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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래난을 소재로 한 상업출판물 연구 : 방각본 <신미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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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역사기록과 대비되는 <신미록>의 소설적 특성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홍경래난을 다룬 근대 상업출판물을 <신미록>과 비교분석함으로써 근대 지식인들이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이념이나 매체 속성과 같은 조건에 따라 홍경래난 이야기를 어떻게 변용하였는지, 또 그 속에서 <신미록>이 어떤 형태로 남겨졌는지를 밝히는데 목표를 두었다. <신미록>은 1811년 발생한 홍경래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1861년 간행된 방각본소설로, 독자를 중시하는 상업출판물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록 조선왕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실기(實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역사기록의 평면적 서술과 대비되는 소설적 특성을 가졌으며, 사실적이고 빠른 사건 전개를 강점으로 조선후기 대중독자의 관심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홍경래를 중심으로 난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최남선을 비롯한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활판본과 신문·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 홍경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홍경래는 역사 속의 본받을 만한 영웅으로, 또는 차별과 억압을 떨치고 일어난 저항인이나 혁명가로 서술되고, 그러면서 1811년에 일어난 사건은 점차 임신역란이 아닌 홍경래의 난이자 민중혁명의 시초로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근대지식인들이 홍경래난 이야기를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에 부합되게 변용하면서도 정작 <신미록>이 구축한 홍경래와 주변 인물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쓰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신미록>과는 또 다른 홍경래난 이야기를 생산해내려고 시도하였으나 <신미록>을 아예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신미록>은 최초로 홍경래난에 대해서 흥미 위주의 서술을 한 소설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이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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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역사기록과 대비되는 <신미록>의 소설적 특성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홍경래난을 다룬 근대 상업출판물을 <신미록>과 비교분석함으로써 근대 지식인들이 시대적 상황...

      이 논문은 역사기록과 대비되는 <신미록>의 소설적 특성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홍경래난을 다룬 근대 상업출판물을 <신미록>과 비교분석함으로써 근대 지식인들이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이념이나 매체 속성과 같은 조건에 따라 홍경래난 이야기를 어떻게 변용하였는지, 또 그 속에서 <신미록>이 어떤 형태로 남겨졌는지를 밝히는데 목표를 두었다. <신미록>은 1811년 발생한 홍경래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1861년 간행된 방각본소설로, 독자를 중시하는 상업출판물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록 조선왕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실기(實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역사기록의 평면적 서술과 대비되는 소설적 특성을 가졌으며, 사실적이고 빠른 사건 전개를 강점으로 조선후기 대중독자의 관심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홍경래를 중심으로 난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최남선을 비롯한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활판본과 신문·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 홍경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홍경래는 역사 속의 본받을 만한 영웅으로, 또는 차별과 억압을 떨치고 일어난 저항인이나 혁명가로 서술되고, 그러면서 1811년에 일어난 사건은 점차 임신역란이 아닌 홍경래의 난이자 민중혁명의 시초로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근대지식인들이 홍경래난 이야기를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에 부합되게 변용하면서도 정작 <신미록>이 구축한 홍경래와 주변 인물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쓰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신미록>과는 또 다른 홍경래난 이야기를 생산해내려고 시도하였으나 <신미록>을 아예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신미록>은 최초로 홍경래난에 대해서 흥미 위주의 서술을 한 소설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이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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