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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학학회 新羅文化宣揚會 2001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Vol.22 No.-
황룡사 9층탑은 신라 선덕왕 14년(645) 고승 慈藏의 건의와 伊于 龍春의 주도로 백제인 大匠 阿非知 등이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文聖王대(839~856) 탑이 기울자 景文王 11년(871) 王弟인 伊于 魏弘의 주도로 중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 소개하는 황룡사 찰주본기는 9층탑 중창 당시 새로 조형된 金銅函의 3면판 내외에 판각된 것이다. 이 황룡사 금동함 3면판은 兩扉와 함께 상하의 金具로 이어져 있다. 문자의 크기는 내면이 1cm 정도, 외면의 명문은 0.8cm 정도가 된다. 또한 금동판 3枚의 크기는 橫 23.5cm, 縱 22.5cm로 정방형 형태를 보이고 있다. 황룡사 찰주본기는 行數 74, 編字數 900에 이르고 있었다. 이 황룡사 찰주본기 명문은 내면에 판각된 本文 부분과 외면에 판각된 人名의 부분 양면에 걸쳐 기재된 것이다. 본문의 3판은 황룡사 9층탑의 창건의 경위와 중창의 사정을 밝히는 동시에 중창시 舍利 장치의 품목 등을 전하고 있다. 한편 외면의 3판은 황룡사 9층탑의 창건과 중창에 관여한 감독과 책임관 승려와 세속인 등 56인의 인명을 밝히고 있다. 황룡사 찰주본기는 기왕의 자료와 유사한 내용을 전하는 동시에 내용의 차이도 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점 황룡사 찰주본기는 단지 소중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학술적 의미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