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형법정책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행위객체가 되는 개인정보의 본질에 대한 규범적 이해가 필요하다. 규범의 정당성은 사실을 떠나서는 확정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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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형법정책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행위객체가 되는 개인정보의 본질에 대한 규범적 이해가 필요하다. 규범의 정당성은 사실을 떠나서는 확정될 ...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형법정책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행위객체가 되는 개인정보의 본질에 대한 규범적 이해가 필요하다. 규범의 정당성은 사실을 떠나서는 확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는 인격으로부터 유래한 정보이지만 사적 영역을 벗어난 개인정보는 사회경제적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는 재화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정보의 형법정책은 보호와 이용을 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정보와 관련된 침해들은 정보처리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최근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에 대한 규범적 인식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정보주체는 물론 정보이용자도 자신의 행위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준으로 삼을 전승된 가치규범을 찾을 수 없다. 규범적 인식의 부재는 정보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처벌규정과, 광범위한 집행결손으로 인한 일상적인 법익침해라는 역설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정당한 입법의 기준 없이 입법적 수단의 선택에 내몰린 입법자들에 의해 시민사회의 우려는 막연하게 강력한 범죄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구조 하에서 현행 개인정보 침해 행위 처벌규정은 결과적으로 마치 정보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으면서 정보유통체계의 기능이라는 보편적 법익을 보호하는 실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법적 정형화의 출발점은 체계비판적 법익개념이 될 것이다. 형법은 법익보호과제에 의해 근거지어지고, 이 과제를 정형화하여 수행함으로써 정당화된다. 형사처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법익이 확정되어야 하고(1단계), 법익이 형법적 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중대하게 침해되는지(2단계)가 다시 한 번 확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체계비판적 법익개념은 내재적인 한계로 인해 특히 전승된 가치규범이 없는 영역에서 판단기준을 찾을 수 없으며 비판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인격적 법익개념이 체계비판의 근거로 삼고자 했던 자유주의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며, 법익침해판단에 있어서도 선이해를 전제로 한다. 법익개념이 탈실질화되면서 행위객체와 분리되고 법익은 추상적 개념으로 도피하게 된다. 인격권과 재산권으로 도피한 정보적 자기결정권은 개인적 법익의 탈을 쓴 보편적 법익이 된다. 법익개념을 경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의사소통의 한계로 인하여 논증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므로 전승된 행위규범이 없는 영역에서 우리는 객관화 가능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상호주관적 법익개념을 바탕으로 법익개념의 오류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고려하는 절차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핵심형법의 확립된 가치기준들과의 유형비교를 통해서 바람직한 형법적 보호의 수준을 확인해야 한다. 정보적 자기결정권은 인격적 법익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궁극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인격이다. 개인정보는 인격침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명예훼손죄나 비밀침해죄의 예에 비추어 개인정보침해(1단계)가 발생할 경우 인격침해(2단계)가 실제 수반되는 경우에만 범죄화해야 한다. 이 외에도 명예훼손죄(공연성)나 비밀침해죄(비밀장치)로부터 실제 인격이 침해되는 경우로 구성요건을 한정 할 수 있는 착안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직접 인과관계가 있는 피해(1차 피해)만으로 개인정보 침해행위의 불법을 판단해야 한다. 유출된 개인정보의 이용 등 후속행위(2차 피해)로 인한 손해가 불법에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후속행위는 별개의 행위이며 별도로 처벌 가능한 범죄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민감정보만이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비민감정보의 침해는 선택적으로 비범죄화 할 필요가 있다. 재산적 침해만 있는 경우에는 민사책임과는 다른 형사책임의 특성으로 인해 이득죄의 추가적인 불법요소가 있어야 범죄화할 수 있다. 개인정보의 1차적 재산가치 또한 크지 않으므로, 경미한 재산범죄를 비범죄화하자는 주장을 고려한다면 별도로 범죄화할 필요도 높지 않다. 따라서 만약 기망이나 강박과 같은 추가적인 불법과 상당한 정도의 재산상의 손해가 확인되면 해당 불법을 고려하고 있는 현행 형법상의 이득죄로 규율하면 된다. 정보이용자의 개인정보 데이터 베이스에 대한 침해는 업무방해죄의 불법으로 구성할 수 있다.
형법전의 범죄유형으로부터 불법을 찾는 방법으로 검토했던 법익론은 유형비교를 통해 희생한계를 찾으려는 균형성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특정 또는 다수의 비민감정보 침해행위는 다른 보편적 법익과는 달리 잘게 쪼개져 직접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형법이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법익이다. 전승된 규범이 없는 영역에서 법익개념과 균형성 원칙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고, 모호성을 다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상호주관적 법익이론의 결과에 대한 반성적 고려가 이용되어야 한다. 필요성 원칙과 적합성 원칙은 법익론 또는 균형성 원칙과는 달리 전승된 규범이 없어서 규범적 실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목적’을 다루지 않고 오로지 ‘수단’의 크기를 확인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비례성의 세부원칙이다. 수단이 초래하는 결과는 최소한 거시적으로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전승된 규범이 없는 영역에서 남는 모호성은 필요성 원칙의 제도적 보장과 적합성 원칙의 절차적 보장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더 적은 침해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형법은 필요하지 않다. 독일 연방개인정보보호법률(BDDG)의 경우처럼 목적범이나 친고죄 등의 구성요건적 도구를 도입하는 방법으로 필요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민사소송이나 과징금 제도와 같이 형법 외적 수단이 불특정 또는 다수의 비민감정보 침해행위에 대한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만큼 형법은 필요하지 않다. 또한 형법 내부적으로 적합성 원칙을 절차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핵심형법적 영역과는 달리 전승된 규범이 없는 곳에서 형법은 법익보호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익을 저해하는 반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적합성 추정은 배제되며 형법적 수단의 적합성은 절차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보유통체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가운데 정보적 자기결정권의 실질적 보호를 달성할 수 있는 경우에만 형법이 투입될 수 있도록 전속고발권과 형사분쟁조정제도와 같은 적합성 보장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정보이용동의를 현실화하여 정보유통체계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정보주체의 정보적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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