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肇論」의 相卽觀 연구 : 성립시기에 따른 네 편 논문의 전개 방향 = A Study on the Viewpoint of Mutual Identification in 『Chao Lun』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3088420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肇論』을 저술한 僧肇(384-414)는 중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강했던 魏晉 시기에 그 생애는 짧았지만, 학문에 열정적이었던 한 승려 사상가이다. 그는 어렸을 때 老莊을 공부했지만, 불교서적 『維摩經』을 읽고 몹시 감동받은 후, 20세에 불교 공부로 전향하였다. 여기서 이 논문은 그 전환을 야기했던 사상적 흐름을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 논자는 『肇論』의 네 편의 논문들을 그 저작시기별로 재구성하여 연구함으로써, 기존 연구들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것은 기존 연구들에 승조 사상을 ‘중국불교’로 분석하는 공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상반 혹은 모순되는 평가들도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선행연구들의 핵심을 요약하면, 승조의 사상은 1)龍樹를 이해하지 못한 玄學 2)龍樹를 잘 이해한 ①玄學적, ②玄佛 회통, ③佛學적인 중국 불교사상이라는 것인데, 이들 간에는 모순점이 있다. 玄學은 實體인정, 佛學은 불인정으로 서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모순점들이 ‘중국불교’라는 포장 안에 공존한다. 이에 논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취한 방식인 『肇論』네 편 논문들을 그 구성순서대로 연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 편을 저작시기별로 분석함으로써, 玄學과 佛學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평가들을 모두 포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 성립 시기별 연구를 相卽觀을 통하여 하고자 한다. 상즉관은 龍樹의 부정어법(非有非無)에 대한 승조의 중국적 적용으로, 승조가 玄學에 내재된 문제점을 해결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는 승조가 불교를 공부한 목표의식, 승조의 龍樹 사상 수용이 기존의 중국적 사유에 어떤 보완, 창조적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有와 無의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를 ‘相卽’으로 동시에 말한다는 것은 그 특정 한 가지만의 관점을 배격하므로, 龍樹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玄學의 實體를 부정함으로써, 중국철학의 공통 목표인 天人合一에 장애가 되는 實體의 고정성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승조 사상을 상즉관이라고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즉 현학의 體用論을 불교에 적용시킨 것이라는 정도는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상즉관이 현학의 문제점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의 논의가 없다. 龍樹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승조 사상과의 일치여부를 논증하지만, 또 王弼과 郭象을 중심으로 玄學과 비교하며, 승조 사상이 현학적 사유가 아니므로 현학에서 독립했다고 논증하든지, 혹은 그 각각의 편견을 수정함으로써 현학에서 벗어났음을 논의하지만, 중국현학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문제를 승조가 상즉관을 통하여,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적 논의가 없다. 특히 상즉관을 『조론』 각 편 논문들이 저작된 시기에 따라 적용하며, 현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논자는 현학의 왕필과 곽상과의 대비를 통하여, 승조의 상즉관을 적용하여, 승조가 그 내부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각 논문들의 저작 시기별로 논증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현행본 『肇論』의 판본 구성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으로 다양하지만, 판본 당시 시대상만을 반영하거나 승조 사상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승조 사상을 시기별로 분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정의하게 한다. 그리고 저작시기별 선행연구로는 가장 먼저 이루어진 저술로 梁代(502 - 557) 慧皎의 『高僧傳』「僧肇傳」 이외에, 최근에 李潤生의 『僧肇』가 있다. 『高僧傳』은 저작 시기별로 논문들은 소개, 분석하지만, 「열반무명론」만을 강조하는 문제가 있고, 李潤生은 『高僧傳』에 제시된 순서대로 승조의 사상을 연구하는 방식이 그 사상의 발전과정을 잘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상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지 않다. 또한 네 논문 모두 龍樹의 中觀사상을 잘 반영한다고 하지만, 『肇論』첫 논문「般若無知論」에 대해 초월주체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實體는 中觀論과 모순이다. 이에 예비적 고찰로서의 『肇論』 재구성 논증이 필요하다. 이는 승조가 각 논문들을 저술할 당시의 여러 다양한 상황 및 배경에 대한 논의이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여건들이 각 논문의 전개 방향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이런 서로 다른 여건에 기초하여, 이후의 논의에서, 논자는 첫 논문인 「반야무지론」은 여전히 玄學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이후의 세 논문은 모두 中觀의 사상을 잘 반영했음을 밝힐 것이다.
      먼저 「般若無知論」의 논의이다. 승조는 반야를 無知로 정의하고, 이를 일반적인 지식과 대립시킨다. 일반인식인 知 는 언어가 야기하는 구체적, 분별적 분석을 하지만, 반야는 無分別이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립적 관점에서 眞俗을 분리한다. ‘일반적인 體用 일치’는 본체와 현상의 통일이지만, 「般若無知論」의 체용 일치는 반야지혜의 주체(반야)와 그 대상(眞諦) 사이의 일치로서, 승조는 이를 반야무지라고 보면서, 일상의 俗에 속한 知와 분리한다. 이러한 眞俗 분리는 일반적인 체용일치나 中觀 사상과 모순적이다. 그러므로 非有非無는 본래 中觀 사상의 대표적인 象徵語이지만, 「般若無知論」의 非有非無는 반야무지라는 초월적 聖智에 대한 서술어이다. 즉 반야무지의 초월적 존재성을 기반으로 두고, 형상이 없지만(非有), 관조 작용이 있는(非無)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반야무지의 실체성은 일반적 知는 因緣으로 이루어지지만, 無知는 인연을 벗어난 것으로 대립시키는 데서 더 두드러진다. 知는 극복의 대상으로 부정하고, 無知만을 수용하는, 둘 사이의 대립성의 강화는 하나(無知)의 절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中觀 사상은 眞과 俗을 분리하지 않고, 초월적 실체(自性)를 부정하는 것이 그 핵심이므로, 「般若無知論」은 아직 玄學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절대적 聖智의 강조는「答劉遺民書」과 구분된다. 이 승조의 편지는 劉遺民이 승조의「般若無知論」을 읽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승조와 묻고 답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般若無知論」의 관점일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편지는 「不眞空論」 및 「物不遷論」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져, 이들과 같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不眞空論」에 대한 논의이다. 승조의 三家 비판은 특히 無를 중시하는 본무종에 중점이 있으므로, 이는 非有非無의 중도적 관점을 벗어났음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다. 이 중도적 관점인 ‘不眞空’은 모든 존재는 假有로서 진실하지 않으므로, 空하다는 것이다. 즉 假有는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다. 因緣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는 그 실체(自性)가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有라고도 할 수 없고, 그러나 이미 假有로 존재하므로 無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중도적 관점은 「반야무지론」에서 知↔無知, 眞↔俗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진제와 속제를 분리하지 않는다. 진제로서 非有, 속제로서 非無이지만,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동시에 진제는 非有非無로서, 이러한 中道性은 진제를 어느 한 측면으로만 볼 수 없게 하므로, 두 가지는 나누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승조는 현상 사물을 진제와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현상을 초월한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기서 승조는 특히 「반야무지론」에서 인정된 (실체적) 聖人도 自虛, 즉 空에 의존한다고 하여, 실체성을 부정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부정은 中觀사상의 핵심인 自性의 부정이다.
      다음은 「物不遷論」에 대한 논의이다. ‘不遷’은 직역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므로, 靜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中觀에서 벗어났다고 흔히 비판받는다. 그러나 승조는 中道에 어긋나는 無常을 비판하고자 하므로, 일단, 不遷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無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물현상들은 無常하게 변화한다고 하면서, 그 현상 가운데 실체는 영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승조는 바로 이 三世實有說의 극복, 즉 自性의 부정을 또한 목표로 삼아, 無常을 배격하지만, 동시에 실체의 常도 부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靜의 사상은 결코 아니다. 이를 위해 우선 不來不去의 논증을 한다. 일반 사람들은 ‘현재에 과거의 일은 없다’=‘動’=‘不來’의 한 측면만을 본다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다른 관점, 즉 ‘과거에 현재의 일은 없다’=‘靜’=‘不去’과 합하여, 不來不去의 구조를 만든다. 이는 과거는 현재에 이르지 않고, 현재는 미래에 이르지 않아, 그 불변의 실체가 三世에 관통하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各性住於一世로 표현한다. 여기서 性은 自性이 아니라, 인연법의 성으로 空한 것이다. 그리고 一世는 찰나의 순간으로, 그 의미는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이어지지 않는 채로, 매 순간 변화하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의 부정은 모든 존재들의 斷滅이 아니다. 因緣에 의한 존재들은 그 독자적인 실체는 없지만, 계속 생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不遷은 常과 無常의 통일로서, 실체로서의 나의 불연속성과 업보(경험)로서의 나의 연속성의 복합구조인 無我윤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다. 즉 원자는 수많은 미립자로 구성되는데, 그 수명은 10-23초에 불과하여, 순간적으로 生滅하므로 自性이 있기는 불가능하지만, 이 자성이 없는 미립자들의 生과 滅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無常과 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이에, 「物不遷論」에서 언급되는 不遷 및 그와 연관된 표현 11가지를 분석하여, 승조의 관점을 최종 조망해 보면, 그 핵심 내용은 無去來=空=不常不斷이며, 不動이라고 언급될 때조차 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승조가 인용한 원전의 문맥을 살펴보면, 집착을 벗어난다는 空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涅槃無名論」에 대한 논의이다. 현재는 승조의 저작으로 대체로 인정받지만, 네 논문 중에 특히 「열반무명론」이 眞僞논쟁을 겪으면서, 湯用彤, 橫超慧一, W. Liebenthal 등 여러 연구자들의 6-70년간의 고증 및 논증 과정을 거친 것은 이 논문이 표현 방식이나 實體적 표현들에 있어서 승조의 저작인지 의문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은 승조의 사상과 크게 어긋나지는 않지만, 수정 가능성도 많다고 충분히 여겨진다. 그러므로 승조의 경지론에 실체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이러한 수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논문의 전체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本性과 같이 몇몇에 국한된 실체적 표현만을 고려한 문제를 지닌다. 수정되었다면, 승조 이후 성행한 道生의 실체적 열반관이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으므로, 그에 따라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 있는 실체적 표현들은 그 영향이라고 할 것이다. 「涅槃無名論」은 그 분량이 상당히 많아, 먼저 대강의 구조 분석을 해보면, 크게 두 부분, 즉 앞부분의 奏秦王表와 뒷부분의 10演 9折의 19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는 無名과 有名의 두 가상 인물 사이의 논변을 통해 「涅槃無名論」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無名(승조)가 有名을 비판하는데서 승조의 이 논문 저술 의도가 드러난다. 즉 名實 일치의 관점에서, 二分法적인 實體論으로 涅槃을 이해하는 유명을 비판하는 것은 中道관점을 찬성하는 의도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승조는 중도의 空한 공부를 제시한다. 이는 어떤 특정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즉 다양성의 통일에 의한 통한 공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공부이다. 각 개인차를 반영하는 다양한 방식이지만, 열반에 도달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는 有爲와 無爲의 통일로서, 일상생활을 통한 공부이다. 그러나 空한 공부는 열반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며, 나의 공부가 나만의 것이 되도록, 공부 과정 및 그 결과에 집착할 수도 없다. 因緣은 모든 존재를 연결하므로, 나의 공부가 남의 공부이기도 하다. 또한 緣起는 무한하게 연결되므로, 공부의 과정도 무한하다. 이 점에서 특정의 한 가지 방식을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공부하는 漸修를 말한다. 이 공부를 통해 도달하는 열반은 「반야무지론」에서처럼, 반야는 “존재하지만 논의할 수 없는 것”(存而不可論)이 아니라, 존재이면서 비존재이고, 비존재이면서 존재이다. 이와 같이 특정의 규정성이 없으므로 열반은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나타나, 어떤 한 가지로 고정하여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승조는 이제 앞의 논문에서 非有非無의 표현이 아닌, 그 의미는 같지만 표현이 다른, ‘不出有無, 不在有無’의 언급으로 나아간다. 이는 有 혹은 無로 말하면 상대적인 시비를 야기하여, 고정화할 수 없는 열반을 고정화시킬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열반은 有無를 벗어나지도 않고, 有無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유무의 현상 밖의 초월적 영역에 실체를 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점에서 승조는 열반은 일상의 현상적인 번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제와 속제는 분리되지 않고, 열반과 번뇌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즉 實體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 열반의 핵심이다.
      Ⅲ장의 논의가 저작 시기가 다른 네 논문을 통해 승조 사상의 발전과정을 논의한 것이라면, Ⅳ장은 승조가 相卽觀을 통하여, 佛學의 어떤 측면을 수용하여 玄學의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논증한다.
      앞에서 승조의 첫 논문 「반야무지론」은 玄學, 그 이후는 佛學의 경향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이는 임시적인 결론이다. 그를 둘러싸는 사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절부터는 승조에게 영향을 주었던, 龍樹의 中觀론과 王弼 및 郭象의 玄學적 사유에 대한 논의를 통해, 그 사상의 입각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현학과 중관론은 實體 인정 여부에서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 구조 아래서 승조가 그 자신의 문제의식을 통해 어떻게 그 대립점에 반응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즉 승조의 문제의식은 당시 반야사상가들이 龍樹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현학과 불학의 대립점을 통해 승조의 관점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승조가 相卽觀을 통해, 龍樹의 어떤 관점을 수용하여, 玄學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식적 측면에서 龍樹와 현학의 대립구조는 일상의 인식 및 반야지혜의 문제인 二諦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용수는 승의제인 열반은 고정성이 없지만, 속제인 일상의 언어 인식은 대상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열반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므로 일단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고정성으로 인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如實하게 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언어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如實하게 볼 수 있기만 하면, 오히려 속제의 언어는 열반 파악의 필요조건이다. 즉 진제와 속제를 분리하여 실체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玄學은 道의 비고정성에 근거하여, 언어 등 일상의 고정적 분석(분별)적 인식(知)은 道의 파악을 방해할 뿐이라는 측면에서 無分別知로서 無知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파악되는 道는 고정(구체)화될 수는 없지만, 인식의 궁극 대상인 실체로 여겨진다. 이러한 불학과 현학의 대립적인 구조에 있어, 승조는 현학의 입장을 취하여, 반야무지를 절대화한다. 그러므로 이 당시 승조는 현학의 문제 해결에 기여한 바가 없다. 비록 그의 문제의식은 龍樹의 사상을 제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지만.
      존재론의 측면에서 접근된 「不眞空論」을 玄學과 龍樹 존재론의 대립적인 구조를 통해 조망해본다. 현학의 王弼은 모든 현상적 존재를 有로 보고, 그것은 본체인 無(道)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현상과 본체의 合一을 추구하면서도, 無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상과 본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에 郭象은 無를 없애고 현상 사물인 有만을 인정함으로써, 현상과 분리되는 본체의 문제를 해결하여, 다양한 개성적 존재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들이 본래 타고난 性이 있다는 것은 自性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에 중관론은 假有를 설정함으로써, 모든 존재들을 존재이자 비존재로 설정하여, 自性(實體)을 부정한다. 모든 존재들은 緣起에 의해 서로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떤 특정의 한 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空이다. 그런데 특정의 실체를 부정하는 中道는 이 空조차 부정하여 空空을 말한다. 이와 같이 실체는 계속적인 부정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空은 無我를 말하지만, 현상적으로 생멸하는 존재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假有란 어느 한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존재이면서 동시에 존재이다. 이렇게 현학과 중관론의 대립적인 구조 아래서, 승조가 존재들은 非有非無로 설명한 것은「不眞空論」을 통해서, 그가 목적으로 삼았던 중관 사상을 비로소 실현하기 시작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왕필의 無의 실체성은 승조와 근본적으로 어울릴 수 없고, 곽상의 無 부정은 승조의 空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반면, 고정적인 性은 비고정성의 空과 대립된다. 또한 현학은 假有를 인정하지 않아, 有는 有이고, 無는 無로서, 상호 전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승조의 假有는 고정성이 없음으로 인해, 有와 無의 상호 전화, 상호 수렴을 전제한다. 이를 통해 승조는 실체화된 왕필의 無와 곽상의 有인 性의 고정성 문제를 해결한다.
      다음은 「物不遷論」의 상즉관에 대한 논의이다. 현학의 왕필은 존재론에서 無를 핵심으로 삼듯이, 시간 변화의 측면에서 靜을 중심으로 삼아, 모든 動의 변화는 靜, 즉 無로 되돌아간다고 보고, 시간 변화를 초월한 절대적 실체를 추구한다. 반면에 존재론에서 현상존재의 有만을 인정했던 곽상은 존재들을 초월하는 시간의 실체를 부정하고, 무궁한 변화만을 말한다. 그러나 이미 性의 고정성을 제시하여, 어떻게 그 런 고정적 존재들이 무궁하게 변화 가능한지의 모순이 있다. 한편, 龍樹의 시간관은 空의 시간으로서 그 실체가 없다. 하나의 실체가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될 수 없다. 이는 不常의 측면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 현상 존재들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들은 끊임없이 생멸한다. 이것은 不斷의 측면이다. 그러므로 용수 시간론의 핵심인 不常不斷은 실체로 이어지지 않는 존재들이 끊임없이 이어짐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함께 생멸하며,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다. 한 측면만을 말하는 것은 中道가 아니다. 여기서 승조는 龍樹의 관점을 취하여, 常과 無常을 통일시킨다. 이 시간은 변화이지만 변화 그 자체만도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한, 불변의 실체를 추구하는 왕필을 수용할 수 없다. 한편, 곽상이 초월적 실체를 부정하여, 과거의 것은 현재에 이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승조와 같은 관점이다. 하지만 곽상이 변화만을 말하고, 그런데도 이미 性의 고정성을 언급하여 변화와 모순적인 것은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 곽상이 고정성과 변화를 동시에 말하는 것과 승조의 常과 無常의 통일과 어떻게 다른지의 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假有가 필요한데, 곽상은 假有가 없어, 그는 대립하는 두 가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승조는 假有의 空을 통해, 相卽의 관점을 통해, 그 고리를 찾는데 성공한다. 즉 승조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常의 부정을 위해 無常을 말하고, 이제는 無常의 집착을 배제하기 위하여 다시 常을 말하면서, 두 극단을 떠났다가 다시 相卽시키는, 지속적인 변증적인 과정을 지속함으로써, 곽상이 性의 고정성과 변화라는 모순적인 두 가지를 말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涅槃無名論」에 나타난 相卽관의 논의이다. 현학은 天人合一, 즉 자연과 인간의 통일을 경지의 목표로 삼지만,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닌, 즉 고정성이 없는 假有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인간 외부의 초월적 실체를 추구하는 왕필이든, 그것을 없앤 곽상이든 假有가 없기 때문에, 즉 고정성이 있기 때문에 合一이 어렵다. 합일은 서로 다른 두 대립물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고정성이 강화되면, 그만큼 합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有와 無 사이의 緣起적인 상호 전화가 없으므로, 자연(天)은 공부의 대상으로 (人 외부 혹은 내부에) 고정되어 있고, 공부는 人의 측면에서 인위적인 것들, 즉 욕망 등을 억제하고 변화하여, 그 天에 다가가기만 해야 하는, 一方의 과정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공부 과정은 일직선상으로 이어져 최종의 종점으로 설정된다. 더구나 곽상은 타고난 性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므로 왕필, 곽상 모두 경지를 위한 공부는 聖人이라야 비로소 완전하게 가능하다고 본다. 聖人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공부는 힘들다. 반면에 龍樹에게 고정성, 自性은 없다. 열반이 번뇌이기도 하고, 번뇌가 열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용수는 열반 경지를 추구하지만,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번뇌이고, 번뇌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미 열반이다. 이와 같이 번뇌와 열반 사이의 연기적인 상호 전화는 공부의 최종점을 설정하지 않는다. 진제는 속제를 극복한 이후의 결과만이 아니라, 동시에 현상 그 자체로서 속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매 순간이 공부의 시작이자 종점으로, 끊임없이 상호 연기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승조는 이 관점을 수용한다. 승조는 열반에 도달하는 것은 같지만, 이러한 비고정성에 근거하여, 각자마다 다른 다양성의 공부를 제시하고,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漸修공부를 강조한다. 각 수준에 맞추어 계속 공부하는 中道적 방식은 人에서 天으로 나아가는 一方의 현학적 공부보다 여유 있고, 쉬운 공부가 된다. 공부대상과 주체가 불변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변증적인 관계로서, 일방적 관계를 해소한다. 다양한 공부법이 제시되므로, 공부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무한의 연기적 순환이 있으므로, 나의 공부가 너의 공부로 연결되는, 번뇌가 열반이 되기도 하고 열반이 번뇌가 되는 순환의 과정에서 (집착을 하면) 무한하게 어렵기도 하고 (그 집착이 사라지면) 무한하게 쉽기도 한, 공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현학과 달리, 중생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관론은 현학에 비해 공부 가능성의 확대에 긍정적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상에서 논자는 승조의 『조론』의 네 논문을 그 저작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막연하게 ‘중국식 불교’라고 평가되면서도 연구자들에 따라 그 안에 여러 다양하고, 서로 모순된 관점들이 내재하고 있는 승조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면서 그 모순점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학과 중관론은 實體 인정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둘 다 포용할 수 있다. 즉 승조 가장 최초의 논문인 「반야무지론」은 龍樹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현학이라는 관점을 포용할 수 있는 반면에, 그 이후의 세 논문은 龍樹의 중관적 입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승조는 상즉관에 의하여, 당시 중국 사상계의 모순점을 해결한다. 천인합일을 목표로 두지만, 無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상과 본체를 분리하는 왕필의 모순과, 그 외부의 無를 없애고 인간현상으로 내려오는데 성공하지만, 내부의 性의 고정성으로 합일을 어렵게 하는 곽상의 한계를 수정한다. 승조가 연구 초기에 『유마힐경』을 읽으며 그토록 기뻐했던 것은 이와 같이 현학 내부의 문제 해소의 실마리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학이 자라난 중국에서 그 사상을 전개했지만, 외래사상인 중관론으로 기존 중국적 사유의 문제점 해소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사상 전개 방식은 龍樹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되, 그 ‘雙遣’의 방식에서 중국 방식의 ‘상즉’으로 적용한 것이다. 서도 다른 두 대립물을 동시에 말함으로써, 自性을 인정하지 않고, 현학의 합일에 내재된 모순을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조의 사상이 중국에 안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들은 우주 및 인생에 대하여 완전히 空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즉 중국인들은 인도불교를 수용할 때, 순수한 ‘緣起性空’이나 ‘假有’의 관념은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조 및 용수의 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상호적 포용을 말하므로, 약자 배려 및 상호주의 등에 소통의 창구가 되는 반면, 중관 사상을 잘못 이해할 경우, 서로 대립될 수 있는 두 가지, 예를 들면, 有와 無,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말함으로써,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를 잉태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을 외면함으로서 야기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둘 다 요구함으로써 생겨나는 허무주의이다.
      번역하기

      『肇論』을 저술한 僧肇(384-414)는 중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강했던 魏晉 시기에 그 생애는 짧았지만, 학문에 열정적이었던 한 승려 사상가이다. 그는 어렸을 때 老莊을 공부했...

      『肇論』을 저술한 僧肇(384-414)는 중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강했던 魏晉 시기에 그 생애는 짧았지만, 학문에 열정적이었던 한 승려 사상가이다. 그는 어렸을 때 老莊을 공부했지만, 불교서적 『維摩經』을 읽고 몹시 감동받은 후, 20세에 불교 공부로 전향하였다. 여기서 이 논문은 그 전환을 야기했던 사상적 흐름을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 논자는 『肇論』의 네 편의 논문들을 그 저작시기별로 재구성하여 연구함으로써, 기존 연구들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것은 기존 연구들에 승조 사상을 ‘중국불교’로 분석하는 공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상반 혹은 모순되는 평가들도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선행연구들의 핵심을 요약하면, 승조의 사상은 1)龍樹를 이해하지 못한 玄學 2)龍樹를 잘 이해한 ①玄學적, ②玄佛 회통, ③佛學적인 중국 불교사상이라는 것인데, 이들 간에는 모순점이 있다. 玄學은 實體인정, 佛學은 불인정으로 서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모순점들이 ‘중국불교’라는 포장 안에 공존한다. 이에 논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취한 방식인 『肇論』네 편 논문들을 그 구성순서대로 연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 편을 저작시기별로 분석함으로써, 玄學과 佛學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평가들을 모두 포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 성립 시기별 연구를 相卽觀을 통하여 하고자 한다. 상즉관은 龍樹의 부정어법(非有非無)에 대한 승조의 중국적 적용으로, 승조가 玄學에 내재된 문제점을 해결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는 승조가 불교를 공부한 목표의식, 승조의 龍樹 사상 수용이 기존의 중국적 사유에 어떤 보완, 창조적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有와 無의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를 ‘相卽’으로 동시에 말한다는 것은 그 특정 한 가지만의 관점을 배격하므로, 龍樹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玄學의 實體를 부정함으로써, 중국철학의 공통 목표인 天人合一에 장애가 되는 實體의 고정성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승조 사상을 상즉관이라고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 즉 현학의 體用論을 불교에 적용시킨 것이라는 정도는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상즉관이 현학의 문제점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의 논의가 없다. 龍樹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승조 사상과의 일치여부를 논증하지만, 또 王弼과 郭象을 중심으로 玄學과 비교하며, 승조 사상이 현학적 사유가 아니므로 현학에서 독립했다고 논증하든지, 혹은 그 각각의 편견을 수정함으로써 현학에서 벗어났음을 논의하지만, 중국현학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문제를 승조가 상즉관을 통하여,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적 논의가 없다. 특히 상즉관을 『조론』 각 편 논문들이 저작된 시기에 따라 적용하며, 현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논자는 현학의 왕필과 곽상과의 대비를 통하여, 승조의 상즉관을 적용하여, 승조가 그 내부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각 논문들의 저작 시기별로 논증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현행본 『肇論』의 판본 구성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으로 다양하지만, 판본 당시 시대상만을 반영하거나 승조 사상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승조 사상을 시기별로 분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정의하게 한다. 그리고 저작시기별 선행연구로는 가장 먼저 이루어진 저술로 梁代(502 - 557) 慧皎의 『高僧傳』「僧肇傳」 이외에, 최근에 李潤生의 『僧肇』가 있다. 『高僧傳』은 저작 시기별로 논문들은 소개, 분석하지만, 「열반무명론」만을 강조하는 문제가 있고, 李潤生은 『高僧傳』에 제시된 순서대로 승조의 사상을 연구하는 방식이 그 사상의 발전과정을 잘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상 변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지 않다. 또한 네 논문 모두 龍樹의 中觀사상을 잘 반영한다고 하지만, 『肇論』첫 논문「般若無知論」에 대해 초월주체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實體는 中觀論과 모순이다. 이에 예비적 고찰로서의 『肇論』 재구성 논증이 필요하다. 이는 승조가 각 논문들을 저술할 당시의 여러 다양한 상황 및 배경에 대한 논의이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여건들이 각 논문의 전개 방향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이런 서로 다른 여건에 기초하여, 이후의 논의에서, 논자는 첫 논문인 「반야무지론」은 여전히 玄學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이후의 세 논문은 모두 中觀의 사상을 잘 반영했음을 밝힐 것이다.
      먼저 「般若無知論」의 논의이다. 승조는 반야를 無知로 정의하고, 이를 일반적인 지식과 대립시킨다. 일반인식인 知 는 언어가 야기하는 구체적, 분별적 분석을 하지만, 반야는 無分別이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립적 관점에서 眞俗을 분리한다. ‘일반적인 體用 일치’는 본체와 현상의 통일이지만, 「般若無知論」의 체용 일치는 반야지혜의 주체(반야)와 그 대상(眞諦) 사이의 일치로서, 승조는 이를 반야무지라고 보면서, 일상의 俗에 속한 知와 분리한다. 이러한 眞俗 분리는 일반적인 체용일치나 中觀 사상과 모순적이다. 그러므로 非有非無는 본래 中觀 사상의 대표적인 象徵語이지만, 「般若無知論」의 非有非無는 반야무지라는 초월적 聖智에 대한 서술어이다. 즉 반야무지의 초월적 존재성을 기반으로 두고, 형상이 없지만(非有), 관조 작용이 있는(非無)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반야무지의 실체성은 일반적 知는 因緣으로 이루어지지만, 無知는 인연을 벗어난 것으로 대립시키는 데서 더 두드러진다. 知는 극복의 대상으로 부정하고, 無知만을 수용하는, 둘 사이의 대립성의 강화는 하나(無知)의 절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中觀 사상은 眞과 俗을 분리하지 않고, 초월적 실체(自性)를 부정하는 것이 그 핵심이므로, 「般若無知論」은 아직 玄學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절대적 聖智의 강조는「答劉遺民書」과 구분된다. 이 승조의 편지는 劉遺民이 승조의「般若無知論」을 읽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승조와 묻고 답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般若無知論」의 관점일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편지는 「不眞空論」 및 「物不遷論」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져, 이들과 같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不眞空論」에 대한 논의이다. 승조의 三家 비판은 특히 無를 중시하는 본무종에 중점이 있으므로, 이는 非有非無의 중도적 관점을 벗어났음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다. 이 중도적 관점인 ‘不眞空’은 모든 존재는 假有로서 진실하지 않으므로, 空하다는 것이다. 즉 假有는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다. 因緣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는 그 실체(自性)가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有라고도 할 수 없고, 그러나 이미 假有로 존재하므로 無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중도적 관점은 「반야무지론」에서 知↔無知, 眞↔俗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진제와 속제를 분리하지 않는다. 진제로서 非有, 속제로서 非無이지만,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동시에 진제는 非有非無로서, 이러한 中道性은 진제를 어느 한 측면으로만 볼 수 없게 하므로, 두 가지는 나누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승조는 현상 사물을 진제와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현상을 초월한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기서 승조는 특히 「반야무지론」에서 인정된 (실체적) 聖人도 自虛, 즉 空에 의존한다고 하여, 실체성을 부정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부정은 中觀사상의 핵심인 自性의 부정이다.
      다음은 「物不遷論」에 대한 논의이다. ‘不遷’은 직역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므로, 靜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中觀에서 벗어났다고 흔히 비판받는다. 그러나 승조는 中道에 어긋나는 無常을 비판하고자 하므로, 일단, 不遷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無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물현상들은 無常하게 변화한다고 하면서, 그 현상 가운데 실체는 영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승조는 바로 이 三世實有說의 극복, 즉 自性의 부정을 또한 목표로 삼아, 無常을 배격하지만, 동시에 실체의 常도 부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靜의 사상은 결코 아니다. 이를 위해 우선 不來不去의 논증을 한다. 일반 사람들은 ‘현재에 과거의 일은 없다’=‘動’=‘不來’의 한 측면만을 본다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다른 관점, 즉 ‘과거에 현재의 일은 없다’=‘靜’=‘不去’과 합하여, 不來不去의 구조를 만든다. 이는 과거는 현재에 이르지 않고, 현재는 미래에 이르지 않아, 그 불변의 실체가 三世에 관통하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各性住於一世로 표현한다. 여기서 性은 自性이 아니라, 인연법의 성으로 空한 것이다. 그리고 一世는 찰나의 순간으로, 그 의미는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이어지지 않는 채로, 매 순간 변화하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의 부정은 모든 존재들의 斷滅이 아니다. 因緣에 의한 존재들은 그 독자적인 실체는 없지만, 계속 생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不遷은 常과 無常의 통일로서, 실체로서의 나의 불연속성과 업보(경험)로서의 나의 연속성의 복합구조인 無我윤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다. 즉 원자는 수많은 미립자로 구성되는데, 그 수명은 10-23초에 불과하여, 순간적으로 生滅하므로 自性이 있기는 불가능하지만, 이 자성이 없는 미립자들의 生과 滅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無常과 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이에, 「物不遷論」에서 언급되는 不遷 및 그와 연관된 표현 11가지를 분석하여, 승조의 관점을 최종 조망해 보면, 그 핵심 내용은 無去來=空=不常不斷이며, 不動이라고 언급될 때조차 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승조가 인용한 원전의 문맥을 살펴보면, 집착을 벗어난다는 空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涅槃無名論」에 대한 논의이다. 현재는 승조의 저작으로 대체로 인정받지만, 네 논문 중에 특히 「열반무명론」이 眞僞논쟁을 겪으면서, 湯用彤, 橫超慧一, W. Liebenthal 등 여러 연구자들의 6-70년간의 고증 및 논증 과정을 거친 것은 이 논문이 표현 방식이나 實體적 표현들에 있어서 승조의 저작인지 의문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은 승조의 사상과 크게 어긋나지는 않지만, 수정 가능성도 많다고 충분히 여겨진다. 그러므로 승조의 경지론에 실체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이러한 수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논문의 전체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本性과 같이 몇몇에 국한된 실체적 표현만을 고려한 문제를 지닌다. 수정되었다면, 승조 이후 성행한 道生의 실체적 열반관이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으므로, 그에 따라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 있는 실체적 표현들은 그 영향이라고 할 것이다. 「涅槃無名論」은 그 분량이 상당히 많아, 먼저 대강의 구조 분석을 해보면, 크게 두 부분, 즉 앞부분의 奏秦王表와 뒷부분의 10演 9折의 19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는 無名과 有名의 두 가상 인물 사이의 논변을 통해 「涅槃無名論」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無名(승조)가 有名을 비판하는데서 승조의 이 논문 저술 의도가 드러난다. 즉 名實 일치의 관점에서, 二分法적인 實體論으로 涅槃을 이해하는 유명을 비판하는 것은 中道관점을 찬성하는 의도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승조는 중도의 空한 공부를 제시한다. 이는 어떤 특정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즉 다양성의 통일에 의한 통한 공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공부이다. 각 개인차를 반영하는 다양한 방식이지만, 열반에 도달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는 有爲와 無爲의 통일로서, 일상생활을 통한 공부이다. 그러나 空한 공부는 열반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며, 나의 공부가 나만의 것이 되도록, 공부 과정 및 그 결과에 집착할 수도 없다. 因緣은 모든 존재를 연결하므로, 나의 공부가 남의 공부이기도 하다. 또한 緣起는 무한하게 연결되므로, 공부의 과정도 무한하다. 이 점에서 특정의 한 가지 방식을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공부하는 漸修를 말한다. 이 공부를 통해 도달하는 열반은 「반야무지론」에서처럼, 반야는 “존재하지만 논의할 수 없는 것”(存而不可論)이 아니라, 존재이면서 비존재이고, 비존재이면서 존재이다. 이와 같이 특정의 규정성이 없으므로 열반은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나타나, 어떤 한 가지로 고정하여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승조는 이제 앞의 논문에서 非有非無의 표현이 아닌, 그 의미는 같지만 표현이 다른, ‘不出有無, 不在有無’의 언급으로 나아간다. 이는 有 혹은 無로 말하면 상대적인 시비를 야기하여, 고정화할 수 없는 열반을 고정화시킬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열반은 有無를 벗어나지도 않고, 有無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유무의 현상 밖의 초월적 영역에 실체를 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점에서 승조는 열반은 일상의 현상적인 번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제와 속제는 분리되지 않고, 열반과 번뇌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즉 實體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 열반의 핵심이다.
      Ⅲ장의 논의가 저작 시기가 다른 네 논문을 통해 승조 사상의 발전과정을 논의한 것이라면, Ⅳ장은 승조가 相卽觀을 통하여, 佛學의 어떤 측면을 수용하여 玄學의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논증한다.
      앞에서 승조의 첫 논문 「반야무지론」은 玄學, 그 이후는 佛學의 경향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이는 임시적인 결론이다. 그를 둘러싸는 사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절부터는 승조에게 영향을 주었던, 龍樹의 中觀론과 王弼 및 郭象의 玄學적 사유에 대한 논의를 통해, 그 사상의 입각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현학과 중관론은 實體 인정 여부에서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 구조 아래서 승조가 그 자신의 문제의식을 통해 어떻게 그 대립점에 반응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즉 승조의 문제의식은 당시 반야사상가들이 龍樹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현학과 불학의 대립점을 통해 승조의 관점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승조가 相卽觀을 통해, 龍樹의 어떤 관점을 수용하여, 玄學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식적 측면에서 龍樹와 현학의 대립구조는 일상의 인식 및 반야지혜의 문제인 二諦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용수는 승의제인 열반은 고정성이 없지만, 속제인 일상의 언어 인식은 대상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열반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므로 일단 이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고정성으로 인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如實하게 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언어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如實하게 볼 수 있기만 하면, 오히려 속제의 언어는 열반 파악의 필요조건이다. 즉 진제와 속제를 분리하여 실체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玄學은 道의 비고정성에 근거하여, 언어 등 일상의 고정적 분석(분별)적 인식(知)은 道의 파악을 방해할 뿐이라는 측면에서 無分別知로서 無知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파악되는 道는 고정(구체)화될 수는 없지만, 인식의 궁극 대상인 실체로 여겨진다. 이러한 불학과 현학의 대립적인 구조에 있어, 승조는 현학의 입장을 취하여, 반야무지를 절대화한다. 그러므로 이 당시 승조는 현학의 문제 해결에 기여한 바가 없다. 비록 그의 문제의식은 龍樹의 사상을 제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지만.
      존재론의 측면에서 접근된 「不眞空論」을 玄學과 龍樹 존재론의 대립적인 구조를 통해 조망해본다. 현학의 王弼은 모든 현상적 존재를 有로 보고, 그것은 본체인 無(道)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현상과 본체의 合一을 추구하면서도, 無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상과 본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에 郭象은 無를 없애고 현상 사물인 有만을 인정함으로써, 현상과 분리되는 본체의 문제를 해결하여, 다양한 개성적 존재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들이 본래 타고난 性이 있다는 것은 自性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에 중관론은 假有를 설정함으로써, 모든 존재들을 존재이자 비존재로 설정하여, 自性(實體)을 부정한다. 모든 존재들은 緣起에 의해 서로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떤 특정의 한 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空이다. 그런데 특정의 실체를 부정하는 中道는 이 空조차 부정하여 空空을 말한다. 이와 같이 실체는 계속적인 부정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空은 無我를 말하지만, 현상적으로 생멸하는 존재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假有란 어느 한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존재이면서 동시에 존재이다. 이렇게 현학과 중관론의 대립적인 구조 아래서, 승조가 존재들은 非有非無로 설명한 것은「不眞空論」을 통해서, 그가 목적으로 삼았던 중관 사상을 비로소 실현하기 시작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왕필의 無의 실체성은 승조와 근본적으로 어울릴 수 없고, 곽상의 無 부정은 승조의 空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반면, 고정적인 性은 비고정성의 空과 대립된다. 또한 현학은 假有를 인정하지 않아, 有는 有이고, 無는 無로서, 상호 전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승조의 假有는 고정성이 없음으로 인해, 有와 無의 상호 전화, 상호 수렴을 전제한다. 이를 통해 승조는 실체화된 왕필의 無와 곽상의 有인 性의 고정성 문제를 해결한다.
      다음은 「物不遷論」의 상즉관에 대한 논의이다. 현학의 왕필은 존재론에서 無를 핵심으로 삼듯이, 시간 변화의 측면에서 靜을 중심으로 삼아, 모든 動의 변화는 靜, 즉 無로 되돌아간다고 보고, 시간 변화를 초월한 절대적 실체를 추구한다. 반면에 존재론에서 현상존재의 有만을 인정했던 곽상은 존재들을 초월하는 시간의 실체를 부정하고, 무궁한 변화만을 말한다. 그러나 이미 性의 고정성을 제시하여, 어떻게 그 런 고정적 존재들이 무궁하게 변화 가능한지의 모순이 있다. 한편, 龍樹의 시간관은 空의 시간으로서 그 실체가 없다. 하나의 실체가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될 수 없다. 이는 不常의 측면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 현상 존재들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들은 끊임없이 생멸한다. 이것은 不斷의 측면이다. 그러므로 용수 시간론의 핵심인 不常不斷은 실체로 이어지지 않는 존재들이 끊임없이 이어짐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함께 생멸하며,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다. 한 측면만을 말하는 것은 中道가 아니다. 여기서 승조는 龍樹의 관점을 취하여, 常과 無常을 통일시킨다. 이 시간은 변화이지만 변화 그 자체만도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한, 불변의 실체를 추구하는 왕필을 수용할 수 없다. 한편, 곽상이 초월적 실체를 부정하여, 과거의 것은 현재에 이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승조와 같은 관점이다. 하지만 곽상이 변화만을 말하고, 그런데도 이미 性의 고정성을 언급하여 변화와 모순적인 것은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 곽상이 고정성과 변화를 동시에 말하는 것과 승조의 常과 無常의 통일과 어떻게 다른지의 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假有가 필요한데, 곽상은 假有가 없어, 그는 대립하는 두 가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승조는 假有의 空을 통해, 相卽의 관점을 통해, 그 고리를 찾는데 성공한다. 즉 승조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常의 부정을 위해 無常을 말하고, 이제는 無常의 집착을 배제하기 위하여 다시 常을 말하면서, 두 극단을 떠났다가 다시 相卽시키는, 지속적인 변증적인 과정을 지속함으로써, 곽상이 性의 고정성과 변화라는 모순적인 두 가지를 말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涅槃無名論」에 나타난 相卽관의 논의이다. 현학은 天人合一, 즉 자연과 인간의 통일을 경지의 목표로 삼지만,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닌, 즉 고정성이 없는 假有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인간 외부의 초월적 실체를 추구하는 왕필이든, 그것을 없앤 곽상이든 假有가 없기 때문에, 즉 고정성이 있기 때문에 合一이 어렵다. 합일은 서로 다른 두 대립물이 하나가 되는 것인데, 고정성이 강화되면, 그만큼 합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有와 無 사이의 緣起적인 상호 전화가 없으므로, 자연(天)은 공부의 대상으로 (人 외부 혹은 내부에) 고정되어 있고, 공부는 人의 측면에서 인위적인 것들, 즉 욕망 등을 억제하고 변화하여, 그 天에 다가가기만 해야 하는, 一方의 과정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공부 과정은 일직선상으로 이어져 최종의 종점으로 설정된다. 더구나 곽상은 타고난 性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므로 왕필, 곽상 모두 경지를 위한 공부는 聖人이라야 비로소 완전하게 가능하다고 본다. 聖人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공부는 힘들다. 반면에 龍樹에게 고정성, 自性은 없다. 열반이 번뇌이기도 하고, 번뇌가 열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용수는 열반 경지를 추구하지만,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번뇌이고, 번뇌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미 열반이다. 이와 같이 번뇌와 열반 사이의 연기적인 상호 전화는 공부의 최종점을 설정하지 않는다. 진제는 속제를 극복한 이후의 결과만이 아니라, 동시에 현상 그 자체로서 속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매 순간이 공부의 시작이자 종점으로, 끊임없이 상호 연기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승조는 이 관점을 수용한다. 승조는 열반에 도달하는 것은 같지만, 이러한 비고정성에 근거하여, 각자마다 다른 다양성의 공부를 제시하고,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漸修공부를 강조한다. 각 수준에 맞추어 계속 공부하는 中道적 방식은 人에서 天으로 나아가는 一方의 현학적 공부보다 여유 있고, 쉬운 공부가 된다. 공부대상과 주체가 불변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변증적인 관계로서, 일방적 관계를 해소한다. 다양한 공부법이 제시되므로, 공부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무한의 연기적 순환이 있으므로, 나의 공부가 너의 공부로 연결되는, 번뇌가 열반이 되기도 하고 열반이 번뇌가 되는 순환의 과정에서 (집착을 하면) 무한하게 어렵기도 하고 (그 집착이 사라지면) 무한하게 쉽기도 한, 공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현학과 달리, 중생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관론은 현학에 비해 공부 가능성의 확대에 긍정적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상에서 논자는 승조의 『조론』의 네 논문을 그 저작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막연하게 ‘중국식 불교’라고 평가되면서도 연구자들에 따라 그 안에 여러 다양하고, 서로 모순된 관점들이 내재하고 있는 승조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면서 그 모순점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학과 중관론은 實體 인정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둘 다 포용할 수 있다. 즉 승조 가장 최초의 논문인 「반야무지론」은 龍樹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현학이라는 관점을 포용할 수 있는 반면에, 그 이후의 세 논문은 龍樹의 중관적 입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승조는 상즉관에 의하여, 당시 중국 사상계의 모순점을 해결한다. 천인합일을 목표로 두지만, 無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상과 본체를 분리하는 왕필의 모순과, 그 외부의 無를 없애고 인간현상으로 내려오는데 성공하지만, 내부의 性의 고정성으로 합일을 어렵게 하는 곽상의 한계를 수정한다. 승조가 연구 초기에 『유마힐경』을 읽으며 그토록 기뻐했던 것은 이와 같이 현학 내부의 문제 해소의 실마리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학이 자라난 중국에서 그 사상을 전개했지만, 외래사상인 중관론으로 기존 중국적 사유의 문제점 해소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사상 전개 방식은 龍樹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되, 그 ‘雙遣’의 방식에서 중국 방식의 ‘상즉’으로 적용한 것이다. 서도 다른 두 대립물을 동시에 말함으로써, 自性을 인정하지 않고, 현학의 합일에 내재된 모순을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조의 사상이 중국에 안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들은 우주 및 인생에 대하여 완전히 空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즉 중국인들은 인도불교를 수용할 때, 순수한 ‘緣起性空’이나 ‘假有’의 관념은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조 및 용수의 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상호적 포용을 말하므로, 약자 배려 및 상호주의 등에 소통의 창구가 되는 반면, 중관 사상을 잘못 이해할 경우, 서로 대립될 수 있는 두 가지, 예를 들면, 有와 無,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말함으로써,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를 잉태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을 외면함으로서 야기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둘 다 요구함으로써 생겨나는 허무주의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al with the problem of mutual identification(相卽) in the book of 『Chao Lun』(『肇論』) written by Sengchao(僧肇, 384-414), who lived in the period of Weijin(魏晉), wellknown for philosophical depth in the history of China. Mutual identification means unity or identific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For example, Sengchao thought existence(有) and non-existence(無) are not different. Motion(動) is not different from rest(靜). What is called permanence(常) is called impermanence(不常) and vice versa. Then impermanence and permanence, though seemingly different, are ultimately the same. This means, for example, you and I are not separated completely and connected with each other in any way, although we appear to exist in isolation. There seems to be endlessly opposing things in this world: good and evil, riches and poverty, peace and war, and so on. These two opposite or contrasting concepts seem separate and contradictory, but, in fact, they are connected in any way. It is because, for example, my evil act may induce another person to do a good act. Things may have two different expressions of one face. These two faces are not the same, but they can go together.
      Sengchao's viewpoint of this mutual identification stemmed from that of Nāgārjuna(龍樹) who was a founder of the theory of the Middle Way(中道) in the Indian Buddhism. Sengchao borrowed his idea and applied it to the Chinese world of thought. The Middle Way denies two different extremes. It goes against two absolutistic theories, that is, permanent existence and nihilistic non-existence. So it is argued that the world is neither existent(非有) nor non-existent(非無). Let’s take an example of a shadow. It is not a real person, so it is not existent. However, it exists as a shadow, so it is not inexistent. The reason is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occur interdependently, namely, any thing cannot arise exclusively on its own. It means that any absolutistic or extreme theories cannot explain the world which is connected with one another. This is the theory of dependent co-arising or the Middle Way. Especially, this theory denies something which has self-abiding nature and is permanent, which is called ātman(自性, 實體, eternal entity). ātman cannot be changed at all and occurs exclusively by fixed and unitary form.
      Sengchao took advantage of this idea of the denial of ātman to solve the problem of the Chinese philosophic world of his time. Traditionally, Chinese philosophers tried to attain unity or oneness of two different things, such as nature and human, motion and rest, existence and non-existence, and the like.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ic world and the Indian Buddhism centered on Nāgārjuna's idea, in that they all pursued unity or oneness. The problem was that the former had the tendency to look for an absolute or permanent thing like ātman which Nāgārjuna tried to criticize above all. Chinese philosophers also thought existence is just existence, and non-existence is just non-existence. They didn't think existence may be non-existence or non-existence may be existence, although they pursued the unity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This was different from Nāgārjuna's Middle Way. He thought all things are 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 This means existence cannot be separated from non-existence. Therefore, existence can be non-existence or non-existence can be existence. This way they restrict their reifying tendencies via mutual negation and, as a result, they are not univocal expressions any more. As their meaning is now converging, they become interchangeable. Such ambiguity of theirs allowed Sengchao to combine the two opposite expressions without any contradiction and to unveil the falseness which arises from reifications of linguistic expressions used in an univocal way. Hans-Rudolf Kantor(康特), 「Right Words Are Like the Reverse - The Daoist Rhetoric and the Linguistic Strategy in Early Chinese Buddhism」, Asian Philosophy, 2010, p. 293.
      So all things cannot be defined exclusively by a fixed and unitary face. This trait of fixation made it harder for the Chinese philosophers to attain the stage of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This problematic aspect was what Sengchao's philosophy tried to penetrate. He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unity in the Chinese philosophy by utilizing Nāgārjuna's idea. This method of Sengchao's is the theory of mutual identification.
      However, Sengchao had not yet applied this method fully at the beginning stage of his learning. In his first paper, 『On Prajñā Not Cognizant』(『般若無知論』), he was clumsy at accepting Nāgārjuna's idea. The difference between Nāgārjuna's idea and this paper can be identified by the theory of twofold truth(二諦論). According to Nāgārjuna's twofold truth, the conventional truth(俗諦)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ultimate truth(眞諦). Of course, Nāgārjuna also recognized the problem of language lying in the conventional truth because he thought normal language cannot elucidate the ultimate truth. But he didn't deny the necessity of language as far as it isn't an obstacle to grasping and attaining the ultimate truth. However, Sengchao criticized the problem of language because it cannot designate the truth, no matter how accurate or exact. According to Sengchao's idea, conventional truth centered on the problem of language is against the ultimate one, Prajñā Not Cognizant. The Middle Way does not accept this kind of conflict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So it can be mentioned to some degree that his first paper failed to applying the viewpoint of mutual identification thoroughly.
      From his second paper, 『On Śūnyatā(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不眞空論』), he began to be faithful to the theory of mutual identification developed by Nāgārjuna's Middle Way. In this paper, he began not to show the confront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here was unity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This aspect was described as '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 Existence was not separated from non-existence. This was what Nāgārjuna's Middle Way pursued. It means that there was relationship of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However,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er, Wang Pi(王弼), thought there is eternal entity which controls all things. He called this non-existence which may play the role of ātman. It means there is one fixed element in the background of all things. This fixation may make it hard to attain the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The more fixed and stiffen, the less flexible and harmonized. Guoxiang(郭象), who succeeded to Wang Pi, solved the problem of fixation to an extent by denying the non-existence. But he recognized all existing things have fixed nature which is given at birth by itself. Therefore, there was only degree of difference between them in recognizing fixation, namely, eternal entity.
      In the third paper of his, 『On Time』 (or 『On Immutability of Things』, 『物不遷論』), he tried to demonstrate the existential stage of things in relation to time. For this purpose, he accepted Nāgārjuna's Middle Way about time. Nāgārjuna denied time like this: Past, present, and future arise interdependently. For example, the present and the future depends on the past, then the present and the future should exist in the past time. Then if the present and the future exist in it, the past does not arise. The reason is that the past arises owing to the present and the future, and there is no past withou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is means all things in the world occur depending on one another. A thing cannot exist without the others. So past, present, or future cannot arise only on its own. That is, there is no ātman(something which has self-abiding nature and is permanent) in time. Any specific time does not occur without regard to the other times. Following this idea, Sengchao also thought there is no specific ātman in time. He described this idea about time like this: Any specific time neither leaves nor does it abide. Time lies neither in the stage of rest nor in that of motion. The reason is that any thing cannot be defined just by one phase. Therefore, moving is not separated from stillness and vice versa. This is the Middle Way of time. He described this idea in his unique expression like this: the past does not reach the present, the present does not reach the future, and so on. It means each time does not move to the other times. In this sense, time is immutable. This is not different from the idea that there is no fixed ātman flowing through all the times. That is, time cannot be fixed by just one unitary viewpoint. So he concluded there is neither nullification nor permanence in time.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the relationship of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nullification and permanence. This is because Nāgārjuna's denial of two different extremes is expressed to Sengchao as the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and both of them have the same viewpoint that things are not defined in any fixed or unitary regard.
      In the fourth or final paper of his, 『On Unnameable Nirvāna』(『涅槃無名論』), he tried to demonstrate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Nirvāna and the conventional or secular world(世俗). This was exactly what Nāgārjuna tried to look for. Nāgārjuna explained Nirvāna is neither existent nor inexistent. It means Nirvāna cannot be defined under any unitary respect. That is, Nirvāna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secular world. The reason why he denied an unitary viewpoint about Nirvāna was that he wanted to keep people who listens to him from having an obsession about Nirvāna. To remove sticking to any one thing, he explained it is empty(空). It means it is not existent, and it is not inexistent, either. This is the Middle Way of Nirvāna which Sengchao was looking for. Accepting Nāgārjuna's idea, Sengchao demonstrated the mutual relationship between Nirvāna and the secular world. This kind of inseparability makes it easier to attain the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However, Wang Pi had the problem to separate existence(the secular world) from non-existence(eternal entity). Guoxiang also had the limit to recognize the fixed self-nature of things. Of course, the Chinese philosophers' object was to look for the unity or oneness between two opposing things, but they had some difficulty in their method. It was the problem of separation or fixation. But this kind of separation or fixation is what the Middle Way tries to overcome above all. Therefore, Sengchao could get over the difficulty of attaining the unity in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y by accepting Nāgārjuna's Middle Way and applying it to the mutually identical relationship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o sum up,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monstrate how Sengchao could overcome the problem of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ers by accepting Nāgārjuna's Middle Way and applying it the Chinese philosophy in the form of the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his thesis also tries to show how differently the viewpoint of the mutual identification was developed at his four main papers. It is concluded that the mutual relationship was not ripe fully in his first paper, but in the after three papers of his, it could be developed fully.
      번역하기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al with the problem of mutual identification(相卽) in the book of 『Chao Lun』(『肇論』) written by Sengchao(僧肇, 384-414), who lived in the period of Weijin(魏晉), wellknown for philosophi...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al with the problem of mutual identification(相卽) in the book of 『Chao Lun』(『肇論』) written by Sengchao(僧肇, 384-414), who lived in the period of Weijin(魏晉), wellknown for philosophical depth in the history of China. Mutual identification means unity or identific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For example, Sengchao thought existence(有) and non-existence(無) are not different. Motion(動) is not different from rest(靜). What is called permanence(常) is called impermanence(不常) and vice versa. Then impermanence and permanence, though seemingly different, are ultimately the same. This means, for example, you and I are not separated completely and connected with each other in any way, although we appear to exist in isolation. There seems to be endlessly opposing things in this world: good and evil, riches and poverty, peace and war, and so on. These two opposite or contrasting concepts seem separate and contradictory, but, in fact, they are connected in any way. It is because, for example, my evil act may induce another person to do a good act. Things may have two different expressions of one face. These two faces are not the same, but they can go together.
      Sengchao's viewpoint of this mutual identification stemmed from that of Nāgārjuna(龍樹) who was a founder of the theory of the Middle Way(中道) in the Indian Buddhism. Sengchao borrowed his idea and applied it to the Chinese world of thought. The Middle Way denies two different extremes. It goes against two absolutistic theories, that is, permanent existence and nihilistic non-existence. So it is argued that the world is neither existent(非有) nor non-existent(非無). Let’s take an example of a shadow. It is not a real person, so it is not existent. However, it exists as a shadow, so it is not inexistent. The reason is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occur interdependently, namely, any thing cannot arise exclusively on its own. It means that any absolutistic or extreme theories cannot explain the world which is connected with one another. This is the theory of dependent co-arising or the Middle Way. Especially, this theory denies something which has self-abiding nature and is permanent, which is called ātman(自性, 實體, eternal entity). ātman cannot be changed at all and occurs exclusively by fixed and unitary form.
      Sengchao took advantage of this idea of the denial of ātman to solve the problem of the Chinese philosophic world of his time. Traditionally, Chinese philosophers tried to attain unity or oneness of two different things, such as nature and human, motion and rest, existence and non-existence, and the like.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ic world and the Indian Buddhism centered on Nāgārjuna's idea, in that they all pursued unity or oneness. The problem was that the former had the tendency to look for an absolute or permanent thing like ātman which Nāgārjuna tried to criticize above all. Chinese philosophers also thought existence is just existence, and non-existence is just non-existence. They didn't think existence may be non-existence or non-existence may be existence, although they pursued the unity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This was different from Nāgārjuna's Middle Way. He thought all things are 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 This means existence cannot be separated from non-existence. Therefore, existence can be non-existence or non-existence can be existence. This way they restrict their reifying tendencies via mutual negation and, as a result, they are not univocal expressions any more. As their meaning is now converging, they become interchangeable. Such ambiguity of theirs allowed Sengchao to combine the two opposite expressions without any contradiction and to unveil the falseness which arises from reifications of linguistic expressions used in an univocal way. Hans-Rudolf Kantor(康特), 「Right Words Are Like the Reverse - The Daoist Rhetoric and the Linguistic Strategy in Early Chinese Buddhism」, Asian Philosophy, 2010, p. 293.
      So all things cannot be defined exclusively by a fixed and unitary face. This trait of fixation made it harder for the Chinese philosophers to attain the stage of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This problematic aspect was what Sengchao's philosophy tried to penetrate. He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unity in the Chinese philosophy by utilizing Nāgārjuna's idea. This method of Sengchao's is the theory of mutual identification.
      However, Sengchao had not yet applied this method fully at the beginning stage of his learning. In his first paper, 『On Prajñā Not Cognizant』(『般若無知論』), he was clumsy at accepting Nāgārjuna's idea. The difference between Nāgārjuna's idea and this paper can be identified by the theory of twofold truth(二諦論). According to Nāgārjuna's twofold truth, the conventional truth(俗諦)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ultimate truth(眞諦). Of course, Nāgārjuna also recognized the problem of language lying in the conventional truth because he thought normal language cannot elucidate the ultimate truth. But he didn't deny the necessity of language as far as it isn't an obstacle to grasping and attaining the ultimate truth. However, Sengchao criticized the problem of language because it cannot designate the truth, no matter how accurate or exact. According to Sengchao's idea, conventional truth centered on the problem of language is against the ultimate one, Prajñā Not Cognizant. The Middle Way does not accept this kind of conflict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So it can be mentioned to some degree that his first paper failed to applying the viewpoint of mutual identification thoroughly.
      From his second paper, 『On Śūnyatā(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不眞空論』), he began to be faithful to the theory of mutual identification developed by Nāgārjuna's Middle Way. In this paper, he began not to show the confront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here was unity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This aspect was described as 'neither existent nor non-existent.' Existence was not separated from non-existence. This was what Nāgārjuna's Middle Way pursued. It means that there was relationship of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However,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er, Wang Pi(王弼), thought there is eternal entity which controls all things. He called this non-existence which may play the role of ātman. It means there is one fixed element in the background of all things. This fixation may make it hard to attain the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The more fixed and stiffen, the less flexible and harmonized. Guoxiang(郭象), who succeeded to Wang Pi, solved the problem of fixation to an extent by denying the non-existence. But he recognized all existing things have fixed nature which is given at birth by itself. Therefore, there was only degree of difference between them in recognizing fixation, namely, eternal entity.
      In the third paper of his, 『On Time』 (or 『On Immutability of Things』, 『物不遷論』), he tried to demonstrate the existential stage of things in relation to time. For this purpose, he accepted Nāgārjuna's Middle Way about time. Nāgārjuna denied time like this: Past, present, and future arise interdependently. For example, the present and the future depends on the past, then the present and the future should exist in the past time. Then if the present and the future exist in it, the past does not arise. The reason is that the past arises owing to the present and the future, and there is no past withou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is means all things in the world occur depending on one another. A thing cannot exist without the others. So past, present, or future cannot arise only on its own. That is, there is no ātman(something which has self-abiding nature and is permanent) in time. Any specific time does not occur without regard to the other times. Following this idea, Sengchao also thought there is no specific ātman in time. He described this idea about time like this: Any specific time neither leaves nor does it abide. Time lies neither in the stage of rest nor in that of motion. The reason is that any thing cannot be defined just by one phase. Therefore, moving is not separated from stillness and vice versa. This is the Middle Way of time. He described this idea in his unique expression like this: the past does not reach the present, the present does not reach the future, and so on. It means each time does not move to the other times. In this sense, time is immutable. This is not different from the idea that there is no fixed ātman flowing through all the times. That is, time cannot be fixed by just one unitary viewpoint. So he concluded there is neither nullification nor permanence in time.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the relationship of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nullification and permanence. This is because Nāgārjuna's denial of two different extremes is expressed to Sengchao as the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and both of them have the same viewpoint that things are not defined in any fixed or unitary regard.
      In the fourth or final paper of his, 『On Unnameable Nirvāna』(『涅槃無名論』), he tried to demonstrate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Nirvāna and the conventional or secular world(世俗). This was exactly what Nāgārjuna tried to look for. Nāgārjuna explained Nirvāna is neither existent nor inexistent. It means Nirvāna cannot be defined under any unitary respect. That is, Nirvāna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secular world. The reason why he denied an unitary viewpoint about Nirvāna was that he wanted to keep people who listens to him from having an obsession about Nirvāna. To remove sticking to any one thing, he explained it is empty(空). It means it is not existent, and it is not inexistent, either. This is the Middle Way of Nirvāna which Sengchao was looking for. Accepting Nāgārjuna's idea, Sengchao demonstrated the mutual relationship between Nirvāna and the secular world. This kind of inseparability makes it easier to attain the unity between two different things. However, Wang Pi had the problem to separate existence(the secular world) from non-existence(eternal entity). Guoxiang also had the limit to recognize the fixed self-nature of things. Of course, the Chinese philosophers' object was to look for the unity or oneness between two opposing things, but they had some difficulty in their method. It was the problem of separation or fixation. But this kind of separation or fixation is what the Middle Way tries to overcome above all. Therefore, Sengchao could get over the difficulty of attaining the unity in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y by accepting Nāgārjuna's Middle Way and applying it to the mutually identical relationship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o sum up,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monstrate how Sengchao could overcome the problem of the traditional Chinese philosophers by accepting Nāgārjuna's Middle Way and applying it the Chinese philosophy in the form of the mutual identification between two opposing things. This thesis also tries to show how differently the viewpoint of the mutual identification was developed at his four main papers. It is concluded that the mutual relationship was not ripe fully in his first paper, but in the after three papers of his, it could be developed fully.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Ⅰ. 서론 …………………………………………………………… 1
      • 목 차
      • Ⅰ. 서론 …………………………………………………………… 1
      • 1. 『肇論』에 대한 선행연구 ………………………………… 2
      • 2. 본 논문의 연구 방향 ……………………………………… 10
      • Ⅱ.『肇論』 구성순서 논증의 약점과 그 대안으로서 재구성 논증 …… 14
      • 1. 『肇論』 구성순서에 대한 판본 논증의 약점 …………………… 14
      • 2. 『肇論』 각 편 성립시기에 대한 기존 논증의 약점 …………… 21
      • 3. 『肇論』 재구성 논증에 대한 예비적 고찰 …………………… 24
      • Ⅲ. 성립시기에 의한 『肇論』의 재구성과 그 논의 구조 …………… 37
      • 1. 인식론적 관점으로 본 「般若無知論」의 논의 구조 …………… 37
      • 1) 知와 無知에 대한 대립적 접근 ……………………………… 37
      • 2)「般若無知論」에서 「不眞空論」으로의 전환: 「答劉遺民書」논증…46
      • 3)「般若無知論」의 인식론 ………………………………………… 52
      • 2. 존재론적 관점으로 본 「不眞空論」의 논의 구조 ……………… 60
      • 1) 三家 비판에 나타난 저술 의도 ………………………………… 60
      • 2) 不眞空을 통한 非有非無적 접근 ……………………………… 67
      • 3)「不眞空論」의 존재론 ………………………………………… 74
      • 3. 시간론적 관점으로 본 「物不遷論」의 논의 구조 ……………… 83
      • 1) 無常 비판에 나타난 저술 의도 ……………………………… 84
      • 2) 不來不去와 各性住於一世에 나타난 三世 관계 논증 ……… 89
      • 3)「物不遷論」의 시간론 ………………………………………… 101
      • 4. 경지론적 관점으로 본 「涅槃無名論」의 논의 구조 ………… 111
      • 1)「涅槃無名論」의 眞僞 논쟁과 연관된 實體觀 논증의 약점 … 111
      • 2)「涅槃無名論」 구조 분석에 나타난 저술 의도 ……………… 120
      • 3)「涅槃無名論」의 경지론 ………………………………………… 127
      • Ⅳ.『肇論』 각 편에 나타난 相卽觀의 특징 …………………………… 133
      • 1.「般若無知論」에 나타난 相卽觀의 특징 ………………………… 134
      • 1) 非有非無에 나타난 초월적 聖智의 모순 …………………… 134
      • 2) 實體 경향으로서의 聖智에 대한 접근 ……………………… 139
      • 3)「般若無知論」의 相卽觀 ………………………………………… 147
      • 2.「不眞空論」에 나타난 相卽觀의 특징 …………………………… 157
      • 1) 眞諦와 俗諦에 대한 不異적 접근 …………………………… 157
      • 2) 實體 부정을 통한 中道觀 논증 ……………………………… 165
      • 3)「不眞空論」의 相卽觀 ………………………………………… 171
      • 3.「物不遷論」에 나타난 相卽觀의 특징 ………………………… 182
      • 1) 無常과 常에 대한 不異적 접근 …………………………… 183
      • 2) 物不遷 의미로 본 中道觀 논증 ……………………………… 192
      • 3)「物不遷論」의 相卽觀 …………………………………………… 200
      • 4.「涅槃無名論」에 나타난 相卽觀의 특징 ………………………… 212
      • 1) 緣起的 無限性에 기초한 中道적 공부 논증 ………………… 212
      • 2) 涅槃과 煩惱 관계를 통한 中道觀 논증 …………………… 222
      • 3)「涅槃無名論」의 相卽觀 ……………………………………… 232
      • Ⅴ. 결론 ………………………………………………………………… 243
      • 참고문헌 ………………………………………………………………… 251
      • 영문초록(abstract) ……………………………………………………… 264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