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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華厳の論義における澄観の影響 - 天台教学との関係に注目して -

        野呂靖(Noro, Sei)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23 佛敎學報 Vol.- No.102

        14세기, 동대사(東大寺) 계단원(戒壇院)의 장로 죠요(盛譽, 1273~1362)가 편찬한 『화엄수경(華嚴手鏡)』에는 서른 가지 화엄의 논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 근세에서 근대에 걸쳐 서사·간행이 반복된 것으로, 화엄학의 참고서로서 일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서른 가지 논제 중 다섯 가지(‘久遠同不’, ‘本懷華嚴’, ‘佛慧根本’, ‘別位通局’, ‘華嚴海空’)이다. 이들은 모두 징관(澄觀)의 교학에 관한 ‘논의’이며 게다가 모두 천태교학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일본에 처음으로 징관의 경소(經疏)를 가지고 온 것은 구카이(空海, 774~835)였으며, 천태종(天台宗)의 사이초(最澄, 766~822) 또한 “천태교학을 중시한 조사”로서 징관을 높이 평가하였다. 구카이 사후 진언종(眞⾔宗)에서는 징관의 교학이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를 구분하지 않은 잘못된 사상으로 비판받게 되는데, 비판 과정에서 『화엄경소(華嚴經疏)』, 『연의초(演義鈔)』 등이 치밀하게 연구되었다. 즉 헤이안시대 일본에서 징관을 연구한 종파는 동대사의 화엄종이 아니라 천태종과 진언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헤이안시대 중후기에 이르러 고려 의천(義天, 1055~1101)이 수집, 간행한 교장총록이 일본에도 전해지자, 동대사나 고산사(高⼭寺) 등지의 화엄종 승려들이 점차 징관의 문헌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가마쿠라시대 초기 고산사의 묘에(明恵, 1173~1232)나 동대사의 소쇼(宗性, 1202~1278)는 법장(法藏)의 교학과 다른 징관의 교학을 얼마나 모순 없이 이해하는가에 힘을 다하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 일본의 징관교학 수용이 보이는 특징은, 천태교판을 중시한 징관의 설을 계승하면서도 법화일승(法華一乘)과 화엄일승(華嚴一乘)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모든 교설의 근본법륜으로서 『화엄경』의 위상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 있다. 그중 동대사 계단원의 ‘논의’에서는 『법화경(法華經)』에서 설하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나 “출세본회(出世本懷)”가 『법화경』의 역할이 아니라 『화엄경』의 역할이라 하여 천태교학에서의 『법화경』 이해와 다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이상과 같이 일본에서의 징관교학 수용을 개관하는 한편, 『화엄수경』 및 동대사 도서관에 소장된 ‘논의’들의 사본 분석을 통해 징관교학이 일본불교에 끼친 영향을 밝히고자 한다. In the 14th century, Jyoyo 盛誉 (1273-1362), an elder f the Kaidan-in Temple (戒壇院) of Todaiji, compiled two volumes of the Kegon TeKagami (華厳手鏡). It contains 30 doctrinal debates of Kegon thought treatises. This book was well-read during the early modern and modern periods in Japan, and had a great influence as a reference book on Kegon thought in Japan. It is noteworthy that five of the 30 essays are on the thought of Chengguan 澄観 (738-839), and all of them are critical of Tendai doctrines. In this paper, I review the reception of Chengguans doctrine in Japan and clarify its influence on Japanese Buddhism through an analysis of the Kegon Teka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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