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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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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중국소설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선시대부터 식민지 시기까지의 관련 기록, 국내에 유입된 중국판본(中國版本), 어록해(語錄解), 한글 번역본(飜譯本) 등을 검토하였다.
    국문학 연구에서 중국소설 <수호전>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어서 <수호전>에 비겼다”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언급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국문학 연구 초기에는 <수호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홍길동전>의 연원(淵源)과 특성을 국내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생기면서 <수호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에 이 소설의 중요성이 재고되고 있다. 그러나 <수호전>의 관련 기록, 유입된 판본(版本)의 상황, 이 소설을 읽었던 조선 독자들의 인식, 그리고 한글 번역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중국소설 <수호전>의 형성과 계통을 살펴보았다. 국내에서 펴낸 중국문학사와 중국소설사에서는 이 내용을 흔히 다루고 있지만 개론 차원에 머물고 있어서 내용이 소략하다. 특히 이 소설의 형성 과정과 판본의 계통은 많은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정리되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중국, 일본, 서양에서 이루어진 <수호전> 연구 성과를 토대로, <수호전>의 형성 과정과 판본의 계통과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이는 <수호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제3장에서는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을 1) 관련 기록, 2) 현존하는 중국판본(中國版本), 3) 어록해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보면 <수호전>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없고, 주로 중국소설에 대한 조선유학자들의 인식이나 태도를 살펴보는 자리에서 일부 기록에만 의거하여 다루어졌다. 그러나 <수호전> 관련 기록은 시기적으로는 15세기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역사서, 문집(文集), 고소설 관련 자료와 소설 목록, 일본인들의 조사보고서 등 다양한 문헌에 산재해 있다. 이 기록들은 <수호전>의 전래 시기, 판본, 한글 번역본의 문제를 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가 국왕에서부터 양반, 중인,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서 ‘시기-저자-자료명-출전’ 순으로 정리하고, <수호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2)와 3)은 선행 연구에 있어서 실본(實本)의 구체적인 조사나 검토 없이 <고서목록>에만 의거하여 이본의 서지(書誌)와 소장처만을 재정리한 수준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중국판본이 어떤 것이 있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록해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 어떤 본을 읽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내에는 대략 10여 종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100회본은 없고, 120회본과 70회본만이 소장되어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중국판본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70회본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특히 청대(淸代)에 간행된 많은 방각본 중에서 <평론출상수호전>이 주로 읽혔고, 석인본은 <회도증상제오재자서수호전>이 읽혔다. 이처럼 국내에 중국판본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광학서포(廣學書鋪)와 이엽산방(二葉山房)의 예처럼 이 책을 유통시킨 출판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록해의 경우에는 선본(先本)은 알 수 없지만 어록해 간에 내용의 차이가 별로 없고, 비교적 시대가 올라가 보이는 본은 자류순(字類順)이라는 점, 그리고 후대본들은 장회(章回)를 구분한 뒤에 단어와 어구를 수록해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최초의 어록해가 만들어진 이후에 큰 변화가 없이 자류순으로 내려오다가 후대에 장회를 구분하고 다시 체계적으로 재편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어록해는 처음에는 100회본이나 120회본을 읽기 위해서 만들었다가 70회본이 유행하자 단어나 어구 등을 적절히 빼거나 편집하여 간행한 양상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수호전>의 한글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현재 남아있는 <수호전>의 한글 번역본은 시기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형태적으로는 필사본, 세책본, 방각본, 활판본 등이 있다. 이들 한글 번역본은 100회본을 번역한 것, 120회본을 번역한 것, 70회본을 번역한 것, 기타 번역본으로 나뉜다. 선행연구에서는 한글 번역본은 모두 70회본의 번역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70회본보다는 120회본이 더 많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 남은 대다수의 번역본은 120회본의 번역본이며, 주로 세책본?방각본?활판본과 같은 상업출판물이란 점이다. 이는 최초 120회본이 완역(完譯)된 이후에, 유통 과정에서 조금씩 차이를 두면서 상품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활판본인 신문관본은 120회본을 번역한 세책본을 택하여 70회까지를 적절히 수정?개작한 본이다. 이후 간행된 조선서관본은 이와는 달리 120회본 전체를 간행했고, 세책본을 그대로 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활판본 업자들이 120회본을 택한 이유는 세책본을 원고(原稿)로 사용하기가 쉬웠고 70회본과 달리 긴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70회본 계열의 번역본들은 일본어 번역본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전까지의 70회본은 120회본의 뒷부분을 없애고 김성탄본의 결말만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백화와 윤백남은 일본어 번역본을 참조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수호전>을 만들었다. 이처럼 <수호전>의 신구(新舊) 번역본들이 있던 상황에서 박태원은 또 다른 형태의 번역본을 간행한다. 그는 선행했던 <수호전>을 저본으로 하면서, 일본어 번역본을 활용하여 번역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수호전>의 국내 수용 문제를 구체화하고, 특히 한글 번역본의 양상을 통해서 중국소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어떻게 향유되고 유통되었는가를 밝히는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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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중국소설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선시대부터 식민지 시기까지의 관련 기록, 국내에 유입된 중국판본(中國版本), 어록해(語...

    이 논문은 중국소설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조선시대부터 식민지 시기까지의 관련 기록, 국내에 유입된 중국판본(中國版本), 어록해(語錄解), 한글 번역본(飜譯本) 등을 검토하였다.
    국문학 연구에서 중국소설 <수호전>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어서 <수호전>에 비겼다”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언급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국문학 연구 초기에는 <수호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홍길동전>의 연원(淵源)과 특성을 국내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생기면서 <수호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에 이 소설의 중요성이 재고되고 있다. 그러나 <수호전>의 관련 기록, 유입된 판본(版本)의 상황, 이 소설을 읽었던 조선 독자들의 인식, 그리고 한글 번역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중국소설 <수호전>의 형성과 계통을 살펴보았다. 국내에서 펴낸 중국문학사와 중국소설사에서는 이 내용을 흔히 다루고 있지만 개론 차원에 머물고 있어서 내용이 소략하다. 특히 이 소설의 형성 과정과 판본의 계통은 많은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정리되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중국, 일본, 서양에서 이루어진 <수호전> 연구 성과를 토대로, <수호전>의 형성 과정과 판본의 계통과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이는 <수호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수용 양상과 한글 번역본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제3장에서는 <수호전>의 국내 수용 양상을 1) 관련 기록, 2) 현존하는 중국판본(中國版本), 3) 어록해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보면 <수호전>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없고, 주로 중국소설에 대한 조선유학자들의 인식이나 태도를 살펴보는 자리에서 일부 기록에만 의거하여 다루어졌다. 그러나 <수호전> 관련 기록은 시기적으로는 15세기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역사서, 문집(文集), 고소설 관련 자료와 소설 목록, 일본인들의 조사보고서 등 다양한 문헌에 산재해 있다. 이 기록들은 <수호전>의 전래 시기, 판본, 한글 번역본의 문제를 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가 국왕에서부터 양반, 중인,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서 ‘시기-저자-자료명-출전’ 순으로 정리하고, <수호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2)와 3)은 선행 연구에 있어서 실본(實本)의 구체적인 조사나 검토 없이 <고서목록>에만 의거하여 이본의 서지(書誌)와 소장처만을 재정리한 수준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중국판본이 어떤 것이 있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록해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 어떤 본을 읽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내에는 대략 10여 종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100회본은 없고, 120회본과 70회본만이 소장되어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중국판본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70회본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특히 청대(淸代)에 간행된 많은 방각본 중에서 <평론출상수호전>이 주로 읽혔고, 석인본은 <회도증상제오재자서수호전>이 읽혔다. 이처럼 국내에 중국판본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광학서포(廣學書鋪)와 이엽산방(二葉山房)의 예처럼 이 책을 유통시킨 출판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록해의 경우에는 선본(先本)은 알 수 없지만 어록해 간에 내용의 차이가 별로 없고, 비교적 시대가 올라가 보이는 본은 자류순(字類順)이라는 점, 그리고 후대본들은 장회(章回)를 구분한 뒤에 단어와 어구를 수록해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최초의 어록해가 만들어진 이후에 큰 변화가 없이 자류순으로 내려오다가 후대에 장회를 구분하고 다시 체계적으로 재편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어록해는 처음에는 100회본이나 120회본을 읽기 위해서 만들었다가 70회본이 유행하자 단어나 어구 등을 적절히 빼거나 편집하여 간행한 양상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수호전>의 한글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현재 남아있는 <수호전>의 한글 번역본은 시기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형태적으로는 필사본, 세책본, 방각본, 활판본 등이 있다. 이들 한글 번역본은 100회본을 번역한 것, 120회본을 번역한 것, 70회본을 번역한 것, 기타 번역본으로 나뉜다. 선행연구에서는 한글 번역본은 모두 70회본의 번역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70회본보다는 120회본이 더 많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 남은 대다수의 번역본은 120회본의 번역본이며, 주로 세책본?방각본?활판본과 같은 상업출판물이란 점이다. 이는 최초 120회본이 완역(完譯)된 이후에, 유통 과정에서 조금씩 차이를 두면서 상품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활판본인 신문관본은 120회본을 번역한 세책본을 택하여 70회까지를 적절히 수정?개작한 본이다. 이후 간행된 조선서관본은 이와는 달리 120회본 전체를 간행했고, 세책본을 그대로 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활판본 업자들이 120회본을 택한 이유는 세책본을 원고(原稿)로 사용하기가 쉬웠고 70회본과 달리 긴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70회본 계열의 번역본들은 일본어 번역본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전까지의 70회본은 120회본의 뒷부분을 없애고 김성탄본의 결말만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백화와 윤백남은 일본어 번역본을 참조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수호전>을 만들었다. 이처럼 <수호전>의 신구(新舊) 번역본들이 있던 상황에서 박태원은 또 다른 형태의 번역본을 간행한다. 그는 선행했던 <수호전>을 저본으로 하면서, 일본어 번역본을 활용하여 번역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수호전>의 국내 수용 문제를 구체화하고, 특히 한글 번역본의 양상을 통해서 중국소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어떻게 향유되고 유통되었는가를 밝히는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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