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 연구 본 연구의 목적은 1966년 창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삼아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형성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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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2012
한국어
창작과 비평 ; 청맥 ; 매판문학 ; 민족문학론 ; 저항적 민족주의 ; 시민문학론 ; 자유주의 ; 공화주의 ; 내재적 발전론 ; 분단사학론 ; 민족경제론 ; 민중 ; 연대성 ; discourses of national literature ; Changbi ; Cheong-maek ; Baek ; Nak-Cheong ; debateon citizen-petit bourgeois ; intrinsic developmentalism ; the theory of partition history ; national economics ; people ; solidarity
서울
(A) study on 『Changbi』's discourses of national literature in 1970's
v, 144장 ; 26 cm
지도교수: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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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 연구
본 연구의 목적은 1966년 창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삼아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형성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본 연구는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형성과정을 협소한 문학장을 넘어서 당대의 지식 담론의 장 속에서 동태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주목했던 것은 『창작과 비평』이 창간된 1960년대 후반 지식 담론의 지형이었다. 기존의 문학사에서는 『창작과 비평』의 전사(前史)로 ‘순수-참여문학논쟁’에 주목해왔는데 여기에는 1960년대의 진보적인 참여론이 『창작과 비평』의 민족문학론으로 이어졌다는 판단이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초기 『창작과 비평』이 1960년의 저항적 민족주의 문학 담론을 경계하고 있었던 측면을 해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1965년 한일협정체결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의 민족주의를 ‘매판’으로 규정한 저항 진영은 저항적 민족주의를 발흥시켰다. 그리고 이 저항적 민족주의는 문학 담론에도 영향을 끼쳐 『청맥』과 『한양』, 『상황』 등에서 저항적 민족주의 문학담론의 범람을 가져왔다. 하지만 『창작과 비평』이 보기에 이러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감상적이고 비논리적인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해 거리를 취하게 된다. 초기 『창작과 비평』에는 김우창, 김주연 등의 평론가와 김수영,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 서정인, 정현종 등의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초기 『창작과 비평』이 저항적 민족주의 문학 담론과 거리를 두고 자유주의 문학론을 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야기한 폭력이 가시화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창작과 비평』은 민중과 분단된 민족 현실에 주목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문학론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게 된다. 자칫하면 당대를 관통하던 근대화의 폭력성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 시대의 의미가 문학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개인의 탄생’이라는 개념을 통해 배타적으로 규정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9년 발표된 「시민문학론」은 리얼리즘과 유기적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자유주의 문학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시도 하고 있는 글이다. 그런데 「시민문학론」은 주로 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예비하는 글이라는 의미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시민문학론」에 내재된 정치 이념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공화주의에 더욱 가까운 것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시민문학론」의 정치철학적 함의에 주목하면서 1960년대 말 벌어진 시민-소시민 논쟁을 한국에서 벌어진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 논쟁의 일환으로 보고자 했다.
『창작과 비평』이 본격적으로 민족문학을 제출하게 되는 것은 1970년대 들어서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것이 내재적 발전론과 그 뒤를 이은 강만길의 분단사학론, 그리고 박현채로 대표되는 민족경제론 등 인문사회과학 지식과의 교섭을 통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창작과 비평』은 내재적 발전론의 수용을 통해 민중이 근간이 되는 평민문학의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으며 분단사학론을 통해 분단된 민족 현실을 문학적 대결의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비판적 정치경제학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비판적 정치경제학과의 교섭을 통해 민족문학론은 문학과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를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경제적 관계로 인식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경제적 생산구조의 변모가 결과한 모순은 문학이 고민하고 씨름해야 하는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1970년대의 농촌문학론은 그 과제의 구체적인 수행이었다.
본 연구는 이렇게 1970년대 들어 『창작과 비평』이 민족문학론을 제출할 수 있었던 외부 지식 담론의 양태와 그것이 민족문학론에 끼쳤던 영향을 검토한 뒤,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에서 ‘민중’ 개념이 지닌 함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1970년대 민족문학론의 핵심적인 특징이 바로 이 민중 개념에 있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에서의 민중 개념이 사회과학적이고 계층적인 분류에 입각해 현실변혁의 주체를 발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그 내부로 끌어들이는 다수 포용 전략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4장의 3절에서는 이러한 민중에 대한 관점이 백낙청의 예술의 민주화론과 문학 대중화론을 추동한 배경이었음을 살펴보았다. 백낙청의 문학 대중화론은 민족문학이야말로 대다수 민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학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낙청과 『창작과 비평』이 왜 문학을 대다수 민중들이 향유해야 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강박적으로 강조하느냐에 있다. 그것은 문학이 지닌 역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마지막 제 4장에서는 이것을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의 정치성과 결부시켜 검토했다.
이제까지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의 역사적 의의는 그것이 가진 강력한 현실 정치성에서 찾아졌는데 이것은 다분히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벗어나 문학만이 가진 역능에 의한 연대성의 창출이야 말로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이 지닌 진정한 정치성의 바탕이며 이것은 현재에도 되새길만한 역사적 의의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이 내세웠던 문학 대중화론은 최대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문학의 독자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독자들이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과 굴욕이 나의 것일 수 있음을,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굴욕을 야기한 세계가 곧 나의 세계이며 그렇기에 이 세계를 바꾸지 않으면 나의 온전한 미래도 주어질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백낙청과 『창작과 비평』이 톨스토이의 ‘만인을 결합시키는 문학’을 모토로 삼고 ‘리얼리즘’을 그 방법론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문학이 이러한 역능을 지니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