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증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기존 주목되었던 조선 후기의 발전상들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가내부업을 통한 생산과 농촌 정기시장의 교환이 결합한 조선 후기의 상업화는 사회적 분업...
최근 실증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기존 주목되었던 조선 후기의 발전상들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가내부업을 통한 생산과 농촌 정기시장의 교환이 결합한 조선 후기의 상업화는 사회적 분업의 측면에서 후진적이었고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근세 중국의 경제적 발전을 긍정하는 수정주의는 조선후기 상업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근세 중국의 상업화 역시 가내부업과 정기시에서의 교환이 핵심적이었지만, 유럽에 비교해서 시장교환의 규모는 더욱 거대했다. 시장발전에 따른 광역적인 분업에 의해 원격지 시장을 위한 농촌공업(원공업화)이 발전했고 원격지 상품의 생산과 소비로 농민들은 근면해져 갔다(근면혁명). 사회적 분업의 측면에서 후진적으로 여겨졌던 가내부업과 정기시장의 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신고전적 상황을 의미했다.
조선 후기 이후 조선 역시 동시기 중국과 유사한 발전을 경험했다. 1888년 『慶尙道全羅道旅行記事?二農商?調査錄』은 당시 주요 산업이었던 면업의 상황을 보여준다. 상품 토포는 가내부업에 기반했지만 원격지 농민소비자들을 위해 생산되었고 상당한 노동투입을 필요로 했다. 개항기 면업을 볼 때, 조선 역시 조선후기 내재적인 발전에 따라 원공업화와 근면혁명을 경험했고 다수 행위자들의 시장참여를 뒷받침하였다. 조선후기 이후의 상업화는 상품작물의 경작과 소비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이다. 상품작물의 노동집약적 경작을 고려할 때 소농들의 직접적인 토지소유는 합리적이었으며, 산업화 이전 구매력이 낮은 원격지 농민소비자들을 위한 상품은 원가의 측면에서 가내부업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조선후기 이후 상업화는 생산에 있어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여성들의 한계노동이 핵심적이었던 ‘한계형 상업화’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한계형 상업화’는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상품의 생산과 거래를 자유롭게 수행하는 ‘경제적 주체’가 다수인 사회적 상황을 뒷받침한다.
조선 후기 이후 ‘한계형 상업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부정적일 수 있지만, 산업화 이전 여타 사회에 일반적이지 않았던 대중적인 시장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상품 소비와 교환을 통해 조선 문화의 원형이 수립될 수 있었으며, 원격지 상품을 위한 노동투입은 근면혁명과 더불어 가족주의적 담론을 고취시켰다. 일본의 산업화와 세계시장으로 조선의 수공업이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형 상업화’의 유산은 지속적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인식은 유럽과 일본과 구분되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