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신라의 迎接儀禮가 정비되는 과정을 정리하고, 신라를 방문한 外賓에 대한 영접 절차와 방식, 그리고 이를 위해 운용된 영접관부의 역할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구명하여 신라의...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본 논문은 신라의 迎接儀禮가 정비되는 과정을 정리하고, 신라를 방문한 外賓에 대한 영접 절차와 방식, 그리고 이를 위해 운용된 영접관부의 역할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구명하여 신라의...
본 논문은 신라의 迎接儀禮가 정비되는 과정을 정리하고, 신라를 방문한 外賓에 대한 영접 절차와 방식, 그리고 이를 위해 운용된 영접관부의 역할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구명하여 신라의 영접의례가 갖는 특징과 의의를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신라는 건국 초부터 주변국들과의 끊임없는 외교교섭을 통해서 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주변국들과 사신을 지속적으로 교환하였다. 이는 일찍부터 신라에 외빈을 위한 영접의례가 마련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특히 신라 중고기는 중국 왕조들과의 본격적인 교섭이 전개되면서 그들의 영접의례에 차츰 영향을 받았고, 또 습득해 나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6세기 후반부터 신라는 영접관부를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조직적이고 제도화된 영접의례의 운용을 도모하였다. 진평왕 8년(586)에는 영접관부인 倭典을 처음 설치하였고, 진평왕 43년(621)에는 왜전을 領客典으로 개칭하여 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에서 來訪한 외빈들에 대한 영접까지도 담당하도록 하였다.
신라의 영접의례는 진덕왕 5년(651)에 다시 한 번 정비되었는데, 독립된 하위 관부 領客典을 2인의 令을 두는 領客府로 승급시켜 조직을 확대․개편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신라는 중국의 유교적 예제에 입각하여 영접의례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신라 중․하대 외빈 영접의례의 기본적인 틀이 정비되었다.
중․하대 신라의 영접의례는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먼저 외빈이 신라의 변경에 來着하면 그 사실은 王京의 신라국왕에게 보고되었다. 이에 신라국왕은 來着地로 延迎使를 파견하여 외빈을 왕경까지 안전하게 호위·인솔하도록 하였다. 외빈이 왕경의 郊에 다다르면 신라국왕은 다시 사자를 파견하여 郊迎을 행한 뒤, 왕경 내에 위치한 客館에 안치하였다. 그 후 신라국왕은 날짜를 정하여 사신으로부터 國書와 國信을 전달받았다. 사신의 모든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면 귀국에 맞추어 신라국왕의 答書와 答禮品이 사신에게 전달되었다. 만약 방문한 이가 주변국의 군주일 경우에는 국서의 교환 대신 상견례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라는 외빈이 입경의 역순에 따라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당사신의 영접의례에서는 사신으로부터 신라국왕이 국서를 직접 전달받았는데, 일본사신의 경우 2~3등의 관등을 지닌 신하가 대신 전달받아 차이를 보였다. 이는 신라가 당에 대해서 사대의 예, 일본에 대해서는 교린의 예로 의례의 격에 차이를 두고 영접의례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고려국왕에 대한 영접의례의 경우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교린의 예를 적용했지만, 隣國의 국왕이 친히 방문하였기 때문에, 당황제의 번신 대 번신의 지위에서 신라국왕이 직접 대면하는 동등하고 수평적인 영접의례가 이루어졌다.
신라의 중앙행정관부 중에서 내방한 외빈에 대한 영접 업무를 일괄적으로 관장한 곳은 영객부였다. 영객부는 入京한 사신들을 객관에 안치시켜 숙식과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그들을 관리․통제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國書와 國信物을 접수․확인하고 국왕 알현 시에 차질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처리하며, 어떠한 격식에 따라서 외빈을 접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결정하였다.
또한 신라는 客館을 두어 왕경을 방문한 외빈들을 안치시키고 숙식과 편의를 도모해 주었다. 신라 왕경 내에는 복수의 객관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전담하는 국가와 신라와의 관계설정에 따라 건물의 규모와 격에 차이를 두었다. 신라는 외빈이 내착하는 곳과 사행로 상에도 각각 來着地 객관과 使行路 객관을 운영하여 외빈들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이밖에도 외빈 영접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한 기관으로는 禮部와 執事省 등이 있었고, 외빈의 내착지와 사행로 상의 州 역시도 지방에서 영접 업무를 담당하였다.
한편, 신라가 주변국들과 주고받은 外交文書의 서식 분석을 통해서 영접의례상의 상호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당과 신라는 각각 皇帝國과 蕃國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신라를 蕃國視하여 황제국의 입장에서 國書를 작성해 신라에 전달하였으나, 신라는 일본을 동등한 관계의 隣國으로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의식하여 國書를 작성하지 않고 사신의 口頭로만 국왕의 뜻을 전달하였다. 한편, 신라가 報德國과 주고받은 국서에는 宗主國과 隣國의 이중적인 태도가 모두 내포되어 있었다.
이처럼 신라국왕은 당과의 공식적인 외교관계에서 스스로 당황제의 蕃臣으로 규정하였고, 당 주변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당의 번국으로 인식하였다. 때문에 일본과의 외교에 있어서도 동등한 지위에서 亢禮를 행하는 隣國으로 대하고자 한 자세를 고수했던 것이다. 기록에 따라서는 신라국왕이 주변국의 군주를 책봉하거나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종주국의 지위에서 종속관계를 맺는 양상도 확인된다. 이는 당황제의 번신이라는 지위를 표방한 신라국왕이 취했던 또 하나의 예적 지위였다.
마지막으로 신라가 도입한 당의 賓禮는 황제 중심의 의례체계였기 때문에 당의 번국이라는 입장에서 황제의 사신을 맞이하거나 隣國의 사신, 또는 군주를 맞이해야 했던 신라의 입장에서는 당의 예제를 나름의 이해를 통해서 해석하고 변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신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禮書와 史書, 文章 등의 수입과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의례전문가들을 양성하였다. 그 결과 신라의 예학에 대한 이해는 한층 깊어졌고, 당제에서 변용된 신라 나름의 영접의례를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outline the process of Silla’s ceremonies for receiving state guests, and investigate the procedures and methods of receiving a guest from neighbor countries, as well as the role and function of the institution for w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outline the process of Silla’s ceremonies for receiving state guests, and investigate the procedures and methods of receiving a guest from neighbor countries, as well as the role and function of the institution for welcoming a state guest altogether. Ultimately, it will reveal the characteristic and significance of Silla’s ceremony for receiving state guest.
From the early period of its foundation, Silla had been developed into a state through constant diplomatic negotiations, and in this process, the state exchanged envoys with its neighborhood countries. This became a background for establishing ceremonies for foreign envoys. Once it started to open the negotiations with Chinese dynasties, Silla was gradually influenced by Chinese ceremonies for receiving guests during its Middle Ancient Period(中古期), while actively learning their formalities at the same time. From the late sixth century, Silla established the institution for receiving state guests and sought for systemized and institutionalized ceremonies. In the eighth year of King Chinp'yŏng(586 AD), Silla installed Waejŏn(倭典), the first institution in charge of receiving foreign guests. In the 43rd year of King Chinp'yŏng(621 AD), they changed Waejŏn’s name to Yŏnggaekchŏn(領客典), which was instructed to supervise the affairs of receiving other envoys visited Silla including the Japanese envoys.
Silla’s ceremonies for receiving state guest was reorganized in the fifth year of King Chindŏk(651 AD). At this time, Yŏnggaekchŏn, originally an independent and lower office, was reformed and expanded by promoting it to Yŏnggaekpu(領客府) with two Ryŏng(令; director); this was the result of the series of government office reforms during this period. By reorganizing the original institution into Yŏnggaekpu, Silla attempted to establish a new ceremony for receiving foreign envoys on the basis of Confucius code of ceremonies. As a result, the basic structure for the system of receiving foreign envoys in Silla’s Middle(中代) and Lower Period(下代) was organized.
During Silla’s Middle and Lower Period, the ceremonies for receiving foreign guests were progressed according to the following steps. First, when an envoy arrived at the frontier of Silla, the news was informed to the king of Silla at the capital. Hereupon the king of Silla sent Yŏnyŏngsa(延迎使) to the frontier to guard and escort the envoy to the capital. Once the envoy arrived at the outskirt of the capital(郊), the king sent an official again to perform a welcome ceremony at the outskirt of the capital(郊迎), and provided accommodation for the envoy in a guest house(客館) within the capital. Later, selecting a date, the king received a state letter(國書) and state presents(國信) from the envoy. When all official schedule was over, a reply letter and return presents was delivered to the envoy on his way to homeland. Afterward, Silla managed that the envoys could return to their homeland in reverse order of their visit to Silla.
Still, in the ceremony for receiving envoys from Tang dynasty, the king of Silla was supposed to receive the state letter in person. It was different from the ceremony for Japanese envoys that an official in second or third rank received the letter instead of the king. It was because of the disparity in Silla’s ceremonies applied to Tang and Japan that the envoys from Tang was treated in the manner of ‘respecting the great(事大)’, and Japan in the manner of dealing with a neighbor(交隣). Similarly, Silla applied the same manner as Japan to the king of Koryŏ. Yet, as the king of the neighbor country personally visited Silla, Silla performed a ceremony to treat him equal and coordinative with their king.
Among the central administration offices in Silla, the institution in charge of receiving foreign envoys en bloc was Yŏnggaekpu. While it guided the envoys arrived at the capital to a guest house, and provided convenience such as accommodations and other necessities, Yŏnggaekpu was in charge of supervising and controlling those envoys. Also, it accepted and checked state letters and presents, handled the process of having an audience with the king, and even decided a standard of the formality to serve envoys.
Also, Silla installed guest houses(客館) to provide convenience and accommodations for foreign envoys who visited the capital. In Silla’s capital, there were multiple guest houses constructed, and the size and quality of these guest houses were differentiated in accordance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the guest’s country. Silla provided convenience for envoys by operating guest houses on the frontier region, or near the road to the capital. Apart from this institution, there were Yebu(禮部) and Chipsasŏng(執事省), institutions which conducted duties related to receiving envoys, as well as local Chu(州) including this frontier region or road to the capital also took the charge of serving state guests.
By analyzing the form of the diplomatic documents Silla had exchanged with other countries, it is possible to identify mutual cognition reflected on the ceremonies for receiving envoys. According to this analysis, Tang and Silla claimed their positions as a state of emperor and a subject state respectively. On the other hand, while Japan viewed Silla as a subject state, and sent a state letter from the position of a state of emperor, Silla considered Japan as a neighbor country on equal footing. Still, aware of the possible diplomatic friction, Silla did not write any state letter but only send envoys to verbally convey its king’s will. Additionally, the state letters exchanged with Podŏk Kingdom(報德國) connoted the twofold attitudes as a suzerain state and neighbor state.
Thus, Silla’s ceremonies for receiving foreign guests has the characteristics as in the following: first, in its process of organizing the ceremonies for receiving guests, Silla established a principle of ceremony as serving the great(事大), and being neighborly(交隣). When the envoys from Tang dynasty visited, Silla welcomed them in a position of subject state. On the other hand, when Japanese envoys visited Silla, they were welcomed with the ceremonies by a neighbor country. Also, although Silla accepted the practices of Tang dynasty, they adjusted these ceremonies through their own interpretation and applied them in accordance with their circumstance. Tang dynasty’s protocols did not include the ceremonies for the guests from neighbor countries, because their protocols were centered on the practices for a state of emperor. As a result, there was a special national concern from the ruling class of Silla in Chinese books about ceremonies and rites, or related literatures to materialize the ceremonies for receiving guest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 신서원, 김택민,
2. 復元加耶史下, 千寬宇, ,, 文學과 知性31, , 1978
3. 加耶聯盟史, 金泰植,, 일조각, , 1993
4. 한양대학교박물관, 화성시, 화성 당성 5차 발굴조사 (현장보 고회 자료), , 2018
5. 한중관계사Ⅰ, 김한규, 아르케, , 1999
6. 韓國古代史硏究, 김철준, 서울大學校出版部, , 1990
7. 발해정치외교사, 김종복, 일지사, , 2009
8. 한국법제사연구, 전봉덕, 서울대출판부, , 1968
9. 中華思想과 民族主義, 李成珪, ,, 哲學37, , 1992
10. 新羅의 中央行政官府, 李仁哲, ,, 白山朴成壽敎授華甲紀念論叢韓國 獨立運動史의 認識, , 1991
1. , 신서원, 김택민,
2. 復元加耶史下, 千寬宇, ,, 文學과 知性31, , 1978
3. 加耶聯盟史, 金泰植,, 일조각, , 1993
4. 한양대학교박물관, 화성시, 화성 당성 5차 발굴조사 (현장보 고회 자료), , 2018
5. 한중관계사Ⅰ, 김한규, 아르케, , 1999
6. 韓國古代史硏究, 김철준, 서울大學校出版部, , 1990
7. 발해정치외교사, 김종복, 일지사, , 2009
8. 한국법제사연구, 전봉덕, 서울대출판부, , 1968
9. 中華思想과 民族主義, 李成珪, ,, 哲學37, , 1992
10. 新羅의 中央行政官府, 李仁哲, ,, 白山朴成壽敎授華甲紀念論叢韓國 獨立運動史의 認識, , 1991
11. 신라 왕경의 역사, 전덕재, 새문사, , 2009
12. 신라의 바다 황해, 권덕영, 일조각, , 2012
13. 唐前期三衛宿衛의 性格, 金澔,, 中國史硏究30, , 2004
14. 唐前期皇帝宿衛의 구조, 金澔, 魏晉隋唐史硏究5, , 1999
15. 발해의 대외관계사, 한규철, 신서원, , 1994
16. 한국고대사와 말갈, 문안식, 혜안, , 2003
17. 大加耶의 世系와 道設智, 김태식, 震檀學報81, , 1996
18. 羅唐間의 朝貢에 대하여, 申瀅植, ,, 歷史敎育10, , 1967
19. 전후의 외교문서와 신라, 진성왕, 채미하, 韓國史硏究179,
20. 신라의 오례와 왕권, 채미하, 혜안, , 2015
21. 5세기 高句麗人의 天下觀, 盧泰敦, 韓國史市民講座3, , 1988
22. 譯註, , 삼국유사1~3, 박대재, 최광식, 고려대학교 출판부, , 2014
23. 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이기백, 일조각, , 1974
24. 역주, , 의레 역주1~8, 김용천, 세창출판사, , 2012
25. 편, , (點校) 三國遺事, 박대재, 최광식, 고려대학교 출판부, , 2009
26.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화성시, 당성 4차 발굴조사 약보고서, , 2017
27.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화성시, 唐城제3차 발굴조사(2015~ 2016) 보고서, , 2016
28. 三國史記 職官志硏究, 박수정, 高麗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 文, , 2016
29. 조선왕실의 외교의례, 김문식, 세창출판사, , 2017
30. 中國王朝에서 賓禮의 沿革, 金成奎, 中國史硏究 23, , 2003
31. 慈藏의 敎團整備와 僧官制, 채상식, 佛敎文化硏究4, , 1995
32. 新羅僧官制의 成立과 機能, 이수훈, 釜大史學14, , 1990
33. 新羅執事部의 設置와 中侍, 李泳鎬, ,, 國史館論叢69, , 1996
34. 新羅의 對外認識과 天下觀, 全德在, ,, 역사문화연구20, , 2004
35. 탐라국의 대외교섭과 항로, 최희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耽羅文化58, , 2018
36.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 이종욱,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1980
37. 신라 육상 교통로 연구, 서영일, 학연문화사, , 1999
38. <해제> 최치원과 계원필경집, 최광식, 孤雲崔致遠先生文集上, , 2016
39. 新羅上古世系의 再構成試圖, 김광수, 東洋學3, , 1973
40. 新羅中古期의 政治過程試論, 金瑛河, 泰東古典硏究4, , 1988
41. 新羅의 律令考, 論文集4, 전봉덕, 서울대학교, , 1956
42. 唐朝의 異民族管理와 問題點, 金奎皓, 江原史學7, , 1991
43. 新羅中代의 官僚制와 骨品制, 李基東, ,, 震檀學報50, , 1980
44.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최광식, 한길사, , 1994
45. 한국의 고대 해상교통로, 정진술, 韓國海洋戰略硏究所, , 2009
46. 梁職貢圖의 傳統과 摹本, 尹龍九, ,, 목간과 문자9, , 2012
47. 고려 개경의 편제와 궁궐, 金昌賢, 景仁文化社, , 2011
48. 譯註, , 역주 일본서기2~3,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 2013
49. 신라의 종묘제 수용과 그 내용, 나희라, 한국사연구회, 韓國史硏究98, , 1997
50. 남북국시대의 對中항로와 거점, 윤재운, 韓國史硏究179, , 2017
51. 신라 倉庫制의 성립과 租稅運送, 김창석, 韓國古代史硏究22, , 2001
52. 신라와 가야제국의 전쟁과 외교, 李永植, ,, 신라문화선양회, 新羅文化祭學術發表論 文集15, , 1994
53. 한국 고대 국가제의와 정치, 채미하, 혜안, , 2018
54. 6世紀新羅의 加耶倂合과 그 意味, 정운용, 史叢52, , 2000
55. 新羅의 對中,日交通路와 그 變遷, 전덕재, 역사와 담론6, , 2013
56. 新羅中央財政機構의 性格과 變遷, 全德在, ,, 新羅文化25, , 2005
57. 일본고대국가의 왕권과 외교, 박석순, 경인문화사, , 2002
58. , 新羅公式令의 王命文書樣式考察, 梁正錫,, 韓國古代史硏究15, , 1999
59. 新羅下代浿江鎭의 設置와 그 性格, 전덕재, 大邱史學113, , 2013
60. 新羅倭典의 성격 , 韓國史論61, 이현주, 서울大學校國史學科, , 2015
61. 고려 太祖代대외 교섭과 外交儀禮, 한정수, 韓國史硏究170, , 2015
62. 한국 고대의 동아시아 교역사, 박남수, 주류성, , 2011
63. 中越關係와 朝貢制度-假像과 實像-, 劉仁善, ,, 歷史學報114, , 1987
64. 역주, , 孤雲崔致遠先生文集上, 최광식, 고운국제교류사업회, , 2016
65. 통일기 신라의 客館운영과 그 분포, 최희준, 韓國史學報69, , 2017
66. 文武王代倭典의 再設置와 對日外交, 서영교, 전통문화논총1, , 2003
67. 제도분석–이론과 쟁점-(제2판), 하현섭, 다산출판사, , 2011
68. 唐代의 中央-地方通信體系와 銅魚符, 金羨珉, 中國史硏究25, , 2003
69. 신라의 賓禮-당 使臣을 중심으로-, 채미하, 韓國史學報43, , 2011
70. 新羅와 唐의 大祀 中祀 小祀비교연구, 최광식, 韓國史硏究95, , 1996
71. 8, 9세기 ‘君子國’에 온 唐나라 使節, 권덕영, 新羅文化25, , 2005
72. 編著, , (증보)한국고대사입문1~3, 김정배, 신서원, , 2010
73. 당 전기의 성세와 비단[絹帛](Pax Serica), 김택민, 中國學報60, , 2009
74. 신라 中代의 唐사신 영접 절차와 운용, 최희준, 韓國史硏究 143, , 2011
75. 통일신라의 천하관과 대일(對日) 인식, 김창석, 역사와 현실56, , 2005
76. 渤海外交文書의 實狀과 그 文體的特徵, 黃渭周, ,, 大東漢文學26, , 2007
77. 고려중기의 宋使節迎送과 伴使의 운용, 金圭錄, 歷史敎育134, , 2015
78. 일본 최후의 遣唐使파견과 張保皐勢力, 金恩淑, 韓國古代史硏 究42, , 2006
79. 新羅執事省의 성격과 위상에 대한 再論, 박수정, 新羅史學報40, , 2017
80. 新羅의 大加耶복속 과정에 대한 재검토, 尹星鎬, ,, 韓國史硏究 155, , 2011
81. 일본과의 관계 , 한국사 9 통일신라, 金恩淑, 국사편찬위원회, , 1998
82. 8세기 新羅의 동아시아 外交와 迎賓체계, 朴南守, ,, 新羅史學報 21, , 2011
83. 三國과 南北朝交涉의 性格, 東洋學1, 徐榮洙, ,,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 1981
84. 新羅에서의 漢字學定着過程과 佛敎受容, 朱甫暾, ,, 嶺南學1, , 2001
85. 6세기 후반 신라와 왜국의 국교 성립과정, 金恩淑, 新羅文化宣揚會, 新羅文化祭 學術發表論文集15, , 1994
86. 7-9세기 동아시아의 경제교류와 문화교류, 김택민,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70, , 2010
87. 譯註, , 韓國古代中世古文書硏究(上), 노명호,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
88. , 新羅聖德王代의 對日關係와 ‘王城國’, 야마다 후미토,, 韓國古代 史硏究87, , 2017
89. 白村江싸움 직후 일본의 大陸關係의 再開, 金鉉球,, 일본역사연구, , 1998
90. 당 중심의 세계질서와 신라인의 자기인식,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 현실 37, , 2000
91. 고대 일본의 對新羅關係와 신라의 국서문제, 강은영, 韓國史硏究179, , 2017
92. 「8세기 신라의 대일외교와 동아시아 인식」, 전덕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日本學硏究44, , 2015
93. 漢唐역사 속 유가의 道와 釋奠禮의 共變과정, 유은주, 東洋哲 學42, , 2014
94. 譯註, , 儀禮:고대사회의 이상과 질서1~3, 오강원, 청계, , 2000
95. 신라 ‘党項城’의 연혁과 善德王代羅唐關係, 최희준, 先史와 古代 47, , 2016
96. 天下國家-전통 시대 동아시아 세계 질서-, 김한규, 소나무, , 2005
97. 「고려시대 서해 연안해로의 객관과 안흥정」, 윤용혁,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 경계 74, , 2010
98. 譯註, ~2012, (개정증보)역주 삼국사기1~5, 정구복, 한국학중앙 연구원출판부, , 2011
99. 新羅의 文書行政과 木簡, 강좌 한국고대사5, 윤선태, 가락국사적 개발연구원, , 2003
100. 譯註, ,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Ⅰ~Ⅲ, 김현구, 일지사, , 2002
101. 신라의 독서삼품과-한국 과거제도의 전사(前史)-, 전덕재, 한국 사 시민강좌46, 3~5쪽, , 2010
102. 新羅의 對唐交涉上에 나타난 宿衛에 對한 一考察, 申瀅植, ,, 歷史 敎育9, , 1966
103. 신라 중대 오례와 왕권-오례 수용을 중심으로-, 채미하, 한국사상사학회, 韓國思 想史學27, , 2006
104. 가야와의 관계 , 신라의 대외관계와 국제교류, 김태식,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 , 2016
105. 大唐開元禮 所載外國使관련 諸儀禮의 재검토, 金成奎, 中國 古中世史硏究27, , 2012
106. 文館詞林에 보이는 韓國古代史관련 外交文書, 朱甫暾, ,, 慶北史 學15, , 1992
107. 中國南北朝史硏究-朝貢,交聘關係를 중심으로-, 金鐘完,, 一潮閣, , 1995
108. 唐朝의 外國使節管理-中央에서의 管理를 중심으로-, 李玩碩, ,, 中國史硏究108, , 2017
109. 唐朝의 外國使節管理-地方에서의 管理를 중심으로-, 이완석, 동국사학62, , 2017
110. 唐玄宗期國家儀禮書의 편찬과 그 특징 , 東方學33, 김정식, 한 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 2015
111. 菁州의 祿邑과 香徒-신라 하대 지방사회 변동의 일례-, 金昌錫, 新羅文化 26, , 2005
112. 唐宿衛制度에서 본 羅 唐關係-唐代外人宿衛의 一硏究-, 卞麟石, ,, 史叢11, , 1966
113. J. 웨슬러 저, 임대희 역, , 비단같고 주옥같은 정치, 하워드, 고즈윈, , 2005
114. , 加耶滅亡問題에 대한 一考察-新羅의 膨脹과 관련하여-, 朱甫暾,, 慶北史學4, , 1982
115. 唐前半期使臣外交硏究-唐에서 파견한 사신을 중심으 로-, 廉景伊, ,, 全北大學校大學院史學科博士學位論文, , 2011
116. 新羅執事省의 위상과 역할 -新羅國執事省牒을 중심으로-, 李仁哲, ,, 淸溪史學18, , 2003
117. 속일본후기 所收신라국 집사성첩에 보이는 ‘島嶼之人’, 정순일, 일본역사연구37, , 2013
118. 高句麗와 新羅의 영역문제-順興地域의 考古學자료와 관련 하여-, 金貞培, 韓國史硏究61,62, , 1988
119. 백제와 일본 간의 왕실외교-5세기를 중심으로- , 百濟文化 31, 金鉉球, 公州大百濟文化硏究所, , 2002
120. 6세기 중엽 고구려와 신라의 통호와 7세기 전반까지 양국의 상호 인식, 최호원,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91, , 2017
121. 于老傳說의 世界; 新羅史上의 英雄時代, 韓國古代의 國家 와 社會, 이기동, 일조각, , 1985
122. 5~6세기 중엽 高句麗와 新羅의 관계-신라의 漢江流域진 출과 관련하여-, 주보돈, 北方史論叢11, , 2006
123. 8세기 신라,일본간 외교관계의 추이-752년 교역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金昌錫, 역사학회, 歷史學報184, , 2004
124. , 古代中國의 客官制度를 통해 본 百濟客官集雅館의 實際 , 百濟硏究57, 趙胤宰,,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2013
125. 古代동아시아 冊封朝貢體制의 원형과 변용 , 한중 외교 관계와 조공책봉, 방향숙, 고구려연구재단, , 2005
126. 新羅都城의 儀禮空間과 王京制의 성립과정 , 新羅王京調 査의 成果와 意義, 여호규, 文化財硏究國際學術大會發表論文12, , 2003
127. 三國遺事 皇龍寺九層塔條에 대한 재검토와 阿非의 출자 , 한국학논총36, 최희준,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2011
128.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의 신라와 일본 관계 -‘倭典의 別 置’ 문제를 중심으로-, 서보경, 일본연구32, , 2007
129. 古代의 貿易形態와 羅末의 海上發展에 대하여-淸海鎭大使 張保皐를 主로 하야-(1), 金庠基, 震檀學報1, , 1934
130. 古代의 貿易形態와 羅末의 海上發展에 대하여-淸海鎭大使 張保皐를 主로 하야-(2), 金庠基,, 震檀學報2, , 1935
131. 羅唐交涉史에서의 朝貢과 冊封, 한국 고대국가와 중국왕 조의 조공 책봉관계, 권덕영, 고구려연구재단, , 2006
132. 8세기 초 발해,당의 긴장관계에 대한 신라의 외교전략- 나당간의 국서를 중심으로-, 김종복, 大丘史學126, , 2017
133. 신라 중대의 형률-중국율령 수용의 신라적 특질과 관련하 여- , 강좌 한국 고대사3, 윤선태,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 2003
134. 고대 ‘동아시아 세계론’과 고구려사 , 고대 동아시아 세계 론과 고구려의 정체성, 박대재, 동북아역사재단, , 2007
135. 古代韓(新羅),日關係의 一考察-大化改新과 新羅,日本, 唐간의 협력체제 성립을 中心으로-, 金鉉球, ,, 大東文化硏究23, , 1989
136. 古代東아시아 世界秩序의 構造的特性, 東아시아 歷史 의 還流(서강대동양사연구실 편), 金翰奎, 지식산업사, , 2000
137. ‘南北國時代’論의 虛像에 대하여-新羅와 渤海의 天下秩序에 기인한 相互認識을 중심으로, 문안식, 韓國古代史硏究19, , 2000
138. 한일학계의 고대 한중관계사 연구동향과 과제 , 한중일 학계의 한중관계사 연구와 쟁점, 김창석, 동북아역사재단, , 2009
139. 新羅中代對日外交의 推移와 眞骨貴族의 動向-聖德王~ 惠恭王代를 중심으로- , 韓國史論37, 전덕재, 서울大學校國史學 科, , 1997
140. , 5~6世紀新羅 高句麗關係의 推移-遺蹟 遺物의 解釋과 關 聯하여- ,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15, 鄭雲龍,, 新羅文化宣揚 會, , 1994
141. 당 장안성에서의 외교 의례와 외국 사신 간의 외교적 갈등 -신라 일본, 신라 발해 사신 간의 쟁장(爭長) 사건에 대한 재검토-, 김종복, 역사와 현실94,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