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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현대 마약문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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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696312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18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 2018. 2

      • 발행연도

        2018

      • 작성언어

        한국어

      • DDC

        900 판사항(22)

      • 발행국(도시)

        서울

      • 기타서명

        A study on the drug issue in modern Korea

      • 형태사항

        236 p. ; 26 cm.

      • 일반주기명

        한국외국어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이영학
        참고문헌 : p. 212-230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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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 변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마약문제의 현상과 원인, 사회적 인식변화와 통제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 속에서 마약문제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형상화되고 의식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한국의 마약문제를 살펴보면서 본고는 크게 세 가지 지점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변화과정 속에서 마약문제가 어떻게 형상화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마약통제 방식이 갖는 특성을 평가해보는 것, 셋째는 마약에 대한 국가와 민간 사이 권리-책임의 이동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는 단절적이기 보다 각 시기별 마약문제의 전개양상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제로 연속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각 장의 검토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전통사회의 아편 인식과 사용, 개항기 나타난 아편문제와 당국의 문제의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식민지시기 일본에 의해 아편생산지로 기능한 조선의 아편계 마약 확산문제와 조선인들의 대응을 검토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마약은 주로 농가 약재의 개념에서 이해되어 민간에서 갖출 수 있는 가정상비약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개항기 이미 아편 흡연이 만연한 청국인들에 의해 조선에서의 아편 흡연이 확산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아편을 식민지 재원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고, 조선은 일제의 아편생산지이자 모르핀 소비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마약중독자들이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일제의 아편정책과 별개로 조선사회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아편문제를 경계하고 그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아편근절운동이 전개되었고, 일제에 대항해 해외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민족해방운동 단체들은 아편을 열악한 환경 속 부족한 군자금 충당 등의 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Ⅲ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57년 「마약법」 제정까지 마약문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과정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마약이 어떠한 모습으로 대중에 형상화되고 규정되어 갔는지를 추적하였다.
      해방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다량의 아편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사회문제를 안겨주었다. 한편 해방 후 급격히 증가하던 귀환동포와 행정공백으로 인한 열악한 통제환경은 한국의 마약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정부 수립 후 마약문제의 해결은 예산과 인력 투입을 최소하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었다. 그것은 마약을 친일 또는 공산주의문제와 연결하면서 그 사용을 민족의 생존과 대치되는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약사용자들은 서서히 ‘비국민화’ 되어갔다.
      이후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은 마약문제를 더욱 근절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입법을 통한 정부의 구체적 대안 마련이 요구되었고 1957년 「마약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마약에 관한 규제 법규의 독립이 실현되었다.
      Ⅳ장에서는 1960년대 등장한 군사정부가 바라본 마약문제와 이후 한층 강화된 마약통제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1970년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던 대마초문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에 주목하여 당대 대마초문제의 현상과 원인, 당국의 문제의식과 통제방향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보았다.
      마약문제는 1960년대 자립경제 육성과정에서 우리사회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1961년 출발한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국내노동력 동원의 기초 과제로 ‘건강한 국민’을 생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마약문제는 사회개혁과 경제개발이라는 새 정부의 목표에 대치되는 이전 정부가 낳은 병폐의 상징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약 근절을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 표현은 지난 정부와의 단절과 함께 그들의 선명한 개혁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정부에게 이러한 논리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마약’을 국가의 산업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조국근대화’를 저해하는 ‘사회악’으로 공식화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 주로 사용되던 아편계 마약의 생산과 사용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당시 「마약법」 상 규제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대마초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번져나갔다. 1960년대 중반부터 주한미군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대마초는 1970년대부터 이른바 ‘해피스모크(happy smoke)’로 불리며 한국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한국산 대마초에 함유된 월등한 환각성분과 1970년대 형성된 자유주의적 청년문화는 대마초를 단숨에 한국사회의 주요 마약류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저항성의 다소를 떠나 대마초를 통한 청년층의 자기표현 문화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의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1975년의 ‘대마초 파동’은 통제 대상 밖에 있던 대마를 ‘마약’의 범주로 포함시키게 된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대마는 ‘반시국’적인 도구이자 또 하나의 ‘마약’으로 각인되어갔으며 1976년 제정된 「대마관리법」은 이를 공식화해 주는 것이었다.
      Ⅴ장에서는 현재까지 한국의 주요 마약류로 사용되고 있는 필로폰의 국내시장 유입 과정과 확산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1980년대는 대마초의 소비가 감소하고 필로폰의 소비가 확대되는 시기였다.
      본고는 필로폰 유입의 원인으로는 1980년대 한일 간의 필로폰 밀거래 단속강화로 일본으로 밀수출되던 한국산 필로폰이 국내시장으로 역유입 되었다는 점, 필로폰 확산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 확정 이후 관광객 유치와 경기호황에 따른 국내소비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정책적으로 추진하였던 정부의 유흥산업 확대정책이 의도치 않게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을 꼽았다. 내수로 돌아선 필로폰은 부산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남과 대구·경북의 대도시 유흥가를 따라 서울로 유입되면서 점차 확산되었으며, 1988년 단계에는 전체 마약류 소비의 압도적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반면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마약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출범 초기부터 사회전반에 조성되어가던 반독재·민주화 분위기에 맞선 강력한 사회통제에 대한 필요 때문에 군부의 사회장악과 통제라는 하나의 목적과 방향에서만 집중되었다. 따라서 ‘사회정화’를 통한 ‘사회질서 회복’, ‘국민안전’과 ‘건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사회기강’을 확립하는데 마약은 새 정부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군부의 사회장악을 합리화하는 좋은 현안거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점차 다변화되는 마약류 소비 양상 속에서 예방과 치료부문이 결여된 단속강화 중심의 공급억제 정책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 마약문제는 단속과 벌칙이 강화되는 속에서도 필로폰을 중심으로 한 마약사범의 지속적 증가라는 결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마약문제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시대적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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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 변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마약문제의 현상과 원인, 사회적 인식변화와 통제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 속에서 마약...

      본고는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 변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마약문제의 현상과 원인, 사회적 인식변화와 통제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 속에서 마약문제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형상화되고 의식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한국의 마약문제를 살펴보면서 본고는 크게 세 가지 지점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변화과정 속에서 마약문제가 어떻게 형상화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마약통제 방식이 갖는 특성을 평가해보는 것, 셋째는 마약에 대한 국가와 민간 사이 권리-책임의 이동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는 단절적이기 보다 각 시기별 마약문제의 전개양상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제로 연속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각 장의 검토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전통사회의 아편 인식과 사용, 개항기 나타난 아편문제와 당국의 문제의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식민지시기 일본에 의해 아편생산지로 기능한 조선의 아편계 마약 확산문제와 조선인들의 대응을 검토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마약은 주로 농가 약재의 개념에서 이해되어 민간에서 갖출 수 있는 가정상비약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개항기 이미 아편 흡연이 만연한 청국인들에 의해 조선에서의 아편 흡연이 확산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아편을 식민지 재원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고, 조선은 일제의 아편생산지이자 모르핀 소비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마약중독자들이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일제의 아편정책과 별개로 조선사회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아편문제를 경계하고 그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아편근절운동이 전개되었고, 일제에 대항해 해외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민족해방운동 단체들은 아편을 열악한 환경 속 부족한 군자금 충당 등의 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Ⅲ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57년 「마약법」 제정까지 마약문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과정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마약이 어떠한 모습으로 대중에 형상화되고 규정되어 갔는지를 추적하였다.
      해방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다량의 아편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사회문제를 안겨주었다. 한편 해방 후 급격히 증가하던 귀환동포와 행정공백으로 인한 열악한 통제환경은 한국의 마약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정부 수립 후 마약문제의 해결은 예산과 인력 투입을 최소하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었다. 그것은 마약을 친일 또는 공산주의문제와 연결하면서 그 사용을 민족의 생존과 대치되는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약사용자들은 서서히 ‘비국민화’ 되어갔다.
      이후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은 마약문제를 더욱 근절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입법을 통한 정부의 구체적 대안 마련이 요구되었고 1957년 「마약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마약에 관한 규제 법규의 독립이 실현되었다.
      Ⅳ장에서는 1960년대 등장한 군사정부가 바라본 마약문제와 이후 한층 강화된 마약통제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1970년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던 대마초문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에 주목하여 당대 대마초문제의 현상과 원인, 당국의 문제의식과 통제방향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보았다.
      마약문제는 1960년대 자립경제 육성과정에서 우리사회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1961년 출발한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국내노동력 동원의 기초 과제로 ‘건강한 국민’을 생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마약문제는 사회개혁과 경제개발이라는 새 정부의 목표에 대치되는 이전 정부가 낳은 병폐의 상징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약 근절을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 표현은 지난 정부와의 단절과 함께 그들의 선명한 개혁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정부에게 이러한 논리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마약’을 국가의 산업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조국근대화’를 저해하는 ‘사회악’으로 공식화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 주로 사용되던 아편계 마약의 생산과 사용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당시 「마약법」 상 규제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대마초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번져나갔다. 1960년대 중반부터 주한미군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대마초는 1970년대부터 이른바 ‘해피스모크(happy smoke)’로 불리며 한국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한국산 대마초에 함유된 월등한 환각성분과 1970년대 형성된 자유주의적 청년문화는 대마초를 단숨에 한국사회의 주요 마약류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저항성의 다소를 떠나 대마초를 통한 청년층의 자기표현 문화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의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1975년의 ‘대마초 파동’은 통제 대상 밖에 있던 대마를 ‘마약’의 범주로 포함시키게 된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대마는 ‘반시국’적인 도구이자 또 하나의 ‘마약’으로 각인되어갔으며 1976년 제정된 「대마관리법」은 이를 공식화해 주는 것이었다.
      Ⅴ장에서는 현재까지 한국의 주요 마약류로 사용되고 있는 필로폰의 국내시장 유입 과정과 확산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1980년대는 대마초의 소비가 감소하고 필로폰의 소비가 확대되는 시기였다.
      본고는 필로폰 유입의 원인으로는 1980년대 한일 간의 필로폰 밀거래 단속강화로 일본으로 밀수출되던 한국산 필로폰이 국내시장으로 역유입 되었다는 점, 필로폰 확산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 확정 이후 관광객 유치와 경기호황에 따른 국내소비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정책적으로 추진하였던 정부의 유흥산업 확대정책이 의도치 않게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을 꼽았다. 내수로 돌아선 필로폰은 부산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남과 대구·경북의 대도시 유흥가를 따라 서울로 유입되면서 점차 확산되었으며, 1988년 단계에는 전체 마약류 소비의 압도적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반면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마약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출범 초기부터 사회전반에 조성되어가던 반독재·민주화 분위기에 맞선 강력한 사회통제에 대한 필요 때문에 군부의 사회장악과 통제라는 하나의 목적과 방향에서만 집중되었다. 따라서 ‘사회정화’를 통한 ‘사회질서 회복’, ‘국민안전’과 ‘건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사회기강’을 확립하는데 마약은 새 정부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군부의 사회장악을 합리화하는 좋은 현안거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점차 다변화되는 마약류 소비 양상 속에서 예방과 치료부문이 결여된 단속강화 중심의 공급억제 정책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시기 마약문제는 단속과 벌칙이 강화되는 속에서도 필로폰을 중심으로 한 마약사범의 지속적 증가라는 결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마약문제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시대적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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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문제제기 1
      • 2. 연구현황 7
      • 3. 구성과 활용 자료 13
      • Ⅱ. 개항일제강점기 아편의 유입과 확산 18
      • Ⅰ. 서론 1
      • 1. 문제제기 1
      • 2. 연구현황 7
      • 3. 구성과 활용 자료 13
      • Ⅱ. 개항일제강점기 아편의 유입과 확산 18
      • 1. 개항 전후 조선의 아편 인식과 유통 18
      • 1) 전통사회 조선의 아편 인식과 사용 18
      • 2) 개항기 청국에 의한 아편 유입과 조선의 대응 24
      • 2. 일제강점기 아편모르핀 확산과 조선인의 대응 32
      • 1) 일제의 아편정책과 조선산 아편 생산의 증가 32
      • 2) 아편모르핀 중독자 증가와 조선인의 대응 39
      • Ⅲ. 해방 후 마약문제의 심화와 사회적 대응 62
      • 1. 해방과 정부 수립 초기 마약문제의 심화 62
      • 1) 미군정 수립 전후 행정 공백과 마약중독자의 급증 62
      • 2) 정부 수립 후 마약소비 범위의 확대 67
      • 2. 마약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사회적 인식 74
      • 1) 정부 마약대책의 한계와 통제방식의 전환 모색 74
      • 2) 마약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과 비국민화 79
      • 3. 1957년 마약법 제정과 그 시행 85
      • 1) 1957년 마약법 제정의 사회적 배경 85
      • 2) 마약법 제정 과정 중 주요 쟁점과 그 시행 91
      • Ⅳ. 19607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통제 강화와 대마초문제 97
      • 1. 1960년대 군사정부의 마약 인식과 통제 강화 97
      • 1) 군사정부의 경제개발 추진과 마약 인식 97
      • 2) 1965년 메사돈 파동과 사회악으로의 공식화 107
      • 2. 1970년대 대마초의 국내 유입과 청년층 소비 확산 117
      • 1) 대마초의 국내 유입과 소비 확산의 배경 117
      • 2) 청년층 대마초 소비 증가의 원인 123
      • 3. 대마초 확산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대응 130
      • 1) 청년문화와 정부의 대마초 인식 130
      • 2) 대마초 파동과 대마의 불법화 136
      • Ⅴ. 1980년대 필로폰의 유입과 사회문제화 150
      • 1. 필로폰의 국내시장 유입과 소비 확산 150
      • 1) 필로폰 밀매 단속 강화와 국내시장으로의 역유입 150
      • 2) 유흥산업의 성장과 필로폰의 소비 확산 161
      • 2. 신군부의 마약 인식과 대응 174
      • 1) 신군부의 사회장악과 마약대책 174
      • 2) 수직적 통제 방식의 한계와 수요관리 방안의 모색 183
      • Ⅵ. 결론 188
      • 참고문헌 212
      • ABSTRACT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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