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역사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일찍이 주요 연구대상이 되었다. 역사교육연구 초창기인 1950년대부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
역사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역사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일찍이 주요 연구대상이 되었다. 역사교육연구 초창기인 1950년대부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어졌다.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연구 분야가 세분화되었지만, 교육과정 개발, 교과서 집필, 교사의 교과서 내용 재구성, 학생의 교과서 이해라는 과정을 일관하는 연구는 없었다.
본고에서는 2007·2009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고 역사교과서가 집필되고 교사·학생에 의해 재구성과 이해되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또 역사과 교육과정과 역사 교과서 구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를 확인하였다. 정치권력이 교육내용을 통제하려는 힘과 역사학자, 교과서 집필진, 교사들의 역사 지식 선정과 조직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두 축에 놓고 교육과정 개발에서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 이해까지를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과 교육과정 편성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정치권력이었다. 정치권력은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요구를 수렴하여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2007년에 주변국의 역사왜곡과 국민들의 국사 교육 강화를 요구가 일자 정치권력은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역사교육강화방안을 마련하였다. 역사교육계가 요청한 세계사 교육 정상화, 폐쇄적 국사 인식의 극복, 역사교육의 계열성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2007 역사과 교육과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정치권력의 교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권력은 근현대사의 비중 약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내용에 삽입하는 등 이데올로기 통제의 의도를 드러냈다. 다시 국사 인식으로 후퇴하고, 역사교육의 계열성은 훼손되는 등 2007 역사과 교육과정에 비해 후퇴한 교육과정이 제정되었다. 정치권력은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였고, 그나마 있는 제도적 절차마저도 무시하면서 교육내용을 통제하려 하였다. 교육과정 편성의 주도권은 정치권력에게 있었고, 교육과정의 내용을 마련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역사교육계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둘째, 교과서 검정제로 ‘한국사’ 교과서가 발간되었다. 검정제는 교과서 집필에 통제와 자율성 부여라는 양면적 기능을 하였다. 검정제도,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 수정권고안을 통해 정치권력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고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통제로 이해될 수 있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정제도의 통제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집필진들은 검정제가 허용한 자율적 공간과 교육과정 문서의 대강화로 확보된 집필의 자율성, 역사 교과서관의 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을 시도하였다. 집필진들은 역사학에 대한 전문적 식견,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역사 인식과 학생들의 역사 학습을 위한 배려를 바탕으로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었다. 교과서 검정발행제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만 있다면 집필진들의 자율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다양한 역사담론을 담은 역사 교과서의 출간이 역사학습을 위한 기본조건이라고 본다면 집필진들의 자율성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역사 교사들은 가르치는 내용을 선정하고 재구성하는데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교사들이 역사교과서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학생들이 읽는 교재라는 관점이었다. 역사 교사는 교과에 대한 내용 지식, 교육 과정 지식, 자신들의 역사 인식, 역사 교육에 대한 주관을 바탕으로 교과서와 다른 학습 내용을 선정하고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해서 역사수업을 전개하였다. 역사교사는 평가 등의 제약이 있어도 교사의 의지나 전문성에 따라 내용선정과 해석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검정 교과서를 접한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의 구성과 서술을 이해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 이해에 역사교사의 수업 형태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정 아래 학생들은 교과서 의존형 수업을 받은 집단과 교과서 재구성한 수업을 받은 집단으로 나누었다. 결과 교과서 의존형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교과서 서술이 다양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와 반대로 교사가 재구성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누군가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또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다양한 것에 대해 허용하는 학생수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양한 서술을 담은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공급되고 역사 교과서를 수업을 재구성할 교재로 활용하는 교사가 더 많아질 때 학생들은 역사학의 특성에 맞는 역사 학습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교육과정 개정이라는 국가 단위에서 교육 내용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정치권력의 통제력이 컸고 그 외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정치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영향력이 행사되었다. 그러나 교과서를 집필하는 단계에서는 교과서 집필진들의 전문성과 의지가 반영된 교과서를 집필할 자율적 공간이 상대적 넓었다. 검정제와 교육과정 대강화가 그 조건이 되었다. 역사 교사는 평가 등 몇 가지 통제 요인이 있지만 교육내용 선정과 조직에 있어서 자율성이 가장 많았다.
이 연구는 정치권력의 교육내용에 대한 통제와 역사교육 주체들의 자율성을 주요 개념으로 교육과정과 역사 교과서, 교사의 수업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교육과정 제정에서 정치권력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교과서 집필진들과 교사들의 자율성이 확대될 때 학생들이 역사 담론을 배우는 역사학습에 다가갈 가능성이 많아질 것을 예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