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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석 호남신학대학교 해석학연구소 2002 학술발표회 논문집 Vol.6 No.-
특별히 두 가지를 미리 전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려한다. 하나는 이 글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이름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경전간 해석학”이라는 용어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는 다원주의적 종교 신학의 이해를 따라 다양한 종교 ‘경전들’과 ‘해석학적 전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의 경전이 아니라 다양한 경전들의 해석학적 상호작용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또한 이를 ‘종교간’ 또는‘문화간’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경전간’이라고 하는 것이 개념의 한게를 보다 쉽게 정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하고자 한다. 또 다른 한 가지 전제는 여기서 논의하는 경전 간 해석학은 아시아 신학의 맥락 안에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종교 전통들과 다양한 경전과 경전해석학의 전통들이 살아있는 아시아에서 경전 간 해석학을 말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기독교의 윤리 성향에 대한 비판적 고찰 : 해방적 영성의 윤리적 해석학 서설
박충구 호남신학대학교·한들 1999 해석학과 윤리 Vol.3 No.-
종교는 종교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언어와 상징을 통하여 인간의 삶에 중층의 해석과 이해를 가져온다. 종교의 형식적 원리가 경전적 텍스트 이해를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한 한 종교 안에서 다양한 해석적 이해가 가능한 것은 형식적 이해를 넘어선 재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 교의 역사는 경전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의 역사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형식 적 자료인 텍스트만을 가지고 종교를 말한다면 우리는 형식적인 일치를 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텍스 트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해와 텍스트를 읽는 이의 역사적 자료를 취사 선택하는 주관에 의하여 해석의 지평이 확대하거나 축소되어 다양한 해석을 통한 이해를 불러온다.오늘날 기독교 윤리학은 텍스트 해석과 신학적 개념 형성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방법인 신학적 윤리학의 입장의 한계를 긍정하고 있다. 신학적 윤리학의 한계는 신학적 사고의 보편성이 상황과의 관련성을 상 실할 때 더욱 문제가 된다. 이미 요셉 플레쳐를 중심하여 전개되었던 상황 윤릴 논쟁은 신학적 윤리학 의 규범론적 그리고 연역론적 방법의 한계를 드러내었던 논쟁으로 의마가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기 독교 윤리학은 신학적 윤리학의 과제만이 아니라 기독교 사회 윤리학의 과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정황에 들어와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형성되는 사회 윤리학적 방법은 텍스트 적절성(Schriftgemaessigheit)만이 아니라 상황 적절성(Sachgemaessigheit)을 윤리적 해석학의 판단 범주로 받아들이고 있다.1) 결국 사회 윤리학적 방법은 신학적 윤리학이 읽어내지 못하는 상화을 읽어내기 위하여 간학문적인 분석 적 과정을 운용하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논의의 범위를 한국교회의 기독교 윤리적 성향을 분석하는 데 제한하도록 한 다. 다만 논의를 전개하면서 한국교회가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함으로써 기 독교적 영성을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유리된 것으로 이해하여 인식과 실천에 쉽게 메울 수 없는 괴리 를 안고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가 복음의 주체적 해석자가 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과제를 제안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초대교회 역사 연구의 방법론적 시도 : 성인전(hagiography)과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논찬
박명수 호남신학대학교 2000 역사와 해석학 Vol.4 No.1
근대 이전에는 역사 연구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연구하여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모방하게 하는 것이었다. 성인전이나 위인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단체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근대사회의 등장과 더불어서 이런 역사 연구는 비학문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역사 연구에서 개인의 도덕이나 경건과 같은 사적인 것을 제외시키려는 근대 학문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결과 교회사에서 위대한 신앙인들의 생애는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교회사는 싸늘한 교리의 역사나 경직된 제도, 아니면 거기에 대항하는 혁명의 역사로 이해되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사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