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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2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4
본 논문은 오사 시기 《동방잡지》에서 보이는 근대적 시공 개념의 재구성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시공 개념의 이념형으로서 “문화전이기”와 “신촌” 개념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사실 이 두 개념은 오사 문화의 전반적 주조였던, 전통과의 단절, 그리고 중앙 집권적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목표와 대척점을 이루고 있었던 주장이다. 그런데 본 논문이 이러한 개념의 구성 과정을 추적하는 이유는 오사라는 문화의 전환기에 변화를 대면하는 사회의 태도에는 지금까지 주목돼왔던 단절론적 급진 주장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담론 상의 경쟁적 위치에 존재했던 개량적 주장들 또한 존재하면서 다층의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시간의 연속성을 인정하면서 국민국가와 같은 단일적 정체성의 공간 개념을 부정한다. 이는 1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폐해를 목도하면서 보여준 중국 지식인들의 반응으로서, 전반 서화를 추구하는 시각과는 다른 대안적 시공 관념을 모색하는 방식이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입장들이 오사의 스펙트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긴다. 본 논문에서 주목하고 있는 “문화 전이기” 개념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종류의 시간을 단절적 관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과정 속에서 순환과 상호 침투의 과정을 통해 역사의 동력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동방잡지》에서 주목하였던 이러한 시간 개념은 오사 진영의 전통 단절론에 대한 대항 담론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점진주의의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었다. 반면, 공간성 개념에 있어서 “신촌” 개념은 이른바 “지방의 사회주의(地方的社會主義)”를 표방하면서, 오사 주류의 주장인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목표에 대해 저항하는 공간 개념을 구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촌”개념은 국가와 도시, 중앙과 지방,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라는 공간 개념 상의 이원적 대립 구도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단일한 정체성을 부정하고 상호 부조와 분권의 정신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상상되었다. 사실, 오사 전후 《동방잡지》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 두 가지 시공 개념은 당시 보수 진영에서 모색한 이념형의 산물들로서, 오사의 주류 담론에 저항하는 일종의 대안적 근대상상이었다. 본 논문은 오사의 구체적 담론 경쟁 구도를 조망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러한 대안적 시공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오사 주류 담론의 기원을 정확히 파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오사 서사의 복선성(??性)을 구성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20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121
In this thesis, we reviewed not only the religious view of editors and writers but also the recognition of religion in each zone of Asia, focusing on 『Introduction』and 『Religious Intelligence』 column in the 1st and 2nd edition of 『The Chinese Repository』. And analyzing in order the recognition of liberalist value, human right and constitutional government, its connection with practical knowledge distribution movement, and the epic mode of Asia, we observed reflectively their recognition process otherized of Asian religion progressed differently from the previous generation. Of them, 『Religious Intelligence』 between 1832 and 1833 records the local religion reflected on their eyes and the missionary activity in that zone, and describes professionally how are these activities progressed and what performance is it making, and what prospect does it have. In this thesis, we observed through their epic strategy how did it change the fear or insecurity of the zone into the modern or occidental value in the recognition of asian zone’s religion or culture that these Protestant Missionaries before and after 1832. And, we analyzed how the occidental christian missionaries’ eyes of orient and the epic reflecting those eyes have been acted implicitly in establishing mutual status of orient and occident. It is clear that their epic of Southeast Asia and China is not only a transparent and objective explanation to spread the knowledge of zone but also, doing ‘its practical interpretation’ with any directionality, it did the mutual role between the political and cultural contact of orient and occident. Their east asian epic was not the value neutral religious epic without politicality or ideologism excluded or propagation of knowledge of the zone but the result of practical exclusive possession to project their will or goal of the other and to induce such a change.
「귀츨라프의 중국연안 탐사기」로 통해 본 문화 접촉지대의 횡단자들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8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110
In this study, viewpoint of missionaries for southeast Asia and China and representation method were analyzed based on their travelogue carried on early edition of The Chinese Repository published in early 19c. Major analysis target was travelogue for eastern coast of China written by Gutzlaff and through this process, an effect of position of protestant missionaries who crossed cultural contact point on mediated interaction being performed for both cultures of east and west was observed. Through this, a limitation of one-way civilization propagation model of propagating and accommodating culture among existing modernism discourse was indicated and furthermore, attention was paid to cultural convergence being taken place in a space where two heterogeneous cultures are contacted and practiced. For this objective, while taking notice of a concept of cultural contact, interactive and interfaced cultural negotiation including self-reflection of recognition principal being generated in contact point, adjustment of knowledge and internalization process for the counterpart was intended to be analyzed more deeply. Conclusively, it is considered that travelogue of Gutzlaff is not just containing geographical information for the East Asia but is a record of missionaries at that time showing dialogue methods with counterpart civilization symbolically.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1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0
본 논문은 1919년 전후로 대두된 상무인서관의 간행물들에 대한 개혁의 요구와 그에 따른 실천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본 논문은 상무인서관의 가장 핵심적인 잡지이자, 기본적으로 오사 이전부터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던 〈동방잡지〉와 〈소설월보〉, 양대 잡지의 편집 체제상 변화와 그것을 둘러싼 지식인 네트워크의 변동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들 잡지들의 편집 체제에 있어서의 소위 “반개혁”으로부터 “전면 혁신”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편집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데 집중하고자 하였다. 먼저, 전반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수용한 장위엔지[?元?]등 상무인서관의 경영진이 선택한 “새로운 피의 수혈” 전략은 비교적 신속한 성과를 올리는데, 그 가운데 〈소설월보〉의 개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상, 〈소설월보〉의 개혁에는 션옌삥[沈雁?]이라는 상무인서관 내부에서 성장한 신문화적 지식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였고, 이러한 편집 주체의 교체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잡지의 체제 및 내용에 있어서 신문화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 시기 션옌삥은 상업주의 출판계에서 이용되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개념의 왜곡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따라서 〈소설월보〉의 항목 조정에 있어서도 서구 근대 문예를 직접 번역 소개하는 란을 설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24세의 새로운 편집자는 〈소설월보〉를 1년 여 만에 개혁시킨 후, 문학연구회의 진지로 정립시킨다. 반면, 〈동방잡지〉는 1919년 말 뚜야취엔[杜?泉]을 편집자의 자리에서 사직시킨 후, 1920년 타오싱춘[陶惺存]을 거쳐, 구지식인인 치엔즈시우[?智修]가 주편의 자리를 맡는다. 그러나 새롭게 〈동방잡지〉의 주편자리에 오른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었던 인물들로 〈동방잡지〉가 〈소설월보〉에 비해 개혁의 속도가 늦어진 이유도 이러한 인적 요소에 기인한 바가 컸다. 그리고 이후 〈동방잡지〉는 출판 경영의 위기 속에서 다시 후쓰[胡適]를 영입하고자 하나, 이 또한 실패하고 내부의 지식인들을 전면에 배치해 잡지의 내용을 개량해 나간다. 본 논문이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이 두 잡지의 개혁 과정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두 잡지 모두 개혁의 시작은 편집진의 교체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개혁은 그러한 주체의 변화가 얼마나 근대적 제도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밀착되었는가의 여부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중국의 근대적 출판 제도의 개혁 과정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구시대 지식인들의 교량적 역할에 대한 자임과 신지식인들의 과감한 자기 부정 및 반성이 그 기원을 함께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각종 중국의 근대적 제도의 기원이 시간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혁명적 사고에 의해서만 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을 긍정하는 사유와의 상호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2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3
1915년 5월 15일 위엔스카이(袁世凱)는 일본이 요구하는 21개의 항목을 받아들임으로써, 중일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의 첫 조항은 독일에 이어서 일본이 산똥(山東)지방에 대한 특권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일 간의 불평등 조약은 대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효력이 지속되어서, 1922년에 이르기까지도 폐기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동방잡지(?方?志)〉에서는 조약 폐기를 요구하는 문장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이제 중국인들은 국제조약으로 상징되는 국제법 체제가 힘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임을 새삼 인식하면서, 여기에 제국들 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약소국에 대한 이해까지도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 사회의 경쟁 체제에서 가장 핵심적 구성개념은 바로 민족국가였다. 위의 중일조약 폐지에 대한 요구가 부상하기 이전부터〈동방잡지〉에서는 이미 국가와 그 내부의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된 바 있었고, 그 가운데 국가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이론과 개념들은 오사를 전후해서 대량으로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 중 까오라오(高?)는 역사 상 세계 지배의 형식을 분석하면서, 적자생존의 경쟁적 진화 논리를 대신해 “약자의 문화주의 지배(弱者之文化主?支配)”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그는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이러한 “약자의 문화주의 지배”의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와 민족국가가 가지고 있는 독점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해 정당화되는 폭력적 억압성을 비판한다. 이어서, 리스정(李石曾)은 크로포트킨의 호조론을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경쟁 진화의 논리와 다시 대립을 이룬다. 그가 번역한 크로포트킨의 호조론은 풍부한 역사적 고증의 사례를 통해 진화가 경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에 의해서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주장 또한 어떤 강압적 체제로서의 국가를 부정하고, 그 대신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연합체를 옹호한다. 나아가 이러한 반국가적 이론의 정점은 주로 션옌삥(沈雁?)에 의해 소개된 바쿠닌의 무강권주의였다. 이 주의는 “경찰과 형법”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강제력과 권력행위 자체를 전면 부정하고, 국가의 폐지를 위해서 폭력의 사용도 불사하는, 따라서 국가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부정의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국가의 지배를 폭력으로 간주하여 부정하는 이론들에 대한〈동방잡지〉의 일련의 소개는 당시 중국의 정치 체제 혼란이라는 배경 속에서 담론의 구조 상 공화 체제를 주장하는 오사 주류 담론들과 대립하며 대안 담론들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가 가지는 본질적 폭력성이 경쟁 진화의 논리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여, 그 대안으로 호조론과 상대주의 논리를 통해 국가라는 권력 형식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공화 체제를 옹호하는 오사의 분위기 속에서 분명 주류의 분위기 속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세계 질서 속에서 중국이 처해 있던 상황과 국가의 개인과 지역에 대한 무단적 지배에 대한 반감에 의해 공론장에서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적 탐구는 실제 〈동방잡지〉의 이후 편집 경향 속에서 국가의 틀을 넘어 세계주의적 관점으로 확장되면서 기존 열강 중심의 세계 인식보다 약소국이나 지역 단위의 사고를 강조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국가 단위를 넘어 세계 인민들 간의 문화적 연대와 실천을 상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기〈동방잡지〉의 세계주의 경향이 드러내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중서(中西) 문화 개념 접촉의 장(場)으로서의 『장원양우상론(張遠兩友相論)』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6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100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redetermine a meaning of text in Chinese-Western cultural contact through an analysis of a text for ‘Zhang yuan liang you xiang lun, 1819’ created by William Milne in Malacca. Creation of ‘Zhang yuan liang you xiang lun’ was a work having the most popular appeal and the strongest spread effect among missionary business undertaken by Milne in the East Asia and China. While being concerned over diversified missionary modes, he created a novel that may explain Christian doctrine as a pamphlet type that could be most readily accepted by local Malacca overseas Chinese and Chinese and this became the first Chinese Christian novel. Status of ‘Zhang yuan liang you xiang lun’ like this has been acknowledged even in Chinese novel history so far and that this novel spread Christian doctrine through Chinese language for the first time in China has been accepted as the most significant meaning of this novel. However, this study intended to focus on conversation strategy in cultural contact, mutual understanding mode for the culture and self regulating process of knowledge by newly discovering a status as a venue of East-West cultural contact involved in this novel. Furthermore, meaning of cultural cross between East-West value concept being occurred in this text was intended to be analyzed. While analyzing what kind of Christian contents and facts western Christian missionaries spread to Chinese was the main stream of existing study, in this study, psychological change that is taken place in inner side of main principal in two-way rather than one way under the act of transmission and receiving, that is, complicated inner conscious dynamics and mutual interlocking being exposed in cultural contact was mphasized. In this study, through conversation mode of characters being demonstrated and symbolized in detail by ‘Zhang yuan liang you xiang lun’, how those characters understood and persuaded their counterparts was superficially emphasized but how their own knowledge and cultural concept ran counter to and compared with cultural concept of counterparts and how it should be defined for persuasion in all the stages of its hidden side are considered to be the main concern of this novel. A research on this inner trace shall be discovered and re-analyzed through in-depth reading of the text and therefore, fundamental attempt of this study was also focused on reviewing trace of localization movement and its two-way effect existed in ‘Zhang yuan liang you xiang lun’.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1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1
오사 이후, 〈동방잡지(?方?誌)〉의 “근대문학비평”과 “모방과 창조의 조화” 개념의 전개는 〈동방잡지〉 자체의 개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동방잡지〉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무인서관(商?印??) 내부에 있는 기타 잡지들의 개혁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 중, 션옌삥(沈雁?)에 의한 〈소설월보(小?月?)〉의 개혁은 〈동방잡지〉의 적극적인 변화를 촉발하였다. 구체적으로1921년을 전후해서, 션옌삥과 문학연구회(文??究?)의 조우는 오히려 〈동방잡지〉에게 자신 내부에 대한 반성을 촉발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들로 하여금 상무인서관 내부에서 성장한 근대적 지식인들을 개혁의 전면에 배치하도록 하게 하였다. 본 논문은 근대 문학의 제도화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의 개혁과 〈동방잡지〉의 근대문학 이론 전개 사이에 존재했던 연동성을 먼저 확인하고, 이로 인해 확립된 문학관이 〈동방잡지〉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와 〈동방잡지〉의 개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본 논문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구문학의 와해와 신문학의 건립 과정 속에서 션옌삥과 후위즈(胡愈之)라는 구시대 영역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어떻게 전통의 속박을 돌파하여, 근대 문학의 개념을 설정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자연히, 이들이 설정하는 근대문학의 개념적 상상은 바로 인습적인 문학 표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써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문학 주장은 비록 이 당시 반(反)-전통을 주장했던 신문학 진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들이 상대주의적 시간관을 기초로, 호조론과 조화론적 관점을 문예 진화론적 시각과 결합하면서, 절대적 문학 판단 기준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절대적 문학 기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고전의 문학 법칙과 그 체계의 질서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대의 주류가 된 급진적 문학 주장, 특히 서구 가치에 대한 맹목적 추종들까지도 포함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에 대해 철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절대성과 상대성의 경계에 서 있었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회의의 근원에는 1차 세계 대전과 민국혁명의 실패라는 역사적 사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구에 비해 동양의 상대적 가치를 옹호해온 〈동방잡지〉의 기존 입장에 새로운 주류 이데올로기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결합한 문예 이론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이를 대표하는 논리로서 귀납적 비평을 강조한 후위즈는 문학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과 판단을 중시하고, 기존의 권위적 문학 기준들을 부정하면서 근대 독자의 비평적 독서에 의해 텍스트를 재구성하는 것이 근대 문학 비평의 시작이라 보고 있다. 후위즈의 소위 “근대 문학 비평” 개념이나 미우펑린(??林)의 “창작과 모방의 조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속박을 파괴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국 지식계의 보수적 경향성 내부에서 성장한 개혁 주체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었고, 이러한 개념들은 개혁의 기원 및 그 원동력과 관련해서도 오사의 급진적 문화주의자들과 차별되는, 또 다른 복선(??)적 역사 인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 논문이 오사 시기 경쟁 진화론과 대비되는 호조 진화론의 맥락을 추적하여, 그 안에서 형성되는 근대 문학 개념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오사 신문화의 극단적 반(反)전통 담론이 빠지기 쉬운 역사 서사에 대한 독점적 경향에 대해 새로운 대안적 인식 공간을 발굴해 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李保高 중국어문학연구회 2011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66
본 논문은 오사 신문화 운동 전후 시기 중국 출판 시장의 변동 과정과 그 내용을 『동방잡지(?方?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1897년 일본의 자본에 의해 근대적 출판사로 출발한 상무인서관은 1904년부터 종합성 잡지인 『동방잡지』를 출간한다. 이 잡지는 1948년 12월 종간될 때까지, 여러 역사적 사건의 원인들로 인해 수차례 편집진과 편집 방향의 변동 과정을 겪는다. 그 가운데 본 논문은 오사 이전 최대의 판매량을 자랑하던 상무인서관의 잡지들이 사회 가치의 변동에 따라 경영 상 위기를 맞게 되고, 그에 대응하여 신문화 담론을 흡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당시 전체 출판 시장에서 발생한 양적 그리고 질적 변화의 내용을 추적하고자 한다. 본문에서는 먼저, 뚜야취엔(杜?泉)이 편집자를 맡았던 1914년부터 1920년 시기 『?동방잡지』?의 판매량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이 당시 근대의 가치에 대해 미온적 혹은 부정적이었던 이들의 태도가 잡지의 사회적 역할 인식 정립과 함께 그 지향의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또 실제 지식 담론 내부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논쟁, 예를 들어 백화문을 둘러싼 개념상의 논쟁을 통해 이들이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던 보수적 가치관과 근대 국민국가 개념을 전제로 한 근대 독자군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어떠한 논리 전개의 과정으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사 이후 『?동방잡지』?의 편집상의 구체적 변화와 함께 이들 텍스트에 등장하는 “관수지식(灌?知?)”이라는 구호가 어떤 지식사회 내부의 논쟁적 맥락을 통해 출현하게 되는지를 재구성하고 있다. 본 논문은 오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대표적 두 가지 시간관, 즉 오사를 역사 전개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보는 관점과 청말 이래로 지속되어 온 변화의 연속선 상 또 다른 한 지점으로 파악하는 관점에 대해 동시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순수한 실증의 의미로 보았을 때, 오사가 이전 만청 시기의 각종 사조로부터 촉발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며, 본 논문의 시각은 이러한 질문들이 오사를 절대성을 지닌 근대성 이데올로기의 기점으로 파악하는 시각에게 더 넓은 연구의 범주를 제공해준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당시 출판 산업의 변동에 대한 파악을 지식 사회의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파악하고자 한 점은 바로 이러한 두 시간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방법론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역사 사실에 대한 부단한 역사화의 반추 과정은 그 해석에 있어서 특정한 맥락의 전유를 극복하고, 그 대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데 선결 조건이 될 것이며, 이는 역사 텍스트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소명이기도 할 것이다.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4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88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are to strengthen intellectual and regional exchange among nations in Northeast and Southeast Asia by creating Asia Identity, and to seek for breakthrough which enables substantive cooperation and conversation through cultural and academic exchange. To attain these objectives, it is certainly required to install a base institution to overcome not only cultural nationalism rising in East Asia, but also “Identity Politics” to adhere to indigenous culture in the waves of globalization, and to create Asia Identity which can be shared by East Asia. In case of China, this study inquired into institutions for cultural support overseas such as Confucius Institute Headquaters (Hanban) in order to check China’s endeavor to strengthen international exchange system centered on expansion of its culture. In case of China, even if the direction of its national strategy has moved from modernization based on economic development to “Construction of Culture” which begins to regard culture and cultural industry highly, China put stress on dissemination of its culture in international exchange and Public diplomacy. Therefore,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 of China was stillin “enlightenment period.” In terms of transmission of values, effective directions of cultural exchanges should be provided to overcome autistic nationalism, global tasks which require joint response should be developed, efforts to transmit value of creative and outstanding Asia’s culture should be strengthened, the values to respect cultural coexistence of East and West and cultural variety should be established, and the plan to train talented individuals who are creative and aims at global values should be practically developed, and the result of the training plan should be sincerely shared with other nations in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