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나타난 형률의 변천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형률을 포함한 법체계는 해당 사회를 관통하는 질서와 그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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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2
학위논문(박사)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전공 , 2012. 2
2012
한국어
900 판사항(22)
서울
(A) study on the Penal Code(刑律) of the ancient Korea
vi, 229 p. : 삽도 ; 30 cm.
지도교수: 김영하.
부록 수록.
참고문헌: p. 2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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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나타난 형률의 변천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형률을 포함한 법체계는 해당 사회를 관통하는 질서와 그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며, 그 중에서도 형률은 특히 권력의 구조와 이념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한국고대사회의 지배구조와 이념도 법체계에 집약되었다. 따라서 한국 고대국가의 법체계에 대한 검토는 고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이 어떤 노정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고대의 법체계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내부에서 생성된 습속, 금기, 관습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관습법과 외부와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수용된 법을 통해서 성문화가 이루어졌다. 공동체 내부에서 형성된 습속과 관습은 구성원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반복·지속되면서 소국 단계의 俗과 法으로 발전되었다. 俗과 法은 결과적으로 ‘해야만 하는’ 禮俗과 ‘하지 말아야 하는’ 刑法을 뜻하는 것으로,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고유한 것인 동시에 인류 보편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이러한 法과 俗은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지배자의 의지가 반영된 강제적 제재를 수반한 법으로 전환되었다. 공동체 내부에서 형성되었던 습속과 관습을 기반으로 했던 法과 俗은 통치에 필요한 행위규범이 보충되어 ‘王法’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삼국의 ‘王法’은 계급 발생 이래로 형성되어 온 소국 단계의 법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지배층의 의지가 반영된 법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王法은 여전히 소국 단계의 법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성과 샤마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성이 그대로 온존되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곧 ‘國法’의 형성과정이었다.
‘國法’은 영역에 대한 동일한 법 적용,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 대민 지배를 지향하는 공법체계였다. 이는 삼국의 ‘律令’ 반포로 가시화되었으며, 중국의 체계화된 율령을 참고로 하여 기존의 관습법과 恒例化된 敎 등을 총체적으로 망라하여 만든 법전이었다. 즉 삼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던 법들이 망라될 뿐 아니라 지향해야할 군신관계 혹은 대민지배에 필요한 조항들이 ‘율령’으로 체계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령’의 반포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질서의 필요성이 대두된 시점에 등장했으며, 왕권에 대해 절대성을 부여한 조치가 되었다. ‘율령’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삼국의 내부적 사정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항들이 추가됨으로써 改修되는 과정을 거쳤다. 고유법을 기반으로 한 율령의 반포와 개수의 과정은 삼국에서 법의 변화, 발전 과정이며, 漢 이래로 魏晋南北朝를 거치면서 중국 세력뿐만 아니라 북방족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중대 이래 율령의 개정 과정 역시 기존의 율령을 기반으로 당의 율령, 제도를 수용, 변용하는 과정이었다.
형벌의 시작은 그 사회의 금기에 대한 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나 사회질서나 관습에 가해진 汚穢나 신에게 자행된 모독을 씻어 깨끗이 제거하는, 이른바 정화의식으로서의 祓除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체로 소국 단계에서는 神이나 공동체의 가치에 위반되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重罪였으며, 이에 대한 재판이나 형벌은 祭儀의 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계급의 발생과 계층의 분화가 진전되면서 형법은 殺人, 傷害, 竊盜 등 인간 노동력의 손실과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측면으로 발달하였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범죄는 殺人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국가가 발전한 결과, 왕이 귀족과의 역관계에서 우위를 점함에 따라 그 사회에서의 重罪는 叛逆罪와 같은 정치적 위반 사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王法’의 특징이기도 하였다. ‘王法’은 소국의 통합 과정에서 서로 부딪힐 수 있는 소국의 법들을 조정, 정리함으로써, 공유된 법으로 거수층이나 귀족세력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왕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러므로 왕은 謀叛罪와 같은 정치적 위반 사안에 대해서 ‘王法’으로서 귀족세력을 제어하려고 하였고, 이에 대해 極刑을 내림으로써 귀족세력에 대해 왕권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편으로 삼았다. ‘王法’에 의한 처벌의 시작은 다분히 왕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사적 처벌의 성격이 짙었지만 점차 정해진 법에 의해 귀족세력을 제어하였다.
‘율령’이 반포되면서 관습법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죄와 형벌은 형률로 흡수되어 법전화되었다. 다만 기존의 관습법적 요소가 온존하여, 사형의 경우 불이나 물에 의한 儀式이 병행됨으로써 정화의식으로서의 형 집행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의식을 공개적으로 집행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일반 예방과 경계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한편으로 삼국은 중국의 율령을 수용하였지만, 중국의 禮制와는 다른 삼국의 전통적인 禮俗으로 운용하였다. 이 또한 관습법에 의거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중국의 禮制와 동일하였지만,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당의 제도와 율령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중국의 예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수와 당의에서 형벌 완화와 같은 조치들이 신라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사형의 경우 ‘伏誅’라 하여 정해진 형률에 따라 집행이 이루어졌으며, 二死나 二罪로 표현되었던 사면의 제외 대상도 일률적으로 殊死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五逆’은 세속오계로 표출된 전통적 가치를 바탕으로 당 十惡을 변용하여 그 내용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五逆’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不忠’과 ‘不孝’에 대한 중죄로서 군신관계의 수직적 질서와 신분질서의 강화였다. 또한 관리들에게 私利에 우선하는 公職 윤리를 강조하여 이를 형률로서 강제하였다. 충효의 윤리와 ‘公’ 의식의 강화는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제를 강화하려는 신라사회의 의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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