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분석적, 논리적, 선형적인 좌뇌와 종합적, 연속적, 비선형적인 우뇌의 ‘차이’로 인하여 상호간에 작용이 일어나고 스스로 생각하는 ...
인간은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분석적, 논리적, 선형적인 좌뇌와 종합적, 연속적, 비선형적인 우뇌의 ‘차이’로 인하여 상호간에 작용이 일어나고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그림책은 ‘책’이라는 물성에 두 개의 언어체계가 공존하는 예술언어이다. 분석적, 선형적인 언어체계와 종합적, 비선형적인 언어체계, 즉 문자와 이미지로 대표되는 ‘상반되는 두 언어의 상호작용’은 그림책 텍스트를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유기체처럼 스스로 변화하는 형태가 되게 한다.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유기체가 된다는 것은 유리 로트만의 예술텍스트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로트만에 의하면 복수 언어로 구성된 예술텍스트는 표현-내용 층위간의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이미지처럼 텍스트가 곧 총체적 기호가 된다. 텍스트를 구성하는 모든 형식적 요소들이 모두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요소가 바뀌면 전체 텍스트가 바뀌므로 유기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텍스트는 2차 모델링 체계(예술 언어)를 통해 유형화된다. 그리고 2차 모델링 체계는 1차 모델링 체계를 통해 유형화된다. 따라서 1차 모델링 체계는 그림책 텍스트를 기술할 기반이 되는 가장 추상적인 언어이다. 서로 다른 두 언어의 체계 사이에서 상호작용, 공존, 쟁투, 대화, 번역이 일어날 때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두 체계 사이의 등가이다. 상반된 두 체계, 글과 그림 사이의 등가 조건은 자연언어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반면 위상기하학을 기반으로 한 공간언어에서는 성립한다. 삼각형, 사각형 그리고 원 등은 자연언어의 관점에서 꼭지점의 개수의 차이에 의해 각각 다른 도형이지만, 공간언어에서 이들은 같은 차원(2차원)의 면을 내부와 외부로 구분 짓는 폐곡선이라는 점에서 등가이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서로 다른 형태이지만 현실(외부)과 허구(내부)를 구분 짓는 다는 점에서 등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책이라는 2차 모델링은 공간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은 이야기 차원과 서술 차원으로 나뉘어진다. 이야기 차원의 인물과 배경, 사건이란 기호는 하나의 기의가 두 개의 기표로 표현되는데 이는 그림책 이야기 차원이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이다. 그리고 서술 차원에서는 두 개의 대등한 서술체계가 존재한다. 글과 그림의 공존 이상의 것, 곧 모든 서술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 시점, 초점화, 서술자 등이 이중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출신’이 다른 서술자들(서술체계)의 방식 차이 속에서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글 서술자는 직접적으로는 "슬펐다" 간접적으로는 "슬퍼 보였다" 등의 단어 선택을 통해 초점화를 한다면, 그림 서술자는 직접적으로는 인물의 표정, 제스처를 통해,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배경, 날씨 등을 통해 초점화한다. 글과 그림의 관계에 따른 그림책 텍스트의 유형화는 결국 이들의 언어체계가 만들어내는 서술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두 명의 서술자의 관계 또는 두 개의 서사와 두 명 이상의 서술자들의 관계이다. 예술 언어 중에서 그림책의 특성은 이중서술구조와 더불어 텍스트 차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텍스트 차원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의 3차원 공간으로서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물리적 형태, 외향적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림책의 3차원 공간을 구성하는 파라 텍스트는 ‘책’이라는 물리적 구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글처럼 의미를 생성하는 텍스트가 된다. 표정, 제스처, 행동, 포즈 등을 통해 의사 소통하는 파라 언어처럼, 파라 텍스트는 책의 물성인 ‘몸’으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과 그림이 대치하는 공간인 파라 텍스트에서 이들의 배치, 배열, 구성을 통해 그림책이라는 언어체계의 조건성이 형성되며, 조건성의 반대 작용, 마이너스 장치가 가장 활성화된다. 글과 그림 그리고 파라 텍스트의 상호 엮임은 동시에 읽힐 수 없다는 점에서 소리와 이미지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영화와 다르며, 같은 책이라는 매체이지만 단일언어 체계와 파라 텍스트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부재하는 문학과 분리되고, 정지된 이미지에 시퀀스라는 구조를 통해 시간을 담는다는 점에서 회화와 분리되는 그림책만의 고유한 특성,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책 텍스트의 독자성은 독자의 신체적 접촉과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열린 형태’ 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