인권 Vol.5 No.2

            This study aims to reconstruct today's meaning of 5‧18minjung-protest in the age of globalization in relation to present radical movement in Korea. As liberalist compromised with the neo-military coup group(shingunbu), the progressive meaning of 5‧18Minjung-protest was reduced to conservative and minimal democracy. Reconstructing the meaning of 5‧18Minjung-protest as progressive one, I suggest, could be proceeded by radical movement trying to overcome the existing socio-political relations. First of all, unequal development of capitalism conditioned arising of 5‧18Minjung-protest fundamentally. Today, capitalist social relations are embodied in neo-liberalism. Therefore anti-capitalistic tendency of 5‧18Minjung-protest should be reconstructed as a anti neo-liberalism. Secondly, 5‧18Minjung-protest was a uprising for democracy against neo-military fascist. The present state of democracy in Korea, so called creeping democracy, is subjected to the influence of monopoly capital and 'neo-liberal competitive state' and has been falling into a crisis. Therefore radical movement should strengthen its hegemony to save, deepen democracy in crisis against them. Thirdly, civil participation and solidarity was an important point that made 5‧18Minjung-protest possible. In confrontation of global neo-liberalism today, radical movement should strengthen the level of solidarity in nation-state and the globe. Lastly, 5‧18Minjung-protest was a uprising by the minority, Kwangju, Honam in Korean society. Radical movement trying to overcome repression and differentiation in existing social relations should struggle for social and political rights of the minority, contingent workers, migrant workers, the handicapped, etc. As radical movement realizes these goal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progressive meanings of 5‧18minjung-protest could be reconstructed. 이 글은 전지구화한 신자유주의시대에 518민중항쟁의 의미를 진보운동과의 관련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518민중항쟁의 요구 목록 가운데 ‘타협론'과 친화성을 지닌 최소민주주의는 이미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집권함으로써 실현되었으며 당시 ‘투쟁론'으로 상징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적 요구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그런데 광주민중항쟁은 무엇보다 불균등한 자본주의산업화에 규정되어 소외된, 한국사회의 주변부인 광주호남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소수자(minority)의 문제를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것은 글로벌 신자유주가 압도적인 지금 비정규직노동자이주노동자장애자 등 소수자의 문제로 집약되고 있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지금 소수자들의 사회경제적정치적 권리를 위해 그들의 문제를 자기화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연대를 통한 실천이야말로 광주민중항쟁이 담고 있는 진보적 의미를 재구성하는 진보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KCI등재후보

            ‘5·18 트라우마티즘' 연구의 현황과 전망

            박영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4 민주주의와 인권 Vol.4 No.2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identify the current status of 5‧18 traumatism through the investigation of 5‧18 Gwangju Uprising victim's mental agony based on the prior studies and the testimony recording of the victim's during 1980~2004. As there have been no psychological studies on traumatism, first, the definition and characteristics of ‘traumatism' has been examined. And also this study has examined physic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n 5‧18 Gwangju Uprising victims through the 5‧18 traumatism and psychological mechanism. Then, the 5‧18 traumatism has been analyzed based on the previous studies on 5‧18 Gwangju Uprising victims. Furthermore, this study will makes its first effort to find how to cure 5‧18 Gwangju Uprising victims. Especially, this is to understand the character and general distinctions of individual therapy viewed from the psychoanalytical prospect through the paradigm of group therapy and open the new chapter to study on traumatism victims. It also suggested to which direction the future studies should take for the psychotherapy of 5‧18 traumatism.

          • KCI등재

            5·18민주화운동 관련법의 성과와 한계

            민병로(Min, Byoung-Ro)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7 민주주의와 인권 Vol.17 No.2

            5·18문제해결의 5대원칙이라 할 수 있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배상,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헌정질서파괴범죄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1995.12.21.),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12.21.),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0.8.6.),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2002.1.26.)이 제정·시행되었다. 이러한 5·18관련법들의 제정・시행으로 검찰의 기소에 의한 5·18책임자처벌과 진실규명, 5·18희생자에 대한 보상, 5·18관련자를 민주유공자로서 예우함으로써 명예회복 등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발포책임자, 헬기기총소사, 민간인 학살, 집단암매장 등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사안들이 남아 있으며, 나아가 북한군 개입설 등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5·18왜곡·폄훼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5·18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여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과 국가차원의 진상보고서 작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특히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진상규명 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에 강력하고 막강한 조사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The five major principles in solving the problems relating to the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 Truth Finding, Punishment of Those Responsible, Restoration of Honor, Compensation for the Damages, Ceremony for Memory, have been incorporated in several relevant statutes, such as Special Acton the Statute of Limitation to the Crimes of breaking Constitutional Order(21 Dec 1995), Special Act on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21 Dec 1995), Act on the Compensation to Persons related to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s(6 Aug 1990) and Act on Honorable Treatment and Support of Persons Wounded or killed for a Justice Cause(26 Jan 2002). These statutes have achieved some of the principle mentioned above—Punishment, Restoration of Honor, and Compensation. However, we still have the important issues not yet resolved. Some of these issues include inquiries into the Shot Officer in Charge, Helicopter Strafing, Civilian Killings, Secret Burial of Civilian Victims. There are also the distorting speeches about the North Korean military intervention. Therefore, This thesis is focusing on the necessity of enactment the Special Act on May 18 Truth Finding to unearth the closed truth and the need for making the National Report about the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 In particular, I stressed the powers and authorities to be given to the Committee to investigate the truth practically and effectively.

          • KCI등재후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튜브 왜곡영상 네트워크 분석

            김영기,채종훈,주정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21 민주주의와 인권 Vol.21 No.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diffusion patterns of YouTube fake news, which continues to distort or disparage the Gwangju 5・18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to discuss fundamental countermeasures against them. This work uses social network analysis (SNA) to identify the core network structures and analyze their distribution patterns. The results of the study showed that, even though there were many YouTube fake news that have continuously distorted the 5・18 Democratization Movement as “North Korean troops intervention”, the center of the distortion was the video on “The Truth-Finding Public Hearing (centered on whether the North Korean troops intervened),” held at the National Assembly in February 2019. The main channels that spread the video fake news were “News** TV” and “Se** Broadcasting”. The main contents of the other videos fake news were almost all related to the claims of the public hearing. The spreading of the video fake news on the 5・18 began to gain the momentum in the wake of public hearings. Of the 89 distorting videos, 55 were posted in 2019, suggesting the momentum of the National Assembly's public hearing. Once distorted, the fake news serve as source data. the degree of distortion was deepening as they were mediated and diffused over and over again. The central video fake news that occupied the central node of the diffusion were “the 5・18 North Korean Army” and “the 5・18 Riot.” Given the recent increase in YouTube users and the trend of expanding the usage of video services based on recommended algorithms, the fake news on the 5・18 Democratization Movement is likely to spread continuously based on “Filter Bubble” and “Confirmed Bias.” We suggest that multi-layered measures of countering the fake news on the 5・18 Democratic Movement are urgently needed. Through these measures, further production and proliferation of the fake news should be prevented. Multi-layer measures include prior education, monitoring, and follow-up legal regulation. 이 연구의 목적은 5・18민주화운동을 지속해서 왜곡하거나 폄훼하고 있는 가짜뉴스들을 유튜브를 중심으로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확산시키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소셜네트워크 분석(SNA)방법을 이용해 5・18민주화운동 왜곡 영상 유통의 핵심적인 네트워크 구조를 파악하고, 그 확산양상을 분석했다. 연구결과, 먼저 ‘5・18에 북한군이 개입 되었다'는 내용을 지속해서 확산시켜 온 영상들이 있었지만, 왜곡의 중심은 2019년 2월에 국회에서 개최된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북한군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 영상을 확산시키는 주요한 채널은 <뉴스**TV>와 <Se****Tube **방송>이었다. 이후로 다른 채널들에서도 주장하는 ‘북한군이 개입설'의 근거는 거의 모두 공청회의 주장을 인용했다. 따라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동영상 가짜뉴스는 공청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왜곡 영상 89건 중 55건이 2019년에 게시된 것으로 국회 공청회에서 제시한 왜곡된 정보는 일종의 원천자료 역할을 하며, 이는 매개와 확산을 거듭하면서 왜곡의 정도가 심화 되었다. 유튜브 가짜뉴스의 중심노드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영상들은 소위 ‘5・18 북한군 소행'과 ‘5・18 폭동' 관련 내용이었다. 최근 유튜브 이용자의 증가, 그리고 추천 알고리즘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 이용 행태 확대 추세로 볼 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필터버블'과 ‘확증편향'에 기반을 둬 더욱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유튜브 영상물에 대한 다층적인 감시와 규제를 통해서 이의생산 및 확산을 방지하고, 나아가 기존의 왜곡 영상물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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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묘지' 조성과 헌수(獻樹)운동

            김창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21 민주주의와 인권 Vol.21 No.1

            The tree–planting campaign, which unfolded in 1996, was promoted by combining the public opinion and political engineering aspects of Gwangju citizens. This campaign did not achieve its original goal, nor did it obtain a satisfactory solution. However, the contribution of the tree–planting campaign for the succession of the spirit of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the nationalization and globalization of May 18 should not be made lightly. As can be seen in the case of the “freedom tree” in France, the “democratic tree” planted by the tree–planting campaign is evidence that the soul of May is alive. It also means the eternal roots of democracy, growth, prosperity, justice and equality. The transversal universality of the May 18 spirit across the world can be found through the this campaign. The tree–planting campaign came to have this meaning because of ‘sympathy'. Sympathy is the driving force that strengthens the solidarity of our society and continuously expands its boundaries. And as a site where sympathy takes place, the sympathy field is a space where public aspirations are condensed and a ignition point that spreads this aspiration. ‘The National May 18 Democratic Cemetery' is a place of Sympathetic field. 1996년 전개된 헌수운동은 광주시민의 여론과 정치공학적 측면이 결합되어 추진된 운동이다. 이 운동은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만족할 만한 해법을 얻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계승,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에 대한 헌수운동의 기여를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자유나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헌수운동에 의해 심어진 ‘민주나무'는 5월의 넋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민주의 지속적 뿌리내림과 성장 그리고 번영, 정의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가치를 의미한다. 5・18정신의 세계 횡단적 보편성을 헌수운동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헌수운동이 이러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공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공감은 우리 사회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공감이 이루어지는 현장으로서 공감장은 대중의 열망이 응축된 공간이자 이 열망을 확산시키는 발화지점이다. ‘국립 5・18민주묘지'는 공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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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ㆍ18광주민주항쟁의 기억과 교육

            최영태(Choi Young-tae)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0 민주주의와 인권 Vol.10 No.3

            1980년 당시 5ㆍ18을 주체적으로 인식했을 만한 연령인 15세 이상 한국인은 2010년 현재 전체 인구 중 약 27%에 불과하다. 5ㆍ18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으로 보다는 역사화된 사건으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5ㆍ18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공식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ㆍ중등학교 및 대학에서 5ㆍ18은 역사나 사회과목 시간에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이다. 강의시간을 크게 늘릴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할 때 강의 후 리포트나 체험학습 등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또 영상물, 시와 소설, 기념관 등도 5ㆍ18을 기억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민주주의의 발전 및 공고화를 위해 5ㆍ18의 기억과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is a historical event which the remembering movement was developed most actively. But the number of person who remember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is greatly decreasing since 2000.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is becoming a history to the great part of Korean more and more. The best method which can make it remembering is the lecture in school. But the lecture on it in school is very poor in content. Democracy in Korea don't stand on sound foundation yet. The better lecture method on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should be introduced. The report, image, visiting and survey of the historic site, special lecture of the concerned person of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and the like should add to a 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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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ㆍ18기념공간과 사회적 갈등

            최정기(Choi Jung-gie)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8 민주주의와 인권 Vol.8 No.1

            이 글은 5ㆍ18기념공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첫째, 5ㆍ18기념공간은 누구의, 어떤 경험을 재현하고자 하였는가? 시민 전체의 경험인가, 아니면 특정 세력의 경험인가? 둘째, 5ㆍ18기념공간은 단순한 기념의 공간인가 아니면 ‘희망의 공간'인가? 그래서 5ㆍ18기념공간에서는 시민들의 소통과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셋째, 5ㆍ18기념공간은 광주 광역시의 도시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첫째, 5ㆍ18기념공간은 전시민적 수준에서의 항쟁 경험이나 공동체적 경험보다는 주로 피해자의 기억에 근거하여 진행되었다. 둘째, 5ㆍ18기념공간은, 도청의 이전 지연 및 참여세력 간 갈등으로 인해, 전체적인 사업에서 무정부성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또 5ㆍ18기념공간은 일반인의 참여 및 접근이 별로 없는 공간이 되었으며, 그 결과 미래의 희망을 일구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 5ㆍ18기념공간과 도시공간과의 조화와 균형 역시 동일한 이유로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This paper is planned to reply following three questions in critical review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The questions are as follows; First, Whose experience and memory revive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Does the experience and memory of all citizens? or specific person's one? Second, Is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entirely the Commemoration space or the space of hope? Is there communication and solidarity in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Third, Which the meaning does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have in urban planning of GwangJu city? The result are as follows; First,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is founded mainly the experience and memory of 5ㆍ18 victims than citizens. Second, the specific character in the making of 5ㆍ18 Commemoration space is the separation from the citizens of GwangJu and the chaotic condition of that result. So,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become entirely the Commemoration space than the space of hope. Third, the harmony and equilibrium between the 5ㆍ18 Commemoration space and the urban planning of GwangJu city is underestem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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