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고려시대 영남지역 토광묘의 구조의 검토를 통해 그 변천에 대해 알아보고 나아가서는 입지적 특징과 피장자의 성격에 대해서도 추론해 보았다. 유구의 평면형태와 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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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시대 영남지역 토광묘의 구조의 검토를 통해 그 변천에 대해 알아보고 나아가서는 입지적 특징과 피장자의 성격에 대해서도 추론해 보았다. 유구의 평면형태와 크기를...
본 논문에서는 고려시대 영남지역 토광묘의 구조의 검토를 통해 그 변천에 대해 알아보고 나아가서는 입지적 특징과 피장자의 성격에 대해서도 추론해 보았다.
유구의 평면형태와 크기를 기준으로 소형묘, 중형묘, 대형묘로 분류하여 분석한 결과 뚜렷한 변화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고려 후기로 갈수록 묘광의 크기가 대형화되면서 평면형태도 장방형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시기적으로는 9C 후반부터 11C 중반까지 소형묘와 중형묘가 주로 조성되고 11C 중반 이후가 되면 중형묘와 대형묘가 조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닥시설로는 통일신라시대 묘제의 영향을 받아 9C후반에서 11C중반의 유적들에서 확인되는데 영남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영남지역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주 물천리 Ⅲ-17호와 같이 13C후반까지도 시상이 있는 유구가 있어 통일신라시대 묘제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13C 후반에서 14C 후반까지의 유적들에서는 묘광 중앙바닥에 요갱이 나타난다. 크게 4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지나 13C후반~14C후반의 유적들에서 확인되고 있어 그 선후관계나 변화상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물의 부장은 주로 피장자의 발치쪽에 부장되는데 고려 초기의 유적들에서 청자류 1점과 청동기류가 같이 부장되는데 유물이 수량도 후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공반유물들 또한 많지 않다. 후기가 되면서 유물부장의 형태는 점점 발치쪽 부장으로 정형화되고 세트를 이루어 부장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려시대 토광묘 유적은 총 37개소로 경북지역에 25개소, 경남지역에 12개소이다. 총 37개의 유적 중 주변 유적과의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유적은 14개소 정도이다. 대체로 인근에 산성과 읍성, 역지 등을 끼고 유적이 형성되었는데 울산혁신도시, 산청 평촌, 상주 청리유적과 같은 대규모 유적들이 모두 주변에 산성과 읍성을 끼고 있다.
전체 유적에서의 동일한 입지 양상은 아니지만 행정중심지 또는 군사중심지 인근에 유적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유적 입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피장자의 성격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양인 이상의 신분층 또는 하급관료, 향리층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사료와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지방에서 묘를 조성할 수 있는 계층은 일정 이상의 경제력과 신분을 가지고 있으나 중앙 관직에는 나아가지 못한 계층인 향리층인 것으로 보았다. 향리층은 그들의 사후에 자신의 연고지에 묘지를 정하고 그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토광묘에서 출토되는 청자, 청동거울, 동전, 동인, 교구 등을 소유할 수 있는 계층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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