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장방형 평면의 두 건물의 지붕을 연결하면서 기둥 상부 가구의 구성과 지붕 처리방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조선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이라는 건축물을 대상으로 고찰한 것이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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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 경기대학교 일반대학원, 2013
학위논문(석사) -- 경기대학교 일반대학원 , 건축학과 , 2013. 2
2013
한국어
경기도
80 p. ; 26cm
지도교수: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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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장방형 평면의 두 건물의 지붕을 연결하면서 기둥 상부 가구의 구성과 지붕 처리방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조선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이라는 건축물을 대상으로 고찰한 것이다. 왕릉의 정자각은 장방형 평면인 정전(正殿)의 전면 중앙부에 직각방향으로 배위청(拜位廳)이 결합된 형태로써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말기까지 동일한 목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건립되어 그 변화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보기에 적합한 대상이다.
지붕 연결부위의 처리는 기둥에서부터 서까래까지 목구조의 모든 부재가 상호 연관이 있다. 구조적인 변화과정을 고찰하기 위해 현존하는 조선시대 왕릉의 정자각을 모두 조사하여 정전과 배위청의 지붕가구 결합방식을 정리하였다. 한편 정자각의 건립과 수리에 관련된 문헌을 조사하여 정확한 건립연대를 확인하였다. 목조건축의 특성상 창건이후 여러차례의 수리와 소실된 경우 중건하는 과정에서 중건 당시의 양식과 기술적인 내용이 반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자각은 평면의 칸수에 작은 변화가 있기는 하였으나 정전과 배위청의 결합이라는 면에서는 큰 변화없이 조영되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지붕가구의 구성과 정전과 배위청의 위계 표현에 유의할 만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기둥의 높이, 공포의 형식, 처마부의 서까래 배열 방식, 서까래의 물매와 내밀기 등을 기준으로 지붕가구의 연결방식을 고찰하여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정전과 배위청의 기둥 상단 높이에 차이가 있어서 위계가 뚜렷하고, 두 건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조선왕릉의 정자각에서는 볼 수 없지만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이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전 전면의 배위청은 1칸으로 정전과는 서로 분리된 개별 건물이다.
둘째는 정전과 배위청의 기둥 상단이 높이에 차이가 있고, 배위청과 정전 어칸 사이에 창방과 도리가 설치되어 상부가구가 연결된 형태이다. 현존하는 정자각 중에서 이른 시기인 17세기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세종 영릉(英陵)의 정자각이 이 예에 해당한다. 정전과 배위청은 기둥 높이 차이가 나므로 정전의 처마 아래에 배위청의 처마가 설치된다. 따라서 지붕에는 완전한 회첨이 구성되지 못하였다.
셋째는 정전과 배위청의 기둥 상단 높이가 일치하고, 정전에는 이익공, 배위청에는 초익공을 사용하여 정전의 처마 높이가 더 높은 형태이다. 사례로는 목릉(穆陵), 정릉(貞陵), 경릉(敬陵), 정릉(靖陵)이 있다. 처마의 높이는 익공의 제공높이 정도 차이가 있어 세종 영릉의 정자각보다는 처마높이의 차이가 적게 나타난다.
넷째는 정자각의 완성된 구조를 보여주는 형태로서 기둥상단의 높이도 같고, 공포의 높이도 같으면서 정전에는 출목이익공, 배위청에는 이익공으로 위계를 표현한 것이다. 정전과 배위청의 상부가구가 일체화되어 처마의 평고대 끝 부분을 일치시켜 지붕에서는 완전한 회첨골이 구성되었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말기까지 장방형의 두 건물이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을 정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지붕이 결합되는 부분에서 성격이 다른 두 건물의 위계를 나타내면서 처마부를 일치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결국 하나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7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는 여러 가지 형태와 구조가 공존하면서 정전과 배위청의 처마 끝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18세기 말 경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공포의 위계는 정전에서는 출목이익공을 사용하고 배위청에서는 이익공을 설치하여 처마의 끝이 일치하며 정자각의 지붕이 일체화되는 형태로 정착되었다.
처음 두 개의 독립된 건물이었던 정자각은 점차 지붕 높이의 차이가 작아지면서 하나의 지붕으로 일체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으며, 마지막에는 꺾이는 부분의 처마끝 선이 일치하고, 회첨이 형성되는 구조로 정리되었다. 그 시기는 18세기 말 경이며 19세기에는 일반화된 형태가 되었다.
또한 정자각에서는 정전과 배위청의 위계를 지붕 높이의 차이와 공포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점차 지붕의 처마선을 일치시키면서 공포 형식에 차이를 두는 것으로 변화하여 고착화되었다.
본 연구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제한된 기능을 가진 정자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조선후기 주택과 궁궐의 복잡하고 다양한 평면에 따른 지붕가구의 결합방식의 시원과 발전과정, 회첨부가 형성되는 시기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로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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