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왕비가 사망하거나 지위를 박탈당했을 때, 왕비의 지위를 이어받는 ‘繼妃’를 들였다. 繼妃는 성리학 이념이 정착되면서 등장한 개념이었다. 본고에서는 선조대까지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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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왕비가 사망하거나 지위를 박탈당했을 때, 왕비의 지위를 이어받는 ‘繼妃’를 들였다. 繼妃는 성리학 이념이 정착되면서 등장한 개념이었다. 본고에서는 선조대까지로 시대...
조선시대에는 왕비가 사망하거나 지위를 박탈당했을 때, 왕비의 지위를 이어받는 ‘繼妃’를 들였다. 繼妃는 성리학 이념이 정착되면서 등장한 개념이었다. 본고에서는 선조대까지로 시대를 한정하여 ‘조선 전기 繼妃’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며, 繼妃 선정의 변천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繼妃 선정 방법은 중종의 두 번째 繼妃인 문정왕후를 선발할 때 큰 변화를 보였다. 문정왕후 간택 이전에는 후궁 중에서 繼妃를 선발하여 승격시켰고, 문정왕후 때부터는 繼妃를 외부에서 새로 간택하여 선정하였다.
조선 초기에 후궁 출신의 繼妃가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후궁의 위상이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순왕후ㆍ폐비 윤씨ㆍ정현왕후ㆍ장경왕후가 후궁 출신의 繼妃였다. 이들은 궁중에서 생활해 본 검증된 처자였기에 왕실에서의 선호도가 높았다.
중종의 繼妃 문정왕후 선정 때는 繼妃를 외부에서 간택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성리학 이념의 정착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후궁 朴氏에 대한 경계와 元子의 보호와 같은 현실적 요인이 결합되면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문정왕후가 외부에서 간택되면서, 왕의 혼례식에 처음으로 親迎禮가 등장하였다. 親迎禮의 도입은 성리학적 이념의 구체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이후, 선조의 繼妃가 된 인목왕후의 경우에도 문정왕후 때 행해진 외부 간택과 親迎禮가 계승되어 시행되었다. 이로써 繼妃를 외부에서 선정하는 것이 새로운 관행이 되었고, 親迎禮도 완전히 정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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