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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 문학론 연구 = Im Hwa’s Literary Criticism : Proletarian Literature and Subjectivity in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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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44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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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시인·평론가이자 프롤레타리아문학 단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위원장이었던 임화(1908-53?)가 그 평생 동안 남긴 시, 평론, 문학사론, 영화론 등 다방면에 걸친 저작의 내용을 검토하고 거기서 보이는 '주체' 개념의 변천을 특히 식민지에서 민족이 놓인 상황과 그 역사적인 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문학적 실천으로 이어갔는가의 관계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Ⅰ에서는 1930년 전후 프롤레타리아문학 진영 내부에서 이루어진 예술대중화논쟁에 대해서 소련과 독일, 중국·대만,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조선의 논쟁의 특징을 지적했다. 이 논쟁에서 김기진은 수많은 평론을 통해 대중화의 다양한 방안을 제안했고 그 양과 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수준의 논의를 전개했는데, 도쿄의 무산자사에 있던 김두용과 임화가 몇 차례 그것을 비판함으로써 그대로 논의가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경위 자체에 이미 조선에서의 예술대중화논쟁의 특질이 보인다. 한편 이 논쟁에서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임화의 이야기시, 이른바 '단편서사시'에 대한 평가가 초점화된 점일 것이다. 소련이나 독일의 노동자통신원 운동에서도 시의 창작방법이 논의된 적이 있었는데,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시가 이렇게 초점화된 일은 없었다. 또한 일본의 논의를 살펴보자면, 대중화논쟁의 당사자인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역시 시를 쓰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이 논쟁에서 크게 초점화된 일은 없었다. 거기에 비해 조선의 논쟁에서는 임화라는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시에 초점에 맞추어진 것이 특징적이었다.
      Ⅱ에서는 Ⅰ에서 다룬 예술대중화논쟁 당시 언급된 임화의 산문시와 이야기시의 특징과 성격을 검토했다. 임화의 시 가운데 이야기시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군의 현저한 특징은 보통의 서정시처럼 단순한 자연풍경이 그 무대나 배경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화자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 도시의 거리거나 바다, 산 그 어느 것이라 할지라도 이 풍경은 식민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임화의 시에서 바다=현해탄만큼 중요한 장소, 식민지 풍경으로서 중요한 것이 서울의 종로 네거리이다. 임화가 ‘반도팔경’의 하나로서 든 이 장소는 운동의 동지가 만나고 서로 격려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소였는데, 임화는 이 종로 네거리를 시의 무대로 삼아서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를 생애에 걸쳐 남겼다. 그는 이 시들을 통해 혁명성과 식민성이 전경화된 현장을 강조하면서 그 대립과 모순의 양상을 폭로하고 제시했다.
      Ⅲ에서는 임화가 193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서 발표한, 동시대 소설에 대한 리얼리즘 비평의 내용과 목적, 그리고 그 동력과 모티프에 대해서 논했다. 임화는 소설론에서도 분열·대립과 통합·지양이라는 시각으로 독자적인 리얼리즘 소설론을 전개했다. 그의 평론 「세태소설론」(1938.4)이 전형적인 것으로 동시대 소설의 경향으로서 내성적인 것과 세태적인 것이 동시에 출현하는 것의 의미를 묻고 그 원인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묘사하려고 하는 것의 분열에 있다고 했다. 그러한 시각은 당시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였던 G. 루카치의 '전체성'(Totalitat / totality)의 이론과 상동성이 있다. 루카치의 경우는 부르주아 문화의 이율배반을 해결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위가 바라볼 수 있는 '전체성'의 관점을 확보한 것이었다. 임화의 경우는 그것을 전향소설의 주인공에게 적용하여 성격상의 결여, 다시 말해 인물보다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 등장인물이 행위하는 성격이 아니라 생활하는 시정인이 되고 있는 점을 「현대소설의 주인공」(1939.9) 등에서 지적하고 세태소설론 때와 마찬가지로 분열의 극복과 어떤 전체성에 대한 지향을 주장했다. 한편 1931년 만주에서 일어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의 충돌사건인 ‘만보산 사건’을 소재로 한 이태준의 단편소설 「농군」(1939.7)에 대해서는 애수와 비애의 감정이 비장하고 비극의 장대함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서 한 민족의 수난의 운명, 큰 비극 속에 감춰진 서사시의 감정이 그려졌다고 절찬했다. 임화의 리얼리즘론은 여기서 민족의 비애와 상실감의 표출을 통해 '주체'를 확보함으로써 스스로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했다.
      Ⅳ에서는 임화가 조선의 신문학사를 집필하는 사이에 발표한 평론 「신문학사의 방법」(1940.1)과 거기서 논의된 문화의 이식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비판까지를 검토하며 문학사에서 '조선적인 것'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임화의 견해를 정리했다. 「신문학사의 방법」(1940.1)은 그가 쓴 「개설 신문학사」(1939-41)의 방법론을 논한 것인데, 조선의 신문학의 역사가 일본을 통한 서구문학의 이식의 역사였다고 한 점이 당시가 아니라 후년에 한국의 문학연구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 '이식문학론'은 그러나 임화의 문학사론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방법론이며 시각이었다. 그것이 적용되고 있는 하나의 사례로서 조선 문학사에 한문학의 역사를 편입한다는, 민족이나 언어에 대한 독자적인 사고방식이 있었다.
      Ⅴ에서는 임화가 1930년대의 중반 「신문학사」 서술을 시작하기 이전 「조선신문학사론서설」(1935.10)을 쓴 전후에 발표한 몇 가지 언어관계의 논문에 대해서 논했다. 이 시기의 그의 언어론은 자신의 문학사 서술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 호응하는 견해였다. 임화는 당시 소비에트연방의 언어론과 언어정책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면서 민족어로서의 조선어가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를 강조했다. 동시에 조선어의 역사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유럽에서의 속어의 등장과 조선의 개화기 이후의 국문의 복권을 함께 생각하면서 민족어=조선어의 내용과 생성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Ⅵ에서는 최초의 근대문학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임화의 「개설 신문학사」의 구성원리를 살펴보며, 거기서 조선어나 조선인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설정되고 있는가를 검토했다. 임화는 조선문학의 고전에 대한 평가에서 사적변증법적인 시각에서 반-복고, 평민문학에 대한 언급을 강조하고 분열·대립과 그 지양으로 민족문학이 생성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광수의 문학작품에 있는 어떤 모순과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백조󰡕파와 신경향파의 문학의 의의를 인정했다. 그리고 이 「신문학사」 서술의 작업을 통해서 조선왕조 시대 국문으로 창작된 시조, 가사, 창곡, 소설 등을 민족의 고전으로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는 중세의 한문/국문이라는 이중 언어생활, 두 가지 ‘글’을 가진 상태를 '정'과 '반'의 대립되고 모순된 상태로 파악하고 근대 이후의 신문학이 그 상태를 지양하는 '합'의 상태임을 제시하려고 했다.
      Ⅶ에서는 임화가 「신문학사의 방법」(1940.1)에서 언급한 H. 테느의 논의가 일본의 같은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대만문학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언급되는 사례를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서 임화가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지적한 문학생성의 장소로서의 '환경'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테느의 '환경' 개념은 유럽에서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다양한 반성적 여론 속에서 비교문학이라는 지식의 제도를 통해서 극복되었는데, 제국 일본의 아카데미즘이 식민지문학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그 저항의 수단으로서 식민지 지식인에 의해 다시 언급된 것이었다. 대북제대 교수인 시마다 긴지(島田謹二)와 그 제자인 대만인 비평가 황더시(黃得時)의 각축이 바로 그러한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황더시처럼 임화 또한 테느의 방법론을 인용하고 때로는 스스로 그 설명을 치밀화하면서 조선의 신문학을 말하고 동아시아 문학사에서의 ‘조선’을 주체화했다. 이러한 점에서 제국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H. 테느의 문학사방법론이나 문화이론이 같은 1940년 전후에 언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Ⅷ은 임화의 영화론에 대해서 논의한다. 그의 영화론은 리얼리즘 소설론이나 「신문학사」 집필에서의 검토와 마찬가지로 주체로서의 '민족'을 항상 고려한 것이었다. 임화는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대한 독자적인 논의에서 그 역사의 변천을 설명하고작품의 주제에서 민족의 주체를 확보하려고 했다. 임화에 따르면 조선의 영화는 ‘모방’이나 '이식'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즉, 영화라는 장르만은 ‘이식’의 사정이 달랐는데, 영화는 상업과 연극의 융성을 전제로 하여 근대에 처음으로 성립한 장르였다. 임화는 여기서 초창기 조선영화에서는 문학이 중요한 ‘원조자’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영화 󰡔복지만리󰡕(福地萬里, 1941)에 대한 그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는데, 그 기준에서 예전에 이태준의 단편 「농군」(1939.7)을 평가했을 때와 같은 태도를 보여줬다. 대륙을 유랑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방황을 그린 이 영화는 내용으로서는 대일본제국과 만주국의 당시 국책=오족협화의 ‘이상’을 구현한 것으로, 임화는 이 작품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작품의 서사시적인 도달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즉 조선민족의 민족이동을 서사시적인 화폭으로 파악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예술대중화논쟁 당시 임화가 자신의 이야기시의 무대로서 선택한 것은 서울의 종로나 현해탄이라는 혁명성과 식민성이 전경화된 장소였다. 그러나 식민지 말기 임화는 일본, 조선, 만주라는 무대를 유랑하고 방랑하는 조선인을 통해 어떤 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 하나의 공동체의 운명을 보려고 했다. 이것은 임화가 민족이라는 주체를 파악하려고 한 끝에 도달한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임화는 식민지 조선에서 프롤레타리아 시, 리얼리즘 평론, 문학사론, 영화론 등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거기에 보이는 '주체' 정립의 방법은 다양한 수준에서 관찰되고 또 그것은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전환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을 모순 관계로서 파악하고 그것이 대립, 지양되는 것을 통해서 역사가 진행됨을 전제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주체란 혁명적 전위로서 때로는 관찰하고 때로는 그 동력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체’는 여러 모순을 잉태하는 민족의 주체로서 정립되었을 때, 동시에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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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시인·평론가이자 프롤레타리아문학 단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위원장이었던 임화(1908-53?)가 그 평생 동안 남긴 시, 평론, 문...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시인·평론가이자 프롤레타리아문학 단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위원장이었던 임화(1908-53?)가 그 평생 동안 남긴 시, 평론, 문학사론, 영화론 등 다방면에 걸친 저작의 내용을 검토하고 거기서 보이는 '주체' 개념의 변천을 특히 식민지에서 민족이 놓인 상황과 그 역사적인 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문학적 실천으로 이어갔는가의 관계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Ⅰ에서는 1930년 전후 프롤레타리아문학 진영 내부에서 이루어진 예술대중화논쟁에 대해서 소련과 독일, 중국·대만,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조선의 논쟁의 특징을 지적했다. 이 논쟁에서 김기진은 수많은 평론을 통해 대중화의 다양한 방안을 제안했고 그 양과 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수준의 논의를 전개했는데, 도쿄의 무산자사에 있던 김두용과 임화가 몇 차례 그것을 비판함으로써 그대로 논의가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경위 자체에 이미 조선에서의 예술대중화논쟁의 특질이 보인다. 한편 이 논쟁에서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임화의 이야기시, 이른바 '단편서사시'에 대한 평가가 초점화된 점일 것이다. 소련이나 독일의 노동자통신원 운동에서도 시의 창작방법이 논의된 적이 있었는데,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시가 이렇게 초점화된 일은 없었다. 또한 일본의 논의를 살펴보자면, 대중화논쟁의 당사자인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역시 시를 쓰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이 논쟁에서 크게 초점화된 일은 없었다. 거기에 비해 조선의 논쟁에서는 임화라는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시에 초점에 맞추어진 것이 특징적이었다.
      Ⅱ에서는 Ⅰ에서 다룬 예술대중화논쟁 당시 언급된 임화의 산문시와 이야기시의 특징과 성격을 검토했다. 임화의 시 가운데 이야기시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군의 현저한 특징은 보통의 서정시처럼 단순한 자연풍경이 그 무대나 배경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화자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 도시의 거리거나 바다, 산 그 어느 것이라 할지라도 이 풍경은 식민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임화의 시에서 바다=현해탄만큼 중요한 장소, 식민지 풍경으로서 중요한 것이 서울의 종로 네거리이다. 임화가 ‘반도팔경’의 하나로서 든 이 장소는 운동의 동지가 만나고 서로 격려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소였는데, 임화는 이 종로 네거리를 시의 무대로 삼아서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를 생애에 걸쳐 남겼다. 그는 이 시들을 통해 혁명성과 식민성이 전경화된 현장을 강조하면서 그 대립과 모순의 양상을 폭로하고 제시했다.
      Ⅲ에서는 임화가 193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서 발표한, 동시대 소설에 대한 리얼리즘 비평의 내용과 목적, 그리고 그 동력과 모티프에 대해서 논했다. 임화는 소설론에서도 분열·대립과 통합·지양이라는 시각으로 독자적인 리얼리즘 소설론을 전개했다. 그의 평론 「세태소설론」(1938.4)이 전형적인 것으로 동시대 소설의 경향으로서 내성적인 것과 세태적인 것이 동시에 출현하는 것의 의미를 묻고 그 원인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묘사하려고 하는 것의 분열에 있다고 했다. 그러한 시각은 당시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였던 G. 루카치의 '전체성'(Totalitat / totality)의 이론과 상동성이 있다. 루카치의 경우는 부르주아 문화의 이율배반을 해결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위가 바라볼 수 있는 '전체성'의 관점을 확보한 것이었다. 임화의 경우는 그것을 전향소설의 주인공에게 적용하여 성격상의 결여, 다시 말해 인물보다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 등장인물이 행위하는 성격이 아니라 생활하는 시정인이 되고 있는 점을 「현대소설의 주인공」(1939.9) 등에서 지적하고 세태소설론 때와 마찬가지로 분열의 극복과 어떤 전체성에 대한 지향을 주장했다. 한편 1931년 만주에서 일어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의 충돌사건인 ‘만보산 사건’을 소재로 한 이태준의 단편소설 「농군」(1939.7)에 대해서는 애수와 비애의 감정이 비장하고 비극의 장대함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서 한 민족의 수난의 운명, 큰 비극 속에 감춰진 서사시의 감정이 그려졌다고 절찬했다. 임화의 리얼리즘론은 여기서 민족의 비애와 상실감의 표출을 통해 '주체'를 확보함으로써 스스로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했다.
      Ⅳ에서는 임화가 조선의 신문학사를 집필하는 사이에 발표한 평론 「신문학사의 방법」(1940.1)과 거기서 논의된 문화의 이식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비판까지를 검토하며 문학사에서 '조선적인 것'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임화의 견해를 정리했다. 「신문학사의 방법」(1940.1)은 그가 쓴 「개설 신문학사」(1939-41)의 방법론을 논한 것인데, 조선의 신문학의 역사가 일본을 통한 서구문학의 이식의 역사였다고 한 점이 당시가 아니라 후년에 한국의 문학연구에서 문제가 되었다. 이 '이식문학론'은 그러나 임화의 문학사론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방법론이며 시각이었다. 그것이 적용되고 있는 하나의 사례로서 조선 문학사에 한문학의 역사를 편입한다는, 민족이나 언어에 대한 독자적인 사고방식이 있었다.
      Ⅴ에서는 임화가 1930년대의 중반 「신문학사」 서술을 시작하기 이전 「조선신문학사론서설」(1935.10)을 쓴 전후에 발표한 몇 가지 언어관계의 논문에 대해서 논했다. 이 시기의 그의 언어론은 자신의 문학사 서술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 호응하는 견해였다. 임화는 당시 소비에트연방의 언어론과 언어정책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면서 민족어로서의 조선어가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를 강조했다. 동시에 조선어의 역사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유럽에서의 속어의 등장과 조선의 개화기 이후의 국문의 복권을 함께 생각하면서 민족어=조선어의 내용과 생성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Ⅵ에서는 최초의 근대문학사 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임화의 「개설 신문학사」의 구성원리를 살펴보며, 거기서 조선어나 조선인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설정되고 있는가를 검토했다. 임화는 조선문학의 고전에 대한 평가에서 사적변증법적인 시각에서 반-복고, 평민문학에 대한 언급을 강조하고 분열·대립과 그 지양으로 민족문학이 생성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광수의 문학작품에 있는 어떤 모순과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백조󰡕파와 신경향파의 문학의 의의를 인정했다. 그리고 이 「신문학사」 서술의 작업을 통해서 조선왕조 시대 국문으로 창작된 시조, 가사, 창곡, 소설 등을 민족의 고전으로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는 중세의 한문/국문이라는 이중 언어생활, 두 가지 ‘글’을 가진 상태를 '정'과 '반'의 대립되고 모순된 상태로 파악하고 근대 이후의 신문학이 그 상태를 지양하는 '합'의 상태임을 제시하려고 했다.
      Ⅶ에서는 임화가 「신문학사의 방법」(1940.1)에서 언급한 H. 테느의 논의가 일본의 같은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대만문학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언급되는 사례를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서 임화가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지적한 문학생성의 장소로서의 '환경'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테느의 '환경' 개념은 유럽에서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다양한 반성적 여론 속에서 비교문학이라는 지식의 제도를 통해서 극복되었는데, 제국 일본의 아카데미즘이 식민지문학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그 저항의 수단으로서 식민지 지식인에 의해 다시 언급된 것이었다. 대북제대 교수인 시마다 긴지(島田謹二)와 그 제자인 대만인 비평가 황더시(黃得時)의 각축이 바로 그러한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황더시처럼 임화 또한 테느의 방법론을 인용하고 때로는 스스로 그 설명을 치밀화하면서 조선의 신문학을 말하고 동아시아 문학사에서의 ‘조선’을 주체화했다. 이러한 점에서 제국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H. 테느의 문학사방법론이나 문화이론이 같은 1940년 전후에 언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Ⅷ은 임화의 영화론에 대해서 논의한다. 그의 영화론은 리얼리즘 소설론이나 「신문학사」 집필에서의 검토와 마찬가지로 주체로서의 '민족'을 항상 고려한 것이었다. 임화는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대한 독자적인 논의에서 그 역사의 변천을 설명하고작품의 주제에서 민족의 주체를 확보하려고 했다. 임화에 따르면 조선의 영화는 ‘모방’이나 '이식'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즉, 영화라는 장르만은 ‘이식’의 사정이 달랐는데, 영화는 상업과 연극의 융성을 전제로 하여 근대에 처음으로 성립한 장르였다. 임화는 여기서 초창기 조선영화에서는 문학이 중요한 ‘원조자’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영화 󰡔복지만리󰡕(福地萬里, 1941)에 대한 그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는데, 그 기준에서 예전에 이태준의 단편 「농군」(1939.7)을 평가했을 때와 같은 태도를 보여줬다. 대륙을 유랑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방황을 그린 이 영화는 내용으로서는 대일본제국과 만주국의 당시 국책=오족협화의 ‘이상’을 구현한 것으로, 임화는 이 작품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작품의 서사시적인 도달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즉 조선민족의 민족이동을 서사시적인 화폭으로 파악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예술대중화논쟁 당시 임화가 자신의 이야기시의 무대로서 선택한 것은 서울의 종로나 현해탄이라는 혁명성과 식민성이 전경화된 장소였다. 그러나 식민지 말기 임화는 일본, 조선, 만주라는 무대를 유랑하고 방랑하는 조선인을 통해 어떤 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 하나의 공동체의 운명을 보려고 했다. 이것은 임화가 민족이라는 주체를 파악하려고 한 끝에 도달한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임화는 식민지 조선에서 프롤레타리아 시, 리얼리즘 평론, 문학사론, 영화론 등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거기에 보이는 '주체' 정립의 방법은 다양한 수준에서 관찰되고 또 그것은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전환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을 모순 관계로서 파악하고 그것이 대립, 지양되는 것을 통해서 역사가 진행됨을 전제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주체란 혁명적 전위로서 때로는 관찰하고 때로는 그 동력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체’는 여러 모순을 잉태하는 민족의 주체로서 정립되었을 때, 동시에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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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本論文は、植民地朝鮮のプロレタリア文学の詩人・評論家であり、プロレタリア文学団体・カップ(KAPF、朝鮮プロレタリア芸術同盟)の委員長をつとめた林和(1908-53?)が、その生涯をかけて残した、詩、評論、文学史論、映画論など多方面にわたる数多くの著作の内容を検討し、そこにみられる「主体」概念の変遷を、特に植民地において民族がおかれた状況や、その歴史的な位相をどのように解釈するか、文学的実践につなげていったかとの関係で検討するものである。
      Ⅰ章では、1930年前後にプロレタリア文学陣営の内部でおこなわれた芸術大衆化論争について、ソ連やドイツ、中国・台湾、日本のそれと比較しながら、植民地朝鮮の論争の特徴を指摘した。植民地朝鮮の芸術大衆化論争において、金基鎮は数多くの評論で大衆化のさまざまな方案を提案しており、その量と質において他の追随をゆるさない、高い水準の議論を展開していたが、東京の無産者社にいた金斗鎔や林和によって数回にわたって批判を受け、そのまま議論が収束していったという経緯自体にも、朝鮮における芸術大衆化論争の特質が見られる。さらに、この論争で特徴的といえるのは、林和の物語詩、いわゆる「短篇叙事詩」に対する評価が焦点化されたという点であろう。ソ連やドイツの労働者通信員運動でも、詩の創作方法が議論されたことがあったが、特定の個人の、しかも物語詩がこのように焦点化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また日本での議論においても、大衆化論争の当事者である中野重治は、当時、やはり詩を書いていたが、彼の作品について論争のなかで大きく焦点化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それに比べて朝鮮の論争では、林和という特定の個人の物語詩が大きく焦点化されたことが特徴的であった。
      Ⅱ章では、前章で扱った芸術大衆化論争の際にも言及された、林和の散文詩、物語詩についてその特徴や性格を検討した。林和の詩のうち、物語詩と呼びうる作品群の顕著な特徴は、通常の抒情詩のように単純な自然風景がその舞台や背景としては全く選ばれていないことである。たとえば、話者が直面しているものが都市の街角でも、あるいは海や山でも、その植民地性が強調された風景ばかりが選ばれる。林和の詩において、海=玄海灘と同様に重要な場所、植民地の風景として重要なのが、ソウルの鍾路十字路である。林和が「半島八景」の一つとして挙げたこの場所は、運動の同志が出会い、互いに励まし、時に涙を流す、そのような物語を支えるトポスだったが、林和はこの鍾路の十字路を詩の舞台として、連作とも言える詩を生涯にわたって残し、革命性や植民地性が前景化された現場を強調しながら、その対立や矛盾のありかを暴露し提示した。
      Ⅲ章では、林和が1930年代中盤から後半にかけて行った、当時の小説作品に対するリアリズム批評の内容と目的、さらにその動力やモチーフについて論じた。林和は、小説論においても、分裂・対立と統合・止揚という視角で、独自のリアリズム小説論を展開した。彼の評論「世態小説論」(1938.4)が典型的なもので、同時代の小説の傾向として、内省的なものと世態的なものが同時に出現していることの意味を問うて、その原因が、語ろうとするものと描こうとするものの分裂にあるとした。そのような視角は、当時、マルクス主義文芸の理論家であったG・ルカーチ(G. Lukács)の「全体性」(Totalität/totality)の理論と共鳴している。ルカーチの場合は、ブルジョア文化の二律背反を解決するために、プロレタリアートと前衛が見渡すことができる「全体性」の観点を確保したものだった。林和の場合は、それを転向小説の主人公にも適用し、性格上の欠如、すなわち、人物よりも描写に重きをおき、登場人物が行為する性格でなく、生活する市井人になっていることを「現代小説の主人公」(1939.9)などで指摘し、世態小説論のときと同様に、分裂の克服と、ある種の全体性へ指向を主張した。一方で、1931年に満洲で起こった朝鮮人農民と中国人農民との衝突事件である「万宝山事件」を描いた、李泰俊の短篇小説「農軍」(1939.7)に対しては、哀愁と悲哀の感情が悲壮に近くなり、悲劇の壮大さを彷彿とさせ、一民族の受難史の運命、大きな悲劇のなかに隠された叙事詩の感情が描かれているとして絶賛した。林和のリアリズム論はここで、民族の悲哀や喪失感の表出によって「主体」を確保することで、みずから帝国の論理を内面化した。
      Ⅳ章では、林和が朝鮮の新文学史を執筆する間に発表した評論「新文学史の方法」(1940.1)と、そこで議論された文化の移植性、さらにそれに対する解放後の韓国での批判について検討し、あわせて文学史において「朝鮮的なもの」はどのようなところに見出せるかという点について、林和の見解をまとめた。「新文学史の方法」(1940.1)は、彼が書いた「概説新文学史」(1939-41)の方法論を論じたものだが、朝鮮の新文学の歴史が日本を通じた西欧文学の移植の歴史であったとした点が、当時でなく後年、韓国の文学研究において問題になった。この「移植文学論」は、しかし、林和の文学史論で幅広いスペクトラムを持った方法論であり視角であった。それが適用されている一例として、朝鮮の文学史に漢文学の歴史を編入するという、民族や言語に対する独自の考え方があった。
      Ⅴ章ではさらに、林和が1930年代の中盤、「新文学史」の叙述を始める以前、「朝鮮新文学史序説」(1935.10)を叙述する前後に発表した、いくつかの言語関係の論文について論じた。この時期の彼の言語論は、彼自身の文学史叙述の前提であるにとどまらず、当時の植民地朝鮮の状況に呼応する見解でもあった。林和は、当時のソビエト連邦における言語論や言語政策を積極的に参照しながら、民族語としての朝鮮語がどのような環境におかれているかを強調した。また同時に、朝鮮語の歴史についてふりかえり、ヨーロッパにおける俗語の登場と朝鮮の開化期以降の国文の復権とを重ねて考えながら、民族語=朝鮮語の内容と生成過程についてさらに具体的に検討した。
      Ⅵ章では、最初の近代文学史叙述といえる林和の「概説新文学史」の構成原理について検討し、そこで朝鮮語や朝鮮人という主体をどう考えていたかを検討した。林和は、朝鮮文学の古典に対する評価において、史的弁証法的な視角から、反復古、平民の文学に対する言及を強調し、また、分裂・対立とその止揚で、民族文学が生成することを示しながら、李光洙の文学作品の内部にある矛盾やイデオロギー性を克服すべく、『白潮』派や新傾向派の文学の意義を認めた。そして、この「新文学史」叙述の作業を通じて、朝鮮王朝時代に、ハングルで創作された時調、歌辞、唱曲、小説などを民族の古典として評価するにいたった。つまり彼は、中世において、漢文/国文という二重の言語生活、二種類の「文」をもった状態を、「正」と「反」の対立し矛盾した状態としてとらえ、近代以降の新文学がその状態を止揚する「合」の状態であることを示そうとした。
      Ⅶ章では、林和が「新文学史の方法」(1940.1)で言及したH・テーヌの議論が、同じ日本の植民地にあった台湾において、台湾文学を説明する概念として言及されている事例を検討し、そのことを通じて、林和が「新文学史の方法」で指摘した、文学生成の場としての「環境」がいかなるものかを考えた。テーヌの「環境」概念は、ヨーロッパにおけるナショナリズムに対するさまざまな反省的世論のなかで、比較文学という知の制度によって克服されたはずだったが、帝国日本のアカデミズムが植民地の文学を認めようとしなかったとき、その抵抗の手段として植民地知識人によって再び持ち出されたのであった。台北帝国大学教授の島田謹二とその弟子である台湾人批評家・黄得時の角逐がまさにそのようなやりとりであった。黄得時と同様、林和もこのテーヌの方法論を援用し、時にみずからその説明を緻密化しながら、朝鮮の新文学を語り、また東アジアの文学史における「朝鮮」を主体化した。このような点で、帝国日本の植民地であった朝鮮と台湾で、H・テーヌの文学史方法論や文化理論が、同じ1940年前後に呼び出されたことは決して偶然ではない。
      Ⅷ章は、林和の映画論について議論する。彼の映画論は、リアリズム小説論や「新文学史」執筆での検討と同様、主体としての「民族」をつねに考慮したものであった。林和は植民地朝鮮の映画について、独自の議論でその歴史の変遷を説明し、また作品の主題において民族の主体を確保しようとした。林和によれば、朝鮮における映画は「模倣」や「移植」の対象を見つけられずにいた。映画というジャンルだけは事情が異なり、商業や演劇の隆盛を前提として、近代期になって初めて成立したジャンルであった。林和はここで、草創期の朝鮮映画においては文学が重要な「援助者」の役割を果たしたと指摘する。だが、彼は映画『福地萬里』(1941)に対して、その評価こそ否定的だったものの、その基準において、以前、李泰俊の短篇「農軍」(1939.7)のときと同じ態度を示した。大陸を流浪する朝鮮人労働者の流浪を描いたこの映画は、内容としては大日本帝国や満洲帝国の当時の国策=五族協和の理想を体現したが、林和はこの作品の限界について指摘しながら、その判断の基準として作品の叙事詩的な到達度について言及した。つまり、朝鮮民族の民族移動を叙事詩的な画幅で捉えることもできたというのである。林和がかつて芸術大衆化論争のとき、自らの物語詩の舞台として選んだのは、ソウルの鍾路や玄海灘という、革命性や植民地性が前景化された場所だった。しかし、植民地末期において、林和は、日本、朝鮮、満洲という舞台を流浪し放浪する朝鮮人に、ある一個人の運命ではなく、ひとつの「集団」、ひとつの共同体の運命を見ようとした。このことは林和が民族という主体をとらえる果てに行き着いたひとつのアイロニーであった。
      林和は、植民地朝鮮において、プロレタリア詩、リアリズム評論、文学史論、映画論など多方面にわたって数多くの著作を残した。そこに見られる「主体」の捉え方は、さまざまなレベルにおいて観察され、またそれは時代によって少しずつ推移する。それは基本的に現実を矛盾の関係としてとらえ、それが対立し止揚されることによって歴史が進むことを、革命的前衛として時に観察し、時にその動力の主人となる「主体」であった。しかし、その「主体」は、さまざまな矛盾をはらむ民族の主体として定立されたとき、同時に帝国の論理を内面化するものとも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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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論文は、植民地朝鮮のプロレタリア文学の詩人・評論家であり、プロレタリア文学団体・カップ(KAPF、朝鮮プロレタリア芸術同盟)の委員長をつとめた林和(1908-53?)が、その生涯を...

      本論文は、植民地朝鮮のプロレタリア文学の詩人・評論家であり、プロレタリア文学団体・カップ(KAPF、朝鮮プロレタリア芸術同盟)の委員長をつとめた林和(1908-53?)が、その生涯をかけて残した、詩、評論、文学史論、映画論など多方面にわたる数多くの著作の内容を検討し、そこにみられる「主体」概念の変遷を、特に植民地において民族がおかれた状況や、その歴史的な位相をどのように解釈するか、文学的実践につなげていったかとの関係で検討するものである。
      Ⅰ章では、1930年前後にプロレタリア文学陣営の内部でおこなわれた芸術大衆化論争について、ソ連やドイツ、中国・台湾、日本のそれと比較しながら、植民地朝鮮の論争の特徴を指摘した。植民地朝鮮の芸術大衆化論争において、金基鎮は数多くの評論で大衆化のさまざまな方案を提案しており、その量と質において他の追随をゆるさない、高い水準の議論を展開していたが、東京の無産者社にいた金斗鎔や林和によって数回にわたって批判を受け、そのまま議論が収束していったという経緯自体にも、朝鮮における芸術大衆化論争の特質が見られる。さらに、この論争で特徴的といえるのは、林和の物語詩、いわゆる「短篇叙事詩」に対する評価が焦点化されたという点であろう。ソ連やドイツの労働者通信員運動でも、詩の創作方法が議論されたことがあったが、特定の個人の、しかも物語詩がこのように焦点化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また日本での議論においても、大衆化論争の当事者である中野重治は、当時、やはり詩を書いていたが、彼の作品について論争のなかで大きく焦点化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それに比べて朝鮮の論争では、林和という特定の個人の物語詩が大きく焦点化されたことが特徴的であった。
      Ⅱ章では、前章で扱った芸術大衆化論争の際にも言及された、林和の散文詩、物語詩についてその特徴や性格を検討した。林和の詩のうち、物語詩と呼びうる作品群の顕著な特徴は、通常の抒情詩のように単純な自然風景がその舞台や背景としては全く選ばれていないことである。たとえば、話者が直面しているものが都市の街角でも、あるいは海や山でも、その植民地性が強調された風景ばかりが選ばれる。林和の詩において、海=玄海灘と同様に重要な場所、植民地の風景として重要なのが、ソウルの鍾路十字路である。林和が「半島八景」の一つとして挙げたこの場所は、運動の同志が出会い、互いに励まし、時に涙を流す、そのような物語を支えるトポスだったが、林和はこの鍾路の十字路を詩の舞台として、連作とも言える詩を生涯にわたって残し、革命性や植民地性が前景化された現場を強調しながら、その対立や矛盾のありかを暴露し提示した。
      Ⅲ章では、林和が1930年代中盤から後半にかけて行った、当時の小説作品に対するリアリズム批評の内容と目的、さらにその動力やモチーフについて論じた。林和は、小説論においても、分裂・対立と統合・止揚という視角で、独自のリアリズム小説論を展開した。彼の評論「世態小説論」(1938.4)が典型的なもので、同時代の小説の傾向として、内省的なものと世態的なものが同時に出現していることの意味を問うて、その原因が、語ろうとするものと描こうとするものの分裂にあるとした。そのような視角は、当時、マルクス主義文芸の理論家であったG・ルカーチ(G. Lukács)の「全体性」(Totalität/totality)の理論と共鳴している。ルカーチの場合は、ブルジョア文化の二律背反を解決するために、プロレタリアートと前衛が見渡すことができる「全体性」の観点を確保したものだった。林和の場合は、それを転向小説の主人公にも適用し、性格上の欠如、すなわち、人物よりも描写に重きをおき、登場人物が行為する性格でなく、生活する市井人になっていることを「現代小説の主人公」(1939.9)などで指摘し、世態小説論のときと同様に、分裂の克服と、ある種の全体性へ指向を主張した。一方で、1931年に満洲で起こった朝鮮人農民と中国人農民との衝突事件である「万宝山事件」を描いた、李泰俊の短篇小説「農軍」(1939.7)に対しては、哀愁と悲哀の感情が悲壮に近くなり、悲劇の壮大さを彷彿とさせ、一民族の受難史の運命、大きな悲劇のなかに隠された叙事詩の感情が描かれているとして絶賛した。林和のリアリズム論はここで、民族の悲哀や喪失感の表出によって「主体」を確保することで、みずから帝国の論理を内面化した。
      Ⅳ章では、林和が朝鮮の新文学史を執筆する間に発表した評論「新文学史の方法」(1940.1)と、そこで議論された文化の移植性、さらにそれに対する解放後の韓国での批判について検討し、あわせて文学史において「朝鮮的なもの」はどのようなところに見出せるかという点について、林和の見解をまとめた。「新文学史の方法」(1940.1)は、彼が書いた「概説新文学史」(1939-41)の方法論を論じたものだが、朝鮮の新文学の歴史が日本を通じた西欧文学の移植の歴史であったとした点が、当時でなく後年、韓国の文学研究において問題になった。この「移植文学論」は、しかし、林和の文学史論で幅広いスペクトラムを持った方法論であり視角であった。それが適用されている一例として、朝鮮の文学史に漢文学の歴史を編入するという、民族や言語に対する独自の考え方があった。
      Ⅴ章ではさらに、林和が1930年代の中盤、「新文学史」の叙述を始める以前、「朝鮮新文学史序説」(1935.10)を叙述する前後に発表した、いくつかの言語関係の論文について論じた。この時期の彼の言語論は、彼自身の文学史叙述の前提であるにとどまらず、当時の植民地朝鮮の状況に呼応する見解でもあった。林和は、当時のソビエト連邦における言語論や言語政策を積極的に参照しながら、民族語としての朝鮮語がどのような環境におかれているかを強調した。また同時に、朝鮮語の歴史についてふりかえり、ヨーロッパにおける俗語の登場と朝鮮の開化期以降の国文の復権とを重ねて考えながら、民族語=朝鮮語の内容と生成過程についてさらに具体的に検討した。
      Ⅵ章では、最初の近代文学史叙述といえる林和の「概説新文学史」の構成原理について検討し、そこで朝鮮語や朝鮮人という主体をどう考えていたかを検討した。林和は、朝鮮文学の古典に対する評価において、史的弁証法的な視角から、反復古、平民の文学に対する言及を強調し、また、分裂・対立とその止揚で、民族文学が生成することを示しながら、李光洙の文学作品の内部にある矛盾やイデオロギー性を克服すべく、『白潮』派や新傾向派の文学の意義を認めた。そして、この「新文学史」叙述の作業を通じて、朝鮮王朝時代に、ハングルで創作された時調、歌辞、唱曲、小説などを民族の古典として評価するにいたった。つまり彼は、中世において、漢文/国文という二重の言語生活、二種類の「文」をもった状態を、「正」と「反」の対立し矛盾した状態としてとらえ、近代以降の新文学がその状態を止揚する「合」の状態であることを示そうとした。
      Ⅶ章では、林和が「新文学史の方法」(1940.1)で言及したH・テーヌの議論が、同じ日本の植民地にあった台湾において、台湾文学を説明する概念として言及されている事例を検討し、そのことを通じて、林和が「新文学史の方法」で指摘した、文学生成の場としての「環境」がいかなるものかを考えた。テーヌの「環境」概念は、ヨーロッパにおけるナショナリズムに対するさまざまな反省的世論のなかで、比較文学という知の制度によって克服されたはずだったが、帝国日本のアカデミズムが植民地の文学を認めようとしなかったとき、その抵抗の手段として植民地知識人によって再び持ち出されたのであった。台北帝国大学教授の島田謹二とその弟子である台湾人批評家・黄得時の角逐がまさにそのようなやりとりであった。黄得時と同様、林和もこのテーヌの方法論を援用し、時にみずからその説明を緻密化しながら、朝鮮の新文学を語り、また東アジアの文学史における「朝鮮」を主体化した。このような点で、帝国日本の植民地であった朝鮮と台湾で、H・テーヌの文学史方法論や文化理論が、同じ1940年前後に呼び出されたことは決して偶然ではない。
      Ⅷ章は、林和の映画論について議論する。彼の映画論は、リアリズム小説論や「新文学史」執筆での検討と同様、主体としての「民族」をつねに考慮したものであった。林和は植民地朝鮮の映画について、独自の議論でその歴史の変遷を説明し、また作品の主題において民族の主体を確保しようとした。林和によれば、朝鮮における映画は「模倣」や「移植」の対象を見つけられずにいた。映画というジャンルだけは事情が異なり、商業や演劇の隆盛を前提として、近代期になって初めて成立したジャンルであった。林和はここで、草創期の朝鮮映画においては文学が重要な「援助者」の役割を果たしたと指摘する。だが、彼は映画『福地萬里』(1941)に対して、その評価こそ否定的だったものの、その基準において、以前、李泰俊の短篇「農軍」(1939.7)のときと同じ態度を示した。大陸を流浪する朝鮮人労働者の流浪を描いたこの映画は、内容としては大日本帝国や満洲帝国の当時の国策=五族協和の理想を体現したが、林和はこの作品の限界について指摘しながら、その判断の基準として作品の叙事詩的な到達度について言及した。つまり、朝鮮民族の民族移動を叙事詩的な画幅で捉えることもできたというのである。林和がかつて芸術大衆化論争のとき、自らの物語詩の舞台として選んだのは、ソウルの鍾路や玄海灘という、革命性や植民地性が前景化された場所だった。しかし、植民地末期において、林和は、日本、朝鮮、満洲という舞台を流浪し放浪する朝鮮人に、ある一個人の運命ではなく、ひとつの「集団」、ひとつの共同体の運命を見ようとした。このことは林和が民族という主体をとらえる果てに行き着いたひとつのアイロニーであった。
      林和は、植民地朝鮮において、プロレタリア詩、リアリズム評論、文学史論、映画論など多方面にわたって数多くの著作を残した。そこに見られる「主体」の捉え方は、さまざまなレベルにおいて観察され、またそれは時代によって少しずつ推移する。それは基本的に現実を矛盾の関係としてとらえ、それが対立し止揚されることによって歴史が進むことを、革命的前衛として時に観察し、時にその動力の主人となる「主体」であった。しかし、その「主体」は、さまざまな矛盾をはらむ民族の主体として定立されたとき、同時に帝国の論理を内面化するものとも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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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 Hwa (1908-53?, Lim Hwa) was an influential poet and literary critic of proletarian literature in colonial Korea. He was active as the General Secretary of the Korean Artists Proletarian Federation (KAPF, Korean Artista Proleta Federacio) in colonial Korea and produced numerous literary works spanning various genres. Im wrote many poems and essays in relation to literary criticism, Korean literary history, and Korean film history. In this dissertation, I explore the representation of subjective in his writings, especially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situation of ethnic Koreans in the Japanese empire. I explore the various transformations evident in his writings in his continued efforts to link his changing perspectives to the ongoing praxis of literary writing over a tumultuous lifetime.
      Chapter I examines Im Hwa’s writing surrounding the controversial debates on art popularization (yesul taejunghwa nonjaeng) in the late 1920s. These writings are examined in comparison to other similar contemporaneous controversies in USSR, Germany, China/Taiwan, and Japan. Kim Kijin proposed numerous specific prescriptions on mass culture for proletarian literary writings in this debate. However, Kim Tuyong and Im Hwa criticized Kim Kijin’s ideas for lacking sufficient political radicalism, and the controversy unraveled abruptly. There were similarities between these debates and the controversy between Kurahara Koreahito and Nakano Shigeharu in Japan. However, in contrast to the debates in Japan, the problem of reconstruction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Chosŏn Kongsandang) within Korea had much more a direct impact on these debates. Another particularity of the controversy in colonial Korea is that it also substantially focused on Im Hwa’s narrative poem (‘tanpyŏn sŏsashi’) which was evaluated positively. Although there were some arguments for poetry writing in correspondent workers movements in Russia and Germany, nowhere was the focus turned to the particular works of an individual poet. Even though Nakano Shigeharu wrote many narrative poems as part of the debates within Japan, these poems were not the focus of the controversy itself. The centrality of Im’s poems in the Korean case can be seen as a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the debates in Korea when compared to other similar controversies around the world.
      Chapter II explores Im Hwa’s narrative poem which was referenced in the controversy surrounding art popularization examined in Chapter I. Going beyond conventions, Im purposely avoided simple natural landscapes as the backdrop of his narrative poems. In them, he insistently emphasized the colonial aspects within the landscape. For example, along with the Hyonhaet’an strait dividing Korea and Japan, the crossroad at Chongno was an equally significant backdrop in Im’s works. He foregrounded this city junction where comrades met each other, encouraged each other, and shed their tears together. In this way, Im Hwa always emphasized the fields where revolutionary and colonial situations were foregrounded through the viewpoint of a young man, and uncovered and highlighted the locus of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Chapter III deals with the content, purpose, dynamism, and motive of Im Hwa’s criticism on realist literature for Korean fiction in 1930’s. In his critical writing, he continuously emphasized fragmentation, conflict, integration, and aufheben. In his critical essay, ‘On the fiction of manners’ Set’ae sosŏl ron, 1938.4), Im refers to the tendency of the simultaneous emergence of contemporary fiction as a fiction of introspection and the fiction of manners. And he pointed out, the author of fiction could not integrate what to say and what to depict. This viewpoint has a homological relationship with Georg Lucács’s theory of totality of literary criticism. Lucács attempted to espouse the viewpoint of totality with which the proletariat and political vanguard could presumably reach a comprehensive view of social reality in order to resolve the antinomy within bourgeois culture. Im Hwa attempted to apply this viewpoint in his reading ofthe protagonist of the genre of conversion fiction (Chŏnhyang sosŏl). In his essay, ‘On protagonists of contemporary fictions’ (Hyŏndae sosŏl e juingong, 1939.9), Im pointed out that every protagonist did not have total characteristics, did not act, and became everyday people. At this point, it could be said that Im Hwa also aspired toward some sort of totality. Meanwhile, Im Hwa positively evaluated Yi Taejun’s short fiction ‘Farmers’ (Nonggun, 1939.7) on the grounds that Yi depicted the destiny of Korean farmers as martyred historical figures through the sentimental representations of epic poems set in the tremendous tragedy of reclamation in Manchuria. The background of this fiction is the Wangbaoshan incident of 1931 in Manchuria in which Korean farmers and Chinese farmers came into collision due to disputes over reclamation problems. At this point, Im Hwa’s criticism on realism internalized the logic of empire by ensuring ethnic subjectivity through the representation of the feelings of sadness and loss of the Korean people.
      Chapter IV explores the concept of ‘transplanted culture’ (Ishik munhwa ron) in Im Hwa’s essay, ‘The Method of Modern Literary History of Korea’ (Shin munhaksa e bangbŏp, 1940.1) which was published while he serialized his other long essay related to modern literary history of Korea (Kaesŏl shin munhaksa, 1939-41). Im Hwa argued in this essay that the modernity of Korean literature was built by importing (or transplanting) western modernity via Japan. After that, South Korean critics in the 1960s criticized this concept in terms of the existence of the autonomous modernity in Yŏngjŏng era of 19th century Korea. However, Im Hwa’s idea about ‘transplanted culture’ was a methodology and viewpoint with a broad-based spectrum found in his criticism related to Korean literary history. For example, this concept enabled Chinese language literature in Korean literary history to be incorporated into the general literary history of Korea. It could be said that this concept was based on Im’s unique perspectives about ethnicity and language.
      Chapter V examines issues in Im Hwa’s essays related to the question of language. Im’s arguments about language were not only the premise about past historical writings about Korean literary history, but also relevant to his political project about the contemporary problem of imperial language policies in colonial Korea. Im Hwa referred to many arguments and policies about language and linguistics in contemporary USSR, and emphasized the various circumstances in which the Korean language had been catgorized as an ethnic language. At the same time, he linked the historical reinstatement of the Korean language from the modern period to the emergence of vernacularism in modern European literatures, and in turn explored specifically the content and the history of the broader sense of the Korean language as an ethnic language.
      Chapter VI explores principles on writing within Im Hwa’s arguments about Korean literary history itself. His essay, ‘Introduction to Korean modern literature’ (Kaesŏl shin munhaksa, 1939-41) was called the first historical writing of Korean modern literature. In this essay, he uniquely explored the subjectivity of Koreanness within Korean literature, and emphasized the tendency of anti-restoration and commoner class literature in the evaluation to Korean premodern literature from the viewpoint of historical dialectics. Moreover, Im showed how Korean ethnic literature was formed in the process of division, conflict, and aufheben, and assessed positively literary works published in the magazine, ‘White Tide’ (Baekjo), from which many writers and poets of proletarian literature later emerged. Through the works of this literary history writing, Im Hwa evaluated Korean traditional fixed verse (shijo, kasa), drama (changgok), and fiction (sosŏl) written in Korean language as classical works of Korean literary history. Im regarded dual language usage of both Chinese and Korean languages in medieval Korea as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sis and antithesis, and also regarded the rise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s a form of synthesis.
      Chapter VII explores the colonial acceptance of Hippolyte Taine’s theory about literary history writing, and compared similar cases of Im Hwa in colonial Korea and Hwang Deshi in colonial Taiwan. Taine was a French thinker, and was deeply involved in research on English literary history. His concept, ‘milieu’ (circumstances) was an important key term he proposed in understanding English literature. Even though this concept was once overcome by reflective understanding of European literature in early 20th century, when critics of imperial Japan tried to write the history of Japanophone literature, and did not manage to recognize the existence of colonial native literature, this concept was called again to the academic sphere by colonial intellectuals such as Im Hwa and Hwang Deshi. It could be said that the concept, ‘milieu’ became the critical method again to criticize Japanese imperial literature in early 20th century East Asia.
      Chapter VIII examines Im Hwa’s essay related to contemporary Korean films. In his film criticism, he also emphasized the subjectivity of ethnic Koreans in filmmaking in Korean film history just as he assessed it in his realism criticism and his writing of Korean literary history. Im Hwa pointed out that the literary contents played the supporting role for film-making in Korean film history even though Korean capital could not support film-making properly at that time. However, when Im Hwa evaluated the film, ‘Miles Away from Happiness’ (Pokji manli, 1941), he showed ambiguity in his criticism just as when he positively assessed Yi Taejun’s short fiction ‘Farmers’ (Nonggun, 1939.7). The content of this film that some Korean young workers moved around Korea, Japan, and Manchuria, and collaborate with Chinese workers in Manchuria fully embodied some ideological ‘ideal’ of Imperial Japan and Manchukuo, that is, ‘five races harmony’ (gozoku kyōwa, ojok hyŏp’hwa). Im Hwa referred to the achievement of this film as a work of epic poem. He tried to emphasize that this film would have grasped the Korean diaspora just like epic poem. In late colonial period, Im Hwa tried to discover not one individual destiny but the destiny of one community or ethnic group in the life of Korean workers moving around Korea, Japan, and Manchuria. It seems ironic that he reached the end of his criticism by finding Koreanness as subjectivity.
      Im Hwa wrote many literary works and essays including criticsm of proletarian poetry and proletarian realism, Korean literary history, and film criticism. He figured subjectivity in various ways within his works, and the style of comprehending subjectivity made up the transition. Basically, he regarded some situations as contradiction, and the history that progressed by resolving and ‘aufheben’ing the contradiction or contradictory relationship. At times, Im regarded such subjectivity as representing a revolutionary vanguard and, at other times, as a people who turned history on its head. However, when the image of subjectivity was submitted as the Korean people who embodied many internal contradictions, Im Hwa’s writing ironically appears to have internalized the logic of empire simultane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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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 Hwa (1908-53?, Lim Hwa) was an influential poet and literary critic of proletarian literature in colonial Korea. He was active as the General Secretary of the Korean Artists Proletarian Federation (KAPF, Korean Artista Proleta Federacio) in colonia...

      Im Hwa (1908-53?, Lim Hwa) was an influential poet and literary critic of proletarian literature in colonial Korea. He was active as the General Secretary of the Korean Artists Proletarian Federation (KAPF, Korean Artista Proleta Federacio) in colonial Korea and produced numerous literary works spanning various genres. Im wrote many poems and essays in relation to literary criticism, Korean literary history, and Korean film history. In this dissertation, I explore the representation of subjective in his writings, especially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situation of ethnic Koreans in the Japanese empire. I explore the various transformations evident in his writings in his continued efforts to link his changing perspectives to the ongoing praxis of literary writing over a tumultuous lifetime.
      Chapter I examines Im Hwa’s writing surrounding the controversial debates on art popularization (yesul taejunghwa nonjaeng) in the late 1920s. These writings are examined in comparison to other similar contemporaneous controversies in USSR, Germany, China/Taiwan, and Japan. Kim Kijin proposed numerous specific prescriptions on mass culture for proletarian literary writings in this debate. However, Kim Tuyong and Im Hwa criticized Kim Kijin’s ideas for lacking sufficient political radicalism, and the controversy unraveled abruptly. There were similarities between these debates and the controversy between Kurahara Koreahito and Nakano Shigeharu in Japan. However, in contrast to the debates in Japan, the problem of reconstruction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Chosŏn Kongsandang) within Korea had much more a direct impact on these debates. Another particularity of the controversy in colonial Korea is that it also substantially focused on Im Hwa’s narrative poem (‘tanpyŏn sŏsashi’) which was evaluated positively. Although there were some arguments for poetry writing in correspondent workers movements in Russia and Germany, nowhere was the focus turned to the particular works of an individual poet. Even though Nakano Shigeharu wrote many narrative poems as part of the debates within Japan, these poems were not the focus of the controversy itself. The centrality of Im’s poems in the Korean case can be seen as a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the debates in Korea when compared to other similar controversies around the world.
      Chapter II explores Im Hwa’s narrative poem which was referenced in the controversy surrounding art popularization examined in Chapter I. Going beyond conventions, Im purposely avoided simple natural landscapes as the backdrop of his narrative poems. In them, he insistently emphasized the colonial aspects within the landscape. For example, along with the Hyonhaet’an strait dividing Korea and Japan, the crossroad at Chongno was an equally significant backdrop in Im’s works. He foregrounded this city junction where comrades met each other, encouraged each other, and shed their tears together. In this way, Im Hwa always emphasized the fields where revolutionary and colonial situations were foregrounded through the viewpoint of a young man, and uncovered and highlighted the locus of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Chapter III deals with the content, purpose, dynamism, and motive of Im Hwa’s criticism on realist literature for Korean fiction in 1930’s. In his critical writing, he continuously emphasized fragmentation, conflict, integration, and aufheben. In his critical essay, ‘On the fiction of manners’ Set’ae sosŏl ron, 1938.4), Im refers to the tendency of the simultaneous emergence of contemporary fiction as a fiction of introspection and the fiction of manners. And he pointed out, the author of fiction could not integrate what to say and what to depict. This viewpoint has a homological relationship with Georg Lucács’s theory of totality of literary criticism. Lucács attempted to espouse the viewpoint of totality with which the proletariat and political vanguard could presumably reach a comprehensive view of social reality in order to resolve the antinomy within bourgeois culture. Im Hwa attempted to apply this viewpoint in his reading ofthe protagonist of the genre of conversion fiction (Chŏnhyang sosŏl). In his essay, ‘On protagonists of contemporary fictions’ (Hyŏndae sosŏl e juingong, 1939.9), Im pointed out that every protagonist did not have total characteristics, did not act, and became everyday people. At this point, it could be said that Im Hwa also aspired toward some sort of totality. Meanwhile, Im Hwa positively evaluated Yi Taejun’s short fiction ‘Farmers’ (Nonggun, 1939.7) on the grounds that Yi depicted the destiny of Korean farmers as martyred historical figures through the sentimental representations of epic poems set in the tremendous tragedy of reclamation in Manchuria. The background of this fiction is the Wangbaoshan incident of 1931 in Manchuria in which Korean farmers and Chinese farmers came into collision due to disputes over reclamation problems. At this point, Im Hwa’s criticism on realism internalized the logic of empire by ensuring ethnic subjectivity through the representation of the feelings of sadness and loss of the Korean people.
      Chapter IV explores the concept of ‘transplanted culture’ (Ishik munhwa ron) in Im Hwa’s essay, ‘The Method of Modern Literary History of Korea’ (Shin munhaksa e bangbŏp, 1940.1) which was published while he serialized his other long essay related to modern literary history of Korea (Kaesŏl shin munhaksa, 1939-41). Im Hwa argued in this essay that the modernity of Korean literature was built by importing (or transplanting) western modernity via Japan. After that, South Korean critics in the 1960s criticized this concept in terms of the existence of the autonomous modernity in Yŏngjŏng era of 19th century Korea. However, Im Hwa’s idea about ‘transplanted culture’ was a methodology and viewpoint with a broad-based spectrum found in his criticism related to Korean literary history. For example, this concept enabled Chinese language literature in Korean literary history to be incorporated into the general literary history of Korea. It could be said that this concept was based on Im’s unique perspectives about ethnicity and language.
      Chapter V examines issues in Im Hwa’s essays related to the question of language. Im’s arguments about language were not only the premise about past historical writings about Korean literary history, but also relevant to his political project about the contemporary problem of imperial language policies in colonial Korea. Im Hwa referred to many arguments and policies about language and linguistics in contemporary USSR, and emphasized the various circumstances in which the Korean language had been catgorized as an ethnic language. At the same time, he linked the historical reinstatement of the Korean language from the modern period to the emergence of vernacularism in modern European literatures, and in turn explored specifically the content and the history of the broader sense of the Korean language as an ethnic language.
      Chapter VI explores principles on writing within Im Hwa’s arguments about Korean literary history itself. His essay, ‘Introduction to Korean modern literature’ (Kaesŏl shin munhaksa, 1939-41) was called the first historical writing of Korean modern literature. In this essay, he uniquely explored the subjectivity of Koreanness within Korean literature, and emphasized the tendency of anti-restoration and commoner class literature in the evaluation to Korean premodern literature from the viewpoint of historical dialectics. Moreover, Im showed how Korean ethnic literature was formed in the process of division, conflict, and aufheben, and assessed positively literary works published in the magazine, ‘White Tide’ (Baekjo), from which many writers and poets of proletarian literature later emerged. Through the works of this literary history writing, Im Hwa evaluated Korean traditional fixed verse (shijo, kasa), drama (changgok), and fiction (sosŏl) written in Korean language as classical works of Korean literary history. Im regarded dual language usage of both Chinese and Korean languages in medieval Korea as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sis and antithesis, and also regarded the rise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s a form of synthesis.
      Chapter VII explores the colonial acceptance of Hippolyte Taine’s theory about literary history writing, and compared similar cases of Im Hwa in colonial Korea and Hwang Deshi in colonial Taiwan. Taine was a French thinker, and was deeply involved in research on English literary history. His concept, ‘milieu’ (circumstances) was an important key term he proposed in understanding English literature. Even though this concept was once overcome by reflective understanding of European literature in early 20th century, when critics of imperial Japan tried to write the history of Japanophone literature, and did not manage to recognize the existence of colonial native literature, this concept was called again to the academic sphere by colonial intellectuals such as Im Hwa and Hwang Deshi. It could be said that the concept, ‘milieu’ became the critical method again to criticize Japanese imperial literature in early 20th century East Asia.
      Chapter VIII examines Im Hwa’s essay related to contemporary Korean films. In his film criticism, he also emphasized the subjectivity of ethnic Koreans in filmmaking in Korean film history just as he assessed it in his realism criticism and his writing of Korean literary history. Im Hwa pointed out that the literary contents played the supporting role for film-making in Korean film history even though Korean capital could not support film-making properly at that time. However, when Im Hwa evaluated the film, ‘Miles Away from Happiness’ (Pokji manli, 1941), he showed ambiguity in his criticism just as when he positively assessed Yi Taejun’s short fiction ‘Farmers’ (Nonggun, 1939.7). The content of this film that some Korean young workers moved around Korea, Japan, and Manchuria, and collaborate with Chinese workers in Manchuria fully embodied some ideological ‘ideal’ of Imperial Japan and Manchukuo, that is, ‘five races harmony’ (gozoku kyōwa, ojok hyŏp’hwa). Im Hwa referred to the achievement of this film as a work of epic poem. He tried to emphasize that this film would have grasped the Korean diaspora just like epic poem. In late colonial period, Im Hwa tried to discover not one individual destiny but the destiny of one community or ethnic group in the life of Korean workers moving around Korea, Japan, and Manchuria. It seems ironic that he reached the end of his criticism by finding Koreanness as subjectivity.
      Im Hwa wrote many literary works and essays including criticsm of proletarian poetry and proletarian realism, Korean literary history, and film criticism. He figured subjectivity in various ways within his works, and the style of comprehending subjectivity made up the transition. Basically, he regarded some situations as contradiction, and the history that progressed by resolving and ‘aufheben’ing the contradiction or contradictory relationship. At times, Im regarded such subjectivity as representing a revolutionary vanguard and, at other times, as a people who turned history on its head. However, when the image of subjectivity was submitted as the Korean people who embodied many internal contradictions, Im Hwa’s writing ironically appears to have internalized the logic of empire simultane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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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서론 1
      • 1. 문제제기 1
      • 2. 방법론과 선행연구 3
      • (1) 임화 연구의 방법론상의 과제―이식문화론과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3
      • (2) 선행연구(총론) 7
      • 서론 1
      • 1. 문제제기 1
      • 2. 방법론과 선행연구 3
      • (1) 임화 연구의 방법론상의 과제―이식문화론과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3
      • (2) 선행연구(총론) 7
      • (3) 선행연구(각론) 10
      • (4) 마쯔모토 세이쵸의 『북의 시인』에 대해서 13
      • 3. 논문 구성 17
      • 제 1 부 이야기시, 소설론, 언어론 21
      • Ⅰ. 문학의 정치주의화―예술대중화논쟁과 주체로서의 '전위' 22
      • 1.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예술대중화란 무엇인가? 22
      • 2. 소련, 독일, 중국/대만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예술대중화논쟁 23
      • (1) 러시아, 소련―작가동맹, 코민테른, 노동자통신원 운동 23
      • (2) 독일의 노동자통신원 운동 25
      • (3) 중국의 예술대중화논쟁 / 대만의 향토문학논쟁 27
      • 3. 일본의 예술대중화논쟁-나카노 시게하루의 루카치-레닌적인 것 29
      • 4. 식민지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예술대중화논쟁―김기진의 대중소설론과 임화의 '단편서사시' 35
      • Ⅱ. 식민지 '청년' 주체의 정립과 식민지 풍경의 전경화―임화의 이야기 시 50
      • 1. 저작에서 차지하는 시 작품의 위치 50
      • 2. 시 작품의 전반적인 특성 51
      • 3. 이야기시 (1)―혈연을 노래하는 것 55
      • (A) 남매 관계 57
      • (B) 모자 / 부자 관계 66
      • 4. 이야기시 (2)―식민지 풍경의 전경화 70
      • 5. 서정, 파토스, 감상주의 80
      • Ⅲ. 분열/조화와 전체성의 리얼리즘론―소설비평의 원리 86
      • 1. 낭만주의와 '주체'―'실천'의 강조와 관조주의 비판 86
      • 2. 분열된 세계로서의 '세태'―「세태소설론」(1938.4) 89
      • 3. 루카치 문예비평과 전체성론 99
      • 4. 분열/조화의 소설론과 그 변질―세태소설, 전향소설, 농민문학 106
      • IV. 조선어의 위기와 민족어론 121
      • 1. 문제의 소재 121
      • 2.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10)의 발표와 찬반 논쟁─문학자들의 경우 123
      • 3. ‘민족어’로서의 조선어가 놓인 위치 128
      • 4. 민족어=조선어의 완성과 문학자의 역할 137
      • 제 2 부 문학사론과 영화사론 145
      • Ⅴ. 「신문학사의 방법」과 '조선적인 것' 146
      • 1. 임화의 문학사론과 '이식문학론' 146
      • 2. 「신문학사의 방법」 비판에 대한 재검토 149
      • 3. '조선문학'이란 무엇인가―「신문학사의 방법」(1940)에서의 또 하나의 쟁점 157
      • 4. 문학사에서의 '조선적인 것' 164
      • 5. ‘민족’을 상상하는 두 가지 형태 169
      • Ⅵ. 문학사 서술과 '민족' 개념의 재편― 「개설 신문학사」(1939-41) 174
      • 1. 「신문학사」와 학예사. 경성제대 아카데미즘 174
      • 2. 문학사론 전체의 특성―낭만주의. 향토성. 반-복고 182
      • 3. 한문학과 국문문학의 '지양'의 결과로서의 '신문학' 191
      • 4. 신소설의 오락성과 정론성 201
      • Ⅶ. 이폴리트 테느와 식민지문학―조선과 대만에서의 수용 비교 209
      • 1. 임화 「신문학사의 방법」(1940.1)과 H. 테느 209
      • 2. 19세기의 테느와 20세기 유럽 비교문학 211
      • 3. 대북제대의 비교문학과 테느―시마다 킨지(島田謹二)와 황더시(黃得時) 215
      • 4. 문학 생성의 장소로서의 '환경'―임화의 경우 221
      • Ⅷ. 영화사와 서사시적인 것 225
      • 1. 영화에서의 '조선표상'과 그 대항물 225
      • 2. 영화의 제작 주체로서의 조선 232
      • 3. 다시 서사시로―영화 『복지만리』(福地萬里, 1941)를 둘러싼 상상력 238
      • 결론 244
      • [보론]임화가 관여한 두 가지 재판과 공판자료 248
      • (1) 평양에서 열린 숙청 재판(1953.8) 248
      • (2) 신건설사사건(1934.6) 255
      • 참고문헌 261
      • 국문초록 276
      • 日本語概要 282
      • ABSTRACT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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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 백문임, (평론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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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근대문학에 나타난 ‘만주’ 표상―’만주국’ 건국 이후의 소설을 중심으로」, 정종현, 􋺷한국문학연구􋺸제28집,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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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임화의 신문학사 연구의 성과롸 의미: 신문학의 발생 및 성장 과정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김영민, 문학과사상연구회 편, 􋺷임화문학의 재 인식􋺸, 소명출판, , 2004

      167. 「‘리얼리즘의 승리’와 텍스트의 무의식:「의도와 작품의 낙차와 비평」에 대한 몇 개의 주석」, 김동식, 􋺷민족문학사연구􋺸38호, 소명출판, , 2008

      168. 「임화의 참고문헌—「개설 신문학사」에 나타난 임화의 ‘학술적 글쓰기’의 성격 규명을 위한 관견」, 장문석, 임화문학연구회 편, 􋺷임화문학연구 2􋺸, 소명출판, , 2011

      169. 옮김, 􋺷태평양전쟁의 사상—좌담회 [근 대의 초극]과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으로 본 일본정신의 기원􋺸, 미츠오, 나카무라, 이경훈, 이매 진, , 2007

      170. 「김태준의􋺷증보 조선소설사􋺸와 임화의􋺷개설 신문학사􋺸비교: 소 설의 개념과 양식론을 중심으로」, 오현숙, 􋺷하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 􋺸, vol., no.6, 2009, , 2009

      171. 「1950년대 후반 ‘문예’로서의 시나리오의 의미」, 김소연 외, 􋺷매 혹과 혼돈의 시대-50년대의 한국 영화」, 백문임, 소도, , 2003

      172. 편, 􋺷「남노당」연구자료집 제 2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공산 권자료총서 5)􋺸,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김남식, 고려대학교출판부, , 1974

      173. 「개설 신문학사」, 「개설 신문학사」로서 􋺷조선일보􋺸-11.25), 「신문학사」로 서 􋺷조선일보􋺸(1939.12.5-12.27), 「속 신문학사」, 백문임, 로서 􋺷조선일보􋺸, ,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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