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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 태권도 경기의 변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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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여성 태권도경기의 시작과 전개의 과정, 그리고 여성태권도 경기 기술의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여성 태권도경기 전반에 관한 기초 자료를 확립하고, 여성태권도경기의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데 있다. 이에 따른 여성태권도 발전에 기여함에 목적을 두고 한국여성 태권도 경기의 변천과정과 여성 태권도 경기기술의 변화과정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이지만 여성태권도 경기에 출전한 기록을 보면 여성이 남성들보다 약 10년 뒤에 시작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자태권도 우수 선발전의 경우 1971년 한성여고에서 전국 여자 태권도 우수선발전이 개최되어 A, B, C조로 나뉘어 A조는 2단 이상, B조는 1단, C조는 1급에서 3급까지로 단과 급으로 제한하여 경기가 이루어졌다. A조에서는 1위 남궁명석, 2위 염은실, 3위에 최춘희, 김춘옥 등이 입상하였으나 체급별 경기가 아닌 태권도의 단(段)과 급(級)의 형태로 진행되었음으로 국가대표선발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78년 월드 초청여자부 선발대회에서는 유단자 자격을 가진 선수들만이 출전을 하였다. 특히 이 대회는 처음으로 8체급으로 나뉘어 대회선발전을 치르게 되어 임신자, 유선섭, 김경주, 양현자, 김지연, 남궁숙, 김안나, 안선미 등이 공식적인 여자 국제태권도대회에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며 여성태권도경기의 기반을 잡은 대회라 할 수 있다.
    1982년 11월「1982년도 여자태권도대표선수선발전」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여자국가대표선발전이 이뤄지게 되었으며, 이후 공식적인 여자국가대표선수선발전이 계속되었다. 여자 국가대표선발전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각종 국제적인 태권도 경기대회가 많아짐에 따라 당 해년도 국가대표선수선발과정에서 1, 2, 3위의 선수를 선발하여 1982년 한국․대만 친선경기에 처음으로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시합에 파견하게 되었다.
    1987년도에 스페인에서 제1회 세계여자태권도선수권대회가 개최된 이래 2009년까지 모두 11회의 세계여자태권도선수권대회가 치러졌다. 아시안게임은 처음으로 1998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여성태권도 경기를 치렀으며, 2010년 중국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룰 계획이다.
    올림픽경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종목,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시작으로 하여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북경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여자부경기가 정식종목으로 경기를 치러지면서 발전되었다고 판단된다.
    둘째, 여성태권도경기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근대이전부터 내려오던 여성들의 체육활동 참여에 대한 사회적인 부정적 편견과 특히, 여성태권도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나타나게 되는 제반여건의 미성숙 등으로 인하여 여성태권도경기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권도에 관심이 있던 소수의 여성들조차도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가족, 친지를 따라 도장을 다니며 태권도를 접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1970년대 초반에 선수로 활동했던 남궁명석, 염은실, 최춘희 등은 우리나라 여성태권도경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 선수들이라고 사료된다.
    도장을 중심으로 소수의 인원들이 경기에 참여하던 여성태권도경기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몇몇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선수단이 창단되기는 하였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여성태권도선수들의 탈 도장화(脫 道場化를) 불러오게 되면서 여성태권도경기가 학교를 중심을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시기의 여성태권도경기기술은 기초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으며 두텁지 못한 선수층으로 이루어진 점과, 경기의 비활성화로 경쟁체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특히 초창기 시작되는 여성태권도경기의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태권도의 기본기훈련을 중심으로 체력훈련과 반복훈련을 중점화해서 연습시키면서 실제 경기현장에도 적용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의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우리나라 여성태권도 또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면서 여성태권도연맹의 창단을 시작으로 각종 여성태권도대회의 활성화와 함께 그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시기 중․후반부에는 그간에 소외되었던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등과 같은 국제대회에 여자부가 정식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태권도의 국제화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시기 여성 태권도경기의 기술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전 1970년대의 기본기, 기본발차기와 체력훈련을 위주로 한 훈련이나 경기방법에서 스텝 훈련과 그의 응용적인 동작들에 대한 발전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스텝과 연결할 수 있는 동작들의 연결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완성된 상태는 아니지만 초창기적 연결동작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경기의 상황에서는 어려운 얼굴동작 보다는 몸통위주의 공격과 받아차기를 주득점원으로 하였으며 주로 몸통돌려차기와 같은 단발동작으로 득점을 얻어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국제경기에서는 우리나라선수들의 기술이 외국선수들보다 경기력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어 몸통공격과 얼굴공격을 모두 다양하게 사용하였으며 특히 얼굴공격에서는 내려차기와 같은 기술이 많이 발휘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게 되고, 여성의 태권도경기에 참여하는 인구 또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전국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여자부 경기가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국제대회에서도 남성들과 동일하게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서 여성태권도경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태권도뿐만이 아니라 각종 주목받는 국제경기에서 여성 선수들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성적을 내고, 국위선양을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여성 태권도경기의 기술은 몇몇 특출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술의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어 단타위주의 기술을 발휘하여 경기운영을 하게 되었다. 공격의 방식은 빠른발 공격과 끌어 앞발 돌려차기, 그리고 단발 뒷발 돌려차기기와 같은 동작이 이루어졌으며,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대하여 주먹으로 걸고 뒷발로 돌려차기 형태의 공격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단발공격 중심에서 연결동작의 형태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모션을 주거나 움직임을 이용해서 상대의 선제공격을 유도한 다음 이것을 예측하여 받아차는 형태의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뒤차기와 뒤후려차기와 같은 발차기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국제대회의 경우 한국선수들이 대체적으로 강세를 보인 이 시기에 한국의 여자 대표선수들은 외국선수들과의 경기에서 기술과 심리적인 우월성을 앞세워 모션을 준다거나 맞폼을 잡아서 상대의 선제공격을 유도하여 뒤차기나 뒤후려차기 등과 같은 받아차기 형태의 기술을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의 단일점수제 상황에서는 몸통부분을 위주로 한 공격이 많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빠른발을 이용한 앞발 붙여차기와 그의 연결동작, 그리고 스텝을 이용한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여 뒷발 돌려차기 동작들과 같은 패턴의 기술들이 사용되었다.
    2000년대 중반 경기규칙의 개정으로 얼굴차기에 2점이 주어지게 되면서 앞돌려차기와 내려차기와 같은 기술로 얼굴공격을 하는 경향이 많아지게 되었으며,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얼굴공격에 대하여 3점, 많게는 4점까지 주어지게 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돌개차기, 뒤후려차기와 같은 기술동작의 발휘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상대방의 얼굴공격을 차단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연결동작을 첫 동작에 제지하는 방법과 같은 전술훈련이 나타나게 되었다.
    국내에서의 경기와 국제대회에서 경기규칙의 적용이 달라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이 나타났으며, 특히 전자호구의 경우 국내선발전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제품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그에 대한 적응, 준비의 부족으로 한국대표선수들의 경우 경기력이 턱없이 낮게 발휘되고, 심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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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여성 태권도경기의 시작과 전개의 과정, 그리고 여성태권도 경기 기술의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여성 태권도경기 전반에 관한 기초 자료를 확립하고, 여성태권도경기의 연구에...

    본 연구는 여성 태권도경기의 시작과 전개의 과정, 그리고 여성태권도 경기 기술의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여성 태권도경기 전반에 관한 기초 자료를 확립하고, 여성태권도경기의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데 있다. 이에 따른 여성태권도 발전에 기여함에 목적을 두고 한국여성 태권도 경기의 변천과정과 여성 태권도 경기기술의 변화과정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이지만 여성태권도 경기에 출전한 기록을 보면 여성이 남성들보다 약 10년 뒤에 시작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자태권도 우수 선발전의 경우 1971년 한성여고에서 전국 여자 태권도 우수선발전이 개최되어 A, B, C조로 나뉘어 A조는 2단 이상, B조는 1단, C조는 1급에서 3급까지로 단과 급으로 제한하여 경기가 이루어졌다. A조에서는 1위 남궁명석, 2위 염은실, 3위에 최춘희, 김춘옥 등이 입상하였으나 체급별 경기가 아닌 태권도의 단(段)과 급(級)의 형태로 진행되었음으로 국가대표선발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78년 월드 초청여자부 선발대회에서는 유단자 자격을 가진 선수들만이 출전을 하였다. 특히 이 대회는 처음으로 8체급으로 나뉘어 대회선발전을 치르게 되어 임신자, 유선섭, 김경주, 양현자, 김지연, 남궁숙, 김안나, 안선미 등이 공식적인 여자 국제태권도대회에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며 여성태권도경기의 기반을 잡은 대회라 할 수 있다.
    1982년 11월「1982년도 여자태권도대표선수선발전」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여자국가대표선발전이 이뤄지게 되었으며, 이후 공식적인 여자국가대표선수선발전이 계속되었다. 여자 국가대표선발전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각종 국제적인 태권도 경기대회가 많아짐에 따라 당 해년도 국가대표선수선발과정에서 1, 2, 3위의 선수를 선발하여 1982년 한국․대만 친선경기에 처음으로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시합에 파견하게 되었다.
    1987년도에 스페인에서 제1회 세계여자태권도선수권대회가 개최된 이래 2009년까지 모두 11회의 세계여자태권도선수권대회가 치러졌다. 아시안게임은 처음으로 1998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여성태권도 경기를 치렀으며, 2010년 중국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룰 계획이다.
    올림픽경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종목,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시작으로 하여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북경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여자부경기가 정식종목으로 경기를 치러지면서 발전되었다고 판단된다.
    둘째, 여성태권도경기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근대이전부터 내려오던 여성들의 체육활동 참여에 대한 사회적인 부정적 편견과 특히, 여성태권도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나타나게 되는 제반여건의 미성숙 등으로 인하여 여성태권도경기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권도에 관심이 있던 소수의 여성들조차도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가족, 친지를 따라 도장을 다니며 태권도를 접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1970년대 초반에 선수로 활동했던 남궁명석, 염은실, 최춘희 등은 우리나라 여성태권도경기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 선수들이라고 사료된다.
    도장을 중심으로 소수의 인원들이 경기에 참여하던 여성태권도경기는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몇몇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선수단이 창단되기는 하였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여성태권도선수들의 탈 도장화(脫 道場化를) 불러오게 되면서 여성태권도경기가 학교를 중심을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 시기의 여성태권도경기기술은 기초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으며 두텁지 못한 선수층으로 이루어진 점과, 경기의 비활성화로 경쟁체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특히 초창기 시작되는 여성태권도경기의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태권도의 기본기훈련을 중심으로 체력훈련과 반복훈련을 중점화해서 연습시키면서 실제 경기현장에도 적용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의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우리나라 여성태권도 또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분위기에 편승하게 되면서 여성태권도연맹의 창단을 시작으로 각종 여성태권도대회의 활성화와 함께 그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시기 중․후반부에는 그간에 소외되었던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등과 같은 국제대회에 여자부가 정식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태권도의 국제화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시기 여성 태권도경기의 기술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전 1970년대의 기본기, 기본발차기와 체력훈련을 위주로 한 훈련이나 경기방법에서 스텝 훈련과 그의 응용적인 동작들에 대한 발전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스텝과 연결할 수 있는 동작들의 연결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완성된 상태는 아니지만 초창기적 연결동작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경기의 상황에서는 어려운 얼굴동작 보다는 몸통위주의 공격과 받아차기를 주득점원으로 하였으며 주로 몸통돌려차기와 같은 단발동작으로 득점을 얻어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국제경기에서는 우리나라선수들의 기술이 외국선수들보다 경기력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어 몸통공격과 얼굴공격을 모두 다양하게 사용하였으며 특히 얼굴공격에서는 내려차기와 같은 기술이 많이 발휘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게 되고, 여성의 태권도경기에 참여하는 인구 또한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전국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여자부 경기가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국제대회에서도 남성들과 동일하게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서 여성태권도경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태권도뿐만이 아니라 각종 주목받는 국제경기에서 여성 선수들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성적을 내고, 국위선양을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여성 태권도경기의 기술은 몇몇 특출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술의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어 단타위주의 기술을 발휘하여 경기운영을 하게 되었다. 공격의 방식은 빠른발 공격과 끌어 앞발 돌려차기, 그리고 단발 뒷발 돌려차기기와 같은 동작이 이루어졌으며,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대하여 주먹으로 걸고 뒷발로 돌려차기 형태의 공격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단발공격 중심에서 연결동작의 형태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모션을 주거나 움직임을 이용해서 상대의 선제공격을 유도한 다음 이것을 예측하여 받아차는 형태의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뒤차기와 뒤후려차기와 같은 발차기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국제대회의 경우 한국선수들이 대체적으로 강세를 보인 이 시기에 한국의 여자 대표선수들은 외국선수들과의 경기에서 기술과 심리적인 우월성을 앞세워 모션을 준다거나 맞폼을 잡아서 상대의 선제공격을 유도하여 뒤차기나 뒤후려차기 등과 같은 받아차기 형태의 기술을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의 단일점수제 상황에서는 몸통부분을 위주로 한 공격이 많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빠른발을 이용한 앞발 붙여차기와 그의 연결동작, 그리고 스텝을 이용한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여 뒷발 돌려차기 동작들과 같은 패턴의 기술들이 사용되었다.
    2000년대 중반 경기규칙의 개정으로 얼굴차기에 2점이 주어지게 되면서 앞돌려차기와 내려차기와 같은 기술로 얼굴공격을 하는 경향이 많아지게 되었으며,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얼굴공격에 대하여 3점, 많게는 4점까지 주어지게 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돌개차기, 뒤후려차기와 같은 기술동작의 발휘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상대방의 얼굴공격을 차단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연결동작을 첫 동작에 제지하는 방법과 같은 전술훈련이 나타나게 되었다.
    국내에서의 경기와 국제대회에서 경기규칙의 적용이 달라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이 나타났으며, 특히 전자호구의 경우 국내선발전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제품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그에 대한 적응, 준비의 부족으로 한국대표선수들의 경우 경기력이 턱없이 낮게 발휘되고, 심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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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연구의 필요성 1
    • 2. 연구의 목적 3
    • 3. 연구의 제한점 3
    • Ⅱ. 이론적 배경 4
    • Ⅰ. 서론 1
    • 1. 연구의 필요성 1
    • 2. 연구의 목적 3
    • 3. 연구의 제한점 3
    • Ⅱ. 이론적 배경 4
    • 1. 태권도경기의 정의 4
    • 2. 태권도경기의 발전과정 7
    • 3. 태권도 경기 규칙의 변천과정 10
    • Ⅲ. 연구방법 및 절차 13
    • 1. 연구의 참여자 13
    • 2. 조사도구 15
    • 3. 자료분석 18
    • 1) 귀납적 분석 18
    • 2) 타당도 검증 19
    • Ⅳ. 결과 및 논의 20
    • 1. 한국 여성태권도 경기 변천과정 20
    • 2. 국내 여성 태권도 경기대회의 변천과정 24
    • 1) 초창기 여성 참여대회 24
    • 2) 전국체육대회 27
    • 3) 국가대표 선발전 33
    • 3. 주요 국제 여성 경기대회의 변천과정 42
    • 1) 올림픽 게임 42
    • 2) 세계선수권대회 44
    • 3) 아시아선수권대회 48
    • 4. 여성태권도 경기기술 변천과정 52
    • 1) 1970년대 경기기술 52
    • 2) 1980년대 경기기술 55
    • 3) 1990년대 경기기술 59
    • 4) 2000년대 경기기술 64
    • Ⅴ. 결론 70
    • 참고문헌 75
    • ABSTRACT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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