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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의 순교신앙과 신사참배 연구 = Study for the faith of martyrdom and shrine worship of Korean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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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531208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2017

    • 학위논문사항
    • 발행연도

      2017

    • 작성언어

      한국어

    • KDC

      231 판사항(6)

    • DDC

      230 판사항(23)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243장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김재성
      참고문헌: 장 223-236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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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왔다. 한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천만 명 가까이 그리스도인이 생겼을 뿐 아니라 5만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매년 수천 명의 신학생을 배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뿌리는 다양하겠지만 확실한 이유 한 가지는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과 보수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세워진 순교신앙은 한국교회가 장차 겪게 될 일제의 강점기 가운데 모진 핍박이 가해지는 신사참배의 압박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안과 논문을 쓰게 될 목적을 찾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맞서서 고난당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애국심으로 무장된 걸출한 신앙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길선주, 손양원, 이기선, 주기철, 주남선, 최덕지 등은 대표적인 순교신앙의 길을 걸어간 자로서 반일 순국의 민족교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평양대부흥 운동과 새벽기도의 운동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은혜의 체험으로 마침내 더 크고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힘을 더하게 되었으니, 한국교회가 체득한 일사각오적인 순교신앙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제의 박해 가운데 굴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미 로마천주교를 시작하여 각 교단마다 신사참배를 수용하게 되었고, 장로교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보수적이었던 장로교는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27회 총회가 회집되었고, 총독 당국은 신사참배 결의안을 총회 석상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손을 뻗쳐 공작하였다. 총회 당일에는 교회당 안팎에 수백 명의 경찰관이 동원되어 교회당을 포위한 상태였다. 총대들의 좌우에는 경찰관들이 동반했고 무술경관 백여 명이 있었던 것이다. 조작된 각본대로 신사참배 안은 가결되었고,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가부’를 묻지도 않은 채 그냥 만장일치의 가결로 선포하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던 장로교회가 일본의 태양신 앞에 머리를 숙인 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은 기독교 학교에도 신사참배를 요구하였다. 여기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이들 학교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 식민지 교육의 도구로 삼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사실 신사참배 문제가 선교사들 간에도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사 참배의 여부가 선교학교의 존폐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라 홀드크로프트(James G. Holdcroft)와 매큔(George S. McCune)은 강경한 반대를 추구했던 반면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콘스(John S. Cornes)는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기타 많은 선교부들의 입장은 신사참배의 강요에 순응하는 쪽이었으니, 이와 같은 선교사들의 입장과 논쟁은 한국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해방 후에 남북한 교회 재건과 맞물려 자칫 교회가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신사참배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고 심리적인 회개를 중시하는 내적 회개론 자들, 신사참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성을 제시는 시대적 상황론 자들, 공개된 방식으로 회개의 절차를 수행하고 권징을 수용해야 한다는 공적 회개론 자들의 갈등은 진정으로 회개하여 교회가 연합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교권과 맞물려 피할 수 없는 분열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신사참배 처리 문제로 인하여 다시 순수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건 방법론의 차이로 인해 많은 분열을 더 조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겨나게 된 것이 최덕지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재건파,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복구파,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 고려파였다.
    결국 신사참배를 기점으로 다양한 교권과 맞물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열은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분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열을 더 가속화시키는 요인은 한국교회 내에서 신학이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양화된 신학과 교회 성장주의의 욕망은 점점 더 교회를 분리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가 바르게 세워져 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는데, 당시 선교사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신적 권위에 기초한 프린스톤 신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이 신학의 영향으로 일제의 모진 핍박과 신사참배를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한때 경험했던 치욕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의 연약성을 대표하는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향후 신사참배에 대한 연구와 핍박 아래서 보여진 인간의 연약성을 늘 통감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 공적으로 시행되어져야 하고, 한국교회와 성도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회복은 돌아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부흥의 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돌아감의 출발이 개혁주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순교신앙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순교신앙으로 어두워진 한국교회를 깨우실 것을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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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왔다. 한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천만 명 가까이 그리스도인이 생겼을 뿐 아니라 5만 교회를 세우게 되었...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왔다. 한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천만 명 가까이 그리스도인이 생겼을 뿐 아니라 5만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매년 수천 명의 신학생을 배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뿌리는 다양하겠지만 확실한 이유 한 가지는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과 보수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세워진 순교신앙은 한국교회가 장차 겪게 될 일제의 강점기 가운데 모진 핍박이 가해지는 신사참배의 압박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안과 논문을 쓰게 될 목적을 찾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맞서서 고난당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애국심으로 무장된 걸출한 신앙의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길선주, 손양원, 이기선, 주기철, 주남선, 최덕지 등은 대표적인 순교신앙의 길을 걸어간 자로서 반일 순국의 민족교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평양대부흥 운동과 새벽기도의 운동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은혜의 체험으로 마침내 더 크고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힘을 더하게 되었으니, 한국교회가 체득한 일사각오적인 순교신앙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제의 박해 가운데 굴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미 로마천주교를 시작하여 각 교단마다 신사참배를 수용하게 되었고, 장로교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보수적이었던 장로교는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27회 총회가 회집되었고, 총독 당국은 신사참배 결의안을 총회 석상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손을 뻗쳐 공작하였다. 총회 당일에는 교회당 안팎에 수백 명의 경찰관이 동원되어 교회당을 포위한 상태였다. 총대들의 좌우에는 경찰관들이 동반했고 무술경관 백여 명이 있었던 것이다. 조작된 각본대로 신사참배 안은 가결되었고,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가부’를 묻지도 않은 채 그냥 만장일치의 가결로 선포하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던 장로교회가 일본의 태양신 앞에 머리를 숙인 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은 기독교 학교에도 신사참배를 요구하였다. 여기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이들 학교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 식민지 교육의 도구로 삼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사실 신사참배 문제가 선교사들 간에도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사 참배의 여부가 선교학교의 존폐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라 홀드크로프트(James G. Holdcroft)와 매큔(George S. McCune)은 강경한 반대를 추구했던 반면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콘스(John S. Cornes)는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기타 많은 선교부들의 입장은 신사참배의 강요에 순응하는 쪽이었으니, 이와 같은 선교사들의 입장과 논쟁은 한국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해방 후에 남북한 교회 재건과 맞물려 자칫 교회가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신사참배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고 심리적인 회개를 중시하는 내적 회개론 자들, 신사참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성을 제시는 시대적 상황론 자들, 공개된 방식으로 회개의 절차를 수행하고 권징을 수용해야 한다는 공적 회개론 자들의 갈등은 진정으로 회개하여 교회가 연합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교권과 맞물려 피할 수 없는 분열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신사참배 처리 문제로 인하여 다시 순수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건 방법론의 차이로 인해 많은 분열을 더 조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겨나게 된 것이 최덕지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재건파,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복구파,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 고려파였다.
    결국 신사참배를 기점으로 다양한 교권과 맞물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열은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분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열을 더 가속화시키는 요인은 한국교회 내에서 신학이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양화된 신학과 교회 성장주의의 욕망은 점점 더 교회를 분리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가 바르게 세워져 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는데, 당시 선교사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신적 권위에 기초한 프린스톤 신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이 신학의 영향으로 일제의 모진 핍박과 신사참배를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한때 경험했던 치욕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의 연약성을 대표하는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향후 신사참배에 대한 연구와 핍박 아래서 보여진 인간의 연약성을 늘 통감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한국교회 안에 공적으로 시행되어져야 하고, 한국교회와 성도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회복은 돌아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부흥의 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돌아감의 출발이 개혁주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순교신앙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순교신앙으로 어두워진 한국교회를 깨우실 것을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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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5
    • 1. 문제제기 5
    • 2. 선행연구 12
    • 3. 연구방법 13
    • Ⅱ. 초기 한국 기독교의 고난과 신사참배 15
    • Ⅰ. 서론 5
    • 1. 문제제기 5
    • 2. 선행연구 12
    • 3. 연구방법 13
    • Ⅱ. 초기 한국 기독교의 고난과 신사참배 15
    • 1.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신학 16
    • 1.1. 미국의 개혁주의 영향 19
    • 2. 한국 기독교 신학의 특징 22
    • 2.1 순교신앙의 의미 22
    • 2.1.1 순교 22
    • 2.1.2 신앙 26
    • 2.2 순교신앙과 일사각오 28
    • 2.3 순교신앙과 전천년설 29
    • 2.3.1 주기철 목사 35
    • 2.3.2 손양원 목사 39
    • 2.3.3 주남선 목사 44
    • 2.3.4 이기선 목사 51
    • 2.3.5 최덕지 목사 55
    • 3. 일제의 억압과 신사참배 59
    • 3.1 신사참배의 개념 64
    • 3.2 신사참배 강요와 배경 67
    • 3.3 한국교회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 75
    • 3.4 기독교 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 75
    • 3.5 신사참배 앞에 굴복한 한국교회 80
    • 3.6 제27회 총회와 신사참배 가결 83
    • 3.6.1 선교회 간의 갈등 83
    • 3.6.2 총회 전 노회의 압박 84
    • 3.6.3 제27회 총회의 결정 85
    • 3.7 로마천주교회의 굴복 89
    • 3.8 감리교회의 굴복 90
    • 4. 한국 기독교의 투쟁 93
    • Ⅲ. 신사참배에 대한 선교사들의 입장 101
    • 1. 북장로교 선교부 102
    • 1.1 홀드크로프트, 매큔 입장: 비타협적 이상론 102
    • 1.2 언더우드, 쿤스 입장: 타협적 현실론 109
    • 2. 남장로교 선교부 113
    • 3. 호주장로교 선교부 114
    • 4. 캐나다연합교회 선교부 115
    • 5. 감리교 선교부 117
    • 6. 카톨릭 선교부 118
    • 7. 일본기독교연맹 121
    • Ⅳ. 신사참배와 회개론의 신학적 입장 고찰 125
    • 1. 내적 회개론 125
    • 2. 시대적 상황론 127
    • 3. 공적 회개론 129
    • Ⅴ. 신사참배 후 교회개혁의 신학적 입장 고찰 134
    • 1. 재건파 138
    • 1.1 재건파 운동의 특징 140
    • 1.1.1 혁신운동 140
    • 1.1.2 진리운동 141
    • 1.1.3 재건운동 143
    • 1.2 재건파 신학의 특징 146
    • 1.2.1 신율주의 146
    • 1.2.2 재건주의 147
    • 1.3 재건파 발전과 시련 149
    • 1.3.1 신앙노선의 확립 149
    • 1.3.2 북한 재건파의 발전 153
    • 1.3.3 남한 재건파의 발전 154
    • 1.3.4 북한 재건파의 시련 156
    • 1.3.4.1 북한 재건파의 박해 156
    • 1.3.4.2 기독연맹 가입거부로 인한 박해 159
    • 1.3.4.3 공민증 거부로 인한 박해 160
    • 1.3.5 남한 재건파의 시련 161
    • 1.3.5.1 서울지방 재건교회의 분열 161
    • 1.3.5.2 부산지방 재건교회의 분열 162
    • 1.3.6 재건파의 평가 164
    • 2. 복구파 166
    • 3. 고려파 168
    • 3.1 고려신학교의 설립 배경과 정신 169
    • 3.1.1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교회 분열 169
    • 3.1.2 출옥 성도에 의한 고려신학교 설립 171
    • 3.2 고려파의 형성 173
    • 3.2.1 박형룡 박사와 고려신학교 174
    • 3.2.2 경남노회의 분열 175
    • 3.2.3 법통노회의 분열 177
    • 3.2.4 고려파 총노회의 조직 179
    • 3.3 고려파 운동의 성격과 교회사적 정당성 180
    • 3.3.1 회개 운동 180
    • 3.3.2 개혁주의 신학의 확립 183
    • 3.3.3 생활의 순결 184
    • 3.3.4 평신도의 항거 운동 185
    • Ⅵ. 현대 한국교회의 방안 188
    • 1. 현대 한국교회의 상황 188
    • 1.1 한국교회 분열의 위기 188
    • 1.2 한국교회 신학의 위기 193
    • 2. 한국교회의 복구 방안 196
    • 2.1 초기 한국교회 신학의 복구 197
    • 2.2 순교신앙의 복구 200
    • 2.3 한국교회 개혁주의 유산의 보존 205
    • 2.3.1 평양 대부흥 운동의 유산 205
    • 2.3.2 백만인 구령 운동과 기도 운동 210
    • Ⅴ. 결론 214
    • 참고문헌 223
    • 국문초록 237
    • 영문초록(Abstract) 240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논문집』, 허순길, 이근삼, 영남대학교, 부산: 고신대학교, 년), , 1976

    2. “순교생활”, 박윤선, 『파수군』. 제15호. 년 3월호), , 1952

    3. 『상황윤리』, 김동수, 대한기독교서회, 서울: 규문각, , 1968

    4. 『고려25년사』, 석원태, 서울: 경향문화사, , 2002

    5. 『초대교회사』, 박용규,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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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국교회사』, 김영재, 서울: 이레서원,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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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묵시록 연구”, 왕자화, 성경잡지1. (대정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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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상황윤리』, 김동수, 대한기독교서회, 서울: 규문각, , 1968

    4. 『고려25년사』, 석원태, 서울: 경향문화사, , 2002

    5. 『초대교회사』, 박용규,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 1996

    6. 『친일문학론』, 임종국, 서울: 평화출판사, , 1986

    7. 『한국교회사』, 김영재, 서울: 이레서원,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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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한국개신교사』, 백락준, 서울: 연세대 출판부, ,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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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한국기독교사연구, 김양선, 기독교문사, 서울: 기독교문사, , 1971

    17. 『한국교회발전사』, 전택부,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 1992

    18. 『한국근대교육사』, 손인수, 서울: 연대출판부, , 1971

    19. 『한국기독교회사』, 박용규,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1

    20. 『한국기독교회사』, 박용규, 서울: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한국교회사연 구소, , 2002

    21. 『한국신학사상사』, 송길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 1987

    22. 『한국장로교회사』, 양낙홍, 서울: 생명의 말씀사, , 2004

    23. 『한국장로교회사』, 박용규, 서울: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출판국, , 2002

    24. 『한국장로교회사』, 장희근, 아성출판사, 서울: 아성출판사, , 1970

    25. 『한국재건교회사』, 박용규, 서울: 성광문화사, , 1989

    26. 편. 『천주교 요리』, 최루수, 대문답 2권 년), , 1925

    27. 『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서울: 박하출판부, , 2014

    28. 『평양 대부흥운동』, 박용규, 서울:생명의 말씀사, , 2000

    29. 『한국교회 박해사』, 최 훈, 서울: 예수교문서선교회, , 1979

    30. 『한국교회의 동향』, 홍의표, 서울: 은성문화사,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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